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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싸해진 분위기가 장내를 감쌌다.
그만큼 방금 서연이 보여준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뜻이다.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서 수상할 정도로 싱크로가 맞았다.
‘혹시 몇 명 담가봤나?’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한 배진환 감독은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애를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무튼,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자신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배우들의 눈동자가 갈피를 잃고 서로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보면.
“……제가 뭔가 실수했나요?”
그런 분위기에 조금 시무룩해진 서연이 말하자.
“아뇨!”
“절대 아닙니다, 그쵸?”
“서연 씨가 너무 잘해서, 다들 놀란 거예요.”
“네네, 그렇죠.”
남자 배우들부터 시작해서, 한예화 역의 정시현 배우까지 재빠르게 말을 맞췄다.
꾸민 외모나, 행동 때문에 헷갈리지만 서연은 아직 10대의 소녀였다는 걸 자각했다.
실제로 연기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순수하게 연기가 너무 섬뜩했을 뿐.
“그런가요?”
물론 서연은 딱히 시무룩해진 건 아니었다.
슬쩍 말을 떠보기 위해 연기했을 뿐이다.
그래도 긴장했던 건 사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서연은 내심 안도했다.
‘너무했나?’
아니, 하지만 이 정도가 맞아.
서연은 속으로 되뇌었다.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도 이해는 됐다.
인생 배역.
적어도 이번 배역은, 주서연에게 있어 인생 배역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갈지 모른다.
‘정확히는…….’
주서연이라는 인물보다는, 전생의 자신.
과거의 자신의 인생을 닮은 배역.
“어음. 우선 몇 장면만 더 한번 해보죠.”
배진환 감독은 분위기를 환기 시키고자 그렇게 말했다.
거기다 방금 서연에게서 느꼈던 섬뜩함이 착각이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건 배진환만이 아니었다.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
“이번엔 제가 한번 괜찮을까요?”
손을 든 건, 피해자 한예화 역의 정시현 배우였다.
그녀는 서연을 바라보며 마른 침을 삼켰다.
‘쟤가 주서연이구나.’
정시현은 내심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게.
그녀가 속한 소속사에는 주서연의 피해자가 한 명 있었으니까.
“아니, 진짜 좀 너무하잖아.”
식당에서 샐러드를 포크로 거칠게 헤집으며 말하는 여성.
이제 서른 중후반이 되었지만,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한 외모를 자랑하는 여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연기파 여배우 중 하나로 자리한 하예서는 분하다는 듯 말했다.
“왜 갑자기 10년 만에 돌아와서 부관참시를 해?”
“언니도 다시 찍으면 되죠.”
“……장난하니? 아줌마가 이제 그런 역을 어떻게 하겠니? 그럼 연화공주가 아니라 연화대비지.”
아줌마라니.
정시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여자는 누구보다 자신이 아줌마로 안 보인다는 걸 아는 사람 뿐이다.
저러고 아줌마라고 놀리면 불같이 화내겠지.
“아무튼.”
음료로 입가심을 한 그녀는 말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그 아이랑 같이 연기한다고?”
“네. 이번에 악역으로 캐스팅 되었다고 들었어요. 차서아 역.”
“흐음, 악역이라.”
하예서는 오래 전 보았던 어린 서연을 떠올렸다.
연기 기술은 미숙했으나, 아이 답지 않은 아역이었다.
그때 서연의 연기를 본 하예서의 기분이 어땠냐면.
“섬뜩했어.”
“네?”
“아이 답지 않은 감정 연기. 감정이 어긋난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정은선 배우님이 엄청 뭐라 했지.”
“10년 전에도 성격이 별로 좋지는 않으셨나 봐요.”
“좋지 않은 걸 떠나 그냥 눈치 없는 할머니지 뭐.”
원로 배우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단 둘이면 뭔 말을 못 하겠나 싶었다.
“아무튼. 조심해.”
“네?”
“나처럼 부관참시 당하고 싶지 않으면.”
솔직히 하예서는 서연과 한번 같이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과거의 설욕.
음, 그렇고 말고. 과거의 설욕을 꼭 한번 해주고 싶었으니까.
하예서는 방울 토마토를 씹으며, 눈앞의 후배를 보았다.
연기력도 훌륭하고, 외모도 좋은.
미래가 더더욱 기대되는 여배우.
‘재능은 확실히 있는데, 너무 온실 속에서 연기를 했단 말이지.’
어쩌면 이번 영화는 아주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벽을 부수기 위해선.
결국 벽이 뭔지 봐야 하는 법이니까.
10년 만에 복귀한 천재 아역.
그 첫 연극 무대를 하예서 또한 조용히 지켜보았었다.
“잘해봐.”
그러니 하예서는 후배에게 그렇게 말했다.
정시현은 드물게 응원해주는 선배의 말에 솔직히 별 생각 없었다.
아무리 잘해봐야 10대의 배우.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이게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자칫하면 선배처럼 자신 또한 피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
아니, 피해자보다 더 비참한 꼴이 될 것이다.
하예서는 적어도 한 장면에서 같이 나온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차서아와 한 장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배역이 한예화다.
그야 그녀에게 끌려간 피해자 역할이니까.
“좋습니다.”
배진환에게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둘의 연기.
미리 한 번 합을 맞춰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으니까.
“어디 보자……, 씬 37번이네요.”
S# 37.
이번엔 형사 때와 달리 격정적인 파트였다.
‘방금 연기가 과연.’
‘우연이었는지.’
‘혹은 진짜인지 봐야겠어.’
배우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연에게 향했다.
서연과 정시현.
두 젊은 여배우.
둘은 테이블이 아닌 자리에서 일어나, 빈 공간에 서로를 마주하고 섰다.
테이블을 두고 연기를 펼치기엔 조금 격정적인 파트였으니까.
조명이 제대로 닿지 않은 곳.
정시현은 그곳에 서서 서연을 보았다.
검은 긴 흑발, 그에 대비되는 하얀 피부.
눈을 보면, 헤이즐 색 눈동자에 점차 붉은 빛이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섬뜩했다.
연기를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눈앞에 차서아가 서 있는 것만 같아서.
대본을 손에 쥐고.
정시현은 머릿속에 장면을 그렸다.
호흡을 한 번.
눈을 질끈 감았다 떴을 때.
한예화는 골목에 있었다.
좁은 골목을 달려, 그 뒤를 쫓는 거친 발걸음이 있었다.
멀리서 들리던 발자국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하아, 흡. 하아.」
거친 숨을 내뱉으며 한예화가 숨을 토했다.
양손으로 입을 막아보았지만, 가쁜 숨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대체, 왜.」
꺼질듯한 목소리로 한예화는 앞을 보았다.
쓰레기 더미로 막힌 골목이 보였다.
등 뒤에서 들리던 발자국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설마 두고 간 걸까?
벽을 향해 있던 한예화가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그러자.
골목의 입구에 자신을 바라보는 여성이 있었다.
손에 쥐어진 건 망치였다.
흔히 구할 수 있는 공구.
하지만 그 공구에는 절대 묻어선 안 되는 것이 묻어있었다.
붉은 피.
방금, 자신의 남자친구의 머리를 때린 망치가 그 손에 쥐어져 있었다.
「왜, 왜 그러는 거야!!」
비명처럼 소리치자, 그제야 여성의 발걸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성은 웃고 있었다.
마치 도망친 한예화를 발견한 것에 대한 기쁜 미소.
그랬다면.
차라리 그랬다면 이런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 텐데.
「그냥.」
여성은 웃으며 말했다.
그 입가에 걸린 미소는 마치 인형의 얼굴에 덧씌운 불쾌한 화장 같았다.
「여기가, 아파서.」
고저 없는 목소리.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
여성의 발걸음이 조금씩.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한예화가 숨을 삼키며 몸을 빼려 했을 때는 이미 코앞에 여성이 당도한 후였다.
그녀의 얼굴이 한예화의 코앞에 들이밀어졌다.
마치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읽는 것처럼.
「정말 이렇게 알기 쉬우면 좋을 텐데」
공포.
경악.
그런 감정은 너무 또렷해서 알기 쉬웠다.
「이렇게.」
소녀의 표정이 움직였다.
마치 겁에 질린 한예화의 표정을 흉내내는 것처럼.
그 얼굴을 닮았다.
공포를 흉내낸 인간의 얼굴은.
지독히도 불쾌했다.
「이렇게?」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
마치 타인의 얼굴로, 자신의 표정이 어떠한지 보는 것 같았다.
「모르겠다.」
소녀의 손이 움직였다.
망치를 움직이려 했다.
한예화는 온 힘을 다해 그런 그녀의 가슴팍을 밀쳐냈다.
아니, 밀쳐내야 했다.
그리고 몸싸움 끝에 그녀를 떨쳐내야만 했다.
연기를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정시현은 자신을 내려보는 차서아의 얼굴을 보며 얼어버렸다.
그 존재감에 그대로 눌려버렸다.
필사적인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휘둘러진 망치에 얻어맞고 기절하는.
그런 장면이 되어야 했다.
“거기까지.”
어두운 골목이 밝은 전등이 보이는 실내가 되었다.
배진환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턱을 쓸었다.
“두 분 다 너무 잘하셨습니다.”
그 말은 거짓 없는 칭찬이었다.
마지막, 서연의 손에 정시현이 눌리기 전까진 그랬다.
코앞에서 서연의 얼굴을 본 정시현이 굳어버리기 전까지.
평소라면 실수를 피드백해주었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애매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정시현이라는 배우를 자신이 과소평가 했구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배우들은 허망한 얼굴로 선 정시현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함께 붙는 순간, 전혀 보이지 않았어.’
조금 떨어진 자리에 있을 때, 정시현의 연기는 박수를 쳐줄 정도였다.
하지만 서연의 손에 제압 된 장면부터.
한예화라는 캐릭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연극.’
연극에서 보여준 그 연기가 이렇게 도움이 된 건가?
대본 리딩이 아니라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과장되었지만, 악역이기에 너무나 어울리는 그 연기에.
아니, 연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훌륭한 싱크로를 보여준 주서연의 존재감에.
한예화라는 캐릭터는, 정시현이라는 배우는 완전히 묻혀버렸다.
‘악역이 돋보이는 장면인 건 맞지만.’
‘이렇게까지 압도 되면 어려운데.’
배우들은 저마다 자신이 정시현 배우와 같은 장면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쉽지 않다.
저 정도의 압박감은, 장면 자체를 홀로 압도하는 대배우들이나 지닐 법한 연기였다.
그 정도의 힘이 있었다.
‘조심해야겠어.’
특히 주연인 임승철 역의 김대헌 배우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도 어디 가서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김대헌은 낮게 웃었다.
조금 기대되는 것도 있었다.
저 아이와 한 장면에 나왔을 때, 얼마나 멋진 그림이 그려질지.
자신이 어떤 연기를 펼칠지.
그것이 무척 기대되었다.
“…….”
그리고.
방금 함께 연기를 펼쳤던 정시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을 마주 본 서연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면목이 없었다.
“미안해요.”
“네?”
“다음에는, 실수 없이 할게요.”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린 배우에게 정시현은 사과했다.
그건 자신을 향한 반성이기도 했다.
만약 자신이 실수하지 않았다면, 정말 멋진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
그걸 자신이 망쳤다.
‘다음에는.’
절대 이번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
그녀는 그런 다짐을 했다.
방금 서연이 보여준 연기를 절대 망치지 않겠다고.
‘……음.’
서연은 그런 정시현을 보며 입을 달싹이다 이내 굳게 다물었다.
이럴 때는 뭐라 말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으니까.
위로해줘야 하나?
아니지, 이럴 때는 응원을 해주는 게…….
“파, 파이팅.”
“네?”
“아, 아니에요…….”
서연은 자신의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저주스러웠다.
진심으로.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 후.
연극 가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리며.
이지연에게 부탁했던 케이블 방송에서 연락이 왔다.
10년 동안 게임 방송국에서 방영된 방송.
바로 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