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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13 KiB

숙소 안.

초코몽을 마시면서 억지로 속을 달래고 있는 유아린. 씩씩거리듯 콧바람을 불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진짜 이게 맞는 거야?"

결국 참지 못하고 서예린 쪽을 쳐다본다.

"둘을 그냥 보내는 게 진짜 맞아?"

아무리 최이서가 멀리서 찾아왔다고 해도, 콘서트 티켓이 두 사람밖에 못 들어간다고 해도.

좋아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랑 데이트하게 보내주는 이 상황이 진짜 맞는 거냐고 따져본다.

하지만 서예린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유아린의 질문에 어깨만 으쓱였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이서랑 골드원 오기도 전부터 약속해 둔 거였잖아."

"그게 마음에 안 들어. 그 새끼는 왜 나랑 안 가고……."

"나는 솔직히 그런 사람 많은 곳 별로 안 좋아해서, 딱히."

여유 부리는 것 좀 봐.

최이서랑 갔어도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다는 건가 싶어서 유아린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지난번에 자신에게 보였던 초조함이랑은 다른 이유는 잠자리를 가지는 게 아니라서 그런 걸까?

'얘가 뭔가 이상해졌다니까.'

하여튼 김우진이 사람 망치는데 뭐가 있다. 서예린도 그렇고, 자신도 그렇고.

"아, 씨."

그런 와중에도 유아린은 자신의 핸드폰에 오는 알림을 보고 짜증을 냈다.

오랜만에 대나무숲에서 온 알림이었는데.

  • 익명69: 섹x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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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무슨 일인지 게시판 규정도 무시하고 섹x좌가 도배에 한창인 것.

"하여간 기분도 더러운데 이상한 게 눈에 밟혀."

짜증 난 유아린은 경고도 없이 바로 사흘 동안 차단을 때려버렸다. 도배하지 말라고 이미 몇 번이나 경고했으니 이 정도는 충분하겠지.

"귀찮게하긴."

화풀이 정도는 됐다는 생각에 살짝 마음이 가벼워진 유아린은 다 마신 초코몽을 쓰레기통에 넣었는데.

"……왜?"

갑자기 서예린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빤히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것도."

방금까지 열심히 핸드폰을 보고 있던 서예린이 천천히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게슴츠레하게 노려보고 있는 상황.

"뭔데?"

"아- 무것도!"

갑자기 얘가 왜 이러나 싶어서 되물었음에도 서예린은 더욱 성을 내면서 대꾸할 뿐이었다.

'뭐지.'

자신이 뭔가 심기를 거스르게 했나 싶지만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지 않은가.

'방금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던 애가 왜 그러지.'

최근 서예린은 정말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유아린은 그냥 산책이나 다닐까 싶었는데.

"얘들아, 스키 타러 갈 사람 있니?"

그때 방 안으로 들어온 민주희. 어깨를 들썩이면서 스키 타러 가자고 꼬시는 모습이 나이에 맞지 않게 방정맞아서 귀여웠다.

보기에 딱 걸맞게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민주희다운 제안.

"저는 안 갈……."

"같이 가요. 아린이도 같이 갈 거예요."

"오케이."

탕.

민주희가 문을 닫고 나가고.

유아린은 멍한 표정으로 서예린을 쳐다보자, 그녀는 서늘함이 섞인 미소를 지으면서 응수했다.

"네가 나 심심하게 만들었잖아."

그리곤 준비를 시작한 서예린.

"……내가?"

그녀의 등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되물어봤으나, 공허한 무대응뿐이었다.


"와, 사람 많은 것 좀 봐."

유아이 콘서트니까 사람이 많을 건 예상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아서 좀 놀랐다.

이거 잠깐만 정신을 놓아도 최이서랑 떨어지겠구나 싶어서 냉큼 어깨에 손을 두른다.

"이거 뭐냐?"

그리고 그런 나를 쏘아보는 최이서.

자신의 어깨에 둘러진 내 팔을 살짝 꼬집는다.

"잘못해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내 나름대로 잡은 건데."

"그런 건 보통 손을 잡지 않냐?"

싸늘한 목소리.

아직도 화가 잔뜩 나 있는 걸 온몸으로 표현해 주신 덕분에 절제할 수 있었다.

"아니, 손잡으면 아플 것 같아서."

천천히 팔을 풀고 손을 잡는다.

"아악! 아파효오!"

바로 손에 힘을 꽉 주는 최이서. 심지어는 양손으로 꽉 누르는데 진짜 너무 아프다.

"아파! 아프다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지만 최이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씩씩거리면서 손을 놓아주고는 엉덩이에 로우킥까지 한 대 갈기곤 성큼성큼 대기줄로 걸어간다.

"어우, 뭔 놈의 힘이……."

유아린은 나한테 운동 더 하지 말라고 했지만 운동은 최이서가 그만해야 한다.

저러다 철인되겠어.

냉큼 최이서를 따라서 뒤에 섰는데 여전히 팔짱을 낀 상태로 이쪽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화가 잔뜩 난 그녀.

여기선 여친도 있었으며, 과에서 3명이랑 섹x를 했던 나의 테크닉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화난 여자 마음 녹이는 것 정도는 쉽지.

최이서의 눈을 양손으로 가리면서 장난스럽게 묻는다.

"누구- 커헑?!"

바로 들어온 백스핀 엘보우가 내 복부를 가격했다. 이 자식 PT만 배우는 게 아니라 종합격투기도 배우는 게 분명하다.

배를 움켜쥔 채로 고통스러워하길 몇 초.

'첫 작전 실패인가.'

괜찮다.

아직 방법은 많다.

"이서야, 내가 목마……!"

"뒤질래?"

"……."

두 번째도 실패했군.

목마 태워줘서 하늘의 신선한 공기를 맡게 해주면 좀 기분이 풀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럼 윈드……!"

"적당히 해라."

세 번째도 실패인가.

'윈드밀은 진짜 백퍼 성공할 줄 알았는데.'

윈드밀 도는 유아린의 멋있음을 느꼈던 나였기에, 윈드밀을 돌기만 하면 바로 최이서가 뻑 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아직 잘 돌진 못하지만 어쨌든 노력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좋지 않은가.

'그럼 다음은…….'

일단 웃을 수 있는 걸 보여주자.

"이거 봐."

핸드폰을 내민다.

한강과 표진호 그리고 안현호가 찍힌 술자리.

중요한 건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잔뜩 있다는 거였는데.

"너 왔을 때, 이서아가 말했던 거 기억해? 남자친구가 동아리 술자리 참여한다고 했잖아."

"……."

멀뚱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최이서.

됐다.

나름 관심을 보인 그녀에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내가 거절한 것도 좀 미안하고 해서 우리 얼간이 친구들한테 도와달라고 했거든."

얘네가 또 그냥 얼굴만 봤을 때는 매력이 넘치지 않은가.

교회 오빠처럼 생긴 강한강.

듬직한 곰 체형의 표진호.

날카로운 나쁜 남자 스타일의 안현호까지.

"거기 동아리 술자리에 헌팅 걸어서 아주 망쳐놨다더라. 여기 구석에 죽상인 남자 보이지? 이게 이서아 남친임."

"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최이서.

기회다 싶어서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려고 했는데, 의외로 관심은 길게 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도와주긴 했네."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모습.

'이게 아닌가.'

최대 칭찬, 최소 재밌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는데 실패했다.

심지어.

"어떻게 윤지랑 사귄 거야."

"……."

내 실력을 부정당하는 발언까지 듣게 된 상황.

솔직히 최근 이런저런 일로 여자애들이랑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보니 나름 자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까 정상적인 편은 아니었구나.'

하나는 대나무숲에서 섹x섹x 거리는 애였고, 하나는 윈드밀을 도는 여자애다.

그냥 생각해도 일단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지.'

이러다간 콘서트 보고 돌아갈 때까지 이 상태일 수도 있다.

콘서트가 시작하면 따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을 테니까.

그러면 콘서트를 같이 보러 온 게 아니라 그냥 각자 본 거랑 별다른 게 없지 않은가.

'다시 사과?'

이미 오기 전에 몇 번이나 했다.

최이서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애초에 본인이 사과를 받을 입장이냐면서 비아냥거릴 정도.

'전화라도 해서 도와달라고 할까.'

마음 같아서는 같은 여자인 유아린이나 서예린한테 묻고 싶지만 그랬다가 어떤 쌍욕이 돌아올지 모른다.

당장 대나무숲에도 서예린이 도배하는 걸 봤으니, 지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후, 이 방법까진 안 쓰려고 했는데.'

천천히 핸드폰을 꺼내서 통화를 건다.

몇 번의 통화음 이후 전화를 받은 남자.

  • ……여보세요.

방금 자다 일어났는지 잠긴 목소리.

한강 선배였다.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 싫은데.

"네, 물어볼게요."

  • 싫다니까.

슬며시 몸을 틀어 최이서가 듣지 못하게 작게 속삭인다.

"화난 여자 마음 풀어주는 건 어떻게 해요?"

  • 누가 화났니? 예린이? 아님 이서? 헤어졌어? 꼴도 보기 싫대? 호우! 호우호우호우! 오늘 바로 애들 소집해서 술 마셔야지! 호우!

씨발놈이.

  • 예린이한테 한강 오빠는 여전히 솔로라고……!

  • 오빠, 누구랑 통화해?

"미친 새끼."

옆에 여자랑 같이 자놓고 무슨 개소리를.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리고 다음 사람한테 통화를 건다.

  • 왜, 사진 보내줬잖아.

이번엔 안현호였다.

"야, 혹시……."

  • 잠깐만.

톡 소리와 함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금과 다르게 한껏 들뜬 목소리로 물어온다.

  • 이서랑 헤어졌다며?! 그럴 줄 알았다 좆우진! 그저 좆좆좆!

"너희 사귀냐? 무슨 연락이 이렇게 빨라."

한강한테 연락이 온 모양.

계속 욕만 해서 그냥 끊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표진호 선배.

  • ……너는 내가 그런 걸 알거라고 생각하고 연락했니?

"아뇨, 그냥 저도 누구 좀 놀리고 싶어서요."

  • 이 씨……!

뚝.

전화를 끊어버린 후, 잠시 고민하다 이번에는 나름 믿음직한 사람한테 연락을 해본다.

  • 어, 우진아.

"주희 선배, 지금 바쁘세요?"

  • 아니, 안 바…… 양말 두 겹씩 신어라. 발 시렵다.

바빠 보이시는데?

  • 미안, 룸메들이랑 스키장 왔는데 애들이 처음이라. 그래, 뭐 때문에 그래?

"혹시 화난 여자 마음 풀……."

  • 우진이에요?

  • 씹쌔꺄! 우리 지금 존나 재밌게 노는 중이다 개색갸! 부럽지?!

  • 우지나아! 8시 전까진 꼭 들어오고! 늦으면 혼난다!

  • 오면 팬티에 자물쇠 채워둘 줄 알아라!

  • 혹시라도 손잡거나 그러지 말고! 알아찌?!

  • 누가 요즘 콘서트를 가나! 든든하고 시워언한 스키 타는 게 최고지!

  • 아린이는 스키 못 타서 썰매 탄다고 찡얼거렸어!

  • 야! 그걸 왜 말해!

  •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아린이! 상쾌도 하다아!

  • 하지 마!

  • 상여자 특 일단 보드로 바로 감, 하여자 특 잼민이들이랑 썰매탐.

"어우 시끄러."

바로 통화를 끊어버린다.

주희 선배한테 뭐 좀 물어보려고 했더니 이것들 다 같이 스키장에 간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자 최이서가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애들 목소리가 워낙 컸던지라 들린 모양.

"흐응?"

"아니,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어색하니 대꾸하자 최이서는 별 반응 없이 다시 몸을 돌렸다.

진짜 조졌구나 싶은 순간.

툭.

내 가슴에 등을 기대오는 최이서.

뭔가 싶었는데 팔짱을 낀 채로 퉁명스럽게 중얼거린다.

"추워, 바람 좀 막아줘."

오늘이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지만.

'아.'

최이서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챘기에.

나는 천천히 그녀를 감싸듯 안아주며 작게 속삭였다.

"이러면 더 따듯해."

따로 반응이 없다.

그저 부드럽게 내게 몸을 맡겨올 뿐.

'이게 정답이구나.'

근데 그러면 아까 어깨에 손 두른 건 왜 밀어낸 건가 싶었지만.

뭐가 됐든 답을 찾았으니 된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