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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끼리 있어서 좋은 점을 굳이 한 가지 뽑자면 메뉴 선택에 있어 별말이 나오지 않는단 점이었다.
해장을 위해서 집 앞에 있는 국밥이나 먹자고 말하니까 다들 별말 없이 우르르 가서 같이 국밥을 먹고 있다.
다들 방금 잠에서 일어났고, 몸도 건강한 청년들인데 하나같이 표정들은 죽어가는 중.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도중 쉼터에 들르듯 밥을 먹을 뿐이었다.
우웅! 우웅! 우웅!
“찬우야, 폰 좀 꺼라. 차단을 하든가.”
아까부터 계속 울려대는 정찬우의 핸드폰. 어제 헌팅포차에서 번호를 교환했던 여자들이 계속 연락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핸드폰 꺼뒀는데?”
이미 핸드폰을 껐다는 말에 뭔가 싶었는데 한강이 핸드폰을 꺼내 든다.
“미안, 나였네.”
어제 전 여친들에게 전화를 싹 돌리시고, 추가로 헌팅포차에서 번호 교환하신 강한강.
저렇게 뒀다가는 진짜 한강으로 다이브해서 닉값할 것 같아서 걱정되면서도.
“하, 시벌.”
전 여친 키워드가 떠오른 순간 바로 국밥에 코 박고 죽고 싶어졌다.
설마 내가 인터넷 커뮤니티 썰에나 나오는 행동을 똑같이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대나무숲에도 종종 이런 썰이 본인 경험이라고 올라오거나, 어디서 퍼와서 올라오는 경우가 있긴 했는데.
설마 진짜 내가 같은 걸 경험하게 될 줄이야.
이렇게 있다가는 한강이랑 같이 한강 다이브 칠 것 같아서 꾸역꾸역 국밥을 먹자.
너무 맛있어서 나중에 또 먹고 싶단 마음에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어으, 좀 살겠다.”
이미 이미지 다 망가졌는데 상남자 코스프레 하고 있는 표진호.
덩치에 어울리게 두 그릇을 조진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 이만 간다.”
당연하지만 누구도 말리는 사람 없었다.
“한강아…… 나중에 입대 관련해서 같이 병무청 좀 가자.”
“……지금 가자.”
친해졌는지 한강을 편하게 부르는 표진호. 다급하게 국밥을 먹은 한강도 벌떡 일어나서는 표진호랑 같이 나간다.
“가라, 이 새끼들아.”
“다신 보지 말자.”
서로 덕담을 나누면서 헤어진 우리. 한강과 표진호가 가버리고, 안현호는 바로 학교로 가버렸다.
듣기로는 최이서랑 직접 만나서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사과한다는데.
과연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찬우가 PC방 알바 때문에 가게 됐는데.
“나도 갈게 우진아.”
“……고생 많았다.”
“너도.”
우리는 짠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갈 길 떠났다.
어쨌든 첫 목적이었던 찬우의 응어리가 풀린 것 같아서 좋긴 했으나 마음은 더없이 불편했다.
풀리다 못해 아예 속이 뻥 뚫릴 정도로 망가졌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엉덩이는 뻥 뚫리지 않았다는 거겠지.
‘지금 학교 가면 나도 강의 들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서예린이랑 같이 듣는 초급일본어회화 강의를 지금 빨리 가면 출석은 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됐다, 그냥 잠이나 자자.’
어차피 수요일 강의들은 빠진 적이 이번이 처음이다. 졸지에 화요일 오후부터 시작해서 수요일까지 싹 다 쉬게 됐으나.
차라리 강의를 들었으면 훨씬 알차게 지냈겠다 싶을 정도의 시간을 보냈기에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니 나를 반기는 건 대략 70만 원어치 성인용품들.
“아, 진짜.”
내가 분명 텐가는 가져가라고 말했는데 가져간 놈이 하나가 없다.
덩그러니 바닥에 굴러다니는 성인용품들을 대충 다시 봉투에 넣은 후, 매트리스에 몸을 누인다.
아무리 떠올리려고 노력해 봐도 어제 오윤지에게 전화해서 한 말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오! 김우진 진짜 뒤져라! 뒤져!”
바닥에 머리를 몇 차례 박다가 진짜 아파서 이마를 문지르며 쓰러진다.
혹시 머리에 충격을 가하면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냥 졸라 아플 뿐이었다.
“하아.”
엎드려 쓰러진 채로 핸드폰을 얼굴 앞으로 가져와서 슬쩍 확인한다.
- 오윤지
발신 전화, 3분 47초.
여전히 적혀 있는 발신내역.
심지어는 거의 4분에 가까운 시간을 통화했다는 게 목덜미를 싸하게 만들었다.
통화 녹음을 해두지 않았을까 찾아봤으나 당연히 그런 건 없다.
가족 관련해서 통화할 일이 있을까 봐 자동녹음 기능 같은 건 전부 꺼두었다.
‘차라리 전화를 안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오히려 지금보다 마음이 가벼웠을 거다.
3분 47초를 내가 오윤지에게 뭐라 했을까. 당장 할 말을 생각하라고 해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술 취해서 무슨 헛소리를 했을지 의심되었다.
‘전화를 해볼까?’
술 취해서 친구들이랑 놀다가 게임에서 져서 전화했던 거라고.
혹시 내가 이상한 말 하진 않았냐고.
실은 전 여친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전전 여친인 너한테 전화한 거라고.
이런저런 변명들이 머릿속에 막 샘솟았으나, 정작 통화 버튼으로 엄지손가락이 가는 일은 없었다.
단순히 어제 술 마시고 실수해서가 아니라, 오윤지의 목소리를 듣는 게 괜히 무서웠다.
내가, 뭔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기에.
“아흐으으윽!”
수영하듯 매트리스를 펑펑 차대며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그냥 일단 잠드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일 것 같았다.
쿵쿵쿵!
“흐어?!”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도 날은 밝았고, 피로가 풀리지도 않은 게 그리 오래 잠들진 못한 모양.
시간을 확인하니 고작 한 시간 잠들었다 깼다는 점에서 나는 다시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쿵쿵쿵!
밖에서 들려오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한숨을 푹 내쉬곤 외쳤다.
“집에 아무도 없어요.”
“문 열어.”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최이서.
그러고 보니 어제 최이서랑 통화했던 기록이 있긴 했었다.
“아무도 없다니까요.”
“그럼 지금 말하는 건 누군데.”
“자율 AI요. 주인님이 사서 집에 들여놓으셨어요.”
귀찮아서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꼼지락거리며 이불이라도 덮으려는데.
-
여보세요? 우진아? 안현호랑 같이 있으면…….
-
저기요오?! 거기 횟집이죠오?
술에 잔뜩 꼴아버린 내 목소리가 현관문 틈 사이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
회 좀 보내주세요.
-
횟집 아니고 최이서야. 하아, 얼마나 마신 거야 도대체.
-
회 달라니까요오?!
-
최이서라고. 네 친구. 영문과 과대. 안현호랑 같이 있으면 하나만 전해달라고.
-
횟집도 아닌데 왜 전화를 했지 내가?
-
내가 전화 걸었어. 아, 좀! 어디야? 데리러 갈게.
-
횟집 아니면 전화를 왜 했지 내가?
-
끊지 마!
거기서 목소리가 끊겼다.
아무래도 나한테 녹음된 통화 내역을 들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실수한 건 없네.”
“참나.”
뻔뻔하게 나오는 내가 어이가 없었는지 한숨을 내쉰 최이서가 다시 문을 두드린다.
“이것 좀 열어달라고. 할 말 있으니까.”
“주인님 안 계시다니까요.”
“후우.”
현관문에 머리라도 대고 있는지 쿵 소리를 내며 최이서가 짜증을 담아 한마디 툭 내뱉는다.
“너 어제 윤지랑 통화했잖아.”
“어머나 시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황급히 현관문을 연다. 내가 달려오는 걸 들었는지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있던 최이서는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나를 밀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상관없다.
어떻게 내가 오윤지랑 통화한 걸 최이서가 알고 있는지 또한 혹시 통화내용을 알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안으로 들어온 최이서는 곧장 들고 온 숙취해소제를 내게 건넸다.
뿐만 아니라 장도 봐온 모양인데 찬거리들 딱 보니까 북엇국 끓여줄 모양인 듯싶었다.
바로 오윤지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으나, 앞치마를 두르는 최이서를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
나한테 마음이 있다는 여자애한테 전 여친에 대해서 물어본다는 건 어지간한 용기 가지고는 힘든 일이었기에.
그냥 멍하니 뒷모습을 보다가 슬그머니 자리에 앉아서 숙취해소제를 마셨다.
아까 해장하려고 국밥을 먹고 오긴 했으나 워낙 술에 꼴아서 여전히 속이 더부룩하긴 했다.
“따로 해장은 했어?”
방금 전에 오윤지에 대해서 얘기했으면서 다른 말로 돌리는 최이서.
“응, 아까 전에 애들이랑 국밥 먹었어.”
애들이라고 말하니 최이서가 슬쩍 고개만 돌려 나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쉰다.
“어제 진짜 짜증 났어.”
“오늘 안현호가 너 찾는다고 학교 갔던데.”
“만났어. 애들한테 연락 돌려서 나 어디 있는지 찾았나 봐.”
인맥이 좋긴 하구나.
“어제 안현호한테 두 자릿수 넘게 고백받은 다음에 번호 차단했고. 나한테 사적으로 연락하지 말라고 당부한 다음 방금 차단 풀어줬어.”
“…….”
“내가 좀 짜증 나는 건, 네가 옆에 있었으면서 안현호를 말리지 않았다는 거?”
“아, 아니.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래 보이더라.”
또 한 번 한숨을 내쉰 최이서가 다진마늘과 청양고추를 꺼내 들며 투덜거린다.
“어제 안현호랑 통화하는 데 전화기 너머로 네가 계속…….”
쿵쿵쿵!
“야, 이 자식아아아!”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며 나를 부르는 유아린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방금 전 중요한 얘기를 하려던 것 같은데 최이서가 눈짓으로 문 열어주고 오라고 해서 일단 그쪽으로 갔다.
끼익.
“야, 살살 두드리…… 커억!”
몸을 날린 유아린의 박치기가 명치에 꽂혀 들어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나를 넘어뜨린 유아린은 씩씩거리면서 들고 온 봉투를 내 가슴에 냅다 던지고는 안으로 들어왔는데.
“어? 뭐야?”
“안녕.”
미리 안에 있던 최이서를 보며 놀란 유아린.
“너 뭐해?”
“북엇국 끓이는데?”
“…….”
뭔가 묘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갔다. 유아린이 던진 봉투 속에 있는 숙취해소제를 챙기며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온다.
“넌 왜 왔어.”
“왜 왔냐고? 이 자식아! 어제 네가 뭐 했는지 모르지?”
“……진짜 모름.”
“정찬우랑 표진호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말하니까 걔들 바꿔줬잖아.”
“…….”
“그다음에 뭐라고 했지? 이렇게 좋은 사람들한테 왜 그러냐고 그랬나? 찬우랑 표진호를 게이 아저씨한테 뺏긴 심정이 어떠냐고? 너 진짜 뒤지고 싶냐?”
“그, 죄송합니다.”
술 마셨다고 미친 소리를 하루 종일 지껄였구나.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으며 사과하자 유아린은 짜증 내면서 창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아오! 안에 술 냄새랑 홀애비 냄새 때문에 숨을 못 쉬겠다!”
추운 바람이 확 들어왔으나 최이서도 동의했는지 입을 꾹 다물면서 북엇국을 끓인다.
“그리고 집 좀 정리해라. 이게 뭔 꼬락서니냐.”
답지 않게 방 청소를 하기 시작한 유아린.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그냥 멍하니 보고 있는데.
“이건 또 뭐야?”
바닥에 널브러진 성인용품 가게 봉투를 집어 든 순간, 당황하며 달려들었고.
“잠깐만! 그건 안 돼!”
“뭔데 그래?”
유아린은 아무렇지 않게 안에 있는 물건을 바닥에 쏟아냈다.
똑똑.
“우진아, 있어?”
때마침, 서예린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온 건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