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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일요일 촬영이 끝나면서 계속 이어질 것 같던 영화 촬영도 드디어 막을 내렸다.
원래 다 같이 회식하지 않을까 했는데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었기에 주희 선배가 나를 배려해서 나중에 따로 모이기로 했다.
덕분에 다들 큰 과제 하나 끝냈다고 좋아하면서 술 퍼마시는 동안에도 나 혼자 편집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암.”
편집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었다.
무난한 월요일 강의를 끝내고, 나는 PC방에서 편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트북으로 집에서 몇 번 해봤는데 렉이 너무 심해서 그냥 PC방에 와서 하는 중이었는데.
“자, 이거.”
“안 시켰는데?”
“서비스야.”
짜파게티를 가져와 준 찬우.
집 근처 PC방이 여기가 제일 좋기도 했고, 찬우가 있는 곳이라 오긴 했으나 막상 녀석을 보니까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내가 뭔가 한 건 없는데.’
그런데도 내가 나쁜 일을 했다는 느낌에 찬우랑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다.
‘아, 유아린 진짜.’
유아린 탓을 한 번 해주고 서비스로 준 짜파게티를 먹으면서 계속 편집에 몰두한다. 괜히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여러 가지로 복잡할 것 같았다.
중간고사도 끝났고, 축제도 지나갔다.
이제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곧 있으면 방학.
지난 방학에는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인으로 살아왔으니 이번 방학에는 좀 사람답게 살 생각이었다.
‘여행이라도 갈까?’
해외까지는 무리여도 배낭여행으로 국내를 돌아다니는 건 어떨까 싶었다.
겨울이라서 좀 춥긴 하겠지만 텐트 같은 걸 가지고 다녀도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캠핑용품을 검색하고 있었다.
텐트부터 해서 휴대용 난로, 버너, 잡다한 도구들까지. 의외로 이게 보는 맛이 쏠쏠했는데.
“뭐지.”
등 뒤에서 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이상하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벌떡 일어나려고 해도 양쪽 어깨를 꽉 짓누르는 무게감에 다시 의자에 앉게 된다.
슬쩍 고개를 들자 하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신 주희 선배께서 입꼬리를 살짝 떨며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분명 편집한다고 들었는데.”
“서, 선배…… 그게 아니라.”
“나는 네 자리 듣고 따로 커피도 시켰는데 이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점점 힘이 들어가시는 게 어깨가 탈골될 것만 같아서 다급하게 외쳤다.
“아, 아뇨 선배! 오늘 분량은 다 해뒀습니다! 그래서 잠깐 쉴 겸 딴짓 좀 하던 거예요!”
그제야 주희 선배의 손에 힘이 풀린다. 뻐근해진 어깨를 돌리면서 나는 바로 편집해 둔 영상을 틀었고.
전체로 따지면 아직 초반부이긴 했으나 전부 본 선배는 갑자기 내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는 막 쓰다듬으셨다.
“이야! 우진아! 너무 잘했는데?! 진짜 잘했어! 키야! 우리 이쁜이! 돌아왔구나아!”
“어디 간 적 없었는데요오오오오!”
나도 모르게 뒷말이 길게 늘어지며 어지러움을 토로했다. 어쨌든 주희 선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찬우가 가져온 아이스커피 중 하나를 내게 건네주셨다.
“거하게 들이켜라. 아니, 오늘 시작한 거 아니었니?”
“네, 맞아요. 근데 나름대로 연습을 좀 해뒀더니 꽤 괜찮게 되던데요?”
“캬, 역시 우진이가 일을 잘해.”
옆자리에 앉은 다음 만족스럽게 커피를 마시는 선배. 캠핑용품 볼 때는 여기까지 할까 싶었는데 이렇게까지 좋아하시는 걸 보니까 좀 더 할까 싶기도 했다.
캠핑용품이 틀어진 창을 끄려고 하자 옆에서 물끄러미 보시던 선배가 바로 물어오셨다.
“캠핑 가려고?”
“아, 방학하면 다녀볼까 고민 중이에요. 어차피 저는 알바도 딱히 하진 않아서.”
“그래? 좋겠네.”
한숨을 내쉬는 선배.
장학금에 목매다시는 것도 그렇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선배 쪽은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으신 모양이었다.
“캠핑 좋지. 흐아, 나도 한번 가고 싶네.”
“같이 가시죠.”
“이번에는 안 되고. 다음에 불러줘. 이번 방학에는 알바를 가거든.”
알바를 간다?
“따로 어디 가서 하세요?”
내가 흥미를 가지자 선배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아쉬운 소리를 하셨다.
“방학에는 기숙사 방 빼줘야 하잖아? 그래서 아예 숙박되는 알바 자리를 좀 알아봤지.”
“다른 지역으로 가시게요?”
“어. 저기 강원도 쪽에 그거 있잖아. 카지노랑 호텔 같이 있는 곳.”
“……골드원 호텔이요?”
“응, 들어보니까 이번에 식품조리학이랑 호텔경영 같은 애들이 거기로 실습 간다더라? 그래서 같이 껴서 일하러 가기로 했어.”
“거기 카지노 있어서 무서운 형님들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내 말에 주희 선배는 피식 웃으면서 다리를 꼬신다. 이 날씨에 슬리퍼 신고 있는 맨다리가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눈에 담겼다.
“그게 뭔 상관이야. 어차피 거기서 제공해 주는 숙소랑 일터만 왔다 갔다 하면 되는데.”
“하긴, 그것도 그렇겠네요.”
어쨌든 고생하러 가는 건 변함이 없었다. 타지로 가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숙박하면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는가.
“캠핑용품 얘기하다가 왜 여기까지 왔지? 어쨌든 그렇다고.”
주희 선배는 대충 말을 돌리시며 다시 고개를 내밀어 내 화면을 보신다.
“근데 캠핑용품이면 좀 비싸지 않냐?”
“그렇긴 하죠. 최대한 가성비 좋은 걸로 알아보고 있긴 해요.”
선배의 눈가에 미약한 수심이 깃들었다. 아무래도 알바를 뛰러가는 본인이랑 캠핑 다니는 나와의 차이가 직접적으로 느껴지신 듯했기에.
“근데 생각해 보니까 이맘때 다니면 춥긴 하겠네요.”
나는 그대로 창을 꺼버리면서 말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주희 선배도 내가 의도적으로 배려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씨익 웃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든 안 춥겠니. 밥은 먹었냐? 가자, 사줄게.”
“여기서 먹죠. 굳이 다른 곳 갈 필요가 있나요.”
방금 돈 관련 얘기를 해서 그런지 굳이 얻어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산다고 말해봤자 주희 선배는 절대로 본인이 살 테니까.
“흐음, PC방은 오랜만인데…… 오? 여기 메뉴가 생각보다 다양하네?”
다행히도 주희 선배는 PC방 메뉴에 흥미가 생기셨는지 이것저것 뒤적이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셨다.
“쓰읍.”
밥을 다 먹고.
굳이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여전히 PC방에 남아있는 우리.
모자를 푹 눌러쓴 주희 선배의 눈가에 힘이 빡 들어가셨다.
“후우.”
턱을 손으로 만지작거리시며 상당히 고민하고 계신지 계속 쓰라린 숨소리를 내신다.
“……선배.”
그걸 본 나는 조심스럽게 선배를 불렀고 주희 선배는 화들짝 놀라면서 나를 쳐다본다.
“어, 어엉?!”
당황한 선배.
나는 괜히 선배 화면 속 화투판을 한 번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막, 불법은 아니죠?”
“……그렇게 보이니?”
혹시 진짜 돈이 오가는 게임인가 싶어서 좀 걱정됐는데, 선배는 목 근처를 긁적이시며 머쓱해하셨다.
“당연히 아니지. 그냥 게임머니인……!”
화면에 막 화려한 이팩트가 터져 나온다. 내가 화투를 쳐본 적이 없어서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주희 선배의 표정이 사색으로 물들어 가는 걸로 봐서는 좋지 못한 흐름인 듯 보였고.
[퇴장당했습니다!]
돈을 다 잃고 퇴장당한 선배.
위에 떠오른 게임머니 결제창을 보시면서 억울함을 담아서 양손으로 책상을 쿵 내리찍으셨다.
“끄으아아앙!”
뭔가 귀여운 소리를 내신 것 같은데.
눈가에 눈물이 살짝 고이셔서는 괴로워하는 모습을 빤히 보던 나는 문득 걱정스러워졌다.
“선배, 혹시라도 말씀드리는데 거기 가서 카지노는 들어가시면 안 돼요.”
“…….”
게슴츠레하게 나를 노려보시는 모습은 범인 척하는 고양이의 모습이었다.
뭔가 여지라도 있으면 당장 나한테 달려들어서 분풀이라도 하고 싶어 보이셨으나 딱히 없으니 씩씩거리면서 괴로워하실 뿐.
“샤, 샷건 치시면 안 돼요.”
몇 번인가 책상을 더 내려치려던 주희 선배를 저지하는 찬우. 결국 선배의 손은 허공에 멈춘 채로 갈 곳을 찾다가.
옆에 내려둔 담배 곽으로 향했다.
“한 대 피고 온다.”
“넵.”
떠나가신 주희 선배를 뒤로한 채 나는 다시금 캠핑용품 쪽을 찾아보고 있었다.
게임을 할까 싶었는데 뭔가 귀찮기도 해서 대충 훑어보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비싸긴 하구나.’
너무 좋은 걸 쓸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가도 또 막상 보다 보면 기왕 사는 거 좋은 게 낫지 않을까 싶어진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와중.
우웅!
내게 온 문자 하나.
톡이 아니라 핸드폰 메시지로 왔다는 게 묘한 느낌을 받았는데.
“뭐 하냐.”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펑퍼짐한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쏙 집어넣은 채로 삐딱하니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유아린.
어제 묘한 분위기가 있긴 했으나 지금의 유아린은 평소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야, 웬일로 왔냐.”
찬우가 있는 PC방이라 별로 오기 싫어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미간을 팍 찌푸리며 내 옆자리에 앉은 유아린이 한숨을 내쉰다.
“정찬우가 알려줌.”
“……누가?”
나도 모르게 유아린을 쳐다보면서 되묻자,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 있던 녀석이 손을 쭉 뻗어 내 얼굴을 밀어낸다.
“뭘 꼬라 봐!”
“아니, 네가……!”
찬우가 알려줬다는 말을 하지 않았냐고 따지려고 드는 순간.
우웅!
우웅!
다시금 울려온 핸드폰.
또 문자로 왔기에 짜증 내며 뭔가 싶어 확인했는데.
-
큰형: 방학 때 와라.
-
큰형: 어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신다.
-
큰형: 애처럼 굴지 말고.
-
김우진: ㅗ
“아니, 찬우가 나 여기 있는 거 알려줬다고?”
“왜 이렇게 질척거리지 이 새끼?!”
다시 유아린에게 집중하고 있는데.
우웅! 우웅! 우웅!
이번엔 아예 전화를 걸어왔다.
“하아, 잠깐 통화 좀.”
“예린이냐? 아님 이서?”
“형.”
“……형도 있어?”
굳이 유아린에게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받자 내가 들었던 누구보다 딱딱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꽂혀 들어왔다.
- 이번 방학에도 안 오면 용돈이랑 방 다 뺄 줄 알아.
“개소리야. 네가 나한테 용돈을 언제 줬음.”
- 내가 아버지한테 말해뒀다.
“……형.”
- 굽힐 때는 굽힐 줄 아는구나.
“이라고 할 줄 알았냐? 개색갸. 알바 뛰면 됨 수고.”
- 네가? 알바?
비웃는 형한테 뭔가 한마디 해주고 싶었는데.
“하윽! 우, 우지나아! 소, 소리 못 참겠어어!”
“……?!”
갑자기 얼굴을 바짝 내밀더니 신음을 흘리는 유아린. 나도 모르게 퍼뜩 몸을 뒤로 빼자 유아린이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중지를 날린다.
- 후.
핸드폰 안에서 들려온 한숨.
“아니, 잠깐만. 이상한 오해 좀 하지 말아봐.”
- 또 여자랑 놀아나고 있는 거냐.
“그게 아니라 뭔……!”
바로 아니라고 답하려던 나는.
뭔가 싸한 감각을 느꼈다.
“또?”
지금.
또 라고 한 건가?
- …….
답이 없었다.
언제나 물러서지 않는 큰형이, 이번만큼은 침묵을 선택했다는 거였고.
“너, 내가 윤지랑 사귄 거 어떻게 알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따지고 들자.
- 할 말은 다 했다. 방학에 와라.
그리 말하곤 통화를 끊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