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2 KiB
“저기…… 우진아.”
등 뒤에 나를 부르는 정찬우.
단순히 중저음의 목소리로 이름을 불리는 것만으로도 느와르 영화의 조연이 된 기분이었다.
주연은 정찬우였고.
난 들어가서 총알 맞고 뒤지겠지.
“왜?”
“정말로 내가 가도 되는 거야?”
바로 앞에 뒤풀이 장소인 삼겹살집 바로 앞까지 도착했건만 정찬우는 아직까지 머뭇거리고 있다.
우리 주점 뒤풀이 회식인데 건공과인 자신이 끼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말이었다.
원래라면 그렇겠지.
실제로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나는 죽어도 가지 않았을 거다.
애초에 분위기를 읽지도 못하는 거고 회식비용도 주점의 수익으로 나오는 건데 와서 그냥 얻어먹는 꼴이지 않은가.
하지만.
“지난번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팔짱을 끼며, 나는 솔직하게 찬우에게 물었다.
“너나 서예린은 그 얼굴의 유용함을 잘 모르는 거야 아니면 알면서 그냥 모른 척하는 거야?”
“…….”
정찬우가 온 순간 일단 고마워할 사람들. 정확히는 여자 학우들의 표정이 훤히 보였다.
특히나 찬우는 축제 기간에 종종 우리 쪽 부스에 들렀으니까 얼굴도장도 제대로 찍어뒀겠지.
“들어가자. 가서 안 된다고 하면 내가 책임질게. 애초에 PC방 알바 대타 구했을 때부터 결정한 거였잖아.”
만약 안 된다고 하면 찬우랑 밖으로 나와서 둘이서 밥이라도 먹으면 되지 않겠는가.
안으로 들어가자 삼겹살집 테이블 대부분을 우리 과에서 차지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가현대 영문과에서 오셨죠? 아무 곳이나 가서 앉으셔요.”
밑반찬을 들고 나르시던 사장님도 싱글벙글 웃으시면서 맞이해 주셨다.
처음에는 찬우를 데리고 유아린 테이블에 드랍시키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쪽 테이블은 이미 꽉 차 있었다.
유아린의 친구인 서예린 때문.
둘이 같은 테이블에 있으니 당연히 그쪽으로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었다.
아쉽긴 해도 이쪽을 확인한 유아린의 표정이 아주 보기 좋게 일그러진 것만 해도 만족스러웠다.
대충 비어 있는 자리에 앉는다.
딱 보니까 이미 자기들 무리끼리 앉아서 소주를 까고 나름대로 얘기를 하거나 술 게임하는 중이었는데.
일단은 찬우랑 둘이 앉아 삼겹살 2인분을 시켰다.
“…….”
슬쩍 주변을 둘러보는 찬우.
중간중간 우리 과 여자애들이랑 눈이 마주치긴 했으나 어쨌든 대충 분위기를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우진아…… 혹시.”
“친구 없냐고?”
“크흠.”
“없는데.”
있으면 지금 너랑 둘이서 고기 구워 먹고 있겠냐. 심드렁하니 대답하며 고기를 굽고 있는 와중.
내가 온 걸 뒤늦게 눈치챈 최이서가 후다닥 다가온다. 최이서는 과대라서 부과대 안현호, 서기, 회계랑 같은 테이블에 있었다.
“늦었잖아.”
어깨를 찰싹 때리고 투덜거리면서도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는 최이서.
원래 있던 테이블의 애들은 별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내가 들고 있던 집게를 가져간다.
“뭐야?”
그러고는 내 대신해서 고기를 구워주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다 먹었으니까 굽는 거 신경 쓰지 말고 먹기나 해.”
“…….”
뭐지.
이 몽글몽글한 기분은.
어제 최이서가 내조라는 말을 해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그런 식으로 신경이 쓰인다.
“나, 난 안 먹어도 괜찮아.”
아직도 우리 과 애들 눈치가 보이는지 찬우는 굳이 삼겹살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진지하게 그러고 있는 게 뭔가 웃기면서도 미안했는데 그러면서도 유아린 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는 걸 보면 저기로 가고 싶은 모양.
“괜찮은데? 그냥 먹어도 돼. 우진이가 주점에서 거의 세 사람 몫 해서 너 하나 와도 문제없어.”
“역시.”
나는 필요 이상의 노동을 했던 거였어. 이마를 탁 치면서 소주라도 마시고 싶어질 정도로 현실의 각박함에 탄식이 흘렀으나.
“잘했다는 거잖아.”
고기를 뒤집고는 콜라를 따라주는 최이서. 술이 아니고 콜라라는 게 좀 뜬금없긴 했는데.
“연속으로 너무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아.”
“……아까부터 뭔데.”
왜 건강관리 당하는 남편이 된 기분이냐. 떨떠름하니 최이서를 쳐다봤음에도 녀석은 내 시선을 유연하게 받으며 익은 고기를 잘라서 내 쪽으로 슥슥 밀어준다.
“먹어. 어차피 오래 있진 않을 거지?”
“그건, 그렇지.”
오긴 했어도 일단 얼굴만 비추고 밥만 먹고 빠질 생각이었다. 2차 같은 건 당연히 고민도 안 하고 있었고.
“쌈도 싸서 먹어. 마늘은 안 먹어? 구워줄까?”
“……구워줘. 김치도 같이.”
“그래그래. 너무 고기만 먹는 것도 별로야.”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씨익 웃으면서 이것저것 구워주기 시작한 최이서. 솔직히 조금 부담스러운 배려이긴 했으나 어쨌든 고기 구워준다는데 마다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이 정도는 친한 사이면 누구나 해주는 거겠지.
‘그런 건가?’
진실을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소양도 좀 있어야 했다.
“잘 어울리네.”
반대편에 앉아 있는 정찬우도 우리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앞에 불판의 열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는데 최이서도 턱을 괴면서 입가를 손으로 숨기지만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저, 저기요!”
그때 우리 테이블로 술잔을 가지고 다가온 여학생 하나. 나와 함께 주점의 제육을 책임졌던 현아였다.
주방 보조께선 이미 취하셨는지 한껏 붉어진 표정으로 찬우에게 부탁했다.
“수, 술 게임 져서 그런데 술 좀 따라주실 수 있으세요?”
“지랄한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툭 내뱉자 현아가 바로 앙칼지게 나를 노려본다.
“김우진 닥쳐.”
“술 게임 벌칙이면 제가 따라드릴게요.”
“섹무새 술은 안 받아요.”
“그거 헛소리였다고 대나무숲에 뜬 거 못 봤냐?”
이게 언제 얘기를 하고 있어. 하여튼 우리 사이에 껴서 뻘쭘하게 술을 따라주는 정찬우.
어색해하는 찬우의 모습에 나는 슬쩍 현아에게 물었다.
“너 유아린이랑 같은 테이블에 있지?”
“또 왜.”
“찬우 유아린이랑 고등학교 친구라서. 데려가서 같이 좀 있어. 우리 진지한 얘기할 거임.”
뻔뻔하면서도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나 그게 원래 내 캐릭터인 걸 어쩌겠는가.
찬우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벌떡 일어섰다. 한 번 차였더니 애가 돌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인 모양.
“가시죠.”
“어맛.”
바로 찬우를 데려가는 현아.
그러면서 이쪽을 향해 엄지를 치켜드는 걸 보니 찬우를 자기들 테이블로 데려온 게 꽤나 기쁜 모양이었다.
“이제 애들이랑 친하게 잘 지내네?”
어느새 이것저것 구워서 내 앞에 놓아준 최이서가 흐뭇하니 웃고 있었다.
그게 뭔가 간질간질하면서도 민망해서 못 본 척하고 계속 밥이나 먹고 있는데.
“자, 이것도 먹어.”
심지어는 쌈까지 싸준 게 아닌가.
“야, 좀…….”
고맙게도 마음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뒤풀이 자리에서 이러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중간중간 우리 쪽을 힐긋 쳐다보는 애들이 있단 말이다.
“…….”
하지만 최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쌈을 들고만 있었다. 빤히 쳐다보는 그것만으로도 꽤나 압박이 되었기에.
“아.”
입을 살짝 벌리자 바로 입꼬리를 올리면서 쌈을 안으로 넣어주었다.
어우, 뭐 이렇게 크게 싼 거야.
“맛있어?”
“싸히하호하히.”
“음? 뭐라고?”
쌈이 다 똑같다고.
어떻게든 씹는 걸 집중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는 누군가.
나와 최이서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는데 처음엔 찬우가 돌아온 줄 알았다.
“우진아 왔구나.”
하지만 거기에 앉은 건 활짝 웃고 있는 서예린이었다.
“우뭄?”
뭐지?
솔직히.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서예린이 좀 불편했다. 저쪽에서는 별일 아니었다고 치고 넘어가자고 말하긴 했으나.
어쨌든 같이 잔 사이였지 않은가.
이건 서예린이 아니라 어떤 여자였어도 신경이 쓰이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
‘얘가 직접 왔다고?’
그래서 오늘은 서예린이랑 따로 얘기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익명69로는 할 말 못 할 말 아무거나 쏟아내는 애였으나 정작 현실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니까.
섹x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워서 죽으려는 애가, 관계를 가졌던 남자랑 다시 대화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싶었다.
자연스런 대화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서 한동안 의도적으로 피하려 했으나.
“볼 빵빵한 거 봐.”
최이서가 싸준 쌈을 먹고 있는 내 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는 서예린을 보면서.
뭔가 내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으붑!”
하지 말라고 손을 밀어내자 서예린은 꺄르륵 웃어댄다.
“귀엽네.”
“으부붑!”
“흐흐, 왜 이렇게 귀엽냐.”
뭐지.
왜 서예린 등 뒤에 꼬리가 보이는 기분이지.
예전에 내가 알던 부끄러움에 스스로 폭사하던 서예린이 맞는 건가?
술을 좀 마셨더라도 이런 반응은 확실히 평소와는 다르긴 했다.
“어우, 최이서. 쌈 겁나 크게 싸서 턱 나갈 뻔했어.”
겨우 쌈을 다 삼키고 장난스럽게 말하자 최이서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빤히 나를 쳐다본다.
그게 좀 어색해서 다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고기가 다 타고 있는 게 아닌가.
“야! 고기 다 탄다!”
깜짝 놀라서 외쳤으나, 최이서는 천천히 집게를 내려놓으며 싸늘하니 나에게 답했다.
“네가 구워 먹어.”
“…….”
이거 내가 잘못한 건가?
그런 질문을 하려다가도 서예린이 몸을 쭉 뻗어서 냉큼 집게를 채간다.
“그럼 내가 구워야겠다.”
순간 서예린의 샴푸 향이 코를 은은하게 감싸왔다.
얘는 고기 먹었는데 어떻게 몸에서 아직도 좋은 향이 나는 거지?
최이서 대신 고기를 굽기 시작한 서예린. 옆에 있던 최이서가 턱을 괸 채로 나를 보고 있었는데.
“야!”
미안하지만 최이서를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고기 진짜 더럽게 못 굽네!”
“어라?”
고기를 까맣게 태우고 있는 서예린의 조잡한 실력을 보면서 버럭 짜증 내며 바로 집게를 뺏어왔다.
“아오, 그냥 옆에서 다 떠받들어주니까 고기도 구울 줄 몰라. 라면에 물 붓는 법은 아니?”
“…….”
“야, 이것도 말이야. 나름의 기술이라는 게 있어. 스테이크를 괜히 레어나 미디움처럼 굽기 조절하는 게 아니다?”
“삼겹살이잖아…….”
“삼겹살은 고기 아니야? 이건 얼굴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지? 넌 부모님께 감사해라.”
입술을 삐죽 내민 서예린을 보면서 만족스런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서예린이지.
어딜 깝치고 있어.
전 여친한테 맛있게 구워 주겠다고 고기 굽는 걸 연습해 왔던 게 여기서 도움이 되는 구나.
아주 엿 같은 기분이네.
그렇게 우리 테이블은 약간의 소강상태에 놓여 있었는데.
“어우, 따숩다아.”
방금 오셨는지 찬 공기를 몸에 가득 담고 있는 민주희 선배가 찬우가 있던 자리에 앉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