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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얘는 몇 시까지 자는 거야.”
2층 현관문에서 들려오는 서예린 어머님의 목소리는 내게 경종을 요란하게 울려댔다.
“으음?”
뭔가 의아하신 듯 안으로 들어오셔서 잠시 멈추셨는데 나는 다급하게 서예린을 깨운다.
“야! 야! 일어나!”
“우움.”
내 허리를 꽉 안고 있던 서예린의 손을 풀면서 부르자 부스스하니 일어나서는 주변을 확인한다.
이불이 들춰지면서 서예린의 가슴이 훤히 드러났고,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가면서 얼굴이 붉어졌지만 일단 모른 척하며 말했다.
“너희 어머니 오셨어! 밖에 계신다고!”
“으응?!”
깜짝 놀란 서예린은 빤히 나를 쳐다본다. 아무래도 얘가 아직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모양이었다.
“우, 우아아!”
내 몸을 보면서 뭔가 탄성을 내지르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지금 그럴 시간 아니다.
“정신 차리라고! 너희 어머니 오셨다고!”
“어, 엄마가?!”
이제야 내 말이 들리는지 다급해진 서예린이 황급히 일어선다.
“꺄앗?!”
그랬다가 전라인 자신의 몸을 확인하고는 얼른 옷을 걸치기 시작한다.
“보, 보면 안 돼!”
‘아, 슈벌.’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이긴 했으나 그건 취했을 때 벌어진 다소 충동적인 행위이긴 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게 등을 돌린 채로 허리를 숙이고 수면 바지를 입으려는 서예린의 토실한 엉덩이를 본 순간 하반신이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미쳤네.’
괜히 서예린한테 여러 남자가 빠지는 게 아니라는 걸 지금의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강 선배, 당신이 보고 싶었던 이상향이 여기 있습니다.
목숨 걸고 쫓을 만했네요.
“예린아?”
“어! 엄마! 나 지금 나가! 옷 입고 있었어!”
어머님의 목소리에 서예린이 다급하게 방 밖으로 나간다. 이불에 숨어있던 나도 허물처럼 벗어둔 옷을 찾으려 했는데.
“아?”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내 옷이 없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어제 일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는데.
‘미친…….’
밖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관계를 시작했던 거실 소파에 내 옷가지들이 뱀의 허물처럼 널브러져 있을 게 기억났다.
머리가 굳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벌컥!
“어, 엄마!”
그리고 당연하게도.
“거실에 남자 옷, 현관에 남자 사이즈 신발.”
방에 들어와 짜게 식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어머니를 뵌 순간.
“아, 안녕하세요.”
일단 몸을 최대한 가리며 인사를 드렸으나.
“우리 딸 이불이네요?”
걸칠 수 있는 게 서예린의 이불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미 마이너스인 모양이었다.
방에서 옷을 다 입은 후, 거실로 나오자 소파에 앉은 채로 기다리는 서예린 어머님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서예린이 있었다.
‘내 자리는 저기구나.’
바로 서예린의 옆으로 가서 무릎을 꿇으려고 했는데 어머님께서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식탁 의자를 가리킨다.
“의자 가지고 와보세요.”
“넵 알겠습니다.”
나는 앉아 있을 수 있구나.
“어, 엄마 나도…….”
“뭐.”
“……무릎 꿇고 있는 게 참 좋다.”
바로 어머니에게 꼬리 내리며 물러난 서예린은 울상이 되어서는 고개를 푹 숙인다.
의자를 가져와서 어머님 앞에 앉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신다.
“학생, 이름은?”
“김우진입니다. 서예린이랑은 같은 영문과입니다.”
“CC군요?”
“…….”
거북한 울림이었다.
하여튼 캠퍼스 커플이라는 이름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 CC로 줄인 것도 싫다. 나는 그래서 C.C라는 이름을 가진 애니 캐릭터도 싫어한다.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나랑 서예린이 커플이냐고 물어보시는 건데.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어제 관계를 가지긴 했지만 우리 사이에 그것과 관련된 어떠한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관계성을 재정립할 필요는 있었으나 그렇다고 여기서 커플이 아니라고 말하기엔.
‘아, 미치겠네.’
서예린을 향한 부모님의 신뢰가 바닥을 칠 테니.
“마, 맞습니다.”
억지로 입을 열어 대답하자 옆에 있던 서예린의 입꼬리는 반대로 살짝 올라가는 게 보였다.
“…….”
나와 서예린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어머님. 그러더니 다시 한숨을 내쉰다.
이런저런 고민이 있으신 것 같아 다음 한마디가 나오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으나.
“이미 두 사람 다 성인이고. 대학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서예린의 어머니는 진지하게 내게 부탁해 오셨다.
“헤어져 줄 수 있나요?”
“엄마!”
“가만히 있어.”
“…….”
어머니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서예린이 다시 입을 꾹 다물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쏟아진다.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아직 예린이가 누굴 사귀고 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제 성인인데요?”
내가 그리 되묻자 어머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셨다.
“관계를 가지게 된 건 솔직히 좀 당황스럽지만 이 나이 때 실수할 수 있으니까요.”
“…….”
“저는 예린이가 좀 더 나이가 들고, 지금보다 성숙해졌을 때 남자를 만나면 좋겠어요.”
어머님의 말에 나는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완전히 부정할 순 없었다.
젊은 날의 연애를 통해 크게 데인 전적이 있는 나였으니까.
그래도.
“이 시기에는 지금만 경험할 수 있는 게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너무 모든 걸 통제하려고만 하시면, 오히려 무엇도 되지 못할 수 있어요.”
소중한 딸이라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한 억압은 오히려 서예린에게 악영향으로 올 것이다.
대나무숲의 익명69.
단순히 주변 친구들이나 시선뿐만 아니라, 가정의 억압도 분명 기여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지금까지 서예린의 남자친구였던 사람으로서 드린 말씀입니다.”
대략 3분 정도인가?
서예린 남자친구였던 시간이?
“헤어지겠습니다.”
잘 가, 전여친.
전전여친 보다는 그래도 좋은 애였어.
추억이 짧게 스쳐 지나가네, 우리가 사귀기 시작했던 3분 전이 아직도 선명해.
“우, 우진아!”
뭘 그렇게 놀라.
어차피 우리 진짜 사귄 것도 아닌데.
나는 어머님과 눈을 맞추며 진지하게 답을 드렸다.
“결국 저는 타인이니까요. 방금 드린 말씀은 제 생각일 뿐. 결국 어머님께서 저보다 몇 배는 더 서예린을 생각하실 걸 알고 있습니다.”
“…….”
“그러니 그걸 따르겠습니다.”
어머님께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뭔가 말하시려 입을 살짝 벌리셨으나 다시 다무셨다.
그걸 보고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다고 판단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작스런 상황이라 많이 놀라셨을 텐데 정말 죄송했습니다. 혹시라도 다음에 뵐 기회가 있으면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고마워요.”
뭐가 고맙다고 하시는 걸까.
나는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린 다음 그대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1층에 아버님이 계시다고 해서 얼른 밖으로 나왔고.
“와, 이제 숨이 좀 쉬어지네.”
텁텁하니 가슴이 막혀 들어가던 게 이제야 좀 뻥 뚫린 기분이었다.
일단 가면서 집 근처 국밥집에서 한 그릇 조진 다음 집에 가서 씻고 자야겠다.
그렇게 국밥을 먹으면서 한 번.
그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한 번.
씻으면서 또 한 번.
마지막으로 매트리스에 누웠을 때 한 번.
곰곰이.
정말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개이득 본 거 아닌가?”
어쨌든 서예린이랑 자긴 했으니까…….
뭐, 그게 엄청 중요하다는 건 아닌데 어쨌든 굳이 손익을 따지면 나한테는 이득밖에 없지 않은가.
어제 축제가 끝났으니 오늘은 주말. 오늘은 진짜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야지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슬쩍 확인하니.
서예린에게 무수히 많은 톡이 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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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우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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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우지나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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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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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우지나아아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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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집에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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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밥은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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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자는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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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대답해줘어.
-
서예린: 우지나.
-
서예린: 대답해 달라니까.
-
서예린: 대답대답댑답댑답대받배답댑답댑다밷받.
-
서예린: 대답.
“와, 씨.”
이거 예전에도 한 번 겪어본 적 있었는데.
익명69가 관리자인 나한테 차단 풀어달라고 찡찡거릴 때 딱 그 모습 그대로였다.
-
김우진: 방금 씻고 누웠음.
-
서예린: 아항.
뭐지.
바로 위에 있는 톡들에 비해서 한없이 가벼워진 분위기가 조금 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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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이제 뭐 할 거야?
-
김우진: 자야지.
-
서예린: 또?
-
김우진: …….
-
김우진: 너희 어머님께서 이거 보시면 화내실걸.
헤어진 지 얼마나 됐는데 톡을 하냐고 노발대발하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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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마자. 나 오늘 외출 금지당했어.
-
서예린: (이모티콘)
우는 햄스터 이모티콘을 보낸 게 딱 서예린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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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그래도 내일은 가능함. 주말인데 같이 PC방 갈까?
-
김우진: ……아니.
-
서예린: 그럼 노래방?
그 톡을 본 순간 내가 좀 착각을 하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아, 서예린은 처음이었는데.’
첫 경험을 치른 상대인데 당연히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지금이 가장 나한테 흥미가 동할 시기인데 내가 너무 배려심이 없었다.
톡을 따로 보내진 않았다.
전화를 걸자 통화음이 울리기도 전에 받은 서예린.
“어! 우지나!”
목소리에서 벌써부터 애교가 뚝뚝 묻어나오고 있으나.
“그, 어제 말이야.”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그렇게 좋은 얘기는 아니었다.
“내가 미안해.”
“뭐가?”
“좀 더 참았어야 했는데. 우리 아무 관계도 아닌데 서로 술에 취해서 해버린 거잖아.”
“…….”
“너한테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었는데 내가 망친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네.”
“…….”
“미안해. 화내려면 화내도 되고, 욕하려면 욕해도 돼. 때리고 싶으면 나중에 맞을게.”
잠깐 정도.
휴대폰 안에서 숨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는데.
“내가 유혹한 거였는데?”
서예린은 대놓고 말해왔다.
“네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해야지. 마음도 없는 애랑 하게 했는데.”
어라?
“우진아, 너무 마음 쓰지 마. 나도 너 소중한 친구라서 굳이 잃고 싶지 않아.”
“그, 그래?”
“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월요일부터는 친구로 다시 잘 지내보자.”
뭐지.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데.
“아, 섹x 했으니까 그냥 친구가 아니라 섹프인가?”
“……그, 그냥 친구로 하자.”
뭔가 서예린의 안에서 한 단계 성장이 이뤄진 것 같았다. 그게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흑진화가 이런 건가?
“그럼 다음에 봐 우진아. 피곤할 텐데 잘 자고.”
“그, 그래.”
뚝.
전화를 끊자 공허한 정적이 찾아왔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오한에 몸이 살짝 떨렸으나.
“전기장판 틀어야겠넹.”
바로 전기장판 풀로 틀고 이불을 덮으니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뚝.
통화를 끊은 서예린은 핸드폰을 가슴 위에 고이 올려두며 눈을 감았다.
자신의 침대와 이불에는 아직까지 정사의 잔향이 진하게 묻어 있었기에 서예린은 그것을 코에 가져다 댔다.
“아…….”
처음은 분명, 아프다고 들었는데.
술에 진탕 취해서 그랬던 걸까?
아픔은 금방 사그라들고 기분 좋은 쾌락이 자연스럽게 몸을 타고 밀려 들어왔다.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꿈만 같아서 다시 잠들면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김우진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녀에겐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김우진이 어제 유혹에 넘어갔다는 게 중요했다.
한 번 넘어졌으면 두 번도 넘어질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
엄마?
의외로.
김우진이 나간 뒤에.
‘괜찮은 아이구나.’ 라면서 씁쓸하니 뒷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서예린은 인생의 전환점과 같은 경험을 바로 어젯밤 겪었다.
그것도 생각 이상으로 좋은 사람과 생각 이상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아.”
이불에 남은 그의 잔향을 몸부림치듯 코로 쫓으며.
“또 하고 싶다.”
서예린은 다음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