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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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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한테 상처는 훈장이라고 들었는데.

이런 일로 상처가 생기면 훈장보다는 치욕이겠지.

그래서 상처가 없는 건 그나마 다행이었으나, 막상 병원을 나선 다음에는 어디 깁스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지나가다 만나면 맞을 것 같은데.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을 세 사람.

맞는 건 무섭지만 정작 지금의 나는 세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두근거리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된 걸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하는 건가.

여러모로 성장.

아니, 진화했다고 보면 되겠지.

다만, 암흑진화인 게 문제겠지만.

‘아, 여기 어디야.

밖으로 나오자 주변은 완전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애초에 병원도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팬션 근처에 있는 병원에 데려다준 모양이었다.

‘이렇게 그냥 버리고 갔다고?

당황하면서 서둘러 핸드폰을 확인한다.

셋 중에 연락을 남긴 사람은 없었지만, 윤지가 톡을 남겨뒀다.

  • 오윤지: 우진아, 일어나면 연락 줘.

‘아.

그러고 보니 윤지가 MT 끝나면 데리러 오겠다고 말했었지.

어제 헤어지자고 선언했는데, 오늘 차 태워달라고 연락하는 건 남자로서도 좀 그렇고 인간적으로도 별로이지 않은가.

  • 김우진: 여기 어디야. 나 무서워.

근데 손가락은 어느새 윤지에게 SOS를 보내고 있다.

흠.

내가 인간적으로 별로긴 하지.

애초에 세 명한테 동시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쓰레기 같을 수 없는 고백이지 않나 싶다.

‘만화나 소설에서 하렘물 주인공들 보면 잘하던데.

현실은 참 어렵구나 싶어서, 일단 웹툰을 켠다.

웹툰 쪽은 현대물임에도 하렘으로 가는 게 있던 걸로 봤었다.

‘마음먹었어.

그럼 진지하게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웹툰을 현실에 대입하는 건 좀 아니긴 하네.”

게다가 성인웹툰 같은 경우는 보면 묘하게 몸으로 굴복시키는 내용이 많아서 애매하다.

최면이나 초능력 같은 걸로 사용하는 건 당연히 논외고.

어느새 그냥 재밌어서 웹툰을 보고 있자니.

빵빵!

“우진아.”

붉은 스포츠카에 타고 있는 윤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막상 이렇게 얼굴을 보니 좀 민망했으나, 옆자리에 탔고 윤지가 그대로 엑셀을 밟는데.

“기숙사까지 데려다주면 되는 거지?”

“……응, 고마워.”

슬쩍 눈치를 보면서 답한다.

윤지는 핸들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론 창가에 턱을 괸 채로 운전에 집중했다.

따로 별말은 없었다.

왜 내가 입원했는지 알고 있을까?

초조함에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 안 바빠? 바쁠 줄 알았는데.”

“바쁘지. 근데 나도 2학기부터 복학하니까 직원들 뽑아서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어.”

참.

분명 1학년 1학기 때는 동일 선상에서 같이 지내던 동기였는데.

어느새 윤지는 한 회사의 사장으로서, 직원까지 거느리고 있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포포는 잘 지내고?”

“응, 잘 지내. 언제 한번 밥이나 같이 먹자. 너한테 엄청 고마워 해.”

“그래, 시간 되면 불러줘.”

세 사람이 따로 내 얘기는 안 했구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지금이야 세상의 풍파를 겪으면서 다소 유해지긴 했으나, 예전에는 진짜 불도저 같은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때 성격 나오면 차에서 무사히 못 나갈 수도 있다.

“젊을 때는 잠깐만 못 봐도 금방 쑥쑥 큰다고 하잖아.”

“갑자기?”

“그래서 그런가. 딱 반년 못 본 건데 어쩜 이렇게 사람 담력이 커졌나 싶어.”

대화의 전조.

그 흐름이 묘했다.

빨간불에 딱 차량이 멈춰선 순간, 윤지는 내 쪽을 힐끔 쳐다보며 묻는다.

“어떻게 여자 셋한테 고백할 생각을 해?”

아, 말했구나.

“그것도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한 다음 날? 이게 환승연애 그런 거야?”

목소리 톤 점점 올라가는 것 좀 봐라.

옛날 버릇 나온다.

슬슬 흥분해 간다는 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헤어진 지 사실 좀 됐으니까. 환승연애는-.”

쿵!

주먹으로 핸들을 내리친 윤지.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는 게 좋을 거라 경고한다.

“아, 넵. 죄송합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거물의 품격을 가지고 모두를 거닐겠다고 다짐했던 거 같은데.

“후우, 바보 같아. 네가 헤어지자고 했던 걸 내가 얼마나 힘들게 받아들였는지 모르지? 멍청아.”

다시금 파란불이 켜졌다.

앞을 보고 가던 윤지는 이런저런 감정이 차오르는지 결국 구석에 차를 세우고 핸들에 이마를 콩 박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기 혼자 발갛게 얼굴이 달아올라 휙 나를 쳐다본다.

“옛날이었으면 바로 자취방 데려가는데.”

더 하지 않아도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때의 우리는 서예린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함께 정을 나눴으니까.

섹x를 좋아했다기보다, 서로 사랑을 나누는 걸 좋아했다.

감정의 교류를 즐겼던 기억이 아직도 파릇파릇하게 남아있다.

“그때 생각해 보면 좀 웃기지 않냐?”

“뭐가?”

“뭐 잘못해도 자취방 가고, 잘해도 가고, 귀엽다고 가고, 짜증 난다고 가고.”

“…….”

“결국 다 같은 결과였던 것 같아.”

물론,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주도권을 잡는 사람이 있긴 했으나 어쨌든 결과는 비슷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게.”

오윤지도 동의하는지 피식 웃음을 흘리면서 어처구니없어 했다.

“그때 뭐였지? 늦게 들어왔다고 뭐라고 하면서 했을 때 있잖아.”

“그런 적이 한두 번인가?”

“나 핸드폰 배터리 없어서 통화 못 받았을 때.”

“아.”

기억났는지 오윤지가 괜히 고개를 휙 돌린다.

“사실 제 시간에 들어왔는데 네가 일부러 자취방 시계 돌려둬서 한 시간 늦게 들어왔다고 착각하게 했잖아.”

그래서 그거 사죄하겠다고 여러 수치스러운 플레이를 당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는 아찔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추억 정도.

“……그때는 그냥, 명분이 필요했던 거겠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린 윤지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그냥. 그냥 너랑 같이 있고 싶은 명분이 필요했던 거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억지스럽게 이유를 만들어 시간을 보냈다.

과거를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걸 보니.

윤지와의 시간은 좋은 추억이었다.

그녀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천천히 다시 운전대를 잡았고 우린 오랜만에 옛날얘기를 나누며 기숙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느새 도착한 기숙사 앞.

“우진아.”

점심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으나, 윤지는 바빠서 가봐야 했기에.

여전히 운전석에 앉은 채로 나를 불렀다.

“좋았어. 옛날 생각나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윤지.

나는 잠시 머뭇거린 후,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기숙사로 들어갔다.


윤지랑 헤어진 다음, 기숙사 안으로 들어온 나.

내 방에는 MT 때 가져갔던 짐들이 쌓여있었는데 아마 기숙사에 지내는 1학년들이 가져와 준 모양이다.

세 사람 중 하나한테 일단 연락이라도 해볼까 싶었고.

처음은 서예린한테 전화하기로 했다.

서예린으로 고른 이유는 딱 하나였다.

‘얘가 그나마 제일 덜 아파.

서예린이 때리는 건 다른 둘에 비해서는 덜 아팠다.

전화를 걸자 서예린은 금방 받아주었다.

  • 여보세요.

낮게 깔린 목소리.

겁을 주려는 게 딱 티나는 어색한 연기였으나.

“크흠, 여보세요? 지금 뭐 해?”

일단은 속은 척 넘어간다.

얘는 배우 한다는 애가 연기를 이렇게 조잡하게 해도 되는 건가 싶다.

  • 너는?

“나 기숙사. 집에 있어? 잠깐 볼 수 있나?”

  • …….

“왜 대답이 없어?”

뭔가 싶어서 갸웃거리며 묻자.

전화기 안에서 진짜 서예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엄마! 왜 남의 전화를 함부로 받아!

엄마?

서예린 어머니?

‘아, 좆 됐다.

그때 축제 끝나고 어머님이랑 얘기해서 서예린이랑 관계는 끝내겠다고 했었는데.

지금 내가 전화를 걸어버린 게 이상하게 보이실 수도 있겠거니 싶어서.

“잠깐 볼 수 있냐니까? MT 갔던 애들이 다 모여서 뒤풀이 하자더라.”

일부러 서예린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 바로 자연스러운 주제로 흘러가게 둔다.

  • 넌 가만히 있어. 목소리 들어보니까 우진 씨 맞죠?

이제야 낮은 목소리에 어색한 연기 톤의 의미를 알아챘다.

“예, 예린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당당하게 나가자.

아니, 사실 당당하면 안 되는 입장이긴 해도 일단 당당할 필요가 있다.

  • 네, 우진 씨. 요즘은 MT 뒤풀이도 하나요?

“아, 넵. 워낙 애들이 모이는 걸 좋아해서. 서예린도 인기가 많고요.”

  • ……우진 씨, 혹시 나중에 시간 되면 따로 좀 만날 수 있을까요?

“네? 갑자기요?”

뜬금없이 무슨 말씀이신가 했는데 어머님은 물러섬이 없으셨다.

  • 네, 부탁 좀 드릴게요. 나중에 시간 괜찮을 때, 제가 따로 문자 남기겠습니다.

“알, 겠습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MT 뒤풀이를 하게 된 상황.

따로 누구를 부르진 않고 그냥 서예린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밖에 나와 있다.

‘갑자기 무슨 일이실까.

언제 만나자고 아직 확정되진 않아서 여유는 있으나.

그래도 무슨 일 때문에 어머님께서 나를 보자고 하셨는지 미리 알아두고 싶다.

아마 이제 곧 올 서예린이 잘 알고 있겠지.

또 술을 마시기도, 고기를 먹기도 애매해서 그나마 절충안이 PC방이었다.

PC방에 먼저 자리 잡아도 되지만 혹시 모르니 일단 밖에서 기다리면서 아까 보던 웹툰을 이어서 보는 중이었다.

‘장난 없네.

현실적인 하렘 작품이라고 해서 보고 있는데 소름 끼친다.

이거 로맨스가 아니라 그냥 불륜에다가 치정극인데.

마지막에 여자가 남자를 칼로 찌르는 엔딩까지.

평소였으면 잘 죽었다고 끌끌거렸겠으나, 지금은 묘하게 감정이입이 되는 게 등줄기가 서늘하다.

  • 유아린: 연락 안 해?

그때 온 톡 하나.

나는 살짝 웃으면서 바로 답장을 남긴다.

  • 김우진: 정신이 없어서. 기숙사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음.

  • 유아린: 꺼져. 말 걸지 마.

  • 김우진: ……선톡 해놓고.

  • 유아린: 살아있나 확인하려고 했던 거야. 괜히 경찰서 가기 싫으니까.

  • 김우진: 죽을 때까지 패긴 하더라.

결국 기절했으니까.

  • 유아린: 넌 나한테 고마워해야 돼. 나 아니면 고자였어.

음?

  • 김우진: 웬 고자.

  • 유아린: 말도 마라. 그때 예린이가 눈 돌아가서. 가위 가져와서 네 꺼 자른다고 난리도 아니었음.

  • 김우진: ……서예린이?

  • 유아린: ㅇㅇ 한동안 예린이는 만나지 마라. 너 죽을 듯.

종종 삶은 드라마보다 더 픽션 같다고 들었다.

“우진아!”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서예린을 본 순간.

나는 곧장 몸을 틀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장 순한 줄 알았던 애가, 가장 지뢰였다는 건 너무 흔한 클리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