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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어, 응. 괜찮아.”
실시간으로 내가 유아린한테 얻어맞는 걸 지켜봐서 그런지 규아의 시선이 좀 따듯하다.
아니면 그냥 내가 따듯하게 느끼고 싶은 걸지도 모르고.
어쨌든 갑자기 도와달라고 찾아온 규아. 후배가 요청하면 들어주고 싶은 게 선배의 마음이라지만.
‘이상하게 도와주기 싫네.’
도와주기 싫은 거 이상으로 아예 대화 자체를 하고 싶지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뒤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세 사람도 지분이 좀 있긴 했다.
마치 ‘저 새끼 또 버릇 못 고쳤네.’라는 따가운 시선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세 사람의 시선을 부담스럽게 여긴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
“크흠, 나가서 얘기할까요? 선배님들 바빠 보이시니까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얼른 나가자고 재촉하는 규아.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밖에서 얘기하는 게 더 위험하다.
“아니, 여기서 얘기해.”
따로 얘기했다가 이상한 오해를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투명했으며, 뒤에 있는 애들한테 숨길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규아는 아니었던 모양.
“아, 제발요.”
아마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 것 같은데, 자신이 세 다리를 걸치는 쓰레기 중에서도 아주 씹 쓰레기라는 걸 선배들한테 밝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선배, 한 번만요오!”
내 옷깃을 잡고 당기기 시작한 규아를 보며, 위기의식을 느끼고 바로 손목을 낚아채 와사바리를 다시 걸어주려고 했으나.
“히익!”
나의 살기를 감지했는지 깜짝 놀란 규아가 황급하게 손을 뗀다.
“어, 어쨌든 같이 좀 가주세요. 저 진짜 급해서 그래요.”
울상이 된 규아.
“흐윽, 진짜 도와주세요. 제발요.”
이제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 모습.
나름 예쁜 편에 속하는 규아가 이렇게까지 울상이 되어서 도와달라고 말하는 걸 보고 있자니.
“어우, 야. 정떨어지니까 울지 마.”
나도 모르게 짜게 식은 표정으로 짜증 내버렸다.
“…….”
어처구니없다면서 나를 쳐다보는 규아.
“독하긴 독하다.”
“와, 거기까지 갈 줄은 몰랐어.”
“우진아…….”
그리고 뒤에서 나를 향해서 한마디씩 하는 세 사람.
근데 어쩌겠는가.
저거 울고 있는 거 딱 봐도 구라인데.
규아라는 아이의 인성을 어제 파악했고, 분위기가 연기하는 느낌이라서 그냥 넘어갔다.
“가서 얘기라도 들어줘, 우진아.”
결국 불쌍하게 여긴 최이서의 허락이 떨어졌다.
“에휴, 가자 가.”
“감사해요!”
얼른 끝내자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고 있자니.
“우진아.”
최이서가 나를 불렀다.
“음?”
따로 말은 없었다.
다만, 아까 서예린이 만들었던 1우진 정도 되는 길이의 종이 장식을 들고는.
찌이익.
웃으면서 그걸 반으로 찢어버렸다.
“얼른 와?”
“……알았어.”
규아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우리를 번갈아 가며 보고만 있었으나, 나는 녀석의 등을 떠밀며 냉큼 나갔다.
“히이익!”
“끄아아앙! 우지나아아!”
0.5우진이 되어버린 종이장식을 두고 유아린과 서예린이 호들갑스럽게 비명을 질러댔으나 무시했다.
괜히 욱신거리는 하반신.
어디 더 갈 것도 없이 바로 강의실 앞에서 얘기를 시작하려는데.
“……선배.”
어느새 아까 울던 표정과는 아예 다른, 정색한 이규아가 나를 올려다본다.
“그, 뭔가.”
분명 아까까지 나한테 도와달라고 그렇게 칭얼거렸으면서.
이번에는 또 할 말을 고르고 고르다가 겨우 하는 말이.
“생각이랑 많이 다르네요?”
“뭐가 달라?”
“엄청…… 잡혀 사시네요?”
“응? 내가?”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뇨, 보통 양다리 걸친 사람들은 주도권을 잡거나. 막 나가는 느낌으로 다니거든요?”
“네가 말하니까 진짜 와닿는다. 그리고 나 사귀는 건 아니야.”
“뭐 다른가요. 어쨌든 그런데 선배는 좀 다르네요? 양다리를 걸치고 있지만…… 잡혀 사는 느낌?”
어이가 없네.
“뭐래. 내가 얼마나 휘어잡고 있는데.”
약간 자존심 문제로 넘어가는 기분이라서 냉큼 부정한다.
“…….”
하지만 믿음이 안 가는지 입을 꾹 다물고 나를 쳐다보는 규아.
“그럼 지금 당장 저랑 팔짱 끼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왜 그런 짓을 하지?”
“봐요, 못 하시네. 그냥 꽉 잡혀 계시구만.”
“팔짱 딱 대라.”
바로 팔짱을 끼려고 다가가던 순간.
덜컹.
강의실 문이 열리며 최이서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고.
“시발, 꺼져!”
바로 규아를 밀치며 거리를 둔다.
덕분에 그대로 바닥에 철푸덕 넘어진 규아.
쓰러진 채로 나를 노려보는 규아의 이마에 혈관이 툭 튀어나오며 당장이라도 나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감정을 쏟아낸다.
“……뭐해?”
최이서도 당황한 모양.
“아, 아니. 그냥. 어쩌다 보니.”
“뭔지 모르겠는데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그리고 돌아올 때, 자판기에서 음료수 몇 개만 뽑아와 주라.”
“아, 그럼. 제로 콜라로 뽑아감.”
그대로 다시 강의실 안으로 들어간 최이서.
엉덩이를 털면서 천천히 일어난 규아를 보면서 나는 어색하게 헛기침한 후.
“방금 남자다운 거 봤지? 메뉴 강제로 정해주는 거. 딱 제로 콜라 마셔 하고.”
“이거 미친 새끼 아냐?”
“선배야, 규아야.”
“아니,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밀치는 게 어딨어요? 나 다치면 어쩌려고?”
“그건 미안해. 하지만!”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호소력 짙게 변명해 본다.
“내가 쟤네한테 다치는 것보다 네가 다치는 게 훨씬 낫잖아!”
“이쯤 되면 병 있는 거 아닌가 싶네.”
혀를 차면서 팔짱을 낀 규아.
얘기가 잠시 딴 곳으로 가버렸기에 다시금 원래대로 돌린다.
“하아, 괜한 거 물어봐서. 씨이. 어쨌든 선배, 대나무숲에 글 좀 써주세요.”
“대나무숲에?”
아까 글 좀 써달라는 말을 했을 때부터 느낌이 오긴 했지만 정말 대나무숲 관련이었을 줄이야.
내가 관리자인 걸 알아서 그런 건 아닌 듯했고.
그냥 정말 글 하나만 써달라는 걸로 보였는데.
느낌이 딱 왔다.
“어제 남자분이 너 관련해서 대나무숲에 글 썼니?”
“네! 맞아요! 역시 경험자!”
썩 좋은 말은 아닌데.
어쨌든 사연은 간단했다.
대나무숲에 어제 남자친구가 익명으로 저격 글을 올린 것.
실명 거론은 당연히 안 했지만 영문과에 있는 파충류가 자신 말고도 수많은 애인들이 있었다고 썼단다.
나도 대나무숲을 켜서 슥 읽어봤는데 영문과라는 거 말고는 따로 특정될 만한 부분이 없었다.
“파충류라고 한 거 보면 이규아나라고 말한 거 때문이네. 네 얘기긴 하네.”
“아, 그니까요! 선배가 반박 좀 해주세요? 네?!”
“이걸 굳이?”
어차피 특정성도 없고, 따로 이름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냥 영문과에 있는 누군가라고 말했을 뿐인데 이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건가?
“너무 호들갑스럽…….”
덜컹!
강의실 문이 열리면서 서예린과 유아린이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우, 우진아! 너 저격당했어!”
“야 이 등신아! 대나무숲 좀 자주 보라고!”
“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새로고침을 해봤지만, 따로 올라온 글은 없다.
유아린이 내민 핸드폰 화면을 보자.
거기엔 규아 저격글이 있었다.
“이거 나 아니야 이 새끼들아.”
“어? 너 아니었어? 백퍼 너인 줄 알았는데.”
“그럼 김우진 꼬라지를 하는 애가 영문과에 하나 더 있다고? 세상 잘 돌아간다.”
규아 저격글이 성별을 밝히지 않고, 그냥 애인 사이였다는 식으로만 말을 했다보니.
나로 착각했던 모양이다.
“에휴, 얼른 들어가.”
“올 때 메로나!”
“메로나면 1우진인가?”
“1우진보다는 작지 않을까? 입에 넣어보면 딱-!”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 하면서 안으로 들어간다.
철컥.
문이 닫히고.
“봤지, 너인 줄 모른다니까? 저격 당해본 게 처음이라서 네가 혼란스러웠던 모양인데. 그거 전혀 문제없어.”
“역시 저격 스페셜리스트.”
납득이 된다면서 규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우웅! 우웅! 우웅!
- 오윤지 -
윤지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
어제 애들이랑 술 마셨다는데 그거 관련해서일까?
어떻게 윤지를 대해야 할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지만, 일단 전화는 피하지 않는다.
“잠깐만.”
호오호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규아를 두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 우진아! 괜찮아?!
“응? 뭐가?”
다급한 윤지의 목소리에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 대나무숲에 너 저격 있던데?! 파충류라고 너 욕하면서-!
“그거 나 아니라고.”
- 어? 영문과에서 여러 다리 걸치고 있다는 거 보고 딱 너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너 근데 대나무숲도 보니?”
- 복학할 거니까 정보 좀 얻으려고 깔았지.
윤지는 내가 관리자인 걸 알고 있다.
애초에 1학기에 관리자가 됐고, 나는 윤지한테 숨기는 게 없었으니까.
“어쨌든 그거 나 아니야.”
- 그래, 다행이네.
그러면서 윤지는 살짝 웃으며 답했다.
- 너랑 전화하니까 좋다.
“기습적으로 감성적으로 되지 마라.”
- 지난번에 네가 술 취하고 나한테 전화했을 때, 녹음해 둔 것도 있어.
“……삭제해 줘.”
- 어쨌든 네가 아니라니까 다행이네. 좀 있다 잠깐 기숙사 좀 찾아갈게. 얘기할 거 있어서.
“그래, 알았어.”
불편해도 피하진 않는다.
그게 지금 내가 오윤지에게 가지는 감정이었다.
사실 불편하다는 것보다는 미안함이 더 큰 것 같기도 했다.
- 나중에 봐.
뚝.
전화를 끊고, 다시 규아를 돌아본다.
녀석은 어느새 대나무숲의 글을 정독하면서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아하, 그러게요? 저라고 특정되는 건 없네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도 못 하게 써놨네.”
“일부러 그런 거지. 혹시 큰일로 번지면 발뺌하려-.”
쿵쿵쿵쿵!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거센 발걸음.
뒤로 묶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용점퍼를 입은 주희 선배가 다급하게 달려오시더니.
“우, 우진아! 너 이거 글 봤어?!”
아까 대나무숲 글을 내게 보여주셨고.
“후.”
나는 잠시 깊게 한숨을 내쉰 후,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참고 있는 규아에게 말했다.
“전 남친 번호 좀 주라.”
“왜요.”
“저격 좀 똑바로 하라고 말해주게.”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