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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 기간이 끝나고.
조금의 쉴 틈도 없이 바로 축제 기간이 되었으나, 시험 기간과는 다르게 좀 더 생기가 넘치게 북적거리고 있었다.
보통 월요일이 되면 사람들이 다들 축 처진 채로 흐물거리면서 돌아다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축제 현수막부터 시작해서 운동장에 천막들이 설치되는 걸 보면 정말 축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주변에서도 무슨 래퍼가 온다더라, 가수가 온다더라 그런 얘기가 나돌고 있었으나.
‘귀찮겠네.’
나는 축제에 있어서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1학년 같은 경우는 축제에 반 강제적으로 참가해야 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면도 있었다.
어쨌든 오늘은 월요일이었기에 따로 누구 만날 일도 없고 그냥 혼자 강의만 쭉 듣다가 집에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영어영문과 단톡방에 공지가 하나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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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오늘 축제 관련 공지 있어서 5시에 1강의실로 모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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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못 오시는 분들은 개인톡으로 말해주시고요.
딱 마지막 강의가 끝나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가기 싫었기에 나는 바로 최이서한테 따로 톡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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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과대님. 저 오늘 못 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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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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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개인 사정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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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죽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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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사실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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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진짜 아프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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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살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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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오기 싫으면 안 와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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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ㄹ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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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초성으로만 답하지 말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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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저 아파서 안 갈게요.
“와, 뭐야.”
솔직히 그냥 장난이나 치려고 최이서한테 톡을 보냈던 건데 진짜로 안 가도 될 줄은 몰랐다.
과대랑은 일단 친하고 볼 일이라니까.
귀찮게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으니 흥얼거리면서 강의를 들으러 향했다.
“아, 왜 그랬지.”
제1강의실.
최이서는 앞자리에 앉은 채로 괜히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들 참가한 영어영문과 1학년들.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축제이니만큼 다들 하나 같이 기대했는지 출석률이 상당히 좋았다.
2학년 과대랑 담당 교수님 중 한 분이 오셔서 이제 얘기를 하실 텐데.
‘그냥 오라고 할 걸 그랬나.’
최이서는 지금 김우진을 그냥 보낸 걸 후회하는 중이었다.
과에서 김우진의 평가가 워낙 바닥을 치고 있으니 괜히 왔다가 사고를 칠 수도 있겠다 싶은 게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아, 근데……!’
어제 고백했는데 바로 얼굴을 보는 게 좋으면서도 어려웠다.
그래서 김우진이 톡을 보냈을 때는 냉큼 당장 편해지는 길을 골랐지만.
막상 못 본다니까 또 서운하기도 했고, 아무렇지도 않게 톡을 보낸 김우진이 미워지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분명 좋아한다는 고백을 했던 거 같은데 왜 김우진은 평소랑 똑같이 톡을 보낸 걸까.
이런저런 고민에 머리가 복잡했는데, 부과대라서 옆에 앉아 있던 안현호가 부른다.
“이서야, 교수님 언제 오셔?”
“금방 오실 거야.”
“……혹시 뭐 고민 있어?”
최이서는 슬쩍 안현호를 쳐다본다. 생각해 보니까 안현호도 자신을 좋아하는 티를 팍팍 냈었는데 최근에는 좀 그걸 줄인 느낌이 나고 있었다.
돈까스 집에서 김우진이 거짓 고백을 말하면서 최이서가 누구 사귈 생각 없다고 말했던 때부터인데.
‘마음 접은 건가? 아니면 숨기고 있는 건가?’
접은 거면 고맙고, 숨기고 있는 거면 배우고 싶다.
“아냐, 그냥 축제 때문에 그래.”
“이번 축제에 연예인 누구 오는지 들었어?”
“그것까진 잘 모르겠네.”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 걸어오는 안현호에게 가볍게 대답해 주고 있었는데.
“이서야.”
슬며시 다가온 서예린.
다른 친구 무리에 끼어서 떠들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왜 왔나 싶었다.
힐끔 주변을 확인한 서예린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진이는?”
“아, 오늘 못 온대.”
“그렇구나.”
뭔가 더 말할 줄 알았는데 총총걸음으로 가버리는 그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예린의 뒤를 보고 있자니 그쪽 패거리에서 한 사람이 또 튀어나와 다가온다.
심드렁한 표정의 유아린.
“걔 왜 안 옴?”
누굴 말하는지 되물을 필요도 없었기에 퉁명스럽게 답해준다.
“네가 연락해 봐.”
“안 받으니까 그러지.”
“아프대.”
그 말에 인상을 팍 찌푸린다.
“딱 봐도 구라인데 그걸 받아줬니?”
“거짓말인지 네가 어떻게 알아.”
“에휴, 지도 구라인 거 알면서.”
“…….”
“어제 일 때문에 안 와도 된다고 한 거면서.”
“너 나랑 싸우려고 왔니?”
서로 노려보는 두 사람.
잠깐의 신경전이 있었으나 곧바로 교수님과 2학년 과대가 들어왔기에 유아린은 혀를 차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방금 김우진 얘기한 거야?”
옆에서 상황을 전부 보고 있던 안현호가 얼떨떨하니 묻는 걸, 최이서는 못 들은 척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후욱!”
최근 취미가 하나 생겼다.
- 내려갑니다! 천천히! 숨 잠그고!
“후웁!”
바로 너튜브를 보면서 운동하는 것. 최이서가 보면 칭찬해 줄 취미였는데 이런 취미가 생기게 된 건 그녀의 공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같이 밥 먹으면서 운동 너튜버 추천해 줬는데 그게 꽤나 마음에 들었다.
말도 재밌게 하고 운동도 꽤나 다채롭게 가르쳐줘서 그런지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게임 아니면 집에서 그냥 뒹굴뒹굴하는 나의 삶에 나름의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띵동!
한참 집중해서 땀을 흘리고 있는데 울려온 초인종 소리. 누구 찾아올 사람이 있나 싶었으나 일단 문을 열자.
“안녕…….”
거기엔 주머니에 손을 푹 꽂아 넣은 채로 부끄러움을 숨기고 있는 최이서가 서 있었다.
“어엉?”
뜬금없는 등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손에 들린 하얀 봉투 안에는 음식 재료랑 약국에서 산 약이 있었다.
“아프다며.”
“……그걸 믿었어?”
“됐고! 얼른 들어가! 누가 볼라!”
손으로 나를 밀면서 안으로 침입한 최이서. 무슨 유아린도 아니고 얘가 이렇게 구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좀 많이 당황스러웠다.
“땀 냄새.”
슬쩍 방안을 둘러보더니 의문을 담아 나를 쳐다본다. 방금까지 운동하고 있어서 땀 냄새가 방안에 배 있던 모양이다.
“아, 운동하고 있었거든.”
괜히 땀 냄새 때문에 부끄러워서 뒷머리를 긁적이자 최이서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싱긋 웃는다.
“난 네 땀 냄새 좋아해.”
“……?!”
갑자기 무슨 말이지?
하지만 최이서가 부끄러워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운동하는 걸 좋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더 할 거면 더 해. 나는 너 밥 해줄게.”
“밥을 해준다고?”
뜬금없이 얘가 왜 이러는 건가 싶었는데 최이서는 슬쩍 가져온 봉투를 들어 올린다.
“우리 축제에서 주점하기로 했거든. 그때 만들 거 대충 보여줄게.”
“그걸 왜…….”
“네가 만들어야 하니까.”
“나 주방이야?!”
가지를 않았더니 주점 주방에 박히게 된 모양이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최이서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당연하지. 그럼 서빙하려고 했니?”
“그건 아니지.”
사람 봐야 하는 서빙보다는 그냥 주방에서 캔이나 따는 게 훨씬 나한테 맞긴 한다.
“이번에 우리 매상이 꽤 될 것 같아서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해. 바쁠 거야.”
매상이 꽤 된다?
무슨 뜻인가 잠깐 고민하다가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서예린이랑 너 때문에?”
“……나는 아니고.”
대학에 유명한 여신, 서예린이 서빙을 보는데 당연히 사람이 몰리겠지. 아무래도 그쪽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려있다 보니 최이서는 비교적 알려지진 않았지만 서예린 때문에 사람이 몰리면 최이서에게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갈 거다.
“어쨌든 그러니까 주점 메뉴 좀 보라고. 확정은 아니지만 너도 주방 팀이라서 그쪽 미팅에 참여해야 할 거 아니야.”
“와, 진짜 너무 귀찮아.”
진심으로 하기 싫다.
그런 내 반응에 피식 웃으면서 최이서는 곧바로 주방 쪽으로 향했다.
주방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원룸이라 같은 공간이었지만.
“팬이랑 기름 좀 쓴다?”
“맘대로 해. 나는 좀 씻어도 되냐?”
“당연하지.”
나는 간단하게 속옷이랑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화장실로 간다. 그러다 슬쩍 고개를 돌려 최이서 쪽을 봤는데.
앞치마를 두르고 이것저것 재료를 꺼내놓으면서 음식 준비를 하는 최이서를 보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쩝.’
스스로 한심하다 생각하며 그대로 씻으러 들어갔다. 왜 한심하다 생각했냐면 최이서가 저렇게 있는 모습과 지금 시간이 썩 나쁘지 않다는 감상이 들었기 때문.
전 여친 오윤지 때문에라도 이제 집에 여자는 들이지 않고 싶었는데.
막상 저러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오묘했다.
‘찬물로 씻어야겠네.’
정신을 좀 차리자 싶어서 찬물로 씻고 나오니 금방 상차림이 되어 있었다.
소시지 야채볶음이나 콘치즈 같은 정말 안주류밖에 없는 건 좀 그랬지만.
금방금방 나가야 하는 메뉴니 씻는 동안 다 만든 모양이다.
“먹어봐. 일단 맛은 알아야 주방팀 회의할 때 의견을 내지.”
“별로 의견을 낼 생각은 없는데.”
“얼른.”
식탁 앞에 앉아 하나둘 먹는다. 엄청 맛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딱 평범하다.
“평범하네.”
그리 말하자 최이서는 뺨을 부풀리며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런 작은 행동들조차 귀엽게 느껴지고 있는 게, 나도 생각보다 최이서에게 마음을 많이 허락했다는 건 알겠지만.
“이서야.”
젓가락을 놓으면서 나는 운을 뗀다. 내일 만나면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찾아왔으니 타이밍이 나쁘지 않았다.
“나 더 이상 CC 할 생각 없어.”
마음은 고맙다, 좋은 사람 만날 거다, 그딴 말 해봤자 어차피 의미도 없고 상처만 길게 줄 뿐이다.
그냥 빠르고 간결하게.
내 진심을 말해준다.
“오윤지 때 너무 많이 데였어. 그래서 굳이 누구 만나고 할 생각 없어.”
내 말에 나를 빤히 쳐다보는 최이서. 아마 그녀도 이런 대답을 예상 정도는 했었는지 크게 동요는 없었고.
오히려 식탁에 턱을 괴면서 묻는다.
“내가 지금 가슴 만지라고 하면 만질 거야?”
“어.”
“…….”
너무 천박했나.
아니 근데 만지게 해준다는데 안 만지는 건 남자가 아니지 않은가.
“잠깐만! 약간 본능 같은 거야! 애초에 만지게 해주겠다는 걸 누가 거절하겠냐고!”
“하아.”
한숨을 푹 내쉬는 최이서.
그러더니 작게 웃으면서 답했다.
“나도 당장 사귈 생각 없어. 내년이 되어야 사람 좀 만나고 사귀고 하는 거지.”
“그, 그래?”
하긴 어제도 그렇게 말하긴 했었다.
“그때가 됐는데 내가 너를 향한 마음이 식었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그치. 사람 마음이란 모르는 거니까.”
나도 1학기 때는 그렇게 좋아하던 오윤지를 2학기 때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될 줄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친구로 지내자. 친구로 지내면서 이것저것 알아가 보고, 생각해 보자. 사귀기에는 너무 단시간에 친해지긴 했어.”
“그래, 현명하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어쨌든 최이서와의 관계가 지금에서 크게 뭔가 변하진 않았다는 소리니까.
과에서 몇 없는 친구 중 하나인데 이렇게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근데 가슴은?”
분위기가 좀 가벼워졌기에 장난치듯 웃으며 묻자 내 옆자리로 옮긴 최이서.
그러더니 가슴을 살짝 내민다.
“자.”
“……?!”
내 앞에 놓인 굴곡.
운동을 해서 탱글탱글하며, 탄력 있고, 모양도 예쁘게 잡힌 여인의 흉부가 놓여있다.
그런 와중 내 머리는 빠르게 돌아간다.
‘한 손으로 잡으라고는 안 했으니까.’
아마 최이서의 성격상 한 번 잡으면 바로 놓으라고 말할 테니.
2배 이벤트로 양손으로 잡은 다음 놓자고 생각해서 양손을 들어 뻗었는데.
꽉.
최이서가 내밀어진 내 손에 깍지를 끼는 게 아닌가.
실망감으로 물들어 가는 내 표정을 본 최이서가 히죽 웃는다.
“아직 안 돼.”
아직?
그럼 나중에는 된다는 걸까?
살짝 희망이 샘솟는 순간.
최이서의 얼굴이 내게 다가온다.
반응할 틈도 없었다.
쾅 쾅 쾅.
“야, 이 자식아! 꾀병을 부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유아린의 목소리에 우리 두 사람의 움직임이 멈춘다.
숨결이 서로 닿으며, 콧잔등이 스칠 것만 같은 거리.
잠깐의 정적이 흘렀으나.
“톡을 몇 개를 씹는 거야! 얼른 나와아!”
유아린이 계속 불렀기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없던 일로 하고 몸을 슬쩍 뒤로 뺀다.
“가서 문 열어주고 올게.”
손깍지도 풀면서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양쪽 어깨가 잡히며 그대로 다시 앉혀진다. 몸의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며 순간적으로 넘어졌고.
내 위에 올라탄 최이서가 그대로 입을 맞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