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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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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잠든 유아린과 서예린.

베개가 흠뻑 젖어서 그냥 내 팔을 베고 누운 두 사람은 눈을 꼭 감은 채 규칙적인 숨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인생업적 달성했네.

설마 3p를 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서예린이랑 유아린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하던 둘을 동시에 따먹었다.

이게 나중에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 하루는 참 알차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 더럽게 힘드네.

여자 둘을 상대해 본 건 처음이라서 정신이 없긴 했다.

뭐랄까.

키우는 개한테 밥그릇 두 개 주니까 번갈아 가면서 정신없이 먹는 느낌?

서예린이랑 유아린이 앞에서 전라로 있으니 어느새 정신이 나간 듯했고.

지금은 나갔던 정신이 다시 들어왔다.

현자타임이라고 할까.

‘엿 됐네 진짜.

업적은 업적이고 이 일은 진짜 무덤까지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밀려오는 피로와 수마에 결국 천천히 눈이 감겼다.


“아, 진짜 피곤해.”

“김우진 저거 지 혼자 그만뒀다고 편하게 자는 것 좀 봐라.”

“으음?”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직 묵직한 눈꺼풀을 억지로 떠본다.

양쪽 팔에 느껴지던 무게감은 사라졌고, 커튼과 함께 창문이 열려 있었으며, 서예린과 유아린은 속옷 차림으로 옷을 입는 중이었다.

보통 때였다면 얼른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의 몸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뇌에 저장하려고 노력했겠지만.

“다녀오세용.”

이미 나체의 모습을 너무 많이 봤기에 그대로 눈을 감는다.

“이미 다 먹었다고 존나 여유 부리네!”

그런 내가 괘씸했는지 유아린이 바로 발로 밟았지만 졸려서 그런지 딱히 아프진 않았다.

“우진아, 우리 돌아올 때까지 가면 안 돼?”

셔츠 단추를 잠그면서 경고하는 서예린.

“……갈 거야.”

좀만 더 자다가 냉큼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투정 부리듯 대꾸하자 서예린이 ‘쓰읍’하고 혀를 찬다.

“우리랑 같이 가자. 응?”

“그럼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하잖아. 그때까지 여기서 지내라고?”

무슨 기생충도 아니고.

다른 여자애들이 모르게 얘네 방에서 숨어 사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럼 우리 돌아오기 전까지만 있어. 응? 배웅해 줄게.”

“아냐, 너희 오기 전에 갈 거야.”

꾸물거리면서 이불을 얼굴까지 덮자 유아린도 강하게 동의했다.

“그래,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괜히 또 이상한 분위기 되면 늦게 가게 될 수도 있어.”

정확하다.

나도 혹시나 싶긴 했으나.

오늘 얘네 기다리다가 또 분위기가 야릇해지면 참을 자신이 없다.

그러면 또 하루 지내게 되는 거 아닌가.

무슨 섹x 루프도 아니고 그러다가 계속해서 얘네랑 같이 있게 될 것 같아서 얼른 떠날 생각이었다.

“그걸 노린 건데.”

게다가 섬뜩하게도 셋이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그걸 반기고 있었다는 거.

그게 진짜 무서운 거였다.

영원히 섹x만 할 생각인가.

“아으, 씨. 다리 아파.”

“나도 아직 얼얼해.”

바지를 입으면서 곤혹을 겪는 두 사람의 신음을 만족스럽게 들으면서 눈을 꼭 감는다.

어차피 다른 애들도 출근할 테니까 좀 더 자다가 점심때 일어나서 집에 가면 끝이다.

“근데 예린아.”

‘언제 가는 거야.

안 늦었나?

얘네 잠도 얼마 못 잤을 텐데 뭘 아직까지 준비를 하나 싶었는데.

“너 익명69지.”

유아린의 날카로운 질문이 핵심을 찌르고 들어왔다.

이불 밖에서 서예린이 나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느껴진다.

오히려 더 이불로 파고든다.

절대로 놓지 않을 거다.

이불 밖은 위험하니까.

“너 말하는 거랑 하는 행동이 딱 익명69야. 애니좌 구라고 섹x좌가 너 맞지?”

“아, 아, 아, 아닌데욥.”

목소리부터 덜덜 떨리는 걸 보니 이미 글렀다.

저건 하여간 얼굴 예쁜 거 말고는 잘하는 게 없다.

섹x?

그건 그냥 좋아하는 거고.

연기?

저거 보면 쟤가 정말 배우에 재능이 있었나 싶다.

“저, 저, 오, 오타쿠인데요!”

“지랄을 해라. 생각해 보니까 김우진이 지난번에 섹x좌가 우리 과에 있다고 했거든. 그게 너였네.”

“…….”

퍽! 퍽!

아마 서예린이 나를 밟고 있는 모양인데 무시한다.

“됐어, 어차피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뭐가 부끄러워.”

유아린은 나름대로 위로를 해보지만 서예린은 무슨 증기기차처럼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슬퍼한다.

“내, 내 이미지가…….”

저거 미친년인가?

본인한테 무슨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 이불 밖으로 나가면 두들겨 맞을 것 같으니까 참아야지.

“뭔 또 이미지까지. 늦겠다. 일단 가자, 예린아.”

“흐윽! 관리자 짜증 나! 오늘 도배하고 야짤 올릴 거야!”

“하지 마!”

“하지 마!”

이불을 들추면서 바로 쏘아붙인다. 웃긴 게 유아린도 동시에 했다는 점이었는데.

“호흡 뭐야.”

질투하듯 볼을 부풀린 채로 우리를 번갈아 가며 보는 서예린.

“나도 시켜줘! 어차피 아린이가 내 정체도 다 알았으니까 그냥 나도 관리인 시켜줘!”

어차피 다 들켰으니 억제기는 없다면서 투덜거리는 서예린.

“아, 알았으니까. 일단 가자. 진짜 늦겠어. 애들도 우리 부르잖아.”

밖에서 들려오는 이서아와 한봄의 목소리.

이제 진짜 출근해야 됐기에 유아린은 서예린을 끌고 그대로 떠나갔다.

인사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어차피 며칠 있다가 다시 만날 테니 굳이 인사까지는 필요-.

“야, 조심해서 가라.”

“우지나 도착하면 연락해.”

없을 줄 알았는데 문 옆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인사하는 둘.

나 역시 손을 흔들어 준 다음 그대로 누웠다.

‘향기가 아직 남아있네.

아직도 서예린과 유아린의 향이랑 온기가 남아있는 자리.

이상하게도 흥분된다기보다는 포근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차분하니 눈을 감았고.

이내, 금방 잠에 들 수 있었다.


“…….”

천천히 눈이 뜨인다.

엄청나게 피곤했는데 누군가가 강제로 나를 깨운 느낌이 들었으나.

정작 시끄럽거나, 누가 흔들고 있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정말 조용하고, 차분하니 잠에서 깼다.

딱 그거였다.

시체가 눈을 떴다고 해도 될 정도로 나는 고요함 속에서 몸 하나 움찔거리지 않고 눈만 떴다.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엄청나게 피곤했는데.

밖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쌀쌀한 바람은 아직 오전임을 알려오고 있었다.

왜 다시 깬 걸까.

어째서 나는 눈을 뜬 걸까.

잠들었던 머리도 슬금슬금 사고를 시작했다.

아직도 지독하게 피곤했으며 몸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기에 당장 자라는 듯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다시 눈을 감으면서도 어쨌든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왜 깼냐고?

이유는 딱 두 개였다.

하나는 서늘함이었다.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아니라, 몸이 지니고 있는 서늘함.

다른 하나는 냄새였다.

담배 냄새.

그래, 다소 지독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담배 냄새가 코에 풍겨왔다.

‘담배?

근원지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아래로 굴려본다.

그러다 눈을 감고 깜빡 잠들 뻔했으나 어쨌든 나는 서늘함과 담배 냄새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눈을 깜빡이고 있는 흑발의 여자.

왜인지 내 품에 안겨들 듯 누워있는 그녀는 내가 내려다보기 전부터 이미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뭐지.

사람은 의외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을 때 크게 놀라지 않는단 걸 알 수 있었다.

주희 선배가 마치 내 품에 안긴 것처럼 누워서 이불 속에 파고들어 와 있었으나.

정작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너무 놀라서 못 움직이는 건지 아니면 그냥 졸려서 대응할 여력도 없는 건지.

나와 눈을 딱 마주친 주희 선배는 큰 눈을 몇 번인가 깜빡거리더니 그대로 굳으셨다.

아마 나처럼 현실을 인지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신 모양이다.

‘진짜 주희 선배인가?

툭.

품에 안겨 있는 주희 선배의 머리에 손을 얹어봤다.

진짜였다.

감촉이 느껴진다.

음.

그렇구나.

‘딱딱하네.

그게 끝이었다.

나는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우.”

잠에서 깬 나는 곧장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오후 1시.

딱 점심시간이기도 했으니 슬그머니 일어나서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해 본다.

“씻을 순 없겠지…….”

화장실을 한 번 보고 아쉬워하며 캐리어에서 모자를 하나 꺼내 푹 눌러쓴다.

어차피 아직 자취방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서 거기 정리도 안 했으니 집에 가서 씻기로 했다.

‘가면 이사 정리도 해야 되네.

기숙사에 들어갈 거니까 준비하느라 또 한창 바쁘겠거니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거울을 보고 대충 상태를 확인한 다음,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온다.

  • 최이서: 어제 왔어?

마침 톡을 보낸 최이서에게 오늘 가게 됐다고 답하니 피곤하지 않으면 같이 저녁 먹자고 제안이 왔다.

“진짜 나쁜 새끼긴 하네.”

스스로를 향해 욕을 한 번 박아주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려 내가 사겠다고 답장해 줬다.

늦은 저녁을 먹게 될 테니 가는 버스에서 좀 더 자고 집에 가서 바로 씻은 다음에 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 최이서: 피곤할 테니까 그냥 너희 집에서 먹을까?

‘왜 제안이 야해 보이냐.

이게 어제부터 야릇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어서 그런지 최이서의 담담한 제안도 유혹처럼 느껴졌다.

  • 김우진: ㄴㄴ 배달 음식 질렸어. 밖에서 먹자.

  • 최이서: 그래,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어?

메뉴를 고민하면서 버스 정류장에 타이밍 좋게 들어온 버스를 탄다.

메뉴는 가서 같이 고민해 보기로 정하고, 나는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이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몇 시간은 더 잘 수 있겠지.

“후우, 결국 가는구나.”

마지막으로 멀어져 가는 골드원 호텔을 보면서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낀다.

여러 경험을 했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시 시작될 대학 생활.

이제 2학년이지만 조금은 더 성숙한 김우진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또 뿌듯하기도 했다.

서예린이랑 유아린과의 관계는 좀 복잡해지긴 했고, 최이서한테 들키면 죽을 수도 있지만.

뭐가 됐든 일단.

“시발, 도대체 뭐지!?”

왜 주희 선배가 나한테 안겨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