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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만!”
정찬우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며 곱창집 밖으로 나선 서예린은 결국에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고 갑자기 정찬우가 나타나서 당황했던 탓에 정신을 차리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갑자기 네가 왜 온 거야?”
고등학교 이후 대화를 잘 하지 않던 정찬우가 갑자기 자신을 찾아와서 데려가고 있으니 서예린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정찬우 역시 휩쓸리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바깥의 찬바람에 머리를 쐬자 정신을 차렸는지 어색하니 헛기침한다.
“그, 우진이가 불렀어.”
“우진이?”
뜬금없는 이름일 수도 있으나 또 아닐 수도 있다. 자신과 함께 소문에 휩쓸려 버린 게 김우진이니까.
사회 부적응자라면서 자신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 피해자 중 하나였다.
“응, 내가 가면 지금 대나무숲에 퍼진 소문은 헛소문이라고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아.”
무슨 소리인가 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김우진이랑 사귄다고 소문을 냈는데 정찬우 같은 남자가 대놓고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그게 헛소문이었다는 걸 알리게 되지만.
“…….”
하지만 정찬우랑 엮이게 되었다는 게 서예린에게는 좀 불만이었는데.
정찬우 역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일단은 집으로 가자. 내가 바래다줄게. 너도 거기 있기 힘들었잖아.”
“……아니.”
서예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김우진이 자신을 위해서 정찬우를 보냈다면 아마, 자신이 떠난 뒤에 김우진이 찾아왔을 거다.
그러니까.
“다시 갈 거야.”
그가 걱정된다.
자신 때문에 헛소문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또 가서 혼자서 뭔가 할 생각이겠지.
서예린이 곧장 몸을 틀어서 곱창집으로 다시 향하려 했으나, 정찬우가 앞으로 나서며 말렸다.
“안 돼! 너 집에 데려가라고 우진이가 그랬어!”
“그러는 걔는! 걔 혼자서 지금 선배들한테 간 거 아니야?!”
“그, 건…….”
정찬우의 이러한 반응을 보니까 오히려 더욱 확신이 들었고.
“비켜,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김우진이 책임질 필요 없어.”
냉담하니 선언하며 정찬우를 지나친 서예린의 발걸음은 상당히 빨랐다.
다급하니 곱창집으로 향했는데 다 도착하기도 전에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
“내가 틀린 말 했어 개새끼들아!?”
‘우진이 목소리!’
다급하게 달려간 서예린은 모퉁이를 돌아서 대로변에 있는 곱창집을 확인했는데.
“뭘 잘못했는데!”
거기엔 3학년 선배들에게 붙잡힌 상태임에도 계속해서 목에 핏줄을 세워가며 소리치고 있는 김우진이 있었다.
“어?! 말해봐! 걔랑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해 보라고 새끼들아!”
온몸을 비틀어 가며 그는 소리치고 있었다. 담뱃재와 커피 찌꺼기를 뒤집어쓴 여자 선배들의 모습.
‘설마 우진이가…….’
저런 짓을 할 사람은 김우진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예린은 통쾌함을 느끼기보다는 걱정되기만 했으나.
“서예린이랑 너한테 우리가 뭐 했다고 지랄이야!? 대뜸 찾아와서 가해자 만드냐? 웃기네!”
“그니까. 이거 옷 변상 어떻게 할 건데?”
“너 대학 생활 존나 꼬인 건 아냐!?”
여자 선배들이 합심해서 김우진에게 소리를 질러댔으나 김우진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핸드폰 까봐! 대숲에 게시글 쓴 게 익명83! 동조해서 바람 잡은 놈들이 46, 93, 167이야! 우리 학교 대숲은 익명 숫자 잡히면 고정되는 거 알지?”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어디 보여줘. 너희가 지금 핸드폰 깠는데 숫자가 다르잖아? 그럼 내가 여기서 무릎 꿇고 사과하고 대학 자퇴한다 개 같은 년들아!”
저들이 헛소문을 퍼트린 범인이라는 걸.
“아, 좀 놔!”
3학년 남자 선배들의 팔을 기어코 뿌리친 김우진이 성큼성큼 그녀들에게 다가간다.
“핸드폰.”
여선배들을 내려다보며 김우진의 흉흉한 눈동자가 그들을 훑는다.
“대나무숲 보여줘. 그것만 보여줘서 너희가 인증하면 내가 다 사과하고 옷도 다 변상하고, 대학도 자퇴한다.”
이제는.
모두의 시선이 3학년 여자 선배들에게로 쏠려 있었다.
여기서 김우진에게 증명만 하면 되었다. 자신들이 대나무숲에 글을 쓰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만.
“내가 왜?!”
“그래! 우리가 왜 보여줘야 해?”
여선배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거절했고, 그것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겠지.
“못 까잖아. 그치? 실은 너희가 쓴 거니까. 83, 46, 93, 167. 이거 다 너희니까.”
“개소리하고 있네!”
“미친 새꺄! 소설 적당히 써!”
“그럼!”
더 이상 듣기 싫다며 김우진이 그녀들의 말을 일갈한다. 파르르 떨리고 있는 두 주먹은 분노만이 담겨 있었는데 그 안에 담긴 분노들이 전부 입 밖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아.’
그저 곱창집 안에서 무기력하게 손을 무릎 위에 얹어둘 뿐이었던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핸드폰 열라고! 그거 열고 주둥이 나불거리라고!”
“…….”
“당장 증명만 하면 되잖아. 그럼 내가 다 사과하고 자퇴한다니까?”
우물쭈물 거리는 여선배들을 보면서 김우진은 혐오를 담아 노려본다.
당장이라도 용암과 같이 뜨거운 분노를 계속해서 뿜어댈 것만 같았던 김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꾹꾹 누르곤.
“야.”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걔가 뭘 잘못했냐?”
그건.
단순히 오늘 있었던 사건뿐만 아니라.
서예린이라는 여자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관통하는 질문이었다.
“어? 걔가 뭘 잘못했어? 걔가 도대체 뭘 했냐고.”
“…….”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서예린 본인조차 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싶었다.
“아무것도 없잖아.”
쓰라린 표정이었다.
오히려 김우진 본인이 더 슬퍼 보였는데, 그것이 서예린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이라는 걸.
서예린도 알고 있었다.
“뭐 잘못한 거 없잖아. 그냥 예쁜 여자애일 뿐이잖아. 그걸 자랑하고 다닌 것도 아니고, 그걸 가지고 남자 꼬리 치고 다닌 것도 아니고, 그냥 학교만 다녔잖아!”
외모는 능력.
이제는 너무나 보편화된 말이었고.
“왜 걔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냐? 왜 너희 눈치를 보면서 힘들어 해야 돼?”
능력이 너무 뛰어난 사람은 시기를 받기 마련이다.
“착한 애야.”
눈가가 촉촉했다.
어느새 자신의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이 턱 끝에 닿아 피부를 간질였다.
그제야.
서예린은 스스로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흐릿해진 시야였으나 눈물을 닦으며 억지로 또렷한 풍경을 눈에 담는다.
저 사람은.
“늘 남 생각해 주는, 착한 애.”
자신을 위해서 싸워줬고.
자신을 위해 소리쳤으며.
자신을 이해해 주었다.
“흑.”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이 거슬렸다. 저 멀리 있는 남자를 눈에 담고 싶으나 계속 방해되는 눈물이 싫었다.
처음이었다.
당연한 거지만.
그래, 너무 당연했기에 오히려 처음 듣는 거였다.
‘그랬던 거였어.’
나는.
아무 잘못이 없었어.
그걸 깨닫는 순간, 서예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
분명 방금 전까지는 기세가 좋았다. 선배들이 나를 말려도 온몸을 비틀어 가면서 욕이란 욕은 다 하고, 그들에게 중지를 날려주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좀 더 차분하게 말할 수 있었잖아.”
어느새 곱창집으로 들어와 최이서 옆에 앉은 채로 설교를 듣고 있었다.
당연히 자리는 파토가 났고, 3학년들은 다 떠나갔으며 1학년 몇 명만 남아서 남은 음식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아, 알았어. 그래도 어찌어찌 잘 끝났잖아.”
“경찰분들이 온 걸 잘 끝났다고 하진 않아.”
우리가 싸우는 줄 알았는지 누가 신고한 덕분에 경찰이 와서 상황이 유야무야 잘 끝나게 되었다.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할까.
“곱창집이라고 분위기 곱창냈네.”
맞은편 자리에 앉아서 오물오물 곱창을 먹고 있는 유아린을 보며 눈살을 확 찌푸린다.
사실상 유아린이 나를 끌어들인 주범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야, 정찬우랑 서예린 오해하지 마. 둘이 그런 사이 아니고 내가 정찬우한테 부탁해서 서예린 데려간 거야.”
아마 지금쯤이면 서예린을 집에 데려다주지 않았을까?
“어쩌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찬우는 아직 싱글이야.”
내가 웃으면서 엄지를 척 치켜들자 유아린은 심통이 났는지 식탁 밑에서 내 정강이를 걷어찬다.
아프긴 했으나 유아린에게 한 방 먹였다는 느낌이 들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아직 정찬우랑 유아린 이어주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넌지시 어필한 거니까.
그때 다른 테이블에 있던 1학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이서야, 우리 이만 갈게.”
“아, 가는구나. 오늘 고생 많았어.”
1학년 동기들은 내 쪽을 힐끔 봤으나 그것뿐 따로 뭔가 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최이서가 그들을 배웅해 주러 가자 나와 유아린만 남았고.
“너희 집에서 잘 때.”
유아린은 내가 묻지 않았음에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설명했다.
“너 핸드폰 떨어트려서 주워줬는데 딱 맞춰서 대나무숲에서 알람이 오더라?”
“하아.”
“대나무숲 문의가 왔습니다? 하여튼 뭐 그런 거였지. 근데 묘하더라고 문의를 보낸 게 답장이 온 것도 아니고 문의가 왔다니까.”
뒤는 뻔했다.
“그래서 네가 관리자한테 문의를 보내봤는데 내 핸드폰에 알림이 왔다는 거지?”
“맞아. 내가 문의 보낸 거 봤어?”
봤지.
익명59가 ‘ㅎ’만 문의로 3개를 보냈던 걸 기억한다. 뭔가 꺼림칙한 문의라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유아린이었을 줄이야.
“우진이 대학 생활 재밌게 하고 있네?”
턱을 괴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유아린. 그녀를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설마 유아린에게 걸리게 될 줄이야.
“뭐 나쁜 것도 아니고. 무료봉사하고 있는 거니까 따로 소문내진 않을게. 근데 앞으로 재밌겠어.”
히죽 웃는 유아린.
이걸 가지고 장난칠 수 있는 게 무수히 많다면서 기뻐하고 있었는데.
나는 식탁 위에 놓인 그녀의 핸드폰에 턱짓한다.
“폰 봐 바. 내가 보내놓은 거 있어.”
“응? 뭘 보내?”
“확인이나 해봐.”
유아린은 핸드폰을 켜서 대나무숲을 확인했고.
“이, 이거 뭐야?!”
거기에는 대나무숲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을 향한 공지 그리고 무수히 많은 축하 댓글이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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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숲 관리자입니다. 최근 대나무숲에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저격글이 무분별하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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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관리하기 버거운 상황이라 제 밑에서 관리할 관리인을 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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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는 한 사람이지만 앞으로 종종 뽑을 수 있으니 즐거운 대나무숲 하시길 바랍니다.
관리인 당첨자: 익명59.
장점: 글 쓰면 앞에 (관리인1호) 칭호가 붙음, 관리자의 총애.
단점: 무급, 30분에 한 번씩 게시판 봐야함, 열심히 해도 안 알아줌, 꼬붕임.
“시, 싫어!”
당황한 유아린이 반쯤 울상이 되어서 내게 뭔가 외치려 했으나.
“앞으로.”
나는 방긋 웃으며 앞으로 함께하게 된 동료에게 악수를 청했다.
“잘 부탁해, 관리인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