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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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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양강은 또다시 서란을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오지 않았다.

노란색 꽃 한 송이와 함께였다.

주양강이 서란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네 이름도 듣지 못했더구나.”

“저는 류서란이라고 합니다.”

“흠, 류씨라... 알겠다. 이 꽃은 선물이다.”

서란은 얼떨결에 꽃을 받아들었다.

꽃이라고?

이렇게 뜬금없이?

졸업식이야?

그래도 일단 받았으니 고맙다고는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예쁘네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나. 갑을 구역까지 가서 꺾어 온 보람이 있어.”

“갑을 구역이요? 밤사이에 선계 동부까지 다녀 오신 건가요?”

주양강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이 몸의 전송술은 선계 제일이니까.”

“하긴 어제도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셨었죠. 전송진도 없이 그런 게 가능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지선쯤 되면 못하는 게 더 드물어지지.”

그때, 광장 시계탑이 뎅뎅 울렸다.

어느새 업무 시간이었다.

서란이 말했다.

“주양 진군, 저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재판 일정이 있거든요.”

“그래, 늦으면 안 되지.”

“예, 꽃은 감사했습니다.”

주양강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더할 나위 없는 안도감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주양강이 순순히 물러나서 정말 다행이었다.

서란은 수행원단과 함께 법정에 입장했다.

그리고 곧장 주양강을 발견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맨 앞자리였다.

서란은 그냥 할 일이나 하기로 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얘기해 봤자 안 들을 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순회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에 참석한 주양강은 틈틈이 깐족거렸다.

상습적인 소액 사기꾼에게.

“저런 놈이 여태 살아 있다니. 말세군 말세야.”

공공기물파손죄를 저지른 패거리에게.

“사형시켜라, 사형!”

종업원의 임금을 체불한 점주에게.

“우우, 쓰레기! 전 재산 몰수해라!”

서란은 치안관들을 바라봤다.

다들 필사적으로 서란의 시선을 피했다.

하기야 암만 봐도 무리한 요구이긴 했다.

결국 서란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숙, 정숙! 방청객들은 사담을 삼가 주십시오! 그리고 법정은 투기장이 아닙니다!”

효과가 있었는지 주양강은 입을 다물었다.

그 대신에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말을 안 하니까 지루한 모양이었다.

서란 입장에서도 차라리 다행이었다.

적어도 법정은 정숙해졌으니까.

이 틈에 재빨리 재판을 진행했다.

오전 재판이 모두 끝났다.

마침내 찾아 온 점심 시간.

주양강은 칼같이 기상했다.

그리고 서란 일행에게 말했다.

“점심은 내가 대접하지.”

“아니, 저희는...”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

정말 부담스러웠지만 거절하기도 그랬다.

서란 일행과 주양강은 근처 요리점으로 향했다.

요리의 맛 자체는 굉장히 훌륭했다.

서란이 말했다.

“맛있네요. 그런데 이런 맛집은 어떻게 아셨나요? 혹시 전에도 이 도시에 방문한 적이 있으신가요?”

“잠결에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오...”

서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요리나 마저 음미하기로 했다.

주양강은 서란의 접시에 요리를 올려 주며 말했다.

“많이 먹거라.”

“감사합니다.”

“잘 먹는구나, 더 주마.”

서란은 삼 인분 가량을 더 먹고 나서야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법원에 돌아온 서란은 곧장 담당자를 호출했다.

오후 재판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하지만 담당자는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서란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후에는 재판이 3건뿐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일정 되게 빡빡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담당자가 대답했다.

“다들 항소 취하하겠다며 난리입니다.”

“혹시 비속불박진군 때문에?”

“아마도 그럴 겁니다. 소문이 쫙 퍼졌거든요. 비속불박진군께서 법정을 참관하신다고. 찔리는 게 있는 항소인들이 대거 도망치고 있습니다.”

서란이 물었다.

“찔리는 게 있는 항소인이요?”

“아, 모르시는군요. 순회 재판을 받는 이들 중 대다수는 항소 좀 한다고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럼에도 당장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항소하곤 하죠. 어차피 순회 판사는 비정기적으로 방문하니까요.”

“그렇군요.”

담당자는 심야 재판도 모두 취소되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서란은 3건의 재판을 잘 처리했다.

이후에는 퇴근해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문이 저절로 열리며 불청객이 등장했다.

주양강이 꽃 한 송이를 내밀며 말했다.

“혹시 흰색 꽃도 좋아하느냐?”

서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꽃을 건네받지도 않았다.

그저 주양강을 응시했다.

솔직히 좀 불쾌했다.

사생아 운운하던 첫 만남이 그랬고, 자기 멋대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행실 또한 민폐였다.

경지 좀 높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것도 아니고.

서란은 애써 예의를 갖춰 말했다.

“제가 재판 때문에 좀 피곤해서요.”

“저런, 피곤하면 안 되지.”

“죄송하지만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목욕이 하고 싶군요.”

주양강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면 함께 들어가자꾸나.”

서란은 말문이 막혔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절할 것 같아서 그랬다.

지금 나랑 장난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주양강과 눈을 마주친 순간 사라져 버렸다.

청자색 용안에는 기대감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저 그뿐이었다.

결국, 서란은 주양강과 함께 욕조에 들어갔다.


석재로 만든 욕조는 꽤나 커다랬다.

두 반인반룡은 목욕물에 몸을 담궜다.

주양강은 아직도 꽃을 손에 들고 있었다.

서란은 말없이 주양강을 바라봤다.

백옥 같은 피부와 흑단 같은 머리.

그림으로 그린 듯한 미인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은 하기 싫지만, 정말 그랬다.

주양강이 물었다.

“그런데 정확히 몇 살이더냐? 겉보기로는 백 살 조금 넘는 듯한데.”

서란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

같은 반인반룡이기도 하고, 격차도 만만치 않았다.

안 들켰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서란이 대답했다.

“올해로 104세입니다.”

“역시 그랬구나. 그러면 여의주를 완성한 건 몇 살 때였느냐? 나는 75세쯤 완성했었다.”

“90세일 겁니다.”

주양강이 말했다.

“우리는 닮은 점이 참으로 많구나.”

“그런가요?”

“그렇고 말고. 종족도 같고, 성별도 같고, 심지어 타고난 자질마저 비슷하지 않느냐.”

서란은 별달리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주양강은 손에 든 꽃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불현듯 말했다.

“혹시 물어보고 싶은 건 없느냐?”

“예를 들면요?”

“아무거나, 수행에 관해서든 뭐든.”

서란은 고민하다 물었다.

“그러면, 순환 의식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

“순환 의식? 아, 윤회 의식 말이구나. 괜찮으니 어서 물어보거라.”

“의식을 치르면서 혼백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주양 진군께서는 3000년 만에 지금의 경지까지 도달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떻게 그 정도로 빨리 경지를 올리면서 혼백을 온존하신 겁니까?”

주양강이 말했다.

“의식 도중에 법력을 세심하게 제어하면 된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어, 그러니까...”

주양강은 여차저차 설명을 이어 나갔다.

서란은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른 주제에 대해서 질문하기로 했다.

서란이 물었다.

“혼백의 손상을 치료하는 게 가능한가요?”

“놔두면 저절로 낫는다.”

“자연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게 손상된 혼백을 인위적으로 치료할 수단이 있나요?”

주양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정확한 명령어를 입력한 듯했다.

서란은 결과값이 나오길 기다렸다.

한참을 고민하던 주양강이 말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없구나. 하지만 진행 중인 붕괴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안다.”

“그게 어떤 방법인가요?”

“명계로 가면 된다.”

서란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명계요? 죽으면 가는 그 명계?”

“그래, 명계에서는 그 누구도 죽지 않는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말이지. 영혼을 짓뭉개든 육신을 토막 내든 마찬가지야. 망자는 생전의 모습으로, 생자는 명계에 발을 디딘 그 모습 그대로 재생될 뿐이다.”

“그러면 혼백이 붕괴되는 것도 멈추겠네요?”

주양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녹기 시작한 얼음을 냉동고에 집어 넣는 격이지.”

“꺼내면 다시 녹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그냥 이승에서 죽기 VS 저승에서 좀 늦게 죽기

선택지가 양쪽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래도 명계에 대한 호기심은 좀 생겼다.

서란은 다시금 주양강을 바라봤다.

보기보다 아는 게 많은 여인.

종잡을 수 없는 여인.

나이답지 않게 순수한 여인.

주양강이 물었다.

“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

“다소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괜찮다.”

서란이 주양강의 젖무덤 사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명치에 있는 그 흉터는 뭔가요?”

“이거 말이냐?”

“예.”

주양강이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기억나지 않는구나. 아주 어렸을 적에 생긴 모양이야.”

“모르시는군요.”

“그래.”

욕실의 불이 확 꺼졌다.

남은 광원이라곤 제각기 발광하는 서란과 주양강의 사슴뿔뿐이었다.

서란의 자주색 용안에 주양강이 담겼다.

얼굴도, 가슴팍도, 언제까지 들고 있을 작정인지 모를 흰색 꽃도 모두 청자색으로 물들었다.

서란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제가 첨천답층진군의 사생아가 아니라고 하면 믿으실 건가요?”

“나한테까지 애써 숨길 필요는 없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다시금 불이 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