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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의사에게 물었다.
“담청 님도 심마라고요?”
“그렇습니다.”
“아, 아니... 어떤 종류의 심마인가요?”
의사가 검사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외상성 심마의 일종으로 추정됩니다. 원인은 높은 확률로 부러진 왼쪽 뿔이겠죠. 아까 여쭤 본 바로는 하계에서 생긴 상처라고 하셨는데, 혹시 선계에 온 다음 진료를 받으신 적이 있나요?”
서란이 대신 대답했다.
“아뇨, 그냥 약만 먹고 말았는데요.”
“어떤 약을 드셨나요?”
“어, 그게... 분명 목주괴오초 어쩌고 하는 약재가 들어가는 약이었는데... 용족 보양용 탕약이라고 그랬거든요.”
의사는 잠시 심사숙고하더니 말했다.
“아예 틀린 처방은 아니군요. 그래도 너무 옛날 방식입니다. 외상성 심마에 대한 연구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던 시절의 지식이죠. 의료 현장에서는 안 쓰인 지 2만 년도 더 됐을 겁니다.”
서란은 번개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몇만 년 동안 업데이트가 안 된 의료 지식이라니.
여태까지 상상조차 못해 본 발상이었다.
의사는 두 사람에게 몇 가지를 질문했다.
“혹시 뿔이 부러진 이후에 지나치게 산만해지지는 않았나요? 집중이 어렵다거나?”
“난독증은 어떤가요? 글자가 회전한다든지 글줄이 출렁거린다든지 하는 증상이 있나요? 너무 작은 글씨를 보면 머리가 아프지는 않고요?”
“머리가 수시로 가렵지는 않나요? 특히 왼쪽 뿔 뿌리 부근이 말이에요. 아,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긁고 계시는군요.”
뭐 하나 틀리는 게 없었다.
담청은 입을 뻐끔거리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마치 잉어로 되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서란이 의사에게 물었다.
“이게 전부 부러진 뿔 때문이라는 건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기질적인 면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혹시 감각과 관련된 선골을 지니고 계십니까? 아니면 비슷한 효능의 공법을 익히셨다든지.”
“감각? 예, 맞아요.”
담청은 선골보유자였다.
그녀가 지닌 선골의 이름은 공백지체였다.
극도로 예민한 감각이 주된 특징이었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그러셨군요. 용족의 뿔은 굉장히 섬세한 감각 기관입니다. 기가 순환하는 통로이기도 하죠. 중요 부위인 만큼 크게 손상되면 몸 전체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선골이나 공법에 대해서 여쭤 본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감각이 예민하면 영향을 더 많이 받나요?”
“예, 맞습니다. 뿔이 부러지면 기의 흐름과 감각이 뒤틀리죠. 선골이나 공법을 통해 감각이 증폭된 경우에는 증상이 더욱 심각하고요. 추가적인 정밀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외상성 심마일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잉어 행동을 하던 담청이 말했다.
“그, 그러면 서란은 어떤 심마인 것이냐?”
의사가 대답했다.
“류서란 님 같은 경우는 종족성 심마입니다.”
“종족성 심마?”
“예, 종족성 심마. 분류상으로는 심마에 속하지만, 반인반룡 특유의 희귀병이라는 관점도 존재하죠. 아무튼 굉장히 드물다는 점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반인반룡이라는 종족 자체가 원체 적기도 하고.”
가만히 듣고 있던 서란이 질문했다.
“종족성 심마라고 판단하신 이유가 있나요?”
“그럼요, 있죠.”
“뭔가요?”
의사는 말없이 책상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 쇠로 된 자를 꺼내 서란에게 내밀었다.
서란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의사가 쇠로 된 자를 멀리 치우며 말했다.
“방금 그 느낌, 쇠붙이가 거슬리시죠? 생체 자기장에 이상이 생겨서 그런 겁니다.”
“오...”
“손 좀 넣어 보시겠어요? 체온 좀 잴게요.”
서란은 옥두꺼비 입에 손을 쏙 집어넣었다.
의사가 수치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인간 평균 체온 정도네요.”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말씀이시죠?”
“문제 많죠. 인간은 항온 동물이고 용은 변온 동물이잖아요. 반인반룡도 굳이 따지자면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거 이마에 붙이고 계세요.”
서란은 시키는 대로 하며 물었다.
“오, 차갑네요. 이건 어떤 약인가요?”
“그건 약이 아니라 그냥 냉습포입니다. 그나저나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걸 못 느끼셨습니까? 마치 체액이 끓어오르는 기분이었을 텐데.”
“아니, 그냥 고양감인 줄 알았죠...”
의사는 옥두꺼비를 서랍에 넣으며 말했다.
“자기 판단 능력의 감소도 엿보이는군요. 혹시 근래 들어서 성격이 급변하지는 않았나요? 시야가 좁아졌다거나,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늘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옆에 앉아 있던 담청이 잽싸게 고자질했다.
“자꾸 독불장군처럼 군다! 점심에 뭐 먹을지도 맨날 자기가 정하고! 나는 고기덮밥 그만 먹고 싶은데!”
“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맞아, 그랬다!”
담청의 증언을 경청하던 의사가 말했다.
“명백하게 과집중 상태입니다. 게다가 생체 자기장의 이상과 비정상적으로 높은 체온까지, 전형적인 종족성 심마 증상들입니다. 용족과 인간, 두 종류 기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희귀 질환이죠.”
서란이 물었다.
“희귀병이면 완치는 어려울까요?”
“아뇨? 열흘 정도 약 챙겨 드시면 다 나을 겁니다. 희귀병이지 난치병은 아니거든요. 아, 체온 유지에는 각별히 신경 써 주세요.”
“아, 네...”
이후, 서란과 담청은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종족성 심마와 외상성 심마였다.
이변은 없었다.
서란과 담청은 진료소를 나섰다.
손에는 약봉지가 하나씩 달랑거렸다.
이거 다 먹으면 완치였다.
서란이 새 냉습포를 이마에 붙이며 말했다.
“담청 님.”
“왜 그러느냐?”
“약이 효과가 있나요?”
담청이 뿔에 연고를 치덕치덕 바르더니 대답했다.
“오, 머리가 맑아졌다!”
“다행이네요!”
“응!”
잠깐의 침묵.
서란이 조심스레 말했다.
“고시 공부, 그만두셔도 괜찮아요.”
“갑자기?”
“지금까지 저 때문에 억지로 하셨잖아요.”
잠깐 고민하던 담청이 대답했다.
“이왕 시작한 거, 6년만 해 볼 생각이다.”
“정말요?”
“응, 이번에 떨어지면 더는 안 할 거지만.”
두 사람은 영백도로 복귀했다.
열흘 뒤, 서란의 종족성 심마가 완치됐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확 넓어졌다.
마치 경주마용 차안대를 벗은 듯한 기분이었다.
서란은 곧장 행정사무처로 달려갔다.
그리고 강의 변경 및 환불 신청을 했다.
두 달도 채 안 들은 강의라서 변경 및 환불 수수료는 따로 없었다.
서란은 자신과 담청의 강의를 재조정했다.
종족성 심마에 걸려 있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번에 짠 일정은 완벽하게 담청 친화적이었다.
서란은 담청이 그렇게나 바라던 튀김 점심 특선을 먹으며 새로운 일정에 대해서 설명했다.
“일단, 담청 님의 오전 강의는 변경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필기 완전 정복’ 강의를 들으시면 돼요. 난독증은 괜찮아지신 거 맞죠?”
“음, 아무 문제 없다.”
“좋아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재발할 수도 있다고 하니까.”
대왕오징어 튀김을 먹던 담청이 물었다.
“오후 강의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아, ‘실기 기초 숙달’ 강의요? 그건 아예 환불했어요. 오후에는 저랑 같이 필기 과목을 공부할 거예요. 혹시나 오전 강의에서 이해 못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가르쳐 드릴 테니까.”
“그러면 저녁 식사 이후에는?”
서란이 쇠젓가락을 탁탁 부딪치며 말했다.
“그때부터는 담청 님 자유 시간이에요. 대신에 상청도로 놀러 가시는 건 안돼요. 유원지는 보름마다 한 번, 오후 시간에만. 아시겠죠?”
“서란 너도 함께 가는 것이냐?”
“네, 그럴게요.”
담청은 대왕오징어를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오전에는 강의, 오후에는 서란과 함께 공부, 그 뒤로는 쭉 자유 시간이었다.
게다가 보름에 한 번씩 유원지에 갈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듯 싶었다.
담청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그런데 실기는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
“실기는 신경 쓰지 마세요. 시험 1년 전부터 준비해도 충분할 테니까요.”
“어째서?”
서란이 담청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강의 첫 시간에 수험 전략 설명할 때 하나도 안 들으셨어요?”
“아니, 너무 어려운 소리를 하길래...”
“뭐, 그럴 수 있죠. 간단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법관 고시는 1차 필기 점수와 2차 실기 점수의 평균으로 합격 여부가 갈린다.
과락이 하나도 없다는 가정하에, 평균 점수 45점에서 55점 사이가 합격권이었다.
그리고 60점 이상부터는 명백한 선두권이었다.
서란이 물었다.
“혹시 고시생 대다수가 어떤 수험 전략을 취하는지 아세요?”
“그거야 둘 다 공평하게 공부하지 않겠느냐. 어차피 중요한 건 필기와 실기의 평균이니까. 잘하던 걸 더 잘하는 것보다 못하던 걸 잘하는 게 훨씬 쉬울 테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맞죠. 그런데 법관 고시는 좀 달라요. 실기 강의 들었던 걸 생각해 보세요. 뭐가 좀 특이하지 않던가요?”
담청이 말했다.
“실기 강의? 결계를 두른 상자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는지 알아맞히라느니, 수도자 여럿 줄 세워 놓고 거짓말쟁이 골라내라느니 했었지. 공부하는 것 같지 않아서 재미있었다.”
“전부 용안의 감지 능력을 키우는 훈련이에요. 법관한테 법률 지식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권능이잖아요. 그런데 담청 님도 아시다시피, 수선과 관련된 감각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하, 그래서 비교적 빨리 점수를 올릴 수 있는 필기 과목에 집중한다는 것이냐?”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수행은 꼬박 백 년을 매진해도 진척이 더디지만, 법률을 그 정도 공부하면 전문가가 되고도 남죠. 그래서 고시생 대부분의 수험 전략은 필기 고득점과 실기 최저 달성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우리는 반대로 하자는 것이냐? 필기 최저 달성에 실기 고득점 전략으로?”
“바로 그거예요.”
담청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해가 잘 안되는구나. 그렇다면 더더욱 실기 강의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담청 님은 필기와 실기를 전부 준비하시면서 1차 시험에서 과락을 면할 자신이 있으신가요?”
“앗, 과연...”
서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우리한테는 그게 있잖아요, 그게.”
여기서 ‘그거’란, 선골과 영안을 뜻했다.
선골보유자인 담청한테는 공백지체가 있었다.
그리고 서란한테는 두 종류의 영안이 있었다.
바로 관천안과 용안이었다.
법관 고시를 날로 먹겠다는 게 서란의 심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