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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경건한 마음으로 책상을 정리했다.
방대한 분량의 소설 감상문을 바닥에 내려놓고, 국수가 담긴 그릇을 조심조심 올려놓았다.
그리고 단말기를 조작해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며칠 전 있었던 서란의 의식 장면이었다.
시작은 잉태 의식이었다.
서란이 제단 꼭대기에 오르자 몇 차례의 둔중한 파동이 군도 전체를 뒤흔들었다.
마치 태산만 한 종을 울리는 듯했다.
서란은 눈을 감은 채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한 줌 호흡과 함께 막대한 양의 혼원법력이 허공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분출된 오색 운무가 일대를 뒤덮었다.
운무는 영상을 촬영하던 금영영 또한 집어삼켰다.
천천히 움직이는 화면에 주변 광경이 담겼다.
어디를 둘러봐도 오로지 오색 운무뿐이었다.
오색 운무는 서서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알아차리기도 힘들 정도로 느리던 풍속은 얼마 지나지 않아 광풍으로 돌변했다.
그리고 어딘가를 향해 급격하게 휘몰아쳤다.
군도를 뒤덮었던 짙은 오색 운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화면이 다급하게 제단을 향해 돌아갔다.
혼원법력이 뭉쳐 탄생한 오색의 별이 서란의 가슴, 중단전으로 녹아들었다.
호로록호로록 면을 마시던 금영영이 진중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촬영 구도가 좀 아쉽네...”
자체 피드백을 마친 금영영은 단말기를 조작해 영상을 빨리 감았다.
무의미한 중간 과정들이 휙휙 지나갔다.
마침내 기다리던 장면이 나왔다.
여의주 의식용 제단에 오른 서란.
아까와 마찬가지로 휘몰아치는 혼원법력의 폭풍.
금단이 위치한 하단전으로 밀려드는 오색 운무.
온 세상을 탈색시킬 듯한 섬광과 함께 한줄기 벼락이 서란의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갈색 머리 사이에는 어느새 뿔이 돋아나 있었다.
뒤이어 천둥이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서란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자주색 용안과 같은 빛깔의 사슴뿔.
만인의 환호 속에서 쌍성의 반인반룡이 태어났다.
금영영은 영상을 정지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체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의식 막바지, 배율을 조절해서 서란이 눈 뜨는 모습을 확대한 건 꽤나 느낌 있었다.
금영영은 굉장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국수 국물을 쭉 들이켰다.
뭘로 우렸는지 육수가 아주 일품이었다.
야식으로 제격이라는 뜻이었다.
금영영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딱 한 그릇만 더 먹을까?”
금영영은 망설이지 않고 방을 나섰다.
서란은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자주색 눈동자였다.
거울의 각도를 조금 조절하자 전두골에 자라난 사슴뿔도 보였다.
용안과 마찬가지로 자주색이었다.
서란은 이런저런 웃긴 표정을 지어 보았다.
그 행동에 따라 거울 속 소녀의 표정도 변했다.
낯설기는 하지만 분명 자기 얼굴이 맞았다.
눈을 감은 채 내면을 관조했다.
중단전과 하단전에 각각 위치한 쌍성.
화수목금토풍뇌, 일곱 개의 영근.
서로 다른 성질의 두 혼원법력.
서란은 명상을 통해 더욱 깊게 침잠했다.
금방 의식의 최심부까지 가라앉았다.
원래 존재하던 삼천구백여 개의 향 대신 거대한 용 한 마리가 똬리를 튼 채 잠들어 있었다.
서란과 마찬가지로 자주색 뿔을 지닌 용이었다.
명상을 마치고 눈을 떴다.
서란은 자신이 영생자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시적이지만 용의 형상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반인반룡은 맞지만 인간 쪽에 더 가까운 듯했다.
서란은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담청처럼 문틀에 뿔을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막 동이 트고 있을 무렵이었다.
복도를 지나던 금영영이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서란! 이제 어지러운 건 괜찮아졌어?”
서란이 웃으며 대답했다.
“응, 이제는 멀쩡해.”
“도대체 왜 그랬던 거야?”
“글쎄, 감각이 너무 변해서 적응을 못했나 봐.”
금영영이 말했다.
“별문제 아니라니 다행이야. 걱정 많이 했거든.”
진실, 걱정을 꽤 많이 했다.
“정말 고마워, 영영.”
“에이, 친구 사이잖아. 아, 일찍 일어났더니 피곤하네. 나 이만 갈게. 조금 더 자려고.”
거짓, 밤을 꼬박 새고 지금 자는 것이다.
금영영은 하품을 하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서란은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용안의 권능을 검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느덧 완전히 뜬 해가 세상을 밝혔다.
등백월이 말했다.
“오늘 가르쳐 드릴 공법은 ‘위무골경’이라고 합니다. 조화 추구형인 동시에 대기만성형 공법이죠.”
서란이 말했다.
“조화 추구형은 뭔지 알겠는데 대기만성형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지금 당장은 별 효능이 없지만 대성하면 큰 효능을 발휘하는 공법이죠. 위무골경은 사용자의 체질을 개선해서 어떤 선골이든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줍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선골보유자는 이 공법을 익히지 못합니다.”
“어떤 선골이든 얻을 수 있는 기반? 그 말은 일반적으로는 얻는 게 불가능한 선골도 있다는 뜻인가요?”
등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선과를 먹거나 공법을 익혔다고 무조건 선골을 획득하는 건 아닙니다. 선결 조건이 필요한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이전 경지에서 특정 공법을 대성했어야 한다거나, 혈통을 타고 났어야 한다거나, 보다 하위 범주의 선골이 필요하다거나 하는 식이죠.”
“위무골경 하나만 대성하면 그런 조건을 몽땅 무시할 수 있다고요?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그러면 구십이라는 어린 나이에 반인반룡 준광홍기 수사가 되는 건 말이 되고요?”
서란은 반박할 수 없었다.
등백월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위무골경을 익혀 보세요. 습득이 가능하면 범골인 거고, 불가능하면 선골보유자인 겁니다. 되든 안 되든 결과가 나오면 바로 저한테 알려 주세요. 그래야 새로운 공법을 가르쳐 드리든 선골 확인 방법을 모색하든 할 테니까요.”
서란은 건네받은 공법서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선골 획득 조건을 완전히 없애 준다니, 세상에 그런 개사기 공법이 어디 있나 싶었다.
또 공법의 출처도 의문투성이였다.
누가 창안했으며, 어떤 경로를 통해 등백월의 수중에까지 들어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서란이 질문했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공법은 어떻게 얻으셨나요?”
“글쎄요, 그건 기억이 안 나네요.”
“그렇군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용안의 권능은 잠잠했다.
너무나 큰 격차가 존재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아니면 용안을 무력화하는 다른 뭔가가 있거나.
서란은 공법서를 챙겨서 일어났다.
“일단 시도해 보고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그러시지요. 아, 그리고 류 수사님께는 용족 태성기 공법도 필요할 겁니다. 저번에 보니까 체내에 두 종류의 혼원법력이 흐르더군요.”
“다른 반인반룡들도 공법을 두 개씩 익히나요?”
등백월이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선천적인 반인반룡은 남들처럼 하나의 공법만 수행할 겁니다.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군요. 이미 류 수사님처럼 후천적으로 반인반룡이 된 경우도 존재하니까요. 아무튼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것 정도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그러면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그것 때문에 나이도 속였는데...”
“대충 둘러대면 그만입니다. 여태 인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선계에 와서 잠들어 있던 용족의 피가 깨어났다든가, 이상한 공법을 익힌 부작용이라거나 하는 식으로요. 다른 수도자의 혈통이나 공법에 대해서 캐묻는 건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거든요.”
서란이 물었다.
“그런 거짓말이 의미가 있을까요? 선계 전역에 돌아다니는 용안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괜찮습니다. 같은 용족한테는 용안의 권능이 전혀 통하지 않으니까요. 용이 작정하고 거짓말하면 절대 안 들킵니다.”
“용한테는 용안이 안 통해요? 그건 몰랐네요.”
서란은 그 길로 담청을 찾아갔다.
정보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등백월 말대로 담청에게는 용안의 권능이 통하지 않았다.
서란과 담청은 한동안 헤엄친 뒤 헤어졌다.
며칠 뒤, 서란은 위무골경을 습득하는데 성공했다.
단 한 번도 난관을 만나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얼마나 습득이 쉬웠는지, 서란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맞춤 공법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는 모든 게 명확해졌다.
확정 범골 서란은 고민했다.
좋아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실망해야 할 것인가.
심경이 참 복잡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서란은 회복 탄력성의 괴물답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힘찬 걸음과 함께 수련실을 나섰다.
서란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자고로 모든 목표 달성은 계획 수립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었다.
지도 한 장 없이 천 리 길을 갈 수는 없었다.
방에 도착한 서란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고위계 로드맵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먹물을 머금은 붓이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장기 목표는 가능한 빨리 진선경에 도달하는 것.
중기 목표는 선골을 획득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단기 목표는 훌륭한 용족 태성기 공법을 손에 넣는 것.
글로 적으니 모든 게 명확해졌다.
서란은 소매에서 단말기를 꺼냈다.
그리고 천라지망에 접속했다.
이제부터 경매장을 샅샅이 뒤져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