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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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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승 행렬은 빠른 속도로 동쪽을 향해 나아갔다.

은닉 결계를 두른 채 대운하를 따라 움직이길 얼마, 마침내 해안 지대에 당도했다.

먼바다로 나가기 전에 어인족과 합류해야 했다.

꿀차를 마시던 담청이 서란에게 말했다.

“슬슬 어인족을 데리고 오마.”

“혼자 가시게요? 등 진군이랑 함께 가시지.”

“괜찮다, 크게 어려운 법술도 아니고.”

말을 마친 담청은 식산대붕 밖으로 나갔다.

직후, 매서운 폭풍이 휘몰아쳤다.

담청이 본신을 드러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비늘, 턱 아래에 있는 여의주, 밑동부터 부러진 왼쪽 뿔.

뿔이 한 개라는 점만 제외하면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용의 형태였다.

다만 크기가 좀 아담했다.

알고 지낸 지는 꽤 오래 됐지만, 서란은 담청의 본모습을 오늘에서야 처음 목격했다.

하늘마저도 가릴 듯 거대했던 독안룡의 위용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어째서 전대 용신이 담청을 어린 용이라고 불렀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담청은 몸을 이리 꼬고 저리 꼬느라 바빴다.

너무 오랜만에 본신을 드러낸 탓에 적응이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용의 형상에 그럭저럭 익숙해졌는지 바닷속으로 쏙 사라졌다.

서란은 옆에 있던 등 진군에게 물었다.

“용족은 원래 서로 몸집 차이가 큰 편인가요?”

“영생종답게 연령에 비례하는 편이죠. 어떤 진선경 용족 같은 경우에는 본신을 드러내면 조수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라고 합니다.”

“오...”

존재만으로 자연계에 영향을 끼칠 정도라니.

사실상 피와 살로 이루어진 천체나 다름 없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서란은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모든 한계를 초월하고 우주적 존재로 거듭난 자신이 행성으로 구슬치기를 하는 광경이었다.

하등 쓸데없지만 시간은 잘 갔다.

그러는 동안 담청이 돌아왔다.

한층 작아진 용궁을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종족 전체를 데리고 비승할 수 있다니, 법보 만만세였다.

어인족과 합류한 이후, 비행 선단은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였다.

바람은 화신기 수사와 용의 앞을 차마 가로막지 못하고 황급히 비켜섰다.

몇 달 간의 대장정이 이어졌다.

초겨울 무렵, 일행은 세상의 중심에 도착했다.

때마침 승천문이 활짝 열렸다.

중간중간 천기를 관찰하며 비행 속도를 조절해 온 탓이었다.

명계의 입구가 닫히며 용오름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서란과 담청은 재빨리 그 위로 올라탔다.

항거할 수 없는 흐름에 비행 선단 전체가 승천문을 향해 비상했다.

천겁을 머금은 구름길이 비승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란은 차원 압력에 대비해 결계를 생성했다.

부정형 법화 결계가 일행을 휘감았다.

구름길 너머로 새까만 공허가 엿보였다.

서란은 마지막으로 지상을 돌아봤다.

굳게 닫힌 명계의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한줄기 번뜩임이 서란의 뇌리를 스쳤다.

대수림 심층부에 있던 대균열은 명계의 입구에서 영감을 얻어 건설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사고가 끝나기도 전에 승천문에 진입했다.


엄청난 차원 압력이 법화 결계를 짓눌렀다.

수도문파를 두 개나 짊어지고 비승하는 탓에 결계에 가해지는 부담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화신기 수사였다면 결코 견뎌 낼 수 없었을 터였다.

서란의 금단이 요동쳤다.

오색의 혼원법력이 결계에 동력을 공급했다.

비행 선단을 감싸 안은 법화가 더욱 맹렬하게 타오르며 차원 압력에 저항했다.

법화 결계와 차원 압력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물론 최후의 승자는 서란이었다.

안팎의 두 힘은 서서히 균형을 이루었다.

여유가 생긴 서란은 주변을 둘러봤다.

담청은 오색 운무를 두른 채 낑낑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감을 잡았는지 결계가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안정화가 될 듯했다.

서란의 시선이 옆사람을 향했다.

함께 관제실에 있던 등 진군이었다.

비승에 관해서 뭘 좀 물어볼 셈이었다.

하지만 서란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수정을 세공하여 만든 등 진군의 눈은 머나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식산대붕의 시선을 통해 외부를 구경하는 모양이었다.

그제서야 서란은 등 진군이 선계 태생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본인 개인사를 제외하면 뭐든지 다 아는 것처럼 굴던 그녀에게도 미지의 영역은 존재했다.

등 진군은 난생처음 목도하는 우주의 자태에 푹 빠져 있었다.

서란은 하고자 했던 말을 도로 삼켰다.

등 진군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우주나 구경하기로 했다.

관천안을 통해 보이는 우주는 어둡고 공허하기는커녕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가지각색의 항성과 성간 물질 덕분이었다.

마치 작품을 완성하고 난 이후의 유화 팔레트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꼽아 보라면 당연 서란 일행이 타고 있는 공허의 흐름이었다.

비슷한 종류의 흐름들이 혈관처럼 이리저리 뒤엉킨 채 우주 전역을 뒤덮고 있었다.

너무나 복잡한 탓에 천기를 읽지 못하면 영원토록 떠돌아도 길을 찾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서란은 담청을 바라봤다.

어느덧 결계를 안정화시킨 모양이었다.

왼쪽 뿔이 부러진 탓에 천기를 못 읽게 된 담청은 까딱 잘못하면 우주 미아가 될 수도 있었다.

서란이 전심술을 통해 말했다.

“담청 님, 속도를 좀 더 낼까요?”

“그러자꾸나.”

“제 뒤 잘 따라오세요.”

일행은 점차 가속하기 시작했다.

상하좌우, 무수한 갈림길이 그들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선계로의 경로를 또렷하게 표시해 주는 관천안 덕분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계속해서 나아가자 깔때기 모양의 거대한 소용돌이 통로가 나타났다.

일행은 빙글빙글 회전하며 그 안으로 입장했다.

눈 깜짝 사이에 퇴장하자 저멀리 선계가 보였다.

서란이 말했다.

“담청 님, 저기 보세요! 선계예요!”

“정말로 광활하구나!”

“거의 다 도착한 모양이네요!”

일행은 공허의 통로를 질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도착할 기미가 없었다.

아무리 다가가고 또 다가가도 행성은 계속해서 커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등 진군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오, 저기 좀 보십시오.”

서란과 담청의 고개가 그쪽 방향으로 회전했다.

그러다가 다른 우주 여행객과 눈이 마주쳤다.

저쪽도 문파 비승 중인 듯했다.

담청이 말했다.

“일전에 선계는 하나고 하계는 여럿이라고 했었지? 저기도 우리처럼 선계로 가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런 우연이 다 있구나, 비승 시기가 겹치다니.”

등 진군이 말했다.

“흔히들 선계와 명계, 그리고 무수한 하계를 통틀어 삼천 세계라고 부르곤 합니다. 이렇게 비승하다 마주치는 정도는 드문 일도 아닐 겁니다. 두고 보시지요, 선계에 접근할수록 더 많은 비승 행렬과 마주칠 테니까요.”

운전에 열중하던 서란이 말했다.

“앞에 있는 합류점에서 저쪽 흐름과 우리 흐름이 만나네요. 통로가 좁아서 나란히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양보하죠?”

서란 일행은 양보를 위해 속도를 줄였다.

하지만 두 비승 행렬의 상대 속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저쪽도 동시에 속도를 줄인 탓이었다.

담청이 말했다.

“비켜주려나 보다. 우리가 어서 지나가 주자꾸나.”

서란 일행은 서둘러서 속도를 높였다.

물론 이번에도 양쪽의 상대 속도는 불변이었다.

정말 손발이 착착 맞았다.

지켜보던 등 진군이 말했다.

“헷갈리지 않게 속도를 아예 줄이죠.”

서란 일행은 급격히 감속했다.

찰나에 무수한 눈짓이 두 집단 사이를 오고 갔다.

저쪽 비행 선단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길 비켜주기 신경전이 끝났다.

양측은 충돌하지 않고 합류점을 연달아 통과할 수 있었다.

앞서 날던 비승 행렬의 후미에서 감사의 표시로 등불을 몇 차례 깜빡거렸다.

이윽고 두 집단 모두 선계 영향권에 접어들었다.


등 진군의 말이 맞았다.

행성에 가까워질수록 비승 행렬은 더 많아졌다.

수많은 승천자의 모습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서란의 관천안이 이변을 감지했다.

여태 한줄기로만 그어져 있던 비승 경로가 수천, 수만 가닥으로 흩뿌려졌다.

무수한 빛줄기가 선계 곳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란은 금세 그 의미를 눈치챘다.

“비승에 성공한 모양이에요. 이제부터는 그냥 아무데나 착륙하면 되나 봐요. 어디가 좋을까요?”

등 진군이 다급하게 말했다.

“저쪽, 저 방향으로 가세요.”

“북쪽으로요? 왜요?”

“시간이 없습니다. 가면서 설명하죠.”

서란은 일단 등 진군이 시키는 대로 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흐름 속에서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

대부분의 비승 행렬은 선계 중심부를 향해 곧장 하강하고 있었다.

일행이 선계 북부 지역으로 뻗은 외길에 접어들자 등 진군이 설명을 시작했다.

“선계는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 총 열 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제각기 인접한 두 구역씩 묶여 방위와 색상, 오행속성에 대응되죠. 그 중에서도 임계 구역은 북방, 흑색, 수속성을 상징합니다. 담청 님과 어인족, 오죽문의 주속성을 고려하면 북부 지역이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 부근에 용족이 많이 서식하기도 하고요.”

“아하, 그래서 남들처럼 중부 지역으로 안 가고 북부 지역으로 가는 거군요?”

“물론 중부 지역의 정신 나간 지가도 결정에 한몫 거들었습니다. 방금 중부 지역에 하강했던 승천자들 대부분은 얼마 못 가서 변방으로 이주할 겁니다.”

서란은 고개를 주억였다.

땅값 문제라고 하니까 정말 확 와닿았다.

비행 선단은 서서히 고도를 낮췄다.

막 구름 밑으로 하강한 순간, 농후한 천지영기가 그들을 반겼다.

인계와 선계 사이에는 우기의 습도와 수중 환경 정도의 영기 농도 차이가 존재했다.

체내로 밀려드는 맑은 기운이 서란의 수명을 4000년까지 늘려 놓았다.

순식간에 두 배로 증가한 수명에 놀란 서란은 등 진군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랐다.

선계에서는 의식 없이도 화신기까지 경지를 올릴 수 있다더니 정말이었다.

등 진군은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금단을 완성해 버렸다.

서란의 경계심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싸웠던 등 진군은 금단과 육체 없이 원영만으로 존재하는 상태였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금단을 완성한 걸 보아하니 준선경 수도자였다는 증언이 마냥 거짓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눈치챘는지 등 진군이 말했다.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는 마세요. 무서우니까.”

“무섭다고요?”

“운무기 수사가 영성의 별을 세 개나 지닌 용을 죽였는데 어떻게 안 무섭겠습니까? 당연히 무섭죠. 그보다 담청 님을 봐 주시겠어요?”

서란은 뒤따라오던 담청을 바라봤다.

인근 천지영기를 탐욕스럽게 흡수한 영성의 별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담청이 진정으로 태성기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외뿔의 어린 용을 휘감은 오색 운무의 맥동, 정말 장엄한 광경이었다.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던 등 진군이 말했다.

“거의 다 끝났군요. 이만 착륙하도록 하죠.”

발아래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일대를 탐색하던 서란 일행은 몇 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군도를 정착지로 낙점했다.

용궁도 근처 해저에 안착했다.

오죽문과 금작파 사람들이 몇 개월만에 하선하고, 어인족 또한 동면에서 깨어났다.

인간 수도자들과 어인족은 저마다 바삐 움직이며 정착지를 건설해 나갔다.

선계까지 타고 온 비행선은 대부분 해체되어 거주지로 재조립됐다.

활기차게 돌아가는 공사 현장을 바라보던 서란이 물었다.

“그런데 우리 이제 뭐 해요?”

등 진군이 대답했다.

“갑시다, 관청에 무주지 점유 신고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