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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 의식이 열리는 장소는 어인교단 본부에서 한참 떨어진 해구였다.
심해 골짜기 어딘가에 존재하는 야광 호수가 수속성 비경의 정체였다.
호수의 발광 물질은 바닷물과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채 고요히 물결칠 뿐이었다.
서란은 비경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와, 장관이네요.”
담청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그렇구나. 반짝거리는 것 좀 보거라.”
물론, 어두운 심해를 밝히는 건 야광 호수뿐만이 아니었다.
담청의 뿔도 언제나처럼 발광하고 있었으니까.
관점에 따라서는 초롱 아귀처럼 보이기도 했다.
등 진군도 꽤나 흥미로워 하는 눈치였다.
“굉장히 독특한 형태의 비경이군요. 바닷속의 호수라니... 두 액체가 어떤 원리로 서로 섞이지 않는 건지 궁금해지네요.”
세 관광객이 비경 근처를 구경하는 동안에도 의식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오죽문과 금작파, 그리고 어인교단의 전문가들은 시설 점검에 심혈을 기울였다.
사소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침내 비경 의식 준비가 끝났다.
서란은 물막이 결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일각해마를 타고 제단으로 향했다.
서란이 제단의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자마자 비경 의식이 시작됐다.
각종 진법이 작동되고, 막대한 수영기가 비경으로 몰려들었다.
국수 삶는데 걸리는 시간 정도가 지난 뒤, 서란은 다섯 번째 영근을 손에 넣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등 진군은 어이가 없었다.
글방 쉬는 시간도 이것보다는 길었다.
한때 준선경이었던 등 진군이 비경 의식을 치러도 하루 이틀 정도는 걸릴 게 분명했다.
등 진군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문파비승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고 기뻐할 뿐, 극단적으로 짧은 의식 시간에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 서란과 함께 하면서 역치가 너무나 높아져 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오영근자가 되어 돌아온 서란에게 등 진군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류 수사. 예전에 제가 가르쳐 드렸던 수선의 5요소, 기억하고 계시죠?”
물막이 결계 안으로 들어와 젖은 머리카락을 쥐어짜던 서란이 대답했다.
“수선의 5요소 말입니까?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등 진군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그것과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잠깐 조용한 곳으로 가시죠. 아, 용녀님도 함께요.”
자리를 옮기던 도중, 담청이 중얼거렸다.
“수선의 5요소가 뭐였더라...?”
이름이 낯설지 않은 걸 보니 배운 건 확실했다.
그런데 정작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너무 오래 전에 배워서 다 까먹은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등 진군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여나 잊어버리셨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다시 설명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담청은 졸지에 보충 수업을 받는 처지가 됐다.
국가의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그렇다면 수선의 5요소는 무엇인가.
정답은 영근, 선골, 오성, 공법, 자원이다.
하지만 하계의 수도문파들이 아는 건 선골을 제외한 4요소뿐이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계에서는 선골이 본격적으로 중요해지는 경지인 태성기까지 도달할 수 없으니까.
연기기부터 원영기까지의 저위계 구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단연코 영근 자질이었다.
공법과 수행 자원은 어차피 환경적인 요소이고, 오성은 공법을 이해할 정도면 충분했으니까.
하계의 수도문파들이 일영근 일영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생기곤 했다.
분명히 영근 자질도, 오성도, 익힌 공법과 지원받은 수행 자원의 양도 비슷한 수도자들 간에 납득하기 어려운 격차가 발생하는 것이 그 예시였다.
극히 드물지만, 이영근자가 원영기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지가 한 단계나 차이 날 정도면 개인의 성실성만으로 빚어진 결과라고 보긴 어렵다.
한마디로 영근과 오성, 공법, 자원 이외의 또 다른 요소가 작용했다는 의미였다.
그게 바로, 선골 자질이었다.
조용하던 담청이 돌연 감탄사를 터뜨렸다.
“오오!”
등 진군이 반색하며 물었다.
“슬슬 배웠던 내용이 다시 떠오르십니까?”
“아니, 전혀 모르겠구나.”
“그러시군요...”
등 진군은 씁쓸한 표정으로 설명을 계속했다.
원영기가 되고 오채지심 수행을 시작하면 타고난 영근 자질의 차이는 점차 무의미해진다.
결국에는 너도나도 오영근자가 되는 탓이었다.
그래서 화신기 이후, 즉 고위계 구간부터는 선골 자질의 중요성이 더욱 크게 부각됐다.
담청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등 진군 그대도 선골을 타고 났느냐?”
“기억을 잃어버려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선골보유자가 아니었다면 무슨 수로 준선경에 도달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긴, 일리가 있구나.”
등 진군은 고개를 돌려 서란을 바라봤다.
“제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류 수사님 때문입니다.”
“저 때문이라고요?”
“예, 아무래도 류 수사님은 선골보유자이신 것 같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긴가민가하긴 했는데, 오늘 류 수사님의 비경 의식을 지켜보고서야 확신이 생겼습니다.”
서란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제가 선골보유자라고요?”
“그것도 엄청나게 희귀한 종류의 선골일 겁니다. 선계 전역을 이 잡듯이 뒤져도 류 수사님 또래에 화신기 목전까지 도달한 수도자는 열 명이 채 안 될 겁니다.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재능이죠.”
그 이후에도 등 진군은 서란의 재능에 관한 예찬을 줄줄이 쏟아냈다.
천고의 기재, 준선경 확정, 질투 수집가.
3년 정도 함께 지내면서 깨달은 사실인데, 등 진군은 의외로 칭찬에 능했다.
서란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호들갑 떠는 칭찬 멘트는 꽤나 오랜만에 듣는 것 같았다.
그 동안 역치가 높아진 탓인지 문파 식구들의 칭찬은 뭔가 밍숭맹숭해진 감이 있었다.
담청은 부러워 하는 눈빛으로 혼잣말했다.
“선골보유자라니, 참으로 부럽구나... 등 진군, 그대가 보기에 나는 어떤가?”
“용녀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태어난 지 천 년이 좀 넘은 것 같구나.”
잠시 생각하던 등 진군이 말했다.
“천 살에 여의주를 완성할 정도라면, 높은 확률로 용녀님께서도 선골을 지니고 계실 겁니다.”
“그게 정말이더냐?!”
“예, 하계의 용들은 여의주를 완성하는데 보통 수천 년씩 걸리거든요. 그리고 혹시 선골보유자가 아니라고 해도 너무 상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선골도 영근처럼 후천적으로 보완할 수 있거든요, 물론 선계 한정이지만.”
전 시즌 준선경 수도자, 등 진군(현 시즌 원영기)의 입에서 나온 호언장담.
서란과 담청은 급격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등 진군을 향한 호감도 역시 급격하게 상승했다.
세 사람은 한층 사이좋게 용궁으로 입궁했다.
서란과 담청은 예전에 했던 약속대로 한동안 용궁에 머무를 계획이었다.
물론, 어인족 신도들에게 섬김 받으면서 마냥 놀기만 할 작정은 아니었다.
제각기 할일이 있었다.
담청과 등 진군은 전대 용신의 수집품 창고를 샅샅이 수색했다.
전대 용신은 실종 직전까지 동반 승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서적은 전부 챙겨 간 지 오래였지만, 다른 종류의 단서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만약에 운이 따라 준다면 전대 용신의 행방을 알아내거나, 동반 승천의 법술을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란은 당연하다는 듯이 수행에 매진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오죽문의 비전 수속성 공법, ‘낙수천석’을 익히며 정수법력을 쌓았다.
심해의 풍부한 수영기가 수행에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중간중간 결재 도장도 찍고, 소설도 쓰고, 악기도 불었다.
서란과 담청, 등 진군이 용궁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오죽문과 금작파 역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화신기 도달에 필요한 우화 의식 준비는 물론이고, 선계에 타고 갈 비행 선단도 건조해야만 했다.
아무튼 굉장히 바빴다.
영근보유자 수색을 위해서 양나라 전역을 떠돌던 왕 수사는 오랜만에 문파 본산으로 복귀했다.
그의 곁에는 열 살 남짓된 여자아이가 있었다.
산골짜기의 촌락에서 발견한 사영근자였다.
노인의 소매를 꼭 붙잡은 채, 소녀가 물었다.
“저도 나중에 크면 하늘을 날 수 있나요?”
왕 수사는 자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그렇고 말고. 항상 바르게 살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수행도 열심히 하고, 다른 아이들과 사이 좋게 지내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될 게다.”
“저랑 나이가 비슷한 애들도 있어요? 마을에는 다 언니 오빠들뿐이었어요, 아니면 갓난애기거나.”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랄 게야.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을 테니 기대하거라.”
신이 난 소녀는 연신 조잘거렸다.
두 사람을 태운 채 구름을 헤쳐 나가던 나룻배는 마침내 대결계 안쪽에 도착했다.
운해 사이사이에 치솟은 웅장한 산봉우리마다 미완성 선박들이 늘어서 있었다.
왕 수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또 다시 3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