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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갈고닦은 무인들은 말한다.
일격(一擊), 각자가 전력을 다한 일격을 맞부딪쳐 승패를 가르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이 바라 마지않는 최후라고. 허나, 동시에 무인들은 깨닫고 있다.
그런 최후는 대개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결투란, 전투란, 목숨을 건 싸움이란 으레 그런 법이다. 상대와의 전력 차이가 날 경우 전력을 다한 일격의 교차란 애당초 성립되지 않으며, 대등한 상대일 경우에도 양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법이다.
심리전, 잡기술, 함정, 사소한 실수.
그런 것들로 하여금 승자와 패자가 결정지어지며, 산 자와 죽은 자가 결정 난다. 우스운 일이다. 한평생 갈고닦은 기술들을 다 써보기도 전에 결판이 나는 싸움이 한가득하다. 아주 사소한 것들에 의해 승패는 결판이 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전력을 다한 일격을 교차해 결판을 내는 것은 영웅담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다.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은 법이니.
하지만 이 순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것이 현실이 됐다.
아아, 하고 클라우스 아텐은 탄식을 내뱉었다. 전력을 다한 랜스차지를 펼치고 있는 그는 제 온몸에 전율이 돋음을 느꼈다. 자신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 맞은편에 선 검사 역시 한 걸음 내디딘다.
서로가 서로에게 돌진하고 있다.
그 돌진에는 조금의 꾸밈도 없다. 양보도 타협도 물러섬도 없다. 단지 전력(全力)! 오직 전력을 다한 질주와 전력을 다한 일격만이 이 자리에 존재한다.
이 어찌 아름다운 광경인가.
기사로서도, 무인으로서도 최고의 결말이다.
‘와라, 얼마든지 와봐라, 얼마든지!’
푸른 날개의 지휘관, 선봉장 클라우스 아텐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 한 명의 검사로 하여금 제 생애 마지막 돌격은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다.
쐐엑!
그리하여 한명의 기병이 창을 내질렀다. 공기를 찢고 바람을 가르며 창은 앞으로 나아간다.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창을 마주하는 것은, 한명의 검사가 휘두른 검이다. 별자리를 휘감은 롱소드는 창의 측면을 노리지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지도 않는다.
물러서지 않고 정면에서.
일직선으로 내질러지는 창의 끝을.
단지, 전력을 다해서 받아낸다.
그것이 아탕가의 검이었으므로. 아탕가의 기사가 자신이 인정한 호적수에게 보내는 찬사이자, 존중이었으므로. 별자리를 휘감은 나진의 롱소드는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칼날과 창의 끝이 충돌하는 순간 사방으로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카가가가가가각!
전장을 질주하는 기병의 심상이 담긴 오러와, 지하도시에 떠오른 별의 심상이 담긴 검기가 충돌했다. 충돌의 순간 별무리가 터져 나왔다. 소용돌이치는 오러가 공기를 진동시켰다.
찰나, 1초도 되지 않는 순간 수십번의 충돌이 발생했다. 날붙이와 날붙이가 아닌 오러와 검기가 만들어낸 충돌이었다. 터져나오는 여파에 클라우스와 나진의 피부가 찢어졌다. 피가 튀었다.
촤악!
튀어 오르는 핏물 사이로 검과 창은 약진한다. 오러와 검기가 서로를 물어뜯으며 벗겨냈다. 마치 창과 칼의 맞부딪침에 우리는 방해라는 듯이. 끝내 오러와 검기가 한순간이지만 날붙이에서 벗겨졌다.
벗겨진 부분이 다시 채워지려는 그 순간.
찰나를 다시 찰나로 쪼갠 그 한순간.
모든 방해를 건너뛰어, 창과 칼은 서로를 마주했다. 그 마주함은 짧다. 그리고 승패란 언제나 한순간에 결정 나는 법이다.
쿠웅———.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메아리쳤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나진은 앞으로 한 걸음 더 내디뎠다. 그리하여 나진의 검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승패를 갈랐다.
틱, 티디디디디딕···.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 속에서 클라우스는 보았다. 나진의 칼날이 창끝을 쪼개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장면을. 한평생을 함께했던 자신의 애병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서걱.
나진의 검이 완전한 궤적을 그렸다. 창을 절반으로 쪼개며 앞으로 나아간 롱소드는 창을 움켜쥔 클라우스의 손을 반으로 갈랐다. 칼날이 먼저 궤적을 그리고, 칼날을 뒤따라 별자리가 흐드러졌다.
튀어 오르는 핏물. 양단된 창.
눈앞에서 세차게 점멸하는 별자리.
‘완벽한 패배로군.’
마지막의 순간 제롤드와 같은 감상을 느끼며 클라우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일격이다. 정면에서 적의 전력을 박살 내는 것이 아탕가의 검. 과연, 기사 중의 기사에게만 허락된 검술답다고 클라우스는 독백했다.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 아탕가의 검이라면, 썩 만족스러운 삶이 아니겠는가.
흐드러진 별자리가 폭발했다. 반발력에 휩쓸린 클라우스는 피를 토하며 날아갔고, 이윽고 쿠웅 소리를 내며 거목에 등을 부딪쳤다. 피를 게워 내며 그는 눈을 감았다.
깜빡.
클라우스 아텐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몸이 무거웠다. 정신이 둔탁했다. 자신은 죽음을 맞이했을 텐데, 이 세상에는 죽음의 다음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자신이 향하게 될 곳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필시 지옥이겠지······.
심히 철학적인 고민을 그가 하고 있을 무렵이다.
“여길 이렇게? 아니, 설명을 잘 좀 해봐요. 내가 마법사도 아니고. 그러니까······.”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천사의 목소리라기엔 심히 까칠했고, 악마의 목소리라기엔 사악해 보이진 않았다. 무엇보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으윽, 신음을 흘리며 그가 눈을 깜빡였다.
“아, 됐다.”
치이이이익! 살갗이 타들어 가는 소리.
둔탁한 감각 속에서도 분명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클라우스가 눈을 부릅떴다. 입이 떡 벌어지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악!”
“어, 이거 제대로 된 거 맞아요? 원래 아프다고요? 씁······.”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고통.
한순간에 맑아진 정신과 함께 클라우스가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진이 있었다. 꼭 누군가와 이야기하듯, 혼잣말을 내뱉던 나진이 눈을 뜬 클라우스를 보고 눈을 깜박였다.
“오, 정신이 좀 드십니까?”
“무슨 짓을···?”
“별건 아니고, 필요한 일을 했습니다.”
나진이 제 목덜미를 툭툭 두들겼다.
“목에 새겨진 낙인 있잖습니까. 그거 또 내버려두면 폭발할 거 아니에요? 사람 몸이 터지는 걸 좀 많이 보긴 했는데, 썩 볼만한 장면은 아니더라고요.”
낙인? 설마 교단이 새긴 그것?
클라우스가 급히 제 목을 더듬었다. 본래 그곳에 있어야 할 낙인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제일 위대한 대마법사이자, 만물에 통달한 연금술사가 도움을 줬다··· 라고 말하라네요. 그냥 좀 대단한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진이 클라우스의 앞에 포션병을 흔들었다. 멀린의 지식과 디에타의 지원을 받아 제조한 포션이었다.
“낙인이 당신을 ‘죽었다’고 인식하게 만들고, 발동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효과라고··· 하네요. 교단은 이제 당신이 죽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나진이 내뱉은 말.
그 말을 곱씹던 클라우스가 눈을 깜빡였다. 이 상황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나진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나를··· 왜 살려둔 거지?”
저 소년은 살려두길 선택한 것이다.
자신을 습격한 습격자를.
그 이유를 클라우스로선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죽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뭐···?”
“보나 마나 교단에 약점이 잡힌 거겠죠. 인질이 잡혔을 수도 있고, 명예가 걸렸을 수도 있고··· 제 두 눈으로 판단한 당신은 교단의 사냥개임에 스스로 환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 말이 틀립니까?”
클라우스는 부정하지 않았고.
나진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당신은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교단은 당신을 죽었다고 인식했으니까. 그들이 인질을 잡고 있었다면, 그 인질들을 죽이기로 결정했을지도 모르겠군요. 유감입니다. 미안하게도 그들을 위해 당신에게 죽어줄 수는 없습니다.”
나진이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당신에게 제안할 수는 있죠.”
“제안이라면.”
“교단에게 복수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복수.
“저는 나진. 열여덟살이며, 오늘 이 자리에서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제 실력은 어떻습니까?”
“지독한 질문이로군.”
클라우스가 쓰게 웃었다.
“강하더군. 말도 안 되게.”
“예, 그리고 앞으로 더 강해질 생각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저 밤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별을 걸기 위해서. 그리고, 교단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나진이 씨익, 미소 지었다.
“저는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겁니다. 단신으로 교단을 무너트릴 만한 강자가 될 겁니다. 제 스승의 명예를, 제가 모셨던 기사의 명예를 교단에게서 되찾아야만 하니까요.”
허무맹랑한 목표.
그러나 나진의 검을 받아낸 클라우스는 그 목표를 비웃을 수가 없었다. 현실감이 느껴졌으니.
“저는 반드시 교단을 무너트립니다. 등대의 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대사제 오를랑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을 겁니다.”
하지만, 하고 나진은 말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제 뒤를 따라오는 것마저 막지는 않을 겁니다. 그자의 복수가 정당하다면, 오를랑의 팔뚝 하나 정도는 양보할 생각도 있고요.”
“팔뚝 하나라···.”
“예, 아쉽지만 그 개새끼의 심장은 제거라서.”
클라우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나를 살려주겠다? 너를 죽이려 했던 나를, 교단에게서 무슨 제안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나를?”
“예.”
“나의 무엇을 믿고서?”
“당신의 긍지를 믿고서.”
나진은 답했고 클라우스는 잠시 침묵했다.
“당신에게서 긍지를 보았습니다. 기사로서 남고자 하는 이의 긍지를 느꼈습니다. 그건 사냥개가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고 나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설령 그게 틀렸다 하더라도 상관 없습니다. 뭐, 교단 측에 더 빌붙고 싶다면 다시 도전하십시오.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
나진이 제 칼자루를 두들겼다.
“그때는 지금처럼 살려드리진 못할 것 같지만요.”
“건방진 태도지만, 차마 건방지다고 할 순 없군. 이리 처참히 패배한 마당이니.”
클라우스가 쓰게 웃었다.
완전하게 패배했다. 다시 덤빈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 웃음을 흘리는 클라우스에게 나진은 손을 뻗었다.
“선택하십시오. 이대로 제 검에 죽고 그대로 끝을 맞이할지······.”
그게 아니라면.
“교단에 복수하는 길을 선택할지.”
나진이 내민 손을 클라우스는 바라봤다.
그에겐 인질로 잡힌 이가 없다. 제 동료들은 이미 죽고 말았으므로. 클라우스가 성휘 교단에 협력했던 것은, 오직 성휘 교단만이 제 동료들에게 찍힌 이단의 낙인을 벗겨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낙인을 성휘 교단이 찍었으니까.
증오하고, 저주하면서도 그들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한낱 패전한 지휘관이 성휘 교단을 무너트릴 수는 없는 법이었으므로.
‘하지만······.’
클라우스는 눈앞의 소년을 바라봤다.
목숨을 건 결투에서 패배하고도 살아남는다. 추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허나, 어디까지고 추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
“후우······.”
잠깐의 침묵 후 그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 입가에는 쓴 웃음이 맺혀 있었다.
“승자에겐 자비를 베풀 권리와, 제안을 건넬 권리가 있으며···.”
클라우스가 신성한 결투의 규칙을 입에 담았다.
그 규칙의 다음을 이어받은 것은 나진이다.
“패자에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죠.”
“그렇지. 그것이 결투니까.”
“그렇다면?”
“받아들이지. 감사히.”
클라우스가 나진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진이 건넨 포션으로 지혈을 하며 그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남은 이들은?”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나진이 곁눈질로 가리켰다.
그곳엔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제롤드와, 몇 명의 엑스퍼트가 있었다.
“저들 모두가 제 제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당신이 설득하든, 정리하든 원할 대로 하십시오. 당신한테 맡길 테니.”
“어려운 역할을 부탁하는군.”
“당신이 제일 강했으니까요.”
나진이 말했고 클라우스는 웃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노력해 보겠다.”
그리 답한 그가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으로 그가 팔을 들어 올렸다. 상처가 터져 피가 철철 흐르는 팔.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들어 올린 팔로 쿠웅, 하고 제 심장을 두들겼다.
핏물이 튀었다. 튀어 오르는 핏물 사이로 클라우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명예도, 긍지도 없는 습격을 결투로 승화시켜 주었음에 감사한다. 전력을 다만 전력으로 박살 내준 것에 감사한다. 패자에게 자비를 베풀었음에, 복수의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
감사를.
“나, 클라우스 아텐은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다.”
그가 천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최후의 푸른 날개 기병은 언제든 너의 부름에 답할 것이요, 너의 칼끝이 교단에 향하는 그날 그 누구보다 앞장서 교단을 향해 돌진할 것이다. 스러져간 동료들의 명예에 맹세코.”
“아쉽지만 가장 앞장서는 건 저입니다. 선봉의 역할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군요.”
“그건 아쉽군. 그렇다면, 한 발짝 뒤에서 너를 쫓아가도록 하지.”
최후의 푸른 날개 기병은 웃었다. 자신의 창이 명예와 긍지를 아는 이의 손에 들릴 수 있었으므로.
“뜻을 함께할 이들을 데리고 이 장소로 찾아가십시오. 디에타 상단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나진은 낙인을 지우는 포션과 함께, 몇 가지 서류를 클라우스에게 건넸다.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설명에 귀 기울이던 클라우스가 제 턱을 매만졌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무엇입니까?”
“이 임무에 투입된 것은, 교단과 직접적인 연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와 같은 사냥개들이다. 하지만 그 능구렁이 같은 작자가 감시역 하나 두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군.”
클라우스가 혀를 찼다.
“감시자가 있을 거다.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있을 확률이 높지. 아마 네게 합류하는 과정을 이미 목격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일단은 교단에서 이단으로 찍힌 상태다. 그렇게 되면···.”
“이단과 교류했다. 그런 식으로 몰고 갈 수도 있겠군요. 무력을 동원한 습격 다음은 종교적인 압박입니까.”
“그렇지. 그 쪽이 오히려 교단의 본질이니.”
“뭐, 그쪽에 대해선 생각해 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만······.”
나진이 피식 웃었다.
“이 일이 교단에까지 새어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뭐? 그게 무슨···.”
“제 조력자는 당신들의 생각보다 훨씬 유능하고, 철저하며, 무서운 사람이거든요.”
금화를 삼키는 뱀, 디에타.
그녀가 쳐둔 그물은 고작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애당초 그녀가 부릴 수 있는 용병은 로젤린 아스칼로 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아마도 지금쯤이면 이미 정리가 됐을 겁니다.”
교단이 보내온 감시자는 팔다리가 잘린 채, 나무에 못 박혀 있었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감시자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앞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온갖 고문 도구를 늘어놓은 채 손질하고 있는 여인이 있다.
먼 거리에서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자신의 기척을 한순간에 꿰뚫어 보고, 제압한 여인. 그녀의 이름을 감시자는 잘 알고 있었다.
캄브리아의 백각(白角) 모험가.
전직 이단 심문관, 바셴 코르테.
디에타 상단과 전속 계약을 맺은 용병.
교단을 극도로 혐오하며, 대사제 오를랑과는 악연으로 엮인 인물. 그녀가 길게 숨을 내뱉으며 감시자를 노려봤다. 어스름이 깔린 숲속에서 그녀의 주홍빛 눈동자가 짐승의 것처럼 번들거렸다.
“일곱.”
그녀가 말했다.
“너를 포함해 감시자는 총 일곱이더군. 넷은 죽였다. 입이 너무 많을 필요는 없으니까. 둘은 교차 증언을 위해 남겨두려 했는데······.”
바셴이 손안에서 무언갈 굴렸다.
그것은 뽑힌 눈알이었고, 잘라낸 입이었다.
“차라리 죽이라며 반항하더군. 그래서 죽였다. 남은 건 눈이 뽑힌 맹인 하나, 그리고 그나마 정상인 너까지 해서 둘이로군.”
감시자는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음을 느꼈다.
바셴 코르테는 이단 심문관이었다. 사람을 고문하고 입을 열게 만드는 방법을 수십, 수백 가지도 넘게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말하는데 눈은 필요 없겠지. 점자를 읽을 줄 아나? 교단의 사제라면 필수일 텐데. 그렇다면 귀도 필요 없겠군. 말을 들을 필요가 없으니. 아, 팔이 잘렸으니 그건 쉽지 않겠군.”
중얼거리며 바셴이 감시자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콱, 감시자의 머리칼을 붙잡은 채 그녀가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짐승을 닮은 주홍빛 눈동자에서 광기가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어쨌든 눈은 필요 없어보이는군.”
바셴이 손을 뻗었다.
숲속에서 비명이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