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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에 오르는 걸 확인했습니다.”
“이동한다. 추격해라.”
노을이 지기 시작한 무렵.
도시의 중심에서 걸어 나온 의뢰 대상이 마차에 올랐다. 그가 마차에 타는 과정을 습격자들은 목격했고, 그 마차가 움직이는 방향이 정보와 일치함을 확인했다.
계획에 변동은 없다. 도시 각지에 흩어져있던 습격자들이 하나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은밀하기 짝이 없다.
소드 시커이니, 엑스퍼트이니 하는 경지 때문만은 아니다. 습격자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다. 절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제 삶을 내걸어서라도 이번 작전을 성공시켜야만 했다. 혹자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또 누군가는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
절박하기에 그들은 철저하다.
소드 엑스퍼트 열다섯, 소드 시커 넷, 5서클의 마법사 하나. 도합 20명의 인력이다. 한 번에 모인다면 당연하게도 들키고 만다. 그렇기에 그들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도시의 바깥으로 움직였다.
자연스레 인파에 섞이고, 마차의 행렬에 몸을 가린 채 그들은 움직인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은밀한지 그들의 움직임이 일정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있단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결전의 날이다.
마차를 추격하는 추격조. 마차가 향할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을 대기조. 그리고 마차의 앞길을 가로막을 준비를 마친··· 마법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습격조까지. 몇 개의 무리로 나뉜 사냥꾼들은, 날카로운 비수를 숨긴 채 숨을 죽인다.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이만큼이나 심혈을 기울여, 이만큼이나 정교한 작전을 쌓아 올렸다. 변수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노을이 저물고 황혼이 찾아왔다.
아흐메티 로(路)에 잔잔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마차가 온 것이다. 마차의 바퀴가 거칠게 구르는 소리. 땅을 찍는 말들의 말발굽 소리. 소리에 귀 기울이며 습격자들은 숨을 가다듬었다.
그들은 그늘에, 수풀에, 우거진 수목에, 높낮이가 있는 지형에 몸을 감춘 채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때가 왔다. 마차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세히 살펴보면, 마차의 뒤편에서 거리를 두고 추격하고 있는 추격조의 모습도 보인다. 대기조가 신호를 보낸 순간, 습격조가 마차의 길목을 가로막았다.
오환(五環)의 마법사.
시르켈 크라벨린.
습격조를 이끄는 그녀가 지팡이를 땅에 내려찍은 순간, 그녀의 등 뒤로 다섯 개의 고리가 떠올랐다. 5서클의 마법사는 본격적으로 ‘대규모 섬멸 마법’을 부릴 수 있는 공성 병기로 구분되곤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시르켈은 이미 영창을 마친 상태다. 대기 상태로 유지 중이던 주문이 거칠게 마찰하는 서클과 함께 그녀의 지팡이 끝에 장전됐다. 마차 하나쯤은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는 주문.
화륵!
타오르는 불길이 번뜩인다.
하지만 그들은 마법 하나에 모든 것을 내걸지 않았다. 마차와 거리를 유지한 채 추격하던 추격조의 지휘권자, 클라우스 아텐이 땅을 박차고 한순간에 속도를 올렸다.
쾅!
그가 땅을 박차는 순간 마치 대포알이 쏘아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클라우스는 한때 기마부대를 이끌던 지휘관이었고, 군마(軍馬) 없이도 랜스 차지를 가능케 하는 각력을 지닌 강자였다.
그가 팔을 휘두르자 접혀있던 무기가 펴지며 3m 길이의 랜스가 완성됐다.
쐐에에에에엑!
후방에선 바람을 가르며 파고드는 랜스. 정면에선 5서클 마법사의 대규모 섬멸 마법. 그리고 측면에선 습격조가 뛰쳐나오며 검기를 뽑아낸다. 도망칠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먼저 거대한 화염구가 마차를 흔적도 없이 불태울 것이며, 화염구에서 빠져나온다 한들 후방에서 추격하는 랜스에 꿰뚫리고, 측면에서 검기를 뽑은 채 달려드는 검사들에게 갈가리 찢길 게 분명했다.
그들은 승리를 확신했다.
계획에 변수는 없노라고 확언했다.
말발굽 소리, 마차의 바퀴가 만들어내는 진동, 마법사의 지팡이 끝에서 타오르는 불길의 소음, 계획이 정확하게 성공했다는 확신 탓에 흔들린 판단력. 갖가지 요소가 합쳐졌기에·········.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습격을 대비한 그들보다 ‘먼저’ 이곳에 숨어있던 인물이 존재한단 사실을. 그녀가 제 등허리에서 두 자루의 단검을 뽑아내며 땅을 박찼단 사실을,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채지 못했기에 대비하지 못했다.
습격자들의 후방에서 모습을 드러낸 로젤린 아스칼로가 땅을 박찼다. 한순간의 가속(加速). 그녀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한갈래로 묶어 내린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나부꼈다.
···로젤린 아스칼로는 용병이다.
그녀는 숱한 전장을 경험한 용병 중의 용병이며, 이 경우 누구를 먼저 노려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법사. 모든 전황에서 마법사는 가장 먼저 배제해야 할 전력이었으므로.
“···!”
그녀의 접근을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마법사 시르켈의 곁에 서 있던 제롤드다. 대검을 쥔 그가 눈을 부릅뜬 채 고개를 돌렸다. 시르켈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그는 그녀와 자신의 위치를 바꿨다.
그 판단은 옳았다.
자리를 뒤바꾸며 제롤드가 검을 휘두른 순간, 코앞까지 파고든 로젤린이 쌍검을 휘둘렀다. 그들의 곁에는 소드 엑스퍼트 다섯이 있었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두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제롤드가 휘두른 대검에, 로젤린의 쌍검이 맞부딪쳤다. 유난히도 요란스레 울려 퍼지는 소리. 그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엑스퍼트들은 제 곁을 스쳐 지나간 로젤린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을 부릅떴다.
허나 그땐 늦었다. 너무나도.
이 상황을 이해한 것은 제롤드뿐. 제롤드의 눈동자가 부릅 뜨였다. 유난히도 요란스레 울려 퍼지는 소음. 그리고 로젤린이 손에 쥐고 있는 쌍검. 그 쌍검이 울리기 시작한 순간 제롤드가 이를 악물고 수세를 취했다. 대검의 뒤에 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메아리’가 울렸다.
‘메아리’가 만들어낸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21번 걸작 메아리. 깃든 신비는 울림. 메아리에 실린 로젤린의 검기(劍氣)가 전장을 휩쓸었다.
키이이이이이이잉!
그녀의 곁에 서 있던 엑스퍼트 다섯의 몸이 수십 조각으로 쪼개졌다. 메아리에 직격당한 제롤드의 대검이 거세게 뒤흔들렸고, 제롤드의 뒤에 숨어있던 마법사 시르켈의 몸 주위로 붉은 방어막이 떠올랐다. 울려 퍼진 메아리는 시르켈의 방어막을 몇 번이고 할퀴었다.
그녀가 준비해 둔, 그녀의 지팡이 끝에 맺힌 화염마저 방어를 위해 사용되게끔.
한순간에 전방이 뚫렸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나진이 타고 있는 마차가 속도를 올렸으며, 마차의 뒷벽이 박살 났다.
콰직!
마차의 벽을 박살 내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나진이다. 마차와 제 몸을 밧줄로 단단히 묶어둔 그가 움직이는 마차의 위에서 검을 고쳐잡았다. 그 눈동자는 후방에서 자신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랜스를 든 기사 클라우스를 응시했다.
나진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핏발이 선 눈동자는 클라우스의 속도, 그와의 거리, 그리고 최적의 순간을 도출해 낸다. 답이 나왔다. 남은 것은 행동하는 것뿐. 거세게 솟구치는 검기를 끌며 나진이 마차를 박차고 도약했다.
탁.
클라우스의 돌격은 직선이며 그 공격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으레 랜스 차징이란 것이, 기마 돌격이란 것이 그러하듯 그 방향을 중간에 갑작스레 트는 것은 몹시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나진은 클라우스의 머리 위에서, 클라우스의 정수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클라우스가 상정하지 못한 상황. 정확한 순간에 노려진 약점. 그러나, 그 상황에서마저 클라우스는 반응한다.
그는 소드 시커급의 무인이기에.
가히 초인적인 반응속도로 그가 땅을 내려찍었다. 정면을 향하는 랜스의 방향을 틀어 나진을 향해 휘둘렀다. 3m가량의 랜스가 공기를 가르고, 찢는 소리를 내며 나진에게 엄습했다.
그리고, 나진은.
그것을 노렸다는 양 제 검을 온 힘을 다해 랜스를 향해 휘둘렀다. 나진의 검기와, 클라우스의 랜스에 휘감긴 오러가 맞부딪치며 반발했다. 밀려나는 것은 당연하게도 공중에 떠 있던 나진이다.
반발에 떠밀린 나진의 몸이 공중에 붕 떴다.
그리고 그 순간 빙글, 나진은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제 복부에 묶인 밧줄을 잡아당겼다. 마차와 연결된 밧줄이 정확한 순간 팽팽하게 당겨지며 나진의 몸을 확 끌어당겼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듯한 움직임이다. 그만큼이나 나진의 이탈은 매끄러웠다.
“허.”
그 과정을 바라본 클라우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본래 후방에서 마차를 들이받아 마차를 박살 내는 것이 클라우스의 역할.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단 한 번의 공방에 의해서.
이미 저만치 마차는 떨어진 채 달려 나가고 있으며, 지금 다시 땅을 박차고 달려도 늦고 만다. 기껏 만들어낸 포위진이 뚫리고 만다. 그렇다면, 클라우스와 함께 마차를 박살 내고 틀어막아야 했던 습격조는?
로젤린 아스칼로의 습격을 당해 그럴 여유가 없다. 기껏 준비해 둔 마법은 그녀의 습격을 방어하는 데 쓰이고 말았다.
‘측면에서 덮쳐들 대기조 역시······.’
마차가 박살 나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속도가 더 올랐으므로 그들은 마차를 놓치고 만다. 그들을 지나쳐 마차는 뚫린 정면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아흐메티 도로를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제야 클라우스는 깨달았다.
클라우스만이 아니다.
이 자리의 모두가 깨닫고 만다.
함정이었다. 상대는 이 습격을 알고 있었다. 이미 저 멀리 나아가고 있는 마차를 바라보며 클라우스가 이를 악물었다.
“······.”
소드 시커급의 무인.
이 자리의 지휘권자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들의 시선은 이윽고 한곳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로젤린 아스칼로가 서있다.
전장을 헤집고 전방을 뚫어냈다.
그것으로 제 1 목적을 이루었다는 양, 로젤린은 거리를 벌린 채 뚜둑 소리를 내며 제 몸을 풀고 있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로젤린이 히죽였다.
“뭘 봐?”
그녀가 빙글, 단검을 고쳐잡았다.
마치 언제든 덤비라는 듯이.
그러나 습격자들은 좀처럼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 역시 알고 있는 까닭이다.
로젤린 아스칼로는 강자다. 소드 시커 중에서도 그녀는 단연코 강자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단신으로 로젤린 아스칼로를 상대하진 못한다.
소드 마스터로 향하는 세 계단 중 하나를 올랐으며, 걸작마저 소유하고 있는 여자다. 물론 여럿이서 달려든다면 승리할 수야 있겠지만, 그래서야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만다.
‘시간이 오래 끌린다면?’
클라우스의 시선은 저 멀리 나아가고 있는 마차를 봤다. 마차의 방향이 바뀌었다. 도로에서 벗어나, 목적지와 전혀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마차는 놓쳤고 습격은 실패했다.
저 마차는 어디로 향하는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가?
지원군?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의 보고?
애초에 지원군은 로젤린 하나인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든 가능했으니.
상대의 목적을 알 수 없다. 이대로 저 마차를 놓쳤다간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습격이 들통난 지금 ‘이탈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철저하게 조작된 정보. 제한된 상황. 시간의 제한. 갖가지 제한이 그들을 덮친다. 제한되고 조작된 정보로 하여금 그들은 초조함을 느낀다. 완전히 적의 손안에서 놀아났다는 생각이 든 순간 클라우스가 이를 빠득, 하고 갈았다.
선택해야 한다.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클라우스.”
그리고 누군가 입을 열었다.
“제롤드와 함께 추격해라. 여긴 우리가 맡는다.”
입을 연 것은 쌍검을 쥔 사내다.
바사우스 말렉. 전장에서 오랜 세월 군인으로 활동했던 소드 시커. 그가 로젤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며 그가 말했다.
“저 여자를 죽이고 합류하지. 늦거든 너희가 합류해라.”
클라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을 주고받은 제롤드와 클라우스가 땅을 박차고 달렸다. 기동력이 이곳에서 가장 우수한 두 사람이었기에 바사우스의 판단에 누구도 이의를 제시하지 않았다.
마차를 추격하려는 둘을, 로젤린은 어깨를 으쓱이며 보내주었다. 그리곤 제 앞을 가로막아 선 군인을 바라보며 히죽였다.
“네가 날 죽이겠다고?”
“못 할 것은 없지.”
바사우스 말렉이 쌍검을 고쳐 쥐었다. 쌍검 위로 거친 검기가 뽑혀 나왔다. 로젤린 아스칼로는 휘파람을 불며 걸작, 메아리를 빙글빙글 돌렸다. 맹수의 이빨을 닮은 검기가 솟구쳤다.
쌍검을 쥔 바사우스 말렉.
대궁을 쥔 타일러 베르카니만
서클을 띄운 시르켈 크라벨린.
세 명의 소드 시커급의 강자가 로젤린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 시선들의 앞에서도 로젤린은 여유롭게 호흡을 가다듬을 뿐이었다.
“이름난 용병단의 단장께서, 이런 곳엔 무슨 일로 오셨지?”
바사우스의 비아냥에 로젤린은 웃었다.
“몰라서 물어? 용병이 움직이는 건 하나지. 돈.”
명예보단 자유를.
자유보단 금화를.
금화보단 즐거움을.
그것이 로젤린 아스칼로가 신봉하는 가치다. 로젤린은 디에타에게 진 빚이 남아있었으며, 디에타는 로젤린에게 거금을 들여 의뢰를 요청했다. 빚을 지우면서 돈을 받을 기회.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 더해 호기심 또한 생겼다.
이 상황 자체에, 그리고 이반이란 그 애송이가 처한 상황에 대해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건 그녀가 과거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빌어먹을 이단 심문관들에게 쫓겼던 과거를 떠올린 로젤린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뭐해? 좆만 한 새끼들아.”
그녀가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안 덤비고.”
불길한 붉은 눈동자.
다른 적안(赤眼)과는 달리 흉흉하게 소용돌이치는 붉은 눈동자가, 짐승의 것처럼 번들거렸다.
나진은 마차를 추격해 오는 이들을 보았다.
대검을 쥔 악마 사냥꾼, 제롤드 오톤.
3m의 랜스를 다루는 기사, 클라우스 아텐.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엑스퍼트 일곱.
로젤린은 약속대로 두 명의 소드 시커를 맡아줬다. 그 사실에 나진은 감사했다. 여전히 다수의 소드 시커를 상대해야 함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승산이 없는 싸움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건 자신이 넘어야 할 벽이다.
마차는 어느덧 숲속으로 접어들었다. 미리 정해두었던 장소. 나진에게 유리한 무대.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숲속을 마차는 나아갔다. 추격자들과의 거리는 시시각각 좁혀지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마차 속에서.
나진은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금 전 뚫어놨던 마차의 벽. 그리하여 만들어진 난간에 나진은 제 발을 꾸욱 내디뎠다. 그리곤 마차와 제 몸을 연결해 둔 밧줄을 칼로 베어냈다.
로젤린과의 거리는 충분히 멀어졌다.
이젠, 자신도 목숨을 걸어야 할 시간이었다.
나진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나진을 내버려둔 채 마차는 저 멀리 달려 나갔다. 대뜸 마차에서 뛰어내린 나진의 모습에 추격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에 매복한 이들이 있나? 추격자들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나진은 검을 늘어트렸다.
어둠이 깔린 숲속에서 나진의 검 위로 새하얀 검기가 뻗어 나왔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습격자들은 이곳에 매복한 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엔 나진 혼자뿐이었다.
마치 홀로 너희들을 상대하겠다는 양, 검기가 솟구친 검을 나진은 그들을 향해 겨누었다.
그 모습에 습격자들은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여기서 이런 선택을 한다고?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주제에, 홀로서 소드 시커 둘과 엑스퍼트 일곱을 상대하겠다고?
미친 짓이다.
그 사실을 나진이라고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진은 이 방법을 선택했다. 나진은 장갑을 벗어 바닥에 던졌다. 마치 결투를 청하듯이. 습격자들 사이에 섞여 있던 기사들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나진.”
나진이 제 이름을 발음했다.
“아탕가의 기사, 이반의 종자다.”
아직은 하나뿐인 제 소속을 밝혔다.
결투의 최소 조건이 성립됐다. 나진이 검을 고쳐 쥐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투란 무의미하지만 이는 나진이 스스로에게 거는 제약이자 맹세였다.
기사는 결투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서 너희 모두를 쓰러트리겠다.
스스로에게 하는 맹세. 이반의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부터 이것은 나진에게 있어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