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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의 집무실.
나진은 지하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소파에 앉아 이반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이반이 문을 열고 집무실에 들어왔다.
“하, 이거 웃긴 새끼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을 흘리면서 들어온 이반은 물에 적신 수건으로 제 얼굴과 팔뚝에 묻은 피를 닦았다. 이반이 흘린 피는 아니고, 튄 피였다. 나진은 검붉게 물들어 가는 수건을 흘겨봤다.
“끝났어요?”
“어. 금방 열더라. 네가 기를 제대로 죽여놓은 모양이던데? 한두 개만 뽑았는데 바로 실토하더라고.”
이반이 무언갈 던졌다 받기를 반복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치아였다. 누구의 치아였는지 추측해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여간, 기특한 새끼. 저런 놈을 어디서 물어왔어? 아주 제대로야. 안 그래도 요즘 아랫놈들 일하는 게 시원찮아서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아주 마음에 들어.
그리 중얼거린 이반이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래서, 싸워볼만 했냐? 마나 다루는 놈하고 싸운 건 이번이 처음 아냐?”
“처음은 아니죠. 이반하고 대련한 게 몇번인데.”
“인마, 그건 교육이었고.”
죽기 직전까지 패는 그게?
나진이 교육이란 단어의 정의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가운데, 이반이 재차 물었다.
“부상은?”
“끌고 다녀서 팔이 뻐근하긴 한데, 그것 말고는 없어요.”
“허. 마나도 못 다루는 놈이 상처 하나 없이 마나 다루는 놈을 잡아 족쳐? 진짜 난놈이네 이거.”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이반은 딱히 놀란 눈치가 아니었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는 듯한 반응. 그런 이반의 표정을 보며 나진은 생각했다.
하기야, 자신이 망설임 없이 간부급에게 덤빈 이유가 뭐였던가?
「네가 어디까지 덤벼도 되냐고?」
「글쎄, 일단 나하고 땅거미 놈이랑 비빌 정도는 안 되는데······.」
언젠가 이반이 말한 적이 있었다.
「호르세 빼면 다 덤벼도 될걸?」
「거기에도 간부라고 설치고 다니는 연놈들 몇 있는데, 아마 일대일로 싸우면 네가 이길 거다.」
「그놈들 영역에서 안 싸운다는 전제조건 하에.」
땅거미 호르세. 상대 조직의 우두머리를 뺀다면, 일대일로는 다 덤벼볼 만하다고 이반은 말했었다. 그 말을 나진은 신뢰했을 뿐이다. 이반은 언제나 정확한 판단을 내렸으니까.
“이반.”
그래도, 궁금한 건 있었다.
“마나라는 게 대체 뭐에요?”
“뭐긴. 좆나 좋은 거지.”
이반이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답했다.
당연하게도 나진이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기에, 나진은 말없이 이반을 바라봤다. 이반은 어깨를 으쓱이곤 말을 이었다.
“마나를 다룬다는 건 무인으로서 제대로 된 첫걸음을 내디뎠단 증거다. 육체를 강화하던, 검기를 뽑아내던, 검술을 펼치던 그 근간에는 마나가 있으니까.”
마나, 체내에 축적되는 기.
“체내에 마나를 축적할수록 네 육체는 단련되고, 한계점이 올라간다. 인간의 몸으로는 할 수 없는 온갖 기행을 벌일 수 있게 된단 뜻이지.”
이를테면 이런 거.
이반이 제 손을 쫙 펼쳤다. 고문 과정에서 뽑아냈을 프릭스의 이빨이 이반의 손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잘 봐라.”
제 손바닥에 이빨을 올린 채 이반이 가볍게 손을 말아쥐었다. 다시 손을 폈을 때, 이빨은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물론 마나를 배운다고 다 나처럼 되는 건 아니고, 어떤 연공법으로 쌓았는지가 중요하지. 아무거나 배워다가 마나 쌓다간 나가리 되기 십상이거든. 당장은 세지더라도 한계점이 명확하고.”
“그럼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르려면 마나 연공법은 필수라는 거네요?”
“그런 거지. 마나는 다룰 줄 알아야 검기를 뽑든 말든 할 테니까. 왜, 배우고 싶냐?”
“배울 수 있으면 좋긴 하죠.”
이반이 피식 웃었다.
“나중에 알려주마.”
“그 말만 5년째 듣고 있긴 해요.”
“나중에 인마.”
거기까지만 하라는 신호.
나진은 더는 말을 꺼내진 않았다. 이 주제를 더 끌고 가면 이반의 심기를 거스를게 뻔했으니까. 이반이 그어둔 선을 넘지 않은 채 나진이 한걸음 물러섰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이반이 화두를 꺼냈다.
“곧 내전이 벌어질 거다. 준비해라 나진.”
땅거미 호르세가 내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 간부 놈이 말하더군.
근래 호르세에게 직접 명령을 받지는 못했지만, 위에서 지령만큼은 계속해서 내려온다고. 지령의 내용은 전쟁을 준비하라는 것, 물자를 준비하라는 내용이라고.
아무래도 호겔 영감의 대장간에 상납금을 운운했던 것도 무기를 빼앗으려는 밑 작업이었던 모양이지. 내 조직에 침투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테고.
하여간, 지랄을 하는구만.
선을 넘는다고 생각은 했는데 아예 작정했을 줄이야. 도대체 무슨 깡인지는 몰라도 나한테 제대로 싸움을 걸려는 모양이다.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는 거겠지.
호르세 그놈이 앞뒤 안 재고 싸움을 걸 만큼 정신 나간 새끼는 아니니까. 하여간, 뭘 믿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후우. 이게 말이다.
내전이란 게 참 좆같단 말야?
이 좆만 한 도시에서 좆만 한 땅덩어리 따먹자고 사람 여럿 뒈져나가는 걸 보고 있으면 한숨부터 나와. 내가 호르세 그놈하고 전쟁을 벌였을 때 아예 끝장을 안 본 게 왜겠냐?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손해밖에 안보이거든.
사람 여럿 죽으니 생산력도 떨어지고, 거리 분위기도 칙칙하기 짝이 없지. 창관에서 떡을 치든 주점에서 술에 꼴던 기분이 좆같기 이를 데가 없어. 그 꼬락서니 보고 있으니까 싸울 맛도 안 나고.
말이 길었는데.
뭐 요점은 이거다.
이번 내전은 길게 갈 생각 없다. 그냥 빠르게 끝내버리고, 빠르게 정리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선수를 칠 거다.
자세한 건 내일 다시 알려주마. 오늘은 오펜이랑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으니까.
어쨌든 준비는 하고 있어라.
어떻게 될지 장담은 못 하니까.
“···으음.”
이반이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진은 거리를 걸었다. 이반은 말했다. 내전을 준비하라고.
‘내전이라.’
나진은 내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호르세와 이반이 벌였던 지난 내전은 나진이 아주 어렸을 때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그저, 내전이란 단어가 나올 때마다 식겁을 하는 어른들의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었다.
「준비는 하고 있어라.」
「어떻게 될지 장담은 못 하니까.」
이반의 마지막 말을 나진은 계속해서 곱씹었다. 언제나 확신을 담아 말하는 이반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심각한 일이긴 한 모양이다.
“준비하라고 말하긴 해도 뭐···.”
나진이 고개를 기울였다.
딱히 뭘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나진은 머릿속으로 지하 도시의 지도를 그려봤다.
지하 도시 아트만은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중심지, 이반의 관리하에 있으며 윗동네와 직접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창구가 존재하는 곳. 창구를 중심으로 주요 시설이 밀집해 있는 노른자 땅이었다.
다음은 채굴지.
중심지에서 거리가 있는 외곽 지역. 호르세의 관리하에 있으며 지하 도시의 자원인 광석을 채굴하기 위한 채석장이 다수 존재하는 땅.
‘채굴지, 채굴지, 채굴지···.’
듣기로는 미로와 같은 곳이라고 한다.
채굴장과 연결된 곳에 호르세의 거처가 있는데, 온갖 함정이 가득하다던가. 윗동네에서 레인저(Ranger) 출신이었던 호르세가 제 실력을 십분 발휘할 무대라고 이반은 설명했었다.
「호르세는 레인저다.」
「암행과 암술, 함정, 매복과 관련된 부분에선 기사들을 능가하는 놈들이 바로 레인저야.」
「일대일에선 기사에게 밀리지만 지들 영역에선 기사 여럿도 이겨 먹는 족속들이지.」
「절대 그놈의 영역에서 싸워주지 마라.」
「나라도 오펜 없이는 승리를 확신 못 하니까.」
나진은 그곳에 쳐들어가는 상상을 해봤다.
미로와 같이 얽힌 채굴장. 그리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실력자들과, 호르세가 깔아놨을 함정들.
“씁.”
쉽지 않은데. 이반의 영역에서처럼 일단 발부터 들이밀고 보다간 몸에 바람구멍 여럿 뚫릴 각오는 해야 하리라. 머릿속으로 전략을 그려보던 나진은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생각해 봐야 제대로 감이 안 잡혔으니까.
한 번이라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을 갈무리하던 나진은 문득 지하 도시의 ‘세 번째 영역’에 대해 떠올려 봤다.
중심지, 채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립지.
이곳보다 더 아래, 저 거친 절벽을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 곳이 바로 매립지였다. 이미 한번 위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다시 한번 걸러져 마지막으로 쌓이는 곳. 쓰레기와 오물과 시체들이 매립되는 곳.
그곳이 바로 약쟁이 하칸의 영역이었다.
그곳에 대해 나진이 알고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나진뿐만이 아니었다. 이반도 약쟁이 하칸과 매립지에 대해선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약쟁이 하칸, 나도 그놈은 잘 몰라.」
「내가 이 도시에 떨어지기 전부터 있었고, 호르세가 이 도시에 떨어지기 전부터 있었다던데?」
「사실 년인지 놈인지도 모르지.」
「그냥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고, 거기서 약을 만들어 판다는 것만 안다. 얼굴 본 적은 나도 없어.」
한 지역을 지배할 만한 강자라는 것.
그리고, 약을 만드는 연금술사라는 것.
그게 약쟁이 하칸에 대해 알려진 전부였다.
‘이번 내전에선 필요 없는 정보긴 해.’
나진은 생각을 정리했다.
내전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내일이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탁.
집으로 향하던 나진이 걸음을 멈췄다.
그가 걸음을 멈춘 곳은 광장의 외곽이었다. 그 중심지에 꽂혀있는, 그러나 여전히 천막에 가려져 있는 검을 나진은 멀찍이서 바라봤다.
「검을 뽑아라.」
「너는, 검을 뽑을 수 있다.」
여전히 머릿속에 맴도는 문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진은 한참 동안 천막에 가려진 검을 바라보다 광장을 떠났다.
탁.
낡은 주점에서 술잔을 내려놓은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주점에는 이반과 오펜만이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건 오펜이었다.
“그래서 내전을 벌이겠다고?”
“그래야지.”
“이쪽에서 선수를 칠 거고?”
“그래야 빨리 끝날 거 아니냐.”
“그래서 도와달라?”
오펜의 질문에 이반은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침묵함으로써 그는 대답을 대신했다. 오펜이 눈살을 찌푸린 채 제 머리칼을 헝클어트렸다.
“난 별로 안 내킨다.”
“이번 한 번이면 돼.”
“그 말 몇 년 전에도 들은 것 같은데.”
“한 번만 도와줘. 혼자선 조용히 처리할 자신이 없어서 그래.”
이반이 재차 술잔을 기울였다.
혼자 쳐들어가서 깽판 치는 거? 솔직히 하려면 할 수야 있다. 다만 그건 이반의 목적과 거리가 멀었다. 이반이 원하는 건 빠르고 깔끔한 정리였지, 기나긴 내전의 시작을 알리는 게 아니었으니까.
“···짜증 나는군.”
“호르세 그놈이 일을 벌이려 하잖아. 뭔진 몰라도 뭔가가 있긴 있을 거다. 그러니 빨리 치워야지.”
“쯧.”
오펜이 혀를 찼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에도 도와달라 하면 술잔으로 내 머리를 쪼개버릴 테니 그리 알아.”
“고맙다.”
“그건 그거고, 너 말이다.”
빈 술잔을 채우며 오펜이 가볍게 툭 던졌다.
“나진 그놈 언제까지 그렇게 내버려 둘 거냐?”
“······.”
“마나 연공법이든 뭐든 안 가르쳐 줄 생각이야? 너도 알잖아. 그놈 옛적에 배울 준비는 끝났다는 거.”
“알지.”
“그럼 왜 안 가르치는데?”
“너무 빠르니까.”
이반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진심을 이야기했다. 윗동네에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기에, 이반은 오펜에게만큼은 속내를 다 털어놓곤 했다.
“나진 그놈, 뭐든지 너무 빨리 배워. 시간이 흐를수록 무서워진다. 그놈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히니까.”
“질투하냐?”
“질투는 지랄. 너도 알 거 아니냐.”
이반이 히죽였다.
“이 빌어 처먹을 도시에서, 그런 재능을 가져봐야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새끼가 어딨냐?”
“······.”
“내가 마나를 미리미리 가르쳐 줬다고 치자고. 그래, 그럼 몇년뒤면 검기도 좍좍 뽑아내겠지. 제국 최연소 소드 엑스퍼트 기록이 23세인데, 그 기록도 갈아치울지 몰라.”
그만한 새끼라고, 나진 그놈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반이 독한 술을 들이켰다.
크으, 하고 숨을 내뱉으며 그가 말했다.
“이 쓰레기 같은 도시에서 그래봐야 뭐가 되겠냐?”
버려진 것들이 쌓이는 곳.
더럽고 추악한 것들이 모이는 진창. 쓰레기들이 쌓여 산을 이루는 매립지.
“이딴 곳에서 제국 최연소 엑스퍼트가 나오고, 그 소식이 윗동네 놈들 귀에 들어가는 날엔 뭐가 되겠냐고.”
정리당하겠지.
그 재능의 빛남보다, 재능을 지닌 이의 출신을 그들은 먼저 볼 테니까. 그리고 그들의 눈 밖에 난 이의 최후는 말로 할 것도 없었다.
“사술, 흑마법, 거짓된 별의 신봉자, 배교자, 캄란의 저주받은 씨발 것. 그런 죄목들을 붙여서 처형시키겠지. 혹은 다시는 검을 들 수 없게 만들던가. 한두 번 본거 아니잖아? 윗동네에서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이반은 기사였기에.
오펜은 용병단의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기에.
두 사람은 윗동네의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높으신 분들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들의 심기를 거스른 이들이 죄다 어떤 꼴이 되었는지 직접 보고 경험했으니까.
“지랄 맞긴 하지.”
“그래. 지랄 맞지. 그렇게 처형당하면 나진 한명만 죽이고 끝내겠냐? 나랑 너도 모가지야.”
큭큭대며 이반이 연초를 꼬나물었다.
연초에 불을 붙이곤 그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주어진 대로 살아야 해. 선을 넘어 닿지 않는 것에 손을 뻗어봐야 비참해질 뿐이라고.”
“그래서 그대로 내버려 두겠다?”
“딱 이 정도가 적당해. 여기서 더 두각을 드러내면 윗동네 놈들 귀에 들어갈 테니까.”
“뭐··· 네 말을 모르겠는 건 아닌데 말이다.”
오펜이 술잔을 흔들며 말했다.
“그놈 이미 마나 다룰 줄 안다.”
“······.”
술잔을 기울이던 이반의 손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라고?”
“마나 다룰 줄 안다고. 그놈.”
“설마 가르쳤냐?”
“아니. 가르친 적 없어.”
“그런데 어떻게?”
오펜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몰라. 체내에 쌓인 마나도 없어 보이는데 그놈 마나를 써. 한 번씩 빠르게 움직일 때가 있거든? 그때마다 몸에 마나가 흐르더라고.”
“···그게 말이 되냐?”
“그러니까 모르겠단 거지. 나진 그놈도 자각이 없는 것 같고.”
나진에게서 느껴지는 마나는 없다.
나진은 마나 연공법을 배우지도 않았고, 체내에 마나를 축적하지도 않았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몸에 마나를 쌓지도 않은 놈이 마나를 운용해 육체를 강화한다고?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이반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야, 그건 꼭······.’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그걸 말이 되게 하는 역사적인 인물을 이반은 한 명 알고 있었으니까.
“너도 나랑 같은 걸 떠올렸나 보구만.”
오펜이 히죽였다.
술잔을 흔들며 그가 웃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 그런 일을 태연하게 벌이는, 현존하는 마나 연공법들의 근간을 부정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인류의 역사에는 딱 한명이지만 존재했다.
성좌, 선별의 검.
수백 년 전 인간의 시대를 이끈 대영웅 아서.
존재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그 대영웅의 일대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서사시의 서장에 나오는 아서의 특별함.
“아서는 마나를 쌓지 않고도 마나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움직였으며, 검기마저 뽑아냈다.”
오펜이 히죽이며 중얼거렸다.
그건 아서 일대기의 서장에서 다뤄지는 내용이었다. 세간의 상식과 연공법의 근간을 무시하는 문장.
「마나는 쌓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흐르는 마나를 길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느냐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이라곤, 고작 저 두문장 뿐이다.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였기에 제국의 역사서에선 비정사 취급하는 이야기지만······.
숱한 동화책에는 그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이반과 오펜은 같은 것을 떠올렸다. 나진이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책인 , 분명 그 책에도 그 이야기가 쓰여 있었을 테지.
“···그러니까.”
이반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네 말은, 나진 그놈이 저 밤하늘의 성좌인 아서왕과 같은 방법으로 마나를 깨우치고 있단 거냐?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그거야 모르지. 그거 말고는 설명 할 방법이 없으니까 말한 거고.”
이반이 침묵했다.
오펜의 말대로 나진 그놈이 아서왕과 같은 방식으로 마나를 깨우치고 있던, 그 누구도 모르는 기괴한 방식으로 마나를 다루고 있던··· 어느 쪽이든 의미하는 바는 똑같았다.
자신의 예상보다 나진이 더 뛰어나다는 것. 가르치는 것을 미루고, 숨기려 해보아야 쓸모가 없다는 것.
“아무리 숨기고, 늦추려 해봐야 의미 없다. 머지않아 그놈 검기도 뽑아낼 테니까. 이미 검기의 편린은 만들어 냈다. 아무리 늦어도 반년이야.”
“······.”
“그렇게 되면 무조건 윗동네 귀에 들어가겠지. 그럼 네가 말했던 일들이 모조리 벌어질 거고.”
나진을 죽이려 들 거고.
나진과 연관된 이들을 정리하려 들 거다. 그리고, 오펜과 이반은 가장 먼저 정리될 거고.
“그러니까 골라라.”
오펜이 술잔을 내려놨다.
탁, 하는 소리가 주점에 길게 울려 퍼졌다.
“지금 죽이던가.”
두각을 드러내기 전인 지금.
아직 죽일 수 있는 지금 나진을 정리하던가.
“그게 아니라면 가르쳐 보던가.”
그게 아니라면 나진에게 걸어보던가.
소드 엑스퍼트를 넘어, 그다음의 경지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윗동네에서도 나진을 정리하진 못할 거다. 그 정도 경지에 오른 강자마저 내칠 수는 없을 테니까.
요컨대 도박수였다.
그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이반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