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Permalink Blame History

한번 궁지에 몰아넣은 사냥감을 사냥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 사실을 카프만은 잘 알았다.

“······.”

카프만은 말없이 지하수로를 걸었다.

레인저의 특기가 무엇이던가. 사냥감을 추격하고 사살하는 것이야말로 레인저의 전문 분야다. 바로 옆으로 물길이 흐르는 탓에 습기가 가득하고 시야가 어둡다 한들 그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핏자국. 걸음. 숨기려 해도 남아있는 흔적들.

제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노련한 레인저의 눈길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법이다. 남은 흔적을 따라 카프만은 조용히 걸음을 옮겼는데, 추격하는 과정에서도 조금도 방심하는 법이 없었다.

시야는 넓게. 발리스타는 언제나 장전 상태.

저 멀리서 나진의 인기척이 느껴진 순간 카프만이 방아쇠를 당겼다. 쐐에에엑, 소리를 내며 쏘아진 화살이 도망치는 사냥감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핏물이 튀어 오르고 억눌린 신음이 메아리쳤다.

탁!

땅을 박차고 사냥감이 도망친다.

피를 흘리고 신음을 참으며 저 멀리 달아난다. 그런 나진을 바라보면서도 카프만은 달리지 않았다. 그저 일정한 걸음걸이로 나진을 추격할 뿐이다.

얼핏 보면 여유를 부리는듯 하나, 실상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어차피 사냥감은 상처 입었다. 피를 흘리고 있으며 궁지에 몰렸다. 하물며 사냥감이 향하는 길목에는 함정이 끝도 없이 깔려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추격자의 이점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어떠한 반격의 기회도 주지 말아라.

철저하게 몰아붙여라. 한번 점한 우위를 절대 놓아주지 마라. 그것이 카프만 테오시스가 논하는 사냥이다. 괜히 거리를 좁혀 반격의 기회를 줄 이유가 없었다.

‘갉아먹어라.

충분히 지칠 때까지.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때까지 몰아붙인 뒤, 그 미간에 쇠뇌를 한 발 박아주면 사냥은 끝이 난다. 여기까지 왔으면 사실상 사냥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저 늘 하던 일을 행할 뿐이다.

사냥꾼이 늘 하는 일이라 해보아야 별것 없다. 사냥꾼은 피 흘리는 사냥감을 추격했다. 깊은 지하수로에서 두 명 분의 발걸음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추격하고, 방아쇠를 당기고, 다시 추격하고.

일정한 양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카프만은 사색에 빠질 여유가 있었다. 사냥 중에 잡념에 잠기는 것만큼 미련한 짓거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뇌리에 맴도는 생각을 카프만은 무시할 수 없었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으며 카프만은 걸었다.

여전히 감각을 열어둔 채 그는 생각한다. 어째서 자신이 이런 곳까지 추락하고 말았는가. 국경선과 맞닿은 험준한 산맥에서 보낸 세월도, 제국을 위해 피 흘리던 세월도 이제는 모두 과거일 뿐이다.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던 명예로운 군인은 이곳에 없다. 이곳에 남은 거라곤, 늙고 지친 사냥개다.

목줄을 끄는 대로 끌려가고, 물라고 명하는 것을 물어뜯으며 단지 그렇게 살아갈 뿐인 사냥개. 물론 제 목줄을 쥐고 있는 게 제국이었다면 카프만은 이 일을 명예롭게 여길 자신이 있었다. 조국을 위해 삶을 바치는 것은 군인으로서 명예롭게 여길 일이었으니.

하지만, 제 목줄을 쥐고 있는 건 황실이 아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자신이 행하는 일에는 명예도 대의도 없다. 그 사실에 카프만은 씁쓸함을 느낀다.

「제국을 위하여.」

「제국의 영광과 안녕을 위하여.」

그리 외치던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맴돈다.

물론 테첼 산맥을 등지고, 그곳에서 제 발로 나왔단 사실을 후회하진 않는다. 국가보다 더 소중히 여길 연인이 생겼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빌어먹을 새끼들.”

카프만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어쩌면 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은퇴한 군인에게 보복하는 흑마법사 집단. 사고에 휘말려 죽고 만 아내. 그 끝에 남은 것이라곤 자식뿐.

「응급처치는 했으나 오래가진 못합니다.」

「지독한 저주입니다.」

「저희로선 어찌할 수 없는······.」

망가져 버린 삶. 망가져 버린 이야기.

그러나 남은 것은 있다.

남은 것을 지키기 위해 인간은 무엇이든 내던질 수 있는 법이다.

「오오, 물론 도와주어야지.」

「하지만, 이 정도 저주를 해주 하기 위해선··· 그분의 은총이 필요하다네. 그리고 그분께선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이를 아름답게 여기는 법이지.」

「어찌할 텐가?」

매달릴 수 있는 곳은 한정됐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일을 요구한다.

「잘 생각했네.」

「그분께서도 자네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야.」

그러나 거부할 수는 없다.

“빌어먹을.”

카프만은 제 목을 긁었다.

“새끼들.”

거칠게 긁었다. 손톱에 뜯어져 나오는 살점과 핏물. 카프만이 이를 갈았다.

「허어.」

「자네가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조사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추격 끝에 밝혀진 진실.

「그래. 자네의 아내를 죽인 흑마법사에게, 자네의 위치를 알려주고 사주한 것은 내가 벌인 일이 맞네.」

「하지만, 자네가 무엇을 할 수 있지?」

「고발할 텐가? 해보게 어디.」

「은퇴한 군인의 말 몇 마디에 누군가는 귀 기울여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래서 그다음은?」

인생은 농락당했고, 비극이라 생각했던 일은 철저히 계획된 음모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눈치챘을 땐 이미 제 목에는 목줄이 걸려있었다.

「자네의 딸.」

「지하도시에 있는 자네의 딸을, 밖으로 빼내 줄 수 있는 것은 우리밖에 없을 텐데.」

「현명하게 선택하게. 카프만.」

「남은 것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남은 것은 초라한 사냥개.

카프만은 품 안의 계약서를 움켜쥐었다. 서로의 영혼을 걸고 맺은 계약. 일을 성사시키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는 이야기.

한 번이다.

이번 일만 성공시키면 된다.

딱 한 번만 더······.

“······.”

까득, 하고 카프만이 이를 갈았다.

그는 ‘지하도시 아트만’이란 단어에 반응하던 나진을 떠올렸다. 그 도시가 어떻게 생기었는지,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카프만은 안다.

그런 도시에서 나고 자랐으며.

끝내 바깥으로 올라왔을 소년.

그 소년을 짓밟고, 머리를 처박고 눈알을 파내 다시는 빛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그 사실에 카프만은 환멸을 느꼈다.

“···빌어먹을.”

그리 중얼거리며 카프만이 쇠뇌를 당겼다. 철컥, 하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잡념을 떨쳐내고 감정을 갈무리하며 카프만은 걷는다.

쾅, 콰아아아앙!

저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

함정이 발동하는 소리다. 소리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카프만은 중얼거렸다.

끝났군.

누적된 피로와 부상. 굼떠진 움직임으로 인해 피하지 못하는 함정. 고통으로 인해 흐려진 판단.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궁지에 몰린 사냥감은 판단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연달아 발동되는 함정이 그 증거다.

더는 함정을 감지하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거겠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걸음을 옮긴 카프만은 보았다. 여기저기 흩뿌려진 핏자국과 바닥을 구른 듯한 흔적을.

그 핏자국은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다.

발을 질질 끌며 움직인 듯한 흔적.

이 지겨운 추격전도 이젠 끝이 보였다. 핏자국을 따라 카프만은 걸음을 옮겼다. 더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 사냥감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그렇게 카프만은 거리를 좁혔다.

거리를, 좁히고 말았다.

줄곧 거리를 유지하며 정답만을 골라온 사냥꾼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오답을 골랐다.

-지금.

카프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

그러나 나진의 귀에는 들릴 목소리.

목소리가 들린 순간 나진은 움직였다. 어둠에 가려진 수로의 천장에 매달려있던 나진이 소리 없이 뛰어내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선, 누가 사냥꾼이 되고 누가 사냥감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그 말을 증명하듯 어둠 속에서 나진의 눈동자가 빛났다.

「사냥꾼이 제일 방심하는 순간은, 사냥감을 마무리 짓는 순간이다. 제아무리 노련한 사냥꾼이라 한들 그 순간만큼은 틈을 보이지.」

오펜이 들려주었던 이야기.

「줄곧 모습을 보이지 않던 레인저가, 기어코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반격할 기회는 그때뿐이었지.」

그는 술병을 흔들며 이렇게 말했었다.

「끌어들여라. 함정을 일부러 밟아서 거미줄에 엉켜 발버둥 치는 벌레를 연기해. 판단력을 잃은 것처럼 행동하고 궁지에 몰린 척 연기해라.」

「속여라. 사냥꾼을.」

「네게 힘이 충분히 빠졌다고 생각한 거미가, 네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 순간이 되면.

「그 거미가 네게 이빨을 박아 넣고자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그 순간이 마지막 기회다.」

술을 홀짝인 오펜이 미소 지었다.

「물어뜯어. 전력으로.」

핏발이 선 눈동자로 나진은 보았다.

드디어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냥꾼을. 그리하여 손에 넣은 것은 단 한 번뿐인 기회. 나진이 몸에서 뽑아내 바닥에 던져둔 화살과, 단검들에 시선이 팔린 카프만이 깊은 곳으로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다.

-지금.

귓가에 울린 목소리.

천장에 매달려 있던 나진이 뛰어내렸다. 소리 없이 이루어진 습격이었으나, 초인에 가까운 감각을 지닌 카프만은 실낱 같은 인기척마저 감지해 내고 만다.

“···!”

눈을 부릅뜬 카프만이 휙, 쇠뇌를 돌려 나진에게 겨누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있다. 나진이 왼손에 역수로 든 비수를 카프만의 발리스타에 박아 넣었다.

콰직!

쇠뇌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보다 먼저 발리스타에 박힌 비수. 발리스타가 불발함과 동시에, 나진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롱소드가 휘둘러졌다.

누적된 피로와 부상, 그리고 파우 베와의 전투에서 뽑아낸 검기 탓에 롱소드에 검기는 맺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날붙이는 인간의 살을 찢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무기다.

기습. 그리고 충분한 힘이 실린 롱소드.

롱소드가 카프만의 어깻죽지를 내려찍었다. 카프만이 몸에 두른 판초가 찢겨나가고 핏물이 튀었다. 검이 깊게 파고들며 그 어깨째로 팔을 베어버리려는 찰나, 카프만이 이를 악물고 팔을 뻗었다.

콱.

칼날을 움켜쥔 손바닥에서 피가 흐르건 말건, 칼날이 더 파고들지 못하게 움켜쥔 채 카프만이 나진을 향해 발을 쭉 뻗었다.

쩌억.

일찍이 부상을 입은 복부에 발차기가 직격당했음에도, 나진은 롱소드를 놓지 않았다. 뒤로 밀려나면서도 기어코 손에 힘을 주어 롱소드를 비틀었다. 카프만의 어깻죽지의 상처를 벌리고, 검을 움켜쥔 카프만의 손가락을 깊게 베어내며 나진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교착 상태.

거리를 둔 채 두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

카프만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찢어진 어깻죽지에서 피가 흘렀다. 찢어진 판초가 흘러내리며 안에 든 것들이 우수수 쏟아졌으며, 박살 난 쇠뇌는 다시는 쓸 수 없게 됐다.

깊게 베인 손가락과 어깻죽지.

이 손으론 활을 당기진 못하겠군.

그러나 카프만의 눈으로 본 나진의 상태는, 카프만보다 몇 배는 심각하다. 온몸이 상처투성이며 옷을 붉게 물들었고, 다 뽑아내지 못했는 듯 등줄기에는 몇 발의 화살과 단검이 여전히 꽂혀있다.

핏발이 선 눈동자. 거친 호흡.

이곳까지 자신을 끌어냈다고 한들, 저놈의 상태도 결코 정상은 아니다. 당장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이거늘··· 꽉 움켜쥔 롱소드를 놓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런 나진을 보며 카프만은 인정했다.

그 누구도 사냥감이 아니다.

이곳에선 서로가 다만 사냥꾼일 뿐이다.

판초가 벗겨져 드러난 카프만의 상반신. 흉터투성이인 팔뚝과, 가죽 갑옷에 매달아둔 온갖 비수들. 한손에는 단검을, 다른 한손으론 허리춤에 매달아둔 마체테를 카프만이 뽑아 들었다.

사방에서 진동하는 피비린내.

들려오는 건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

잠깐의 정적과 한순간의 호흡. 서로가 서로의 상태를 가늠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단 몇 초에 불과하다. 그 몇 초의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제 앞에 서 있는 사냥감을 ‘어떻게’ 쳐 죽일지 계산을 마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거의 동시에, 두 명의 사냥꾼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진이 내던진 비수와 카프만이 휘두른 단검이 허공에서 맞부딪쳐 튕겨 나가고, 튕겨 나가는 것들을 쳐내며 롱소드와 마체테가 맞부딪쳤다.

카아아아아아앙!

튀어 오르는 불똥.

격하게 움직인 탓에 벌어진 상처에서 튄 핏물. 핏발이 선 나진의 눈동자와, 카프만의 눈동자가 서로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비춘 것은 살의뿐.

이유이니, 잡념이니, 그런 시답잖은 감정들은 저 멀리 내던진 지 오래다. 망설이는 것이 곧 죽음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