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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복부에 화살이 박혔다.
한 발, 두 발, 세 발. 연달아 틀어박힌 세 발의 화살. 나진이 눈을 부릅떴다. 쏘아진 화살에 그 어떠한 사전 동작이 없었던 까닭이다. 카프만은 화살을 당기는 시늉도 무기를 드는 동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카프만의 손등에 달린 작은 쇠뇌에서 화살이 쏘아진 걸 깨달은 것은, 네 발째 화살이 쏘아진 순간이다.
머리가 혼란스러운 까닭에 판단까지 1초가 늦어져 세 발의 화살을 허용했다곤 하나, 네 발째까지 허락할 생각은 없다. 검을 휘두른 나진이 화살을 쳐냈다. 그리 화살을 쳐내며 나진이 카프만에게 한 걸음 내디뎠다.
거리는 좁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검은 닿는다.
어째서 자신을 공격했는지, 어째서 지하도시 아트만을 알고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판단은 뒤로 미뤄둔다. 우선 행동해야만 했다.
쐐엑!
한순간에 거리를 좁힌 나진이 검을 휘둘렀다. 이런 거리에선 사수보다 검사가 유리한 법이다. 보이지 않는 레인저가 무서운 것이지, 눈에 보이는 레인저는 그리 무섭지 않다고 이반도 말하지 않았던가.
······나진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진이 간과한 것은.
카프만 테오시스는 평범한 레인저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는 사실이다. 판초 속에서 카프만의 팔이 튀어나왔다. 그 팔에는 거친 날의 마체테가 들려 있었고, 마체테와 나진의 검이 맞부딪친 순간.
카아아아앙!
큰 소리를 내며 나진의 팔이 뒤로 젖혀졌다. 카프만의 근력은 나진을 상회한다. 검을 쳐내며 비어버린 복부. 그 복부를 카프만이 발로 걷어찼다. 방어구에 가로막혀 깊게 박히지 않았던 화살이 카프만의 군화 밑창에 밟히며 뿌득 소리를 냈다.
화살대가 끊어지며 깊게 박히는 세 발의 화살.
나진이 눈살을 찌푸리고, 이를 악문 채 검을 돌려 잡았다. 몸을 웅크리며 카프만의 다리에 롱소드를 박아 넣고자 나진은 검을 휘둘렀으나.
각인 해방, 파열.
콰아아아아앙!
화살촉에 각인된 주문이 해방됨과 동시에, 나진의 복부에서 세 번의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다.
“커흑!”
화살촉이 터지며 산탄처럼 퍼져나간 쇳조각이 나진의 몸에 깊게 박혔다. 폭발에 직격당한 나진의 몸이 균형을 잃은 채 공중에 붕 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또 한 번의 빈틈.
판초에 들어가 있던 카프만의 오른손에는 어느새 투척용 단검이 쥐어져 있다. 단검을 내던지며 카프만이 왼손에 쥔 마체테를 휘둘렀다. 그 움직임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폭발로 자세가 무너진 나진이 반격하거나 대응하기엔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허나 어려운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뜬 나진은 카프만이 어떤 공격을 할지 예측하고 있었다. 예측했기에,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나진은 대응했다. 고통에 경직된 몸을 억지로 움직여 검을 휘둘렀다.
카앙, 마체테를 쳐내고.
쐐엑, 몸을 숙여 투척 된 단검을 피했다.
그러나 모두 피하진 못해 단검 하나가 나진의 어깻죽지에 틀어박혔다. 어깨에 박힌 단검이 새파랗게 빛나는 것을 깨달은 나진이 뒤로 크게 도약하며, 어깻죽지에 박힌 단검을 뽑아 던졌다.
콰아아앙!
다행히도 그 반응은 늦지 않았다.
뽑아 던지자마자 폭발하는 단검을 보며 나진이 이를 악물었다. 복부가 욱신거렸다. 쿨럭, 하고 입 밖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입에 차오른 핏물을 뱉어내며 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판단을 잘못했다.
거리를 벌리고 말았다.
사수를 상대할 때 거리를 벌리는 것은 악수 중의 악수다. 나진은 어느새 자신에게 겨누어진 카프만의 대궁을 바라봤다. 그 끝에서 화살촉이 번뜩였다.
투웅, 그리고 쐐엑.
카프만이 활시위를 놓는 순간 나진도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화살과 검이 맞부딪친 순간 나진은 제 어깨가 뜯어져 나가는듯한 고통을 느꼈다. 대궁으로 쏘아진, 거의 롱소드를 방불케 하는 굵기의 화살이 가진 저지력은 나진의 상상 이상이었다.
카가가가가가각!
검과 화살 사이에 불똥이 튀었다. 땅에 발을 강하게 디디고 있었음에도, 신발 밑창이 끌리며 나진이 저 멀리 밀려났다. 뿌득, 나진이 팔에 힘을 주어 간신히 화살을 떨쳤을 때는······.
쐐에에에에엑.
다시 쏘아진 화살이 엄습하고 있었다. 고개를 젖히거나 자세를 낮추거나, 도약해 피할 수 없을 만한 적당한 높이로 날아오는 화살. 곧장 검을 휘두를 수 없었기에 신체의 일부분은 내주어야만 했다.
까득, 이를 악물며 나진이 몸을 비틀었다.
옆구리를 화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쳤을 뿐인데도 퍼억, 소리를 내며 살갗이 터졌다. 뚫린 구멍으로 피가 쏟아졌다. 고통에 표정이 일그러지면서도 나진은 눈을 감지 않았는데, 그 덕에 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활시위를 당기는 카프만의 모습을.
상대는 한번 붙잡은 선공을 결코 놓아주지 않는 사냥꾼이다. 결국에 나진은 도주를 선택했다. 이곳에서 카프만과 맞서 싸워 승기를 붙잡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레인저에게 등을 보이고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은 악수 중의 악수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선 도주를 택해야 했다.
날아오는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함과 동시에, 지하수로의 깊은 곳을 향해 나진이 내달렸다. 도망치는 나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카프만은 이내 길게 숨을 내뱉곤 추격을 개시했다.
사냥꾼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번들거렸다.
카프만 테오시스는 노련한 사냥꾼이다.
국경선과 맞닿은 테첼 산맥에서 오랜 세월 근무하며, 제국의 이름에 반하는 것들을 사냥해 온 그는 ‘사냥’이란 행위에 도가 터 있었다.
외국으로 망명하려는 황실의 기사.
제국의 기술을 타국에 팔아넘기려는 마법사.
도주한 숱한 범죄자와, 때로는 왕국군.
강자와 약자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이들을,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사냥해 온 카프만은 사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냥이란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특히나 강자와의 싸움은 더더욱.
사냥감의 특성. 사소한 버릇.
움직임과 반응 속도.
사냥감이 다루는 무기와 전투 방식 등등.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냥은 수월해진다. 그렇기에 카프만은 ‘이반’이라는 모험가··· 아니, 나진이란 이름을 가진 청년에 대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모았으며, 자신의 두 눈으로 관찰했다.
‘제대로 미친놈이더군.’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카프만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의뢰주에게 받은 정보에 의하면 청년의 나이는 열여덟이다. 고작 열여덟의 나이에 소드 시커의 경지에 근접했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상식을 벗어난 재능이었다.
천재 중의 천재인 카론조차 서른에 이르러서야 소드 시커가 되지 않았던가. 18살의 나이에 소드 시커. 그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카프만은 알았다.
어디 그뿐이던가.
악마 기사 토벌, 아르베니아 공작가의 기사단장과의 결투에서 생환··· 자신보다 강자에게 도전해 번번이 살아남은 기록마저 가지고 있다. 제 재능에 취한 이들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카프만은 두 눈으로 관찰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청년에겐 재능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순간적인 판단력과 과감하게 달려드는 실행력. 저 드높은 곳으로 올라갈 자질을 갖춘 청년이다.
······그리고, 카프만은 그런 나진을 죽여야 했다.
의뢰를 받았으니까. 그 의뢰를 거부할 수 없으니까. 카프만은 도망친 나진을 추격하며 허리춤에서 꺼낸 연초를 입에 꼬나물고 불을 붙였다.
“···빌어먹을.”
길게, 아주 길게 연기를 빨아들이고 뱉어낸 카프만이 혀를 찼다. 제 기분이 좆같던, 의뢰주의 면상을 갈아버리고 싶든 말든 사냥은 시작됐다. 시작됐으면 끝을 봐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테니까.
카프만은 결코 방심하지 않는다.
설령 자신이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자신이 강자의 입장이라고 한들··· 판째로 뒤집히는 것을 몇 번이고 경험한 까닭이며 뒤집어본 경험이 있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추격하는 청년에겐 판을 뒤집을만한 재능과 판단력이 있다. 파우베에게 치명상을 입고도,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한 방을 먹이는 모습은 범인(凡人)의 영역에선 벗어나 있었으니까.
‘흑마법사 파우베를 정면에서 갈아버렸다.’
숨기고 있는 수단이 더 존재한다.
그러니 철저하게 몰아붙여라.
카프만은 그리 생각하며 나진의 흔적을 쫓았다. 위로 올라가는 길은 카프만이 막아서고 있었기에, 나진은 지하수로의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은······.
콰아아아아앙!
수로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카프만은 다 태운 연초를 수로에 던지며 제 목덜미를 긁었다. 함정에 걸린 모양이지.
카프만이 이 도시에 도착한 것은 전날 밤.
그리고 사냥은 전날 밤부터 시작됐다.
카프만은 지하수로의 전역에 덫을 펼쳐놨다. 흑마법사가 걸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기야 했지만, 누가 걸리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흑마법사든 나진이든 둘 다 카프만에게 있어선 사냥감이었으니까.
파스슥.
긁적인 목덜미에서 살갗이 바스러지며 피가 흘렀다. 목에 새겨진 낙인을 긁으며 카프만이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레인저는 아주 좆같은 놈들이지.
왜 좆같냐고? 그놈들이 깔아대는 함정이 진짜 뒷목 잡게 하거든. 함정을 그렇게 까는 것도 재능이야. 내가 보기에 레인저의 경지는 함정을 얼마나 ‘좆같게’ 까는지로 결정 나는 것 같다니까?
호르세 그놈이 함정 하난 기깔나게 깐단 말이지.
아, 보고 있다 보면 창의적이야 아주.
사람을 그렇게 엿먹이기가 힘든데. 내가 참 온화한 사람인데 그놈이 깐 함정만 보면 혈압이 올라. 뭐? 내가 그리 온화한 것 같진 않다고?
쓰읍. 지금 네 머리를 안 후리는 것만 봐도 내 온화함이 증명된 것 같지 않냐? 응? 이 녀석아.
뭐. 아무튼.
레인저는 안 보일 때가 가장 무서워. 그리고 그놈들이 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미 사냥의 준비가 끝난 거지. 거 호르세를 뭐라 부르는지 알잖아?
땅거미.
그거 윗동네에서 레인저들을 부르는 멸칭하고 비슷한 거거든, 사실. 내 선배 중 몇은 레인저를 거미 새끼라 불렀어.
거미줄을 펼쳐놓고 사냥감을 천천히 말려 죽여.
그렇게 사냥감이 힘이 다 빠졌을 때 제 이빨을 콱 하고 박아 넣지. 그래서 거미라 부르는 거야.
비슷하잖냐. 사냥법이.
그게 레인저들의 사냥 방식이다.
뭐··· 네가 호르세와 싸울 일은 없겠지만, 그냥 알고는 있어라. 레인저랑은 오래 싸우면 싸울수록 불리하다. 단기 결전을 내거나, 아예 저만치 도망가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겠지.
둘 다 못 하는 상황이면?
뭐 어쩌겠냐.
도박이라도 해야겠지.
“후우······.”
나진이 제 옆구리를 움켜쥔 채 길게 숨을 내뱉었다. 파우베와의 전투에서 누적된 피로와, 카프만과의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 나진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화살에 꿰뚫린 옆구리에선 피가 흐른다.
폭발에 직격당하고, 화살촉의 파편이 깊게 박힌 복부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욱신거렸다.
끄으으으윽······.
신음을 흘리며 몸에 박힌 화살촉의 파편을 뽑아내며 나진이 걸음을 옮겼다. 부상이 이것뿐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도주하다 함정을 밟은 탓에 부상이 더 늘었다. 이젠 걸음을 옮기는 것도 주의해야만 했다.
이 지하수로에 함정이 가득하다.
도대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도 알 수 없는, 그리고 곳곳에 숨겨져 있어 보이지도 않는 함정이 가득하다. 그것들을 경계하며 움직이다 보니 정신적인 피곤함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사고하기를 포기하진 않았다.
나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레인저에 대한 정보와, 이반에게서 엿들었던 정보를 몇번이고 곱씹었다. 이 상황을 뒤엎을 방법을 찾아야만 했으니까.
「그놈들이 짠 판 위에서 놀아주면 안 된다.」
「미친 짓이라도 해서 판을 엎어야 해.」
이반과 오펜은 참 많은 것을 나진에게 알려주었더랬다. 그들에게 있어선 술잔을 부딪치며 떠들어댔던 잡담에 불과한 것들이라고 한들, 나진에게 있어선 그들의 이야기가 곧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들을 나진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야, 오펜 그 이야기 있잖냐.」
「무슨 이야기 말이냐.」
「레인저 상대로 엿먹였던 이야기. 몇 번을 들어도 술안주로 그만한 이야기가 없지.」
「몇 번째 들려주는 건지 모르겠군.」
「나진 이놈은 처음 들을 거 아냐. 한 번 더 들려주라고.」
오펜이 들려준 바깥세상의 이야기.
이반이 추임새를 넣고, 박수를 치며 이거 완전 미친놈이었다니까 하고 감탄하는 목소리. 노을빛 조명 아래서 술잔을 부딪치는 두 스승과, 안줏거리를 집어 먹던 제 모습이 나진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이야기 속에 단서가 있었다.
나진은 선택했다.
‘멀린.’
-말해.
‘길을 찾아줘요.’
자신과 똑같은 풍경을, 똑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을 멀린에게··· 자신의 길잡이에게 나진은 부탁했다. 이 방법을 성공시킬 길을 찾아달라고.
나진이 떠올린 계획.
골조만을 세운 계획.
그 계획에 멀린은 살을 붙였다. 완성되지 않은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그것이 그녀의 역할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