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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생에 처음으로 하늘을 마주했다.
마주한 것은 하늘뿐만이 아니다. 나진은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벌레들이 우는 소리. 강물이 흐르는 소리. 불어오는 바람에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 그 모든 것이 나진에겐 낯선 것들이었다.
머리칼을 간질이는 시원한 바람도.
탁 트인 드넓은 풍경도.
탁하지도, 숨이 막히지도 않는 맑은 공기도.
무엇보다도 저 드넓은 밤하늘과 별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고, 귀로 듣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새로웠기에 낯설었고, 낯설었기에 신비했다. 나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처음으로 바깥세상의 공기를 마시며 나진은 눈을 크게 떴다.
보인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무언가에 가로 막히지 않고 시야는 쭉쭉 뻗어나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보이는 것은 언제나 보던 광석이 박힌 천장이 아니다. 시야에 다 담기지도 않을 만큼 드넓은 밤하늘을 장식한 별들이 보였다.
밤하늘. 그리고 별.
소년이 그토록 갈망해 왔던 것.
수많고 수많은 별을 세어 가며 나진은 하늘의 중심을 보았다. 그곳에 나진이 찾던 별자리가 있었다.
밤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걸린.
가장 거대한 별자리.
13개의 별이 이어진 검의 형태의 별자리.
‘성좌, 선별의 검.’
대영웅 아서왕의 별자리.
동화책에 실린 삽화로 몇번이고 봐왔던 별자리를 오늘에서야 나진은 제 두 눈으로 직접 마주했다. 별자리를 마주한 순간, 지하에 갇혀있던 소년의 세상은 한순간에 넓어졌다.
두근.
나진은 제 심장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저 별자리와 자신과의 거리는 까마득하지만, 자신이 향해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만큼은 알 수 있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소년에게 별은 보이지 않는 막연한 목표가 아니었다.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그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목표.
별을 바라보는 나진의 눈동자는 꿈을 꾸는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동경을 품은 채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오래전 나진이 잃어버렸던 빛이었다.
“후우······.”
넓어진 세상에서 나진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줄곧 체념하며 수많은 것을 놓아왔던 나진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아무것도 놓지 않으리라. 제 아무리 높은 곳에 걸려있다 한들 손을 뻗어 붙잡고 마리라.
이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가장 높은 곳에 오르라고.
나진은 밤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걸려있는 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신이 올라야 할 곳을 가늠하며 나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젠가 반드시···.’
아직은 너무나도 허황된 바람.
그렇기에 소리 내 발음하지 않은 채 나진은 그 소망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었다. 아직 누구에게 들려줄 만한 소망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명심하라.』
그 목소리는.
『별은 언제나 당신을 바라보고 있으며.』
발음되지 않았기에, 속으로 품었기에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어야 할 나진의 목소리는.
『당신이 별을 바라보고 기도할 적, 별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어느 별에겐 닿았다.
뚜욱.
나진의 감각이 한순간 날카롭게 곤두섰다.
그러나, 감각을 곤두세웠다 한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진은 제 몸이 딱딱하게 굳었음을 눈치챘다. 움직일 수 없다. 손가락 하나는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진은 멈춘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불어오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던 풀밭이 멈췄다. 쏴아아아, 하고 들려오던 물줄기 소리가 그쳤다. 움직이는 것들이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멈춘 순간.
[찾았다.]
나진의 귓가에 목소리가 맴돌았다.
나진이 바라보고 있던 아서왕의 별자리, 그 곁에 자리 잡은 잔잔한 호수와도 같던 별자리가 한순간 들끓었다. 별이 빛나고 나진의 시야가 점멸했다.
나진의 눈동자가 청백색으로 물들었다.
무언가 자신의 몸을 낚아채는 듯한 감각. 수면 아래로 끌려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나진의 시야가 뒤흔들렸다.
“···윽!”
눈앞에 수많은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멈췄을 때, 그제야 나진은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안개가 낀 듯 시야가 흐릿했다. 몇번이고 눈을 깜빡이고 나니 그제야 주변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에 들어온 것은 숲속의 호수다.
방금까지 시야가 탁 트인 강가에 누워있었지만, 지금 나진의 눈동자에 보이는 것은 우거진 숲속의 호수였다. 한순간에 뒤바뀐 풍경에 나진이 당황하며 몸을 일으킨 순간이다.
“드디어.”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울린 것과 같은 목소리.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는 맑고 부드러웠으나, 그 속에는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느껴졌다.
“드디어 찾았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나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흘러내리는 물빛의 머리칼과 호수를 닮은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 있었다. 호숫가에 놓인 바위에 걸터앉은 여인과 나진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윽고, 그녀가 바위에서 내려왔다.
탁, 하고 땅을 부드럽게 밟으며 그녀가 나진을 향해 다가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여자를 나진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바라봤다.
‘위화감.’
나진은 기이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눈을 마주하려 해도 시야가 자꾸만 흔들린다. 마치 본다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 것처럼. 자꾸만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나진은 여인의 옷을 보았다.
마법사의 로브 같기도.
격식을 차린 기사의 예복 같기도 한 옷자락.
그녀의 걸음걸이를 따라 나부끼는 옷자락의 한구석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을 나진은 알고 있었다. 동화에서 본 적이 있었으니까.
‘호수와 지팡이를 상징한 문양.’
이 세상에서 단 한 명만이 새길 수 있는 문양이었고, 어느 성좌를 상징하게 된 문양이었다.
호수의 마법사.
혹은, 선별의 지팡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성좌의 진명을 나진이 무심코 입에 담으려는 순간이다. 어느샌가 뻗어온 손길이 나진의 입을 틀어막았다. 가느다란 손가락이었지만 붙잡힌 순간 나진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딜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을 말하려 해?”
멀린이 눈을 부릅떴다.
“너, 대체 뭐야?”
“너, 대체 뭐야?”
평정을 연기하고 있다곤 하나, 지금 이 순간 멀린은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그녀조차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조금 전 귓가에 울린 목소리.
그것은 얼마 전 아서를 ‘시대의 풍운아’라며 모욕했던 정신 나간 애송이의 목소리와 일치했고, 멀린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목소리의 주인을 낚아챘다. 이는 대상의 의식을 낚아채는 행위.
솔직히 말해서, 멀린은 이게 가능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멀린은 수백 년도 더 전에 승천한 성좌다.
별을 가진 채 현세에 남은 인간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매듭짓고 하늘로 올라가 ‘완결’ 된 존재. 그런 존재가 개입할 수 있는 곳은 몹시 한정적이며 움직임에도 제약이 덕지덕지 붙는 법이다.
‘물론 무시하고 끌고 오려면 할 수는 있지만.’
당연하게도 반발이 있을 거다. 그렇기에 반발이 느껴지면 손을 놓으려고, 일단 위치만 확인해 놓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도한 건데······.
‘이게 왜 돼?’
멀린은 제 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자신에게 붙잡힌 채 당황스러운 듯 눈을 깜빡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이곳으로 끌려왔다는 뜻이었다.
소년은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멀린 또한 소년만큼이나 당황하고 있었다.
“너 대체 뭐냐고.”
멀린에게 붙잡힌 소년이 눈을 깜빡이다가, 팔을 뻗어 멀린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걸 놔줘야 말이라도 할 수 있을 거 아니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당당한 태도가 몹시 아니꼽지만, 일단 틀린 말은 아니었다. 멀린은 밀치듯이 나진을 놓아줬다.
“말해봐.”
“나진입니다.”
“···뭐?”
“뭐냐고 물으셨잖아요. 나진이라고요. 제 이름.”
나진이 붙잡혔던 제 턱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일단 덤덤히 이름을 뱉은 뒤, 나진은 제 머리를 빠르게 굴리고 있었다.
제 눈앞에 있는 것은 멀린이라고 나진은 확신했다. 동화 속에서 보았던 묘사와 똑같았으니까.
아서왕의 조언자이자, 아서왕의 여정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전설 속의 별자리. 동화에서나 봤던 인물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됐단 사실에 심장이 두근거리긴 했지만···.
‘그건 일단 제쳐두고.’
나진은 상황을 파악했다.
왜 멀린이 자신을 이곳에 끌고 왔고, 또 왜 자신에게 적대적인지 알기 위해서. 엑스칼리버를 뽑아서 이곳에 끌려온 건가? 그렇게 나진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무렵이다.
“웃긴 놈이네 이거. 내가 언제 네 이름 물어봤어?”
멀린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서는 시대를 잘 타고난 풍운아. 이거, 네가 한 말 맞지?”
···시대를 잘 타고난 풍운아?
그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지. 말을 곧장 이해하지 못한 나진이 고개를 천천히 기울였다. 그러나 이내 나진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서는 시대를 잘 타고났을 뿐인 풍운아.」
「이 시대에 태어났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
기억이 났으니까.
「꼬와요? 기분 나쁘죠?」
「그럼 내려와서 천벌이라도 내려보든가.」
자신이 내뱉었던 망발을 기억해 내고 말았으니까. 나진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나진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그게 들렸다고?’
나진은 조금 억울했다.
별은 안 보이는데 목소리만 들리는 건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일단 그건 그거고. 나진은 이제야 멀린이 자신에게 품은 적대감이 이해가 됐다.
“그건 살짝 오해가···.”
“오해 같은 소리하네. 내가 진짜 물어보고 싶은 건 그거야. 도대체 뭔 깡으로 그런 말을 했니? 아니, 애초에 네 목소리는 왜 이렇게 선명해?”
멀린이 한 걸음 다가왔다.
“이상하단 말야. 이렇게까지 목소리가 선명한 것도, 낚아챈다고 바로바로 내 앞으로 끌려오는 것도, 내 성역(星域)인 이곳에서 형태와 의식을 온전히 유지하는 것도······.”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가늘어진 푸른 눈동자가 나진을 노려봤다.
“전부 다 이상해. 너, 혹시 모드레드 그 씹어먹을 놈하고 계약이라도 했니? 그게 아니고서야 말이 안 되는데? 아니 그렇다 쳐도 말이 안 되는데.”
탁. 멀린이 나진의 코앞에 섰다.
서로의 숨결이 맞닿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 멀린이 나진을 똑바로 노려봤다. 멀린의 푸른 눈동자에 나진의 노을빛 눈동자가 비췄다.
“너 대체 뭐냐고.”
몇번이고 던진 질문.
그러나 그 질문에 나진은 곧장 답하지 못했다. 멀린은 길게 한숨을 내뱉고 입을 열었다.
“됐다. 사실, 네가 뭐든 그건 별로 안 중요해.”
중요한 건.
“네가 아서를 모욕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 모욕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다는 거지.”
천벌을 내려보라고 말한 건 너야.
그리 중얼거리며 멀린이 손가락을 튕겼다. 이곳은 그녀의 영역이었고, 일단 이곳에 끌려왔다면 모든 것은 그녀의 지배하에 있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자신이 손가락을 튕긴 순간부터.
눈앞의 소년은 몸을 움직이는 것, 눈을 깜빡이는 것, 하물며 숨을 쉬는 것조차 자신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리라. 그렇게 어떤 식으로 벌을 내릴까 고민하며 나진을 향해 멀린이 손을 뻗은 순간이다.
콱.
멀린의 손목이 나진에게 붙잡혔다.
물론 이런 손길 따위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으며, 자신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저 손가락을 아주 작은 모래알 크기까지 분해할 능력이 멀린에겐 있었다.
있었지만, 멀린은 그리하지 못했다.
눈을 크게 뜬 채 멀린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손길을 바라봤다.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소년에게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놀라움과 흥미. 그러나, 제 손목을 붙잡은 손길을 바라본 순간 그런 감정들은 단숨에 휘발됐다.
휘발 된 자리를 채우는 것은 경악이다.
멀린은 보았다. 나진의 손목에 새겨진 별자리의 문양을. 이는 본래 나진의 눈동자에만 보이는 문양이다. 제 아무리 뛰어난 강자라 한들, 저 밤하늘의 성좌라 한들 나진의 손목에 새겨진 문양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멀린 그녀만큼은 예외다.
엑스칼리버를 수납하는 별자리의 회로를 설계한 것이 바로 멀린 본인이었으므로. 저 문양이 가진 의미를 멀린은 모를 수가 없었다.
멀린이 고개를 들었다.
제 손목을 붙잡은 손길에서, 소년의 눈을 향해 멀린은 시선을 옮겼다. 노을빛이었던 소년의 눈동자는 어느샌가 백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경악으로 물들었던 멀린의 눈동자가 이내 분노로 뒤바뀌었다.
까득.
멀린이 이를 갈았다.
나진의 손길을 뿌리치고, 그 손목을 역으로 멀린이 콱 움켜쥐었다. 움켜쥔 손에 힘을 주자 백금색의 별빛이 나진에게서 빠져나왔다.
휙, 빠져나온 별빛을 멀린이 낚아챘다.
별빛이 한데 모여 만들어지는 것은 백금색의 성검. 엑스칼리버를 나진에게서 빼앗은 멀린이 길게,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필이면.”
그녀가 제 눈가를 꾸욱 눌렀다.
“하필이면···!”
엑스칼리버가 뽑히고 사흘.
그동안 자신은 물론이고, 밤하늘의 숱한 성좌들 중 그 누구도 찾지 못했던 성검의 주인. 그 주인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지만 멀린은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앞에 서 있는 것은 소드마스터가 아니다.
소드마스터에 근접한 강자도 아니며.
자신만의 별을 가진 특별한 존재도 아니다.
아서는 시대를 잘 타고난 풍운아, 라는 망발을 내뱉은 것 외에는 특별할 거 하나 없는 애송이. 그 애송이가 성검의 주인이란 사실을 멀린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거.”
하지만, 선별의 검은 소년을 선별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제 것 같은데.”
나진이 허공을 콱 움켜쥐었다.
멀린의 손에 들려있던 엑스칼리버가 별빛으로 바스러졌다. 바스러진 별빛은 다시금 나진의 손으로 돌아와 검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렇게 뺏어가심 곤란해요.”
멀린이 쥐었을 때와는 달리, 소년의 손에 들린 검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마치 이쪽이 진짜 주인이라는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본 멀린의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와.”
멀린이 감탄했다.
순수하게 놀랐다는 듯 그녀가 탄식했다.
“뭐 하는 새끼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