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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 아트만에 별이 떠올랐다.
하늘을 가린 천장으로 하여금 그 어떠한 별빛도 닿지 않는 아트만. 그런 아트만에 떠오른 별은 그렇기에 더더욱 돋보이는 것이었다.
짙은 안개 따위에 가려지지도, 광석등의 어스름한 불빛에 파묻히지도 않는 선명한 빛.
그 무엇으로도 감히 가릴 수 없는 백금색의 별빛은 소년이 그토록 갈망해 왔던 것이다. 소년은 자신의 손에 들린 별을 바라보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뽑았다. 정말로.’
제 손에 들린 것은 별의 검.
아서왕의 상징과도 같은 성검, 엑스칼리버. 빛나는 검을 바라보는 나진의 눈동자가 백금색으로 물들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걸어본 도박.
도박의 근거라곤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와 자신의 직감뿐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검을 뽑아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손에 들린 검의 무게가 이것이 현실임을 나진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게 현실이라면.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약쟁이 하칸.”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꿈을 꾸던 소년은 현실로 돌아왔다. 손가락을 타고 느껴지는 서늘한 칼자루의 감촉을 느끼며, 나진이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들어 올린 칼끝이 향한 곳은 하칸.
감히 이반의 영역에 침범한 무뢰배에게 검을 겨눈 채 나진은 미소 지었다.
“남길 말은 있나?”
만신창이인 소년.
조금 전과 바뀐 것이라곤 소년의 손에 들린 한 자루의 검뿐이다. 그러나, 소년은 미약하게나마 검사였고 검사에게 있어 검(劍)이 바뀌었음은 모든 것이 바뀌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전황은 엎어졌다.
저울은 기울어졌다.
소년은 서 있었고 하칸은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에겐 아직도 숱한 중독자들이 남아 있었으나, 소년이 손에 쥔 별은 고작 그런 것들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칸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말이 돼?”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버려진 것들만이 가득한 이 더러운 지하도시의 소년이 엑스칼리버를 뽑아낼 것이라고. 오늘의 이날을 위해 자그마치 17년을 준비한 하칸이다.
그런 자신을 가로막은 소년의 모습에 하칸은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진이 땅을 박찼다.
백금색의 별빛을 끄는 검을 든 채 소년이 하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중독자들은 주인의 명령 없이도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이미 끝나버린 것들로는 소년의 길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촤아아아아악!
물살을 가르듯이 중독자들이 쓸려나갔다.
그 모습을 하칸은 멍하니 바라봤다. 그곳엔 그녀가 윗동네에 놓고 온 꿈이 있었다. 그토록 갈망했으나 끝내 가지지 못했던 것.
‘별.’
찬란히 빛나는 별.
이 도시에 떨어진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각 구역을 대표할 만한 강자들은 한때나마 별을 꿈꾸던 이들이었다.
땅거미 호르세도.
외눈의 이반도.
약쟁이 하칸도.
모두가 자신만의 별을 가지기를 꿈꿨었다. 저 드높은 밤하늘에 자신의 별을 걸기를 갈망했다. 그렇게 밤하늘을 향해 손을 뻗다가 이 도시에 떨어지고 만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별빛을 결코 잊지 못했다.
“아아······.”
다가오는 별 앞에 하칸은 신음했다.
별은 이윽고 하칸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하칸은 고개를 올려 소년을 바라봤다.
폭발에 휘말려 만신창이인 몸. 옷에 묻은 그을음과 중독자들의 핏물. 그러나 그 눈동자만큼은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욱 선명한 빛을 품고 있었다.
하칸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최후를 직감한 그녀는 조소했다. 스스로의 운명에. 그리고 소년에게 닥쳐올 비참한 미래에.
“···애송아.”
하칸이 소년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것은 소년과 같은 것을 꿈꾸었으나, 이 도시에 추락하고만 패배자의 웃음이었다.
“그건 이 도시에선 나와선 안 될 빛이야.”
너는 너무 눈에 띄고 말았다.
네게 검을 뽑을 자격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완성되지 못한 네가 가져선 안 될 빛이라고.”
너는 너무 앞서고 말았다. 준비를 갖추지 않은 채 너무나도 빛나는 것을 손에 쥐고 말았다.
“저 윗동네의 높으신 분들은 별빛을 가진 이들을 축복하지 않아. 준비되지 않은 자가 빛을 가졌다면 뭉개버릴 뿐이지.”
그녀가 제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불로 지져버린 낙인이 남은 오른팔. 그것은 외눈의 이반이 빼앗긴 오른쪽 눈동자와 같은 것이었고, 호르세가 빼앗긴 손가락과 같은 것이었다.
“너도 뭉개질 거란다.”
우리보다도 더 큰 빛을 움켜쥐었으니.
너는 더 거대한 것을 잃게 되겠지.
“네 모든 것을 잃게 될 거야.”
그것은 저주이자 예언이었고, 조언이었다.
하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진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를 떠올렸다. 죽음을 직감한 트릭시가 자신에게 던지던 저주의 말.
「나진, 너는 평생 이 도시에서 썩게 될 거다!」
그때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언제나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알기에 나진은 그들의 말을 다만 흘려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선을 넘어 나진은 달리기 시작했다. 닿지 않는 것에 손을 뻗었고 움켜쥐었다. 이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달리기 시작할 차례였다.
그 누구도, 그 길을 막을 수는 없다.
“그건 당신들 이야기지.”
나진이 말했다.
“실패하고 이 도시에 떨어진···.”
성공과 실패는 한 끗 차이.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부딪쳐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지난날처럼 체념하고, 포기하고, 씁쓸함을 느끼느니 차라리 부딪쳐서 깨지는 길을 선택하겠다.
오랜 세월 제 발을 묶던 족쇄는 부서졌다. 소년의 눈동자는 지하도시에 드리운 탁한 노을빛이 아닌, 별의 검이 내뿜는 백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실패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생각은 없어.”
“···하!”
실패자. 그 단어에 하칸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하칸이 입꼬리를 틀어 올린 채 조소했다.
“어디 한 번.”
나진이 검을 들어 올렸다.
“직접 느껴보고도···.”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네가 알지 못하는 저 위의 세상이 얼마나 잔혹하고, 또 어디까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 몸으로 직접 느껴보라고 하칸은 소리쳤다.
그리고, 나진은 들어 올린 검을 휘둘렀다.
약쟁이 하칸의 몸이 기울었다. 바닥에 흐르는 피를 내려다보던 나진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온몸이 쑤셔왔다. 단지 부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듯한 탈력감.
엑스칼리버를 휘두른 직후부터 탈력감은 심해졌다. 나진은 숨을 몰아쉬며 검을 늘어트렸다. 하칸을 쓰러트렸고, 중독자들을 모조리 베었다. 이대로 일이 끝난다면 좋을 테지만······.
“······.”
나진은 말없이 시선을 늘어트렸다.
그곳에는 난리 통에 도망쳤던 주민들이 있었고, 건물에 숨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지하도시의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은 보고 있었다.
자신이 손에 쥔 검을.
지하도시에 떠오른 별을.
하지만 모두가 별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별이 아닌 별을 쥔 소년을 보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윗동네에서 보내온 병사였으며, 엑스칼리버의 주변을 지키던 경비병들이었다.
그들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나진은 깨달았다.
저들을 쫓아가서 죽여야 함을. 저들의 입을 틀어막아야 함을. 하지만, 인파 사이로 사라진 그들을 쫓아갈 힘이 나진에게 남아있진 않았다. 나진은 다리를 절뚝이며 뒷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현실이기에 나진은 판단해야만 했다. 하칸의 말마따나 짓뭉개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진은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별을 모시는 별의 교단.
성혈(星血), 성체(星體), 성휘(星輝).
먼 과거에는 하나였지만 오늘날 셋으로 분립된 교단. 그 중 성휘 교단의 수장 격인 대사제 오를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베를로.”
두 병사를 데리고 집무실을 찾아온 교단의 기사, 베를로. 그는 오를랑의 앞에 두 병사를 무릎 꿇린 후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들으셔야만 하는 소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어젯밤 성검이 뽑힌 일에 대해선가? 그거라면 이미 질리도록 듣고 있네만. 각 부지에서 서신이 날아와 정신이 없어. 나는 지금 아주 바쁘단 말일세.”
오를랑이 툭툭 책상을 두들겼다.
“내게 직접 보고를 올려야 할 만큼 중요한 이야기인가?”
“예, 무엇보다도 더.”
과묵한 기사 베를로가 저렇게까지 이야기할 정도라면 필시 중요한 정보일터다. 오를랑이 길게 숨을 내뱉고선 베를로에게 손짓했다. 어디 한번 이야기해 보라는 듯이.
그리고.
베를로의 입에서 들려온 이야기는 오를랑이 깃펜을 내려놓기에, 그리고 눈을 부릅뜨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이야기였다.
“베를로.”
“예, 하명하십시오.”
“자네가 입에 담은 것에 조금이라도 거짓이 섞여 있다면, 자네는 목소리를 잃은 채 방금 자네가 입에 담은 곳에 떨어져야만 할 테야.”
“신께 맹세하건대 진실입니다.”
“이게 지금 말이 되는······!”
오를랑이 책상을 내려쳤다.
“내 그리 검에 손을 대는 이가 없도록 경계하라 했거늘! 그 죄인들의 도시에서 성검을 뽑은 이가 나타났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이야기란 말인가!”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핏발이 선 제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오를랑이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조금 전 기사 베를로는 말했다. 지하도시의 어느 소년이 어젯밤 엑스칼리버를 뽑았노라고.
검을 지키던 병사들의 증언이었고.
그 도시의 죄인들의 목격담이었다.
‘검의 교단의 검성, 성혈 교단의 살인귀, 제국의 소드 마스터. 그 셋 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늘······.’
성검이 뽑히며 발칵 뒤집힌 대륙.
세간이 성검을 뽑았으리라 추측하는 인물은 위의 셋 뿐이었다. 그들만이 아서에 가장 가까이 있었으며, 검을 뽑을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들 중 누군가 검을 뽑고,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 세간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성휘 교단의 대사제인 오를랑 또한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검을 뽑은 건 그 셋 중 하나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도, 별빛조차 닿지 않는 죄인들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어느 소년이 검을 뽑았다. 그 사실을 오를랑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일이 벌어진 이상 판단해야만 했다.
하나의 교단을 이끄는 대사제의 자리란, 언제나 빠른 판단을 요구하는 자리였으므로. 늙은 사제인 오를랑은 상황을 이해하기보단 판단하기를 선택했다.
“···목격자는? 이 일을 아는 자는 얼마나 되지?”
오를랑이 질문했다.
질문에 베를로는 답했다.
“죄인들의 도시에선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다만 이 도시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인물이라면 이 둘 뿐입니다.”
그가 오를랑 앞에 무릎 꿇린 두 병사를 가리켰다. 오를랑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둘 뿐인가?”
“예. 어젯밤 경비를 서던 병사 둘 입니다. 이들은 임무에 소홀했으며, 죄인이 성검에 다가가는 것을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처리하게.”
오를랑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내려진 판결에 두 병사가 자비를 구하기도 전에 베를로의 검이 움직였다. 휘둘러진 칼날이 두 병사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촤악.
피를 흩뿌리며 쓰러지는 병사에겐 시선조차 두지 않은 채 오를랑은 베를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성혈 교단의 살인귀가 검을 뽑지 않은 것은 다행이나, 이래서야 더 큰 문제이지.”
오를랑은 베를로가 발 디디고 선 곳을 가리켰다.
“이곳은 성휘 교단의 본교회가 자리 잡은 곳이며, 교단의 심판대가 자리 잡은 곳이지. 이런 성역에서 심판 받은 죄인이 성검을 가질 자격을 가지고 있단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성휘, 성체, 성혈. 각 교단은 저마다의 심판대를 가지고 있으며 심판의 방식 또한 제각각이었다.
성혈(星血) 교단은 피로서의 죄를 묻는다.
죄지은 이단을 가장 많은 별이 내려다보는 곳에서 피 흘려 죽게 함으로서 죄를 벌한다.
성체(星體) 교단은 몸으로서의 죄를 묻는다.
죄지은 이단의 몸을 갈가리 찢어 흩뿌림으로써 그들은 죄를 벌한다.
그리고 성휘(星輝) 교단은.
빛으로서의 죄를 묻는 교단은, 죄인에게서 별빛을 볼 기회를 박탈한 채 지하에 가둔다. 별의 은혜를 받지 못한 채 평생 썩어감으로써 그 죄를 벌한다.
“별의 빛 아래 심판당한 죄인이 검을 뽑아냈음은.”
오를랑은 단언했다.
“성휘 교단의 심판대의 근간을 뒤흔드는, 그리고 교단의 본질을 더럽히는 일이야. 본래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났단 이야기이지.”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 말을 이해했을 거라 믿네. 베를로 경.”
처리하게. 오를랑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온 대륙의 강자들이, 기고 나는 초인들이, 하물며 저 밤하늘의 별조차도 아직 누가 검을 뽑아낸지 모르고 있다. 그러니 지금 뿐이다.
없던 일로 만들어라.
조용히, 그리고 깔끔하게.
물론 오를랑에겐 다른 방법도 있었다.
교단의 방식에 예외를 두어 그 소년은 죄를 사해 자신의 곁에 두는 방법도, 혹은 교단이 잘못된 심판을 내렸음을 인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를랑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교단을 이끄는 대사제였고, 제 교단에 대한 믿음이 그 누구보다 굳건했다. 교단이 걸어온 길에 조금의 결점도 있어선 안됨을 그는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만들어지고만 결점을 묻어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그 결정에는 어떠한 타협도 없다.
오를랑은 줄곧 그렇게 살아왔기에.
언제나 그렇게 정리해 왔기에.
지하도시의 위에 존재하는 성휘 교단의 본교회의 수장은 소년에 대한 판결은 내렸다.
“내가 자네를 믿어도 되겠나?”
“기대에 답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베를로가 집무실을 떠났다. 뒤늦게 들어온 이들이 병사의 시체를 끌고 가는 가운데, 베를로는 교회의 복도를 걸으며 생각했다.
죄인들의 도시, 아트만.
그곳에 보낸 교회의 병사들을 관리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고, 그렇기에 그 도시의 지배자가 누구인지 베를로는 잘 알고 있었다.
‘아탕가의 기사 이반.’
한때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았고, 같은 전장에 섰으나 끝내는 추락하고 만 기사가 바로 그 도시의 지배자였다. 베를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후배 얼굴을 한번 봐야겠군.”
전(前) 아탕가의 기사, 베를로.
명예도 긍지도 제 손으로 버렸기에, 더는 아탕가의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없게 된 교단의 사냥개는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