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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제 내면이 격동함을 느꼈다. 지하(地下)에 묻힌 씨앗은 지상(地上)을 원한다. 두꺼운 땅을 뚫고 세상에 꽃피우기를 원한다. 씨앗을 묻어둔 땅에 금이 가고 작은 틈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번쩍.
나진의 검기가 한층 짙어졌다. 앞으로 한 걸음. 단 한 걸음만을 남긴 채 나진은 질주했다. 카아아아앙! 창대를 휘둘러 투구기사를 떨쳐낸 호각성이 나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나진이 피워낸 별빛을 보는 순간 호각성의 몸이 한순간 정지했다.
정지는 짧다. 뒤이어 호각성이 포효했다.
별을 잃어버린 성좌는 본능적으로 별을 원한다. 새하얗게 빛나는 별, 자신이 더는 갖지 못하게 되는 별을 갈망한다. 호각성이 짐승처럼 땅을 박찼다. 그 움직임은 과연, 짐승 같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콰앙!
두 다리로는 모자랐는지 두 팔, 손에 쥔 창대까지 활용해 호각성은 나진에게 달려들었다. 창으로 땅을 후려치며 그 반동으로 거리를 좁힌 호각성이 제 손아귀를 휘둘렀다.
······호각성은 이미 수십 년도 전에 추락한 성좌다. 오랜 세월에 걸쳐 부상과 회복을 반복한 그의 육체는 이미 태반이 별빛으로 대체됐다. 지금의 그의 육체에선 인간인 부분을 찾기가 더 어려우며, 그건 곧 비효율적인 부분이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그 손아귀조차 짐승의 발톱이나 다름없다. 그가 손아귀를 휘두를 적 칼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호각성이 할퀴듯 휘두른 손아귀와 나진의 검기가 맞부딪친 순간 거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가가가가가강!
불씨가 튀어 오른다. 손아귀를 휘두름과 동시에 호각성은 남은 한손으로 쥐고 있는 창대를 휘두른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엄습한 창대를 확인한 나진은 이번에는 막지 않았다.
스칵!
검을 휘둘러 창대를 베어냈다.
제 아무리 오러를 둘렀다 한들, 빈틈은 존재하는 법이며 낡고 오래된 창대는 나진의 검기를 단 1초도 버티지 못했다.
쿠웅!
그러나 호각성이라 한들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창대가 잘린 순간 호각성이 걸음을 내딛기 위해 들어 올린 발로 땅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땅이 흔들림과 동시에 땅에 박혀있던 다른 창대가 튀어 올랐다.
콱, 하고 창대를 낚아챔과 동시에 호각성은 창을 내질렀다. 두 동작 사이에 구분은 없다. 발도술의 고수가 검집에서 검을 뽑아냄과, 검을 휘두르는 동작에 구분을 두지 않듯 호각성 역시 마찬가지다.
한 자루의 창으로 초월에 도달한 무인. 당연하게도 그 기술은 범인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투확!
창을 내지르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창날에 걸린 공기가 소용돌이치고, 한 점으로 모여들다가 폭발하기까지 한다. 두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기술에 나진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저 오러는 또 어찌나 날카로운가?
오러를 두른 창날을 받아치는 순간 저리는 것은 손아귀뿐만이 아니다. 검을 쥔 손을 넘어 팔이, 팔에서 어깨로, 어깨에서 다시 전신으로 충격은 전해진다.
으득, 하고 관절이 비명을 질러댄다. 호각성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자 부릅뜬 눈동자에는 핏발이 섰다. 완벽히 회피해내지 못한 공격에 나진의 살이 뜯어져 나갔다. 입에 차오른 핏물을 짓씹으며 나진은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아앙!
계속해서 호각성을 공격하며 빈틈을 메워 주는 투구기사의 존재가 없었다면, 진작에 나진은 몸에 구멍이 하나 뚫린 채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강적이다. 혼자선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강적······.
하지만, 하고 나진은 생각한다.
‘압도적이진 않다.’
유엘, 카론, 게르드.
대륙의 세 소드마스터와 마주했을 때처럼 압도되는 감각은 없다. 어떤 수단을 써도 이기지 못할 것 같던 그들과는 달리 눈앞의 상대에겐 틈이 존재했으니.
한때는 초월자였으나 지금은 추락해버린 별. 그 별은 소드마스터처럼 수백 미터를 가르는 검기를 쏘아내지도, 일대에 제 심상을 펼쳐 나진을 압박하지도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추락해 자신을 잃어버린 자가 어찌 오러에 자신, 즉 심상을 담겠는가?
호각성의 오러는 반쪽짜리다.
그 날카로움과 무거움은 여전하지만, 그곳에는 초월자들이 으레 가지고 있는 신묘함이니, 신비함이니 하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기준이 부재했다.
카아아아앙!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하나 아예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나진이 칼끝을 낮게 끌었다. 아예 뒤로 도약하며 거리를 벌리는척 하다가, 나진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검날에 압축됐던 검기가 길게 늘어졌다. 채찍처럼 늘어진 검기가 일대를 휩쓸었다. 늘어나며 그 밀도가 낮아진 검기를 호각성은 너무나도 쉽게 쳐내지만, 애초에 나진의 노림수는 그것이 아니었다.
일대에 가득하던 창대들이 나진의 검기에 휩쓸려 쪼개졌다. 나진은 곧장 거리를 좁히며 호각성의 창을 쪼갰다. 이제, 호각성은 새로운 창을 쥐려면 나진과 같이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그가 포효하며 창대를 찾아 몸을 돌리려는 순간이다. 나진의 검기가 처음으로 호각성의 몸에 닿았다.
카캉!
물론 유의미한 일격은 아니다. 나진의 칼끝은 호각성의 갑옷을 긁을 뿐이었다. 호각성이 그 공격을 막지 않은 것 역시,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각성에게는 무의미한 공격.
그러나, 나진에게는 그렇지 않다.
“어느 기사가 그렇게 품위 없게 괴성을 내지릅니까.”
나진의 검이 벤 것은 호각성의 갑옷에 달려있던 투구들. 덮개를 연 채 짐승처럼 포효를 질러대던 건 바로 그 투구들이었다. 투구 하나가 박살 나 떨어지자 호각성의 포효소리 역시 작아졌다.
나진이 칼끝을 들어 올린 채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짐승처럼 덤비시겠다면, 예. 그리하십시오.”
칼끝에서 별이 빛났다.
“난 당신을 기사로 상대할 테니.”
별이 빛나고 있다.
마모된 별은 새하얗게 타오르는 별을 바라봤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신성(新星)이 내뿜는 빛은, 그가 오래전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며 오래된 별은 무심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미친놈이로군, 정말이지.’
나진의 움직임에 맞춰 호각성을 압박하며 투구기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호각성은 강자다. 지금의 나진에겐 버거운 상대였으며, 그건 투구기사의 도움을 받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까딱하면 죽거나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거늘, 저 소년은 목숨이 몇 개는 되는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단 점이었다.
상처가 늘고, 피가 튀고, 후려쳐져 바닥을 나뒹굴다가도 벌떡 일어서선 다시 달려든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 죽지 않는 괴물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카, 가가가가각!
호각성을 향해 창을 내지르며 투구기사는 입안이 씀을 느꼈다. 호각성은 투구기사에게 시선을 두고 있지 않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나진에게 집중하고 있다. 투구기사가 입힌 상처가 더 많으며, 그가 나진보다 더 위협적인 강자였음에도 그렇다.
거 매몰찬 녀석이로군.
단장이 기껏 보러왔구만.
그리 투덜거리면서도 투구기사는 이 순간이 즐겁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나진의 검기가 호각성의 몸을 두들길 때마다 호각성의 움직임이 변하고 있었으니.
‘조금 더.’
투구기사는 창을 내질렀다. 휘두르고, 땅을 박차며 호각성을 압박했다. 호각성의 팔이 관절의 허용범위를 넘어서 짐승처럼 벌어지려 할 때마다 창대를 휘둘러 동작을 방해했다.
‘조금 더, 과감하게 내디뎌라.’
투구기사는 호각성을 방해함으로써 나진의 동작을 유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진은 투구기사의 의도를 이해하곤 곧장 따라붙었다.
번쩍.
나진의 검기가 더 거세게 점멸했다.
투구기사는 그 빛의 번뜩임을 보고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저 녀석, 지금 싹을 틔우려 하고 있군. 발아(發芽)라 불리는 경지에 발을 디디려 하고 있었다.
일찍이 그 경지를 지나쳐온 투구기사였기에 그는 나진이 무엇을 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쪽도 놀고 있을 수만은 없지.
조금씩 빈틈이 생긴다. 하지만 빈틈이 생긴 만큼 나진의 몸에도 부상이 늘어간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었다간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 적기다.’
투구기사는 판단했다. 창대를 강하게 휘둘러 호각성을 밀쳐내며 그가 쿠웅! 땅을 강하게 내려찍었다. 창대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나진!”
그가 호명함과 동시에 나진은 손에 쥔 검을 하늘 높이 집어던졌다. 그리곤, 나진이 땅을 내려찍었다. 조금 전 호각성이 했던 것처럼.
투웅.
땅에 박혀있던 창대 하나가 퉁겨져 나진 쪽을 향해 날아왔다. 그 창대를 낚아채며 나진은 투구기사와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투구기사가 보기에도 그 자세는 제법 각이 살아 있었다.
가르친 보람이 있군.
이렇게까지 빨리 배울 줄은 몰랐지만.
투구기사와 나진은 거의 동시에 호각성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창날에 공기가 휘감기며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창날을 따라 폭풍이 휘몰아쳤다.
충각(衝角).
금빛 뿔 기사단이라면 모두가 쓸 수 있었던 기술이며, 그들의 자랑이자 상징이었고, 호각성이 가장 자신 있어 하던 기술. 그 기술이 투구기사와 나진의 창끝에서 터져 나왔다.
카가가가가가가각!
물론 투구기사의 것과 달리, 나진이 만들어낸 폭풍은 약하다. 아직 완벽하게 기술을 익히지 못했기에. 하지만 호각성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방해하기엔 충분했다.
나진의 충각을 막아내느라 만들어진 빈틈을 투구기사의 창이 꿰뚫었다. 창날에 꿰뚫린 호각성의 옆구리가 터졌다. 갑옷이 박살 나고 검은 핏물이 튀어 올랐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창대는 폭풍에 휩쓸려 박살 났다.
튀어 오르는 피. 부서진 창대.
그리고, 제 옆구리를 꿰뚫은 십자별의 창.
호각성은 새로운 창을 쥘 수 있었다. 그의 성역에는 수많은 창대들이 꽂혀있었으니. 하지만 그는 다른 창대를 향해 손을 뻗지 않았다.
콱.
제 옆구리를 꿰뚫은 창대를 호각성이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투구기사와 호각성의 시선이 마주했다. 사실, 저것이 시선인지는 투구기사도 알 수 없었다. 호각성의 머리를 대신하는 검은 별과 투구기사의 눈이 마주쳤다.
······창잡이들은 창대를 상대가 붙잡았을 때, 어떻게 떨쳐내야 할지에 대한 답 정도는 준비해 놓기 마련이다. 상대의 무기를 어떻게 빼앗을지 또한. 마스터급의 무인이었던 호각성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창대를 쥔 손을 비틀었다.
창대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회전했다.
투구기사는 회전하는 창대를 놓치고 말았다. 설마, 이 순간 저런 기술을 펼칠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까닭에. 그가 예상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저 기술은 상대에게 창날을 겨누고 있을 때 쓰는 것이지, 제 몸에 창날이 박힌 채로 쓰는 기술이 아니었으니까.
투확!
호각성의 옆구리를 꿰뚫었던 창대가 회전하며 상처를 헤집었다. 호각성의 옆구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갈려 나간 살점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러나, 그 정도는 개의치 않다는 듯 뒤로 물러선 호각성이 창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드드득······.
제 옆구리에서 창을 뽑아내며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창날에 걸려 나온 내장을 창을 휘둘러 떨쳐내며 그가 창날을 바로 세웠다.
“······.”
여태까지 짐승처럼 허리를 굽힌 채 괴성을 질러왔으나, 지금 이 순간 호각성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 허리를 세우고 두 발로 땅을 디딘 채 그는 두 손으로 창을 움켜쥐었다.
십자별의 창.
본래 주인의 손에 들린 창날이 빛났다.
별빛이 몸을 두들겼다.
별빛은 검게 물든 별을 두들겼으며, 망자가 되어버린 육신을 두들겼다. 물론 호각성이 이성을 되찾는다는 기적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망자다.
여전히, 그는 떨어진 별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그의 별이 빛나지 말란 법은 없다.
검게 물든 별은 새햐앟게 빛나는 별에 표백됐다. 더는 스스로 빛날 수 없지만, 다른 별이 흩뿌리는 별빛을 반사함으로써 다시 빛날 수 있다.
호각성(號角星)이 빛났다.
검은 별이 자신만의 빛을 흩뿌렸다. 그 빛은 찬란하지 않다. 따스하지도 않다. 탁하고, 흐릿하고, 별빛과는 거리가 먼 빛이다.
그렇다면 또 어떠한가.
중요한 것은 별이 빛나고 있다는 것.
호각성은 두 발로 땅을 디뎠다. 굽어 있던 허리를 폈다. 후두두둑, 박살 나서 떨어진 건틀릿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인간의 손가락이다. 인간의 손가락으로 그가 창대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여전히 그에게 이성은 없다.
그의 육신에 남은 것은 본능뿐.
그리고 그의 본능은 외친다.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기억이 외쳤다. 자세를 잡아라. 창을 쥐어라. 네가 가진 최선을 보여라.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이므로.
그리하여 짐승은 짐승인 채로 기사가 된다.
그의 머리를 대신하던 검은 별이 가라앉았다. 가라앉은 별 사이로 저 밤하늘이 비춘다. 밤하늘에는 빛나고 있는 별들이 검은 별의 틈새로 반짝였다. 그것이 호각성의 두 눈동자를 대신했다.
호각성은 뿔피리를 불지 않았다.
함성을 내지르지도 않았다.
단지, 그는 침묵했다.
침묵하는 기사.
침묵의 기사 크륀벨이 창을 움켜쥐었다. 창끝이 겨누는 것은 나진. 자신을 빛나게 하는 별을 향해 크륀벨은 선보인다.
무엇을?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일격을.
충각(衝角).
크륀벨을 중심으로 폭풍이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