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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손 끝으로 이명을 가리켰다.
여명성(黎明星).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는 새벽녘을 가리키는 단어인 여명에 별을 뜻하는 성(星)자를 붙인 이명. 정작 회색탑주는 ‘너무 담백하니 별로’라고 주석을 달아두긴 했지만, 나진은 오히려 이 담백함이 마음에 들었다.
‘더 데스 슬레이어 같은 것보단 훨씬 낫지.’
물론 그 뿐만은 아니었다.
나진은 ‘여명성’이라는 이명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여명성을 풀어써 둔 수식언이 특히 그랬다.
여명성, 밤의 끝을 알리는 별.
여명이란 단어는 새벽녘만을 뜻하진 않는다. 기나긴 밤이 끝났음을, 동이 텄음을, 상황에 따라서는 희망이나 새로운 시대의 시작점을 뜻하기도 한다.
-아서의 이명하고 비슷하네.
나진의 귓가에 멀린이 속삭였다.
-지금이야 선별의 검, 기사왕, 대영웅 같은 이름이 더 잘 알려졌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냐. 아서의 첫 이명은 봉화, 희망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동화에는 실려있지 않은 이야기였다.
-나와 아서가 여행했던 시절은 인류사의 암흑기잖아? 혼란의 시대라고 불리는······ 그때 저 밤하늘에 첫 번째 별을 박아 넣은 게 아서였어. 그러니 인류의 입장에서 아서는 희망의 상징이고, 또 반격의 봉화였지.
기나긴 어둠을 몰아낼 빛.
반격의 신호를 알리는 봉화.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려 보면 아서에게 어울리는 이명이었다.
-여명성도 그 뜻은 비슷하네. 그런데, 왜 이런 이름이 나오게 된지는 모르겠네? 네 별의 소재가 된 위업과 관련이 없지 않나?
‘그러게요?’
나진이 고개를 들어 회색탑주를 바라봤다.
회색탑주, 나유타는 영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진이 가리킨 이명을 보고 있었다. 꼭 저걸 골라야 했냐는 듯한 표정.
“나유타 님?”
“응? 으응. 왜?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
“이 여명성이란 이명의 유래에 대해 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못 들려 줄 건 없는데, 다른 이명들에 비해 너무 대충 지은 이름이라 설명해 주기가 좀 그러네. 정말 그 이름이 마음에 드니? 다른 이명이 더 괜찮지 않아? 이를테면 더 데스······.”
“이게 마음에 듭니다.”
나유타가 괜스레 쩝, 입맛을 다셨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녀가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적룡을 토벌하던 그날 흉성(凶星)이 나타났던 건 알고 있지?”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흉성, 나락의 별자리.
캄란의 마녀가 지닌 검고 붉은 별이 그날 밤하늘에 떠올랐었던 걸 나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자그마치 천년 만에 떠오른 흉성이었는데, 그 끔찍한 별의 등장에 밤하늘이 요동쳤어. 별들은 스스로 빛을 꺼트리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지.”
캄란의 마녀는 별을 사냥한다.
수많은 별을 삼키고, 떨어트리고, 영락시킨다. 나락에 제 별자리가 봉인되기 전까지 마녀는 하늘의 별을 수도 없이 떨어트렸었다.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기라도 한 것인지, 흉성이 떠오른 순간 숱한 별자리들이 빛을 꺼트리고 침묵했다고 나유타는 이야기했다.
“별빛이 꺼진 밤하늘은 어두웠지. 어둡고 차가운 밤하늘. 그런데 난데없이 별 두 개가 떠오르지 뭐니?”
나유타가 두 손을 쫙 펼쳤다.
마치 별이 빛나는 걸 표현하듯이.
“다름 아닌 네가 가진 별이었어. 저 거대한 별자리들마저 마녀가 두려워 빛을 꺼트리는 가운데, 아직 별자리도 이루지 못한······ 두 개 뿐인 작은 별이 빛나지 뭐야.”
어둠 속에서 환히 빛나는 별.
아직 별자리라 부를 수도 없는, 여린 별.
“그런 작은 별조차 흉성에 대항하듯 새하얗게 타오르는데, 더 거대한 자신들이 침묵하고 있기는 부끄러웠던 걸까? 그제야 다른 별자리들도 빛을 내기 시작했어.”
그날 적룡과의 전투에 집중하느라 나진은 보지 못했지만, 나진의 별을 기점으로 숱한 별들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진의 별이 내는 빛에 이끌리듯이, 혹은 자극 받았다는 듯이.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한 별들은 흉성이 드리운 어둠을 몰아냈지. 정말 장관이었는데.”
“그랬습니까?”
“응. 그 모습이 내 눈에는 꼭 동이 트고 아침이 밝아오는 것처럼 보였어. 그걸 보고 ‘여명’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반사적으로 지은 이름인데······.”
열심히 설명하다 말고 나유타가 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솔직히 좀 별로지 않니? 자고로 별의 이름은 거창하고 화려해야 하는 법인데, 이건 너무 담백하잖니. 이명에 담긴 철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녀가 여명성이란 이명의 유래에 대해 설명할 때까지만 해도 ‘회색탑주 자리가 괜히 주어지는 건 아니구나’ 하고 속으로 감탄하던 나진은, 이어진 나유타의 말에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음······ 이름 짓는 솜씨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감성이 좀 동떨어져 있네. 왜 저렇게 화려함에 집착하는 거야?
멀린의 말에 나진은 깊이 공감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여명성. 마음에 드네요.”
어찌 됐든, 나진은 회색탑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무르지 않았다.
회색탑주의 작명방식에 나름의 철학과 신념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그것에 공감해 주는 건 다른 문제였으니까. 일단 자신의 이명이지 않은가. 누군가 자신을 부를 때 ‘더 데스 슬레이어, 죽음을 가르는 자!’ 하고 부른다면 나진은 고개를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네가 그렇다면야 뭐······.”
마지막까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나유타는 이내 여명성이란 이명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럼, 나진?”
짐을 정리하여 떠나기 전, 그녀는 나진을 돌아봤다. 꼭 해야 할 말이 남아있다는 것처럼.
“이제 막 별을 얻은 네게 할 말은 아니지만, 수많은 별들이 추락한단 사실은 알고 있니?”
“별의 추락 말입니까?”
“응. 저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별이 추락해왔어. 누군가는 영원함과 불변의 상징으로 별을 가리키지만, 어디 세상에 영원한 게 있겠니?”
별을 헤아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 마법사.
회색탑의 주인인 나유타는 말했다.
“수많은 별들이 별자리를 이루지 못하고 추락해. 때로는 타락하고, 때로는 변질하며, 때로는 망가지고 말지. 별들의 전장이라 불리는 곳은 그런 곳이니까.”
그녀는 쓰게 웃었다.
“지금은 빛나는 네 별도 언젠가는 빛을 잃고 추락할지도 모르지. 그럴 확률이 높아. 새하얗게 빛나던 신성(新星)들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난 많이 봤거든.”
나유타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숨을 내뱉으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떴다. 처음 봤을 때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음침해 보이는 인상은 그대로였고, 부스스한 머리칼 역시 그대로였지만.
“하지만, 난 네가 그러지 않길 바라.”
그 눈동자 만큼은 달랐다.
나유타는 일생의 대부분을 별을 관측하며 보냈다. 별의 움직임을 헤아리는 것이 곧 그녀의 삶이자 직업이다. 수많고 수많은 별을 헤아려 온 어느 마법사의 눈동자에는 별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나유타가 가진 별인지.
혹은, 그녀가 관측해 왔던 별들인지.
어느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아름답다고 나진은 생각했다.
“네가 더 많은 별을 얻길 바라. 빛을 잃지 않길 바라. 별과 별을 이어 별자리가 되길 바라.”
그 끝에, 하고 그녀는 말했다.
“성좌가 되어 나를 찾아오길 바라.”
나유타가 미소 지었다.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가 지을 법한 미소였다.
“그날이 오거든 네 별자리에 다시 이름을 지어줄게.”
“화려하고 거창한 것으로 말입니까?”
“물론이지. 기대하고 있어도 좋아? 틈틈이 네 별에 무슨 이름을 지을지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나진은 쓰게 웃었다.
그건 사양하겠습니다, 정말로.
나진의 이명이 결정되고 제법 시간이 흘렀다.
온 제국에 그 소식이 돌았다는 뜻이기도 했는데, 그 결과 제국은 올해 몇번째인지도 모를 혼란에 휩싸여야만 했다. 수십, 수백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대사건이 몇 번이고 터지고 있었다.
누군가 엑스칼리버를 뽑았고.
아서왕의 별자리가 요동쳤으며.
최연소 소드 시커가 나타났고.
캄란의 마녀가 움직였으며.
한 번에 두 개의 별을 손에 넣은 이가 나타났다.
외륙(外陸)이 아닌 대륙에서 터진 사건만 해도 이렇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큰 사건들에 신문사는 비명을 지르며 신문을 찍어냈지만, 그들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비명을 내지르는 이들 역시 있었다.
“이번 해는 무슨 마가 낀 것인가?”
“벌써 몇번째 개찬인가? 역사서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뜯어고쳐야 하는가?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최연소! 최연소! 최연소! 그놈의 최연소!”
“세상이 장난인가? 혹시, 하늘께선 불세출(不世出)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시는 건가? 불세출! 좀처럼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만큼 특별하다는 뜻이란 말이다!”
바로 제국의 사관(史官)들이었다.
역사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역사서를 편찬하고, 때로는 수정해야 하는 그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저마다 자신의 머리칼을 움켜쥔 채 그들은 비명을 질렀다.
「불과 18세의 나이에 소드 시커.」
소설도 이렇게 썼다간 ‘이보쇼, 작가 양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같은 평가와 함께 불쏘시개가 될 게 뻔했다.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소설을 능가하는 법이다.
「18세, 최연소 소드 시커.」
「18세의 나이에 두 개의 별을 동시에 얻다.」
사관들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사관 중 한명은 ‘아주 엑스칼리버도 뽑았다고 하지 그런가?’ 하고 농담을 던졌는데, 그것이 또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 같아 그는 입을 다물었다. 만일 그랬다간 지금 처리하는 일거리의 곱절이 되는 업무량이 자신을 덮칠 게 뻔했으니.
“혹시 그 기록을 갈아치우는 애송이는 사관들의 탈모 기록마저 갈아치울 작정인가? 사관 중 최연소 완전 탈모 기록이 어떻게 됐지?”
“26세였다. 그리고, 그 기록 얼마 안 가 갱신될 듯하다. 우리 부서 막내의 머리칼이 불과 몇 달 만에 열 걸음 뒤로 후퇴했으니······.”
“그 막내 나이가?”
“스물 하나다.”
“······.”
“······.”
사관들은 잠시 묵념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사관들의 사정이었고 대부분의 제국민은 나진의 소식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여명성(黎明星), 밤의 끝을 알리는 별.
밤하늘에 새롭게 나타난 별을 바라보며 제국민은 열광했다. 어느 시대든 영웅의 탄생에 민중은 환호한다. 아직 나진은 영웅이라 불릴만한 위업을 이루진 않았으나, 여태껏 보여준 행보만으로도 그 앞날을 기대할 만했다.
나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이쯤 되면 고개를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올해 연달아 일어난 사건들과 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소년, 나진.
‘저 소년이 엑스칼리버를 뽑은 것이 아닌가?’
누군가는 그리 의심할 법도 하다.
미묘하게 그 시기가 겹친다. 엑스칼리버가 뽑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각을 드러낸 것이 바로 나진이다. 우연이라기엔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황실과 저 위대한 별자리들이 눈먼 장님도 아니고, 엑스칼리버를 뽑은 이를 못 알아볼 리가 있나? 심지어 그 소년은 초월자도 아니지 않은가?」
「음모론이다. 과한 망상이다.」
「영휘각께서 직접 확인하시지 않았나? 」
「하지만 그 소년의 행보를 보았을 때, 아예 말이 안 되는 일도 아니다.」
「엑스칼리버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
누군가는 나진이 엑스칼리버를 뽑은 게 아니냐며 의심하고, 또 누군가는 말이 안 된다며 반론한다. 아직은 반론하는 쪽의 목소리가 크지만······ 아예 반대 의견을 묵살해버릴 만큼은 아니었다. 일리가 없진 않았으니.
「그럼 도대체 누가 엑스칼리버를 뽑았나?」
그 질문에는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엑스칼리버가 뽑힌 지 수개월이 지나, 이제는 1년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에도 어떠한 목격담조차 들려오지 않고 있었으니.
「역시 후보로 언급됐던 세 소드마스터 중 한분께서 뽑으신 것 아닌가? 그 사실을 숨길 뿐.」
「카론 경이 뽑았으리라 예상한다. 그분은 검에게 사랑받는다. 역대 검의 교단의 역사를 돌아봐도, 그분만 한 재능을 가진 이는 없었다.」
「제국제일각께서는 엑스칼리버를 뽑으셨더라도 침묵으로 일관하실 분이다. 그러니 게르드 경께서 엑스칼리버를 손에 넣으신 게 아닌가?」
「의외로 교단의 처형인일수도 있다. 다른 누군가 엑스칼리버를 뽑았다면 그 살인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도대체 누가 엑스칼리버의 주인인가?
일찍이 후보자로 거론됐던 세 소드마스터가 다시 구설수에 오르는 가운데, 1년 전과는 달리 이젠 그 세 명의 이름만이 거론되진 않았다.
제국의 소드마스터, 제국제일각 게르드.
검의 교단의 주인, 검성 카론.
성혈 교단의 처형인, 살인귀 유엘.
그리고······ 여명성(黎明星), 나진.
나진의 이름 역시 세 소드마스터와 함께 거론됐다. 물론 그들에 비하면 소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나, 아주 무시할 만큼 보잘것없는 건 아니었으니.
「나진.」
지하도시에서 태어난 소년.
아무것도 아니었던 소년은 제국의 중심에 보란 듯이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이제, 나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었다. 저 밤하늘에 박아 넣은 두 개의 별이 나진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었으니.
소년이 지하도시를 떠난 지 1년.
불과 1년도 채 안 돼 일어난 일이었다.
나진의 주가가 나날이 고점을 갱신하는 가운데,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인물이 둘 있었다. 하나는 트레바체 영지의 주인, 에델마르 후작이었는데······.
“브라보, 브라보! 컥, 커흑!”
“후, 후작님!”
“숨 쉬십시오!”
숨 쉬는 것조차 까먹고 환호성을 내지르다 숨이 넘어가, 기사들에게 실려 가는 와중에도 후작은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한 달쯤 전 나진과 디에타의 일화를 토대로 한 연극을 필두로 관광사업을 시작한 에델마르 후작이다. 최연소 소드 시커라는 나진의 명성 덕에 관광사업으로 제법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쌍성(雙星)이라는 새로운 불판이 깔린 것이다.
유명 귀족들은 물론이고 숱한 호사가들이 ‘여기가 그 최연소 소드 시커이자 쌍성이 로맨스 한 편 거하게 찍은 곳이요?’ 하며 트레바체로 걸음 했고, 그들의 걸음에는 당연하게도 금화가 따라왔다.
그 결과 트레바체는 현재 전례 없는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영지의 주인 되는 입장으로선 함박웃음이 나오다 못해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나진, 그 훌륭한 친구에게 내 편지를 써야겠어. 트레바체는 그대의 영원한 아군이요, 둘도 없는 친구이니 언제든 찾아오라고. 만찬과 함께 대접하겠노라 말야!”
그리고, 에델마르 후작과 비슷하게.
어쩌면 그보다 더 행복에 겨워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있잖아요, 파시온.”
“예, 아가씨. 무슨 일입니까.”
금화를 삼키는 뱀, 디에타.
“상, 상회 주가가 이상해요.”
그녀가 덜덜덜 떨리는 손길로 신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표가 하나 있었는데, 다름아닌 디에타 상회의 주가를 나타낸 표였다. 저 하늘 높이까지 치솟는 곡선을 바라보며 디에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아름답지 않나요? 세상에, 이런 예술품이 또 어디 있을까요. 벽에 장식해 둔 저런 그림 쪼가리보다 이 곡선이 수십 배는 더 아름다운 것 같은데······.”
세기의 명화도 이만큼의 감동을 주진 못한다. 디에타는 황홀한 표정으로 신문을 쓰다듬다가, 이내 신문에 쓰인 글귀들에 시선을 옮겼다.
투자의 귀재, 디에타.
그 문장을 마냥 기뻐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저 문장을 보고 있노라면 양심이 좀 찔렸다. 물론 나진이 대성하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이렇게나 화려하게 날아오를 줄은 몰랐으니.
가파른 곡선을 그리다 못해 천장을 뚫어버릴 기세로 상승하는 상회의 주가.
이젠 슬슬 디에타 본인도 두려울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