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5 KiB
Raw Permalink Blame History

“몇 가지 조건을 걸지.”

제국의 소드 마스터, 게르드.

그가 바라는 것은 나진이 숨겨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엑스칼리버, 걸작, 그것도 아니라면 별의 축복. 게르드는 눈앞의 소년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확신했다.

“너의 제안대로 나는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도, 권능도, 초감각도 쓰지 않겠다.”

끝까지 소년이 입을 열지 않는다면.

게르드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소년을 궁지에 몰아넣어야 한다. 죽기 직전까지 몰아넣는다면 결국 살기 위해 다 꺼내 보이게 될 테니. 하지만 정말로 죽여서야 의미가 없다.

그저 확인하려는 것뿐.

그렇기에 게르드는 조건을 내걸었다.

“죽일 기세로 검을 휘두르되, 세 번의 기회를 주겠다.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쓰기 전에 나를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만든다면 너의 승리다.”

“제게 유리한 조건이 아닙니까?”

“강자에게 여유란 덕목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네 말마따나 나도 결투를 즐길 수 있을 것 같군.”

게르드가 뽑아 든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내게 패배한다면 너는 숨기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를 황제께 보고할 것이다. 이에 더해 제국이 너를 필요로 하거든 그 부름에 너는 반드시 답해야 하리라.”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승리할 경우에는?”

“아무것도 추궁하지 않겠다. 설령 네가 숨기고 있던 것을 꺼내어 내게서 승리하더라도, 나는 이를 황제께도 알리지 않겠다. 오직 나만이 기억하지. 하지만, 만에 하나 네가 여전히 전력을 감춘 채로 승리한다면.”

게르드가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마치,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것처럼.

“무엇이든 하나, 네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마. 내가 가진 일곱개의 별에 맹세코.”

제국제일각. 일곱개의 별을 가진 초월자.

그런 강자가 말하는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겠다’는 문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정말로, 무엇이든 이루어줄 능력을 갖춘 인물이었으니까.

“게르드 경의 검을 빌릴 기회를 주겠단 뜻입니까?”

“검, 지위, 권력, 재물, 무엇이든 좋다. 제국에 반기를 들어 올리는 형태만 아니라면.”

좋은 조건이었다.

나진이 미소 지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드넓은 초원.

게르드가 그려낸 풍경의 위에서 나진은 자세를 다 잡았다. 눈앞을 바라보면 한 자루의 검을 쥔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있다.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검을 들었다.

그 한 줄의 문장이 가진 무게를 나진은 통감했다. 온몸이 떨렸다. 직감이 비명을 질렀으며, 검을 쥔 손끝이 저렸다. 하지만 그 또한 잠깐일 뿐. 길게 숨을 내뱉으며 나진이 검을 고쳐 쥐었다.

더는 칼끝이 흔들리지 않았다.

“······.”

가만히 나진을 바라보던 게르드는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노인 역시 자세를 다 잡았다. 소년이 건 결투에 어울려 줄 필요도, 제약을 걸 필요도 노인에게는 없었다. 없었지만 노인은 소년이 보인 기개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제국제일각이기 이전에 게르드는 검사다.

빛나는 재능을 가진 후배가 요청해 오는 결투를 거부할 만큼, 그의 검은 빛바래지 않았다. 얼마만의 결투인가? 저 소년 같은 당돌한 도전자와 마주친 것은 또 얼마 만이던가. 노인의 입가에는 웃음이 맺혔다.

어디 보여봐라.

너의 검을, 내게 보여봐라.

제국의 소드 마스터, 게르드.

그가 다루는 검이 무엇인가.

제국의 기사들이 다루는 제국검술의 원류가 되는 검을 게르드는 익혔다. 구국 영웅이자 전대 제국제일각이었던 ‘알데란 바사글리아’에게 전수받은 검.

개선검(凱旋劍).

모든 전장에서 승리하며, 다만 제국에게 승리의 영광을 안겨준 영웅의 검. 이 세상에서 게르드를 포함해 단둘만이 익힌 검술. 그렇기에 개선검의 특징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국의 역사서에선 이렇게 묘사되곤 한다.

결코 뚫리지 않는 성벽.

제국 천년의 무게가 담긴 검.

‘그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카아아아아아아아앙!

검이 맞부딪친 순간 나진의 몸이 저 멀리 밀려났다. 몸을 비틀어 미끄러지듯 바닥에 착지하며 나진은 혀를 내둘렀다. 검을 맞부딪친 순간, 개선검에 대한 묘사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무겁다. 너무나도.

검을 휘두르는 것은 게르드 일인(一人)이나, 휘둘러진 검은 마치 수백의 기사가 한 번에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나진은 자세를 낮추었다. 얼마든지 와보라는 듯 이곳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게르드를 응시했다.

드넓은 초원에 홀로 서 있는 한 명의 인간.

이 초원은 게르드의 심상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기에 나진은 처음으로 초원을 바라봤을 때, 의문을 느꼈었다. 제국과 검밖에 모르는 노인의 심상이 어째서 드넓은 초원인가?

그 의문을 나진은 지금에서야 해소했다.

저 멀리서 게르드가 검을 들어 올렸다. 마치 걸음을 뗄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그가 하늘 높이 들어 올린 검을 아래로 휘둘렀다. 그 순간, 눈을 부릅뜬 나진이 반사적으로 몸을 내던졌다.

쩌억.

땅이 길게, 일자로 쪼개졌다. 검기를 쓰지도 않고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순전히 검을 휘둘러 멀리 떨어진 땅을 쪼갠 것이다. 그 사실에 나진의 입가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초원에 제국이니, 검이니 하는 풍경이 자리 잡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저곳에 서 있는 노인이 곧 제국이다.

노인이 휘두르는 검이 곧 제국이 휘두르는 검이었다. 그렇기에 제국제일검인 것인가. 검을 휘두르는 게르드를 바라보며 나진은 감탄했다.

검기 같은 건 쓰지도 않는다. 신묘한 보법 역시 없다. 그저 검을 휘두를 뿐이다. 우직하게.

그것만으로도 노인의 칼끝은 저 멀리 떨어진 풍경마저 쪼갠다. 손속을 두고 있음에도 감춰지지 않는 기세. 이것이 게르드가 도달한 경지였다. 그 경지에 나진은 순수한 경외심을 느꼈다.

카론이 한없이 정교하게 갈아낸 기술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눈앞의 노인에게선 지독한 고집이 느껴졌다. 오직 하나만을 고집하여 초월에 이른 인물.

‘하지만.

쿠웅, 나진이 발을 내려찍었다.

‘멀리서 풍경 쪼개는 묘기나 보겠다고, 당신에게 덤빈 게 아니다. 감탄이나 하고 있자고 이런 결투를 청한 것이 아니다.

자세를 낮췄다. 눈을 부릅떴다.

‘검성은 내게 검을 주었다. 처형인은 내게 걸작을 소유할 권리를 주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서도 하나쯤은 뜯어내야겠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나진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만일 이 자리에 클라우스 아텐이 있었다면 그는 눈을 부릅떴을 것이다. 지금 나진이 잡은 자세는 푸른 날개 기병의 선봉대장, 클라우스 아텐의 자세와 정확하게 일치했으므로.

자세가 일치했다. 심장 박동이 일치했다.

나진이 땅을 박찬 순간 쾅, 하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전력을 다해 질주하는 법. 전장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창이 되는 법. 질주의 기세를 그대로 무기에 담아내는 법. 그것을 클라우스 아텐은 나진에게 가르쳐주었다. 본인이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그리하여 땅을 박차고 질주하는 나진은, 게르드가 보기에도 놀라운 것이었다. 결투가 시작된 아래 처음으로 눈살을 찌푸린 게르드가 나진을 노려봤다.

······기록상으로, 나진이 소드 시커에 오른 것은 불과 몇주 전의 일이다. 허나 저것이 정말 이제 막 소드 시커에 오른 무인이 맞단 말인가?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보기에, 결코 아니었다.

검기를 완전한 통제하에 두고 있다. 제 육체의 한계점이 어디인지, 어느 순간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경지에 오르며 뒤바뀌었을 육체 구조와 마나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건 이미, 소드 시커의 경지에 십년은 머무른 무인들이나 보일만한 움직임이었다.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세상의 상식에 대고 중지를 들어 올리는 소년이 여기 있었다.

‘흥미롭군.

조금 더 궁금해진다. 이 소년의 밑바닥에 무엇이 깔려있을지. 그것을 게르드는 보고 싶었다. 정면에서 달려드는 소년의 검을 게르드는 받아냈다. 그만한 기세를 담은 검을 받아내면서도 게르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더 보여봐라.

간만에 흥이 오르고 있으니, 부디 세 번의 기회를 순식간에 날려버리지 않기를 바라마.

나진이 첫 번째 기회를 날린 것은 검이 열일곱번 맞부딪쳤을 때다. 자세가 무너진 틈을 파고든 게르드의 검이 나진의 어깻죽지를 한 뼘만큼 베었다. 나진의 칼끝은 게르드에게 닿지도 향하지도 못한 채, 튕겨 나가 하늘을 향해 있었다.

어깨에 파고든 검을 더 이상 휘두르지 않은 채 게르드는 ‘한 번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무표정했다.

두 번째 기회를 날린 것은, 마흔세번째. 나진의 목덜미에 게르드의 검이 맞닿아 있었다. 나진의 검 역시 게르드의 어깻죽지 앞에 멈추어 서 있었으나, 두 검 사이에는 1초의 간극이 있었다. 그리고 1초란 몇번이고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번이다, 라고 게르드는 말했다. 그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맺혀있었다.

세 번째 기회를 나진이 쓴 것은.

검이 칠십하고도 세 번 맞부딪친 뒤였다. 그리고 이 경우에 게르드는 ‘세 번’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 선언하기엔 몹시도 애매한 상황이었으니.

게르드의 심상이 깨졌다. 어느덧 두 사람이 접견실에 돌아온 가운데, 나진은 심상 속에서 나눈 마지막 일격의 충격으로 접견실의 문에 부딪혔다. 문을 박살 내고 접견실의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콱, 끼이이이이익!

땅에 검을 박아 넣은 채 나진이 쭈욱 미끄러졌다. 복도의 끝에서 간신히 몸을 멈춘 나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몸을 일으킨 나진의 입가엔 웃음이 맺혀있었다.

“게르드 경.”

나진이 접견실 안에 서 있는 게르드를 바라봤다.

“이 경우, 누구의 승리입니까?”

접견실에 서 있는 게르드.

그는 그가 땅을 내려찍었던 곳에서 정확하게 한걸음만큼 뒤로 물러서 있었다. 그가 물러섰기에 심상이 깨졌던 것이며, 이는 마지막 순간 동시에 교차한 일격이 서로의 조건을 달성했음을 의미했다.

나진은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소모했고.

동시에 게르드가 선언한 조건을 달성했다.

승리했으며 패배했고, 패배했으며 승리했다. 이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나진은 게르드에게 그리 질문했고, 그 질문에 게르드는 소리 내 웃었다. 접견실의 안에서부터 울려 퍼진 웃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더없이 즐겁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당연히, 나의 패배다.”

“무승부이지 않습니까?”

“무승부인 시점에서 나의 패배란 뜻이다.”

자신의 패배를 이야기하면서도 게르드는 웃었는데, 결투의 과정과 결과 모두 마음에 들었다는 눈치였다. 그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마지막 일격은 누구의 검술인가?”

“제 첫 번째 스승의 검입니다.”

“훌륭한 스승을 두었군. 우직하면서도 올곧은, 올곧기에 아름다운 검이었다.”

노인이 제 수염을 매만졌다.

“좋은 결투였다. 좋은 결투에는, 그 끝 역시 아름다워야 하는 법. 약속했던 대가를 나는 망각하지 않는다. 언제든 제일각(第一角)의 문을 두들기도록.”

제일각, 게르드가 머무르고 있는 탑의 이름.

그리 말하며 노인은 나진의 어깨를 두들기곤 걸음을 옮겼다. 그제야 나진은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었다. 어찌나 검을 휘둘러댔는지 어깨가 뻐근했다.

‘어떻게 어떻게 넘어갔네요.

-수고했어. 근데, 쉴 틈은 없을 것 같은데?

멀린이 히죽였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라는 듯 손가락을 휙휙 내저었다. 멀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 나진은, 그제서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깨달았다.

“······.”

“······.”

“······.”

나진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모인 이들.

숱한 집단이 파견한 이들이 눈을 크게 뜬 채 나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게르드가 퍼뜨린 파장에 기절했다가 간신히 일어난 그들이 보게 된 풍경은, 접견실의 문을 박살 내며 복도로 날아온 나진의 모습이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충격적인데 그다음은?

게르드가 나진의 앞에서 패배를 인정했다.

대화의 맥락상 유추해 보자면 저 안에서 무언가 결투가 이루어졌고, 그 결투에서 승리한 것은 나진이란 뜻이었다. 그러니까, 제국제일각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단 이야기다.

물론, 당연하게도 제약을 건 결투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소년이 제국제일각의 호의를 받았으며, 위대한 제국의 소드 마스터가 웃음과 함께 소년의 승리를 인정했다는 부분이다.

근엄하고 무표정하기로 정평 난 그 게르드 경께서 소리 내 웃으셨다. 그 웃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복도에 모인 이들은 유능했으며, 유능한 만큼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18세의 나이에 소드 시커의 경지에 오른, 최연소 소드 시커. 소년이 가진 말도 안 되는 칭호에 수식어가 하나 더해졌음을 의미했다.

제국제일각이 인정한.

혹은, 그의 호의를 받는 최연소 소드 시커.

폭등 중이던 나진의 주가가 조금 더 가파른 폭을 그리며 치솟았다. 복도에 모여있던 이들은 본래 세웠던 협상안을 깡그리 날려버리고, 즉석에서 새로운 협상안을 세워야만 했다.

직후, 그들은 앞다투어 나진에게 달려들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매물을 쟁탈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