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4 KiB
Raw Permalink Blame History

명전은 기타를 메고 연습실에 걸어들어왔다. 아무리 운동해도 남성과 여성의 육체적 격차는 메우기 힘든 모양인지, 거의 연 단위로 체력단련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긱백은 아직도 무거웠다.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들어와 살그머니 연 문. 경쾌한 메탈이 들리는 연습실 내부에는 익숙한 인영이 서 있었다. 전신거울 앞에 서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서하.

“음…”

실제로 보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기에 명전은 은근슬쩍 다가가서 서하를 놀라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 슬쩍 다가가려 마음을 먹었을 때, 서하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역시…”

‘역시?

“이렇게 넘기는 게 낫나?”

금발과 흑발을 섞어놓은 머리. 서하는 그걸 이리저리 매만지다가 정면으로 머리를 쓸어올리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후… 이렇게 잘생겨도 되는 걸까.”

“너 약 먹었냐?”

자아가 비대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여고생이니, 명전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두 번째로 튀어나온 말에 문을 열고 뛰어나와 한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이니만큼 말도 안 되는 착각 같은 건 빨리 고쳐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왜 왔어.”

“연습하러 왔지.”

명전의 “너 약 먹었냐?”에 대한 서하의 대답은, 괴성을 지르면서 명전의 머리채를 잡는 것이었다. 남자였던 시절 단 한 번도 걱정하지 않았던 탈모를 걱정하게 만드는 서하의 손아귀 힘에 그는 “미안해!! 미안하다고!!” 라며 항복의 의사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아야 뭐든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서하를 진정시킨 후 겨우 들은 첫 마디가 저것이었다. 귀고 뭐고, 그냥 얼굴이 삶은 문어처럼 푹 익어버린 상태로, 본인도 쪽팔리다는 건 아는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오늘은 쉴 것 같다며?”

“그래서 쉬러 왔잖아. 기타 대충 조금만 치고 갈 거야.”

“미친년…”

“미친 건 거울 보고 그런 소리 중얼거리는… 악! 아파!”

열심히 연습하는 자신을 음해하는 서하에게, 명전은 자신을 놀리는 이서처럼 서하를 농락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다시 한번 잡힌 머리채와 배신감에 가득 찬 눈이었다. ‘네가 그럴 줄은 몰랐다. 같은 느낌인데, 왜 내가 그럴 줄 몰랐다는 느낌인 걸까. 명전은 왜 자신만 이런 취급을 받는 건지 궁금했다. 왜 이렇게 동네북이 되는 건지.

명전은 다시금 서하를 진정시키고, 그녀의 부끄러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드럼을 약간 봐주었다. 좀 쉬어서 그런지 박자감이 많이 흐트러져 있는 모습.

“연습 좀… 아니, 집에서 연습 못 하지.”

“그래서 오늘 연습하러 온 거라고.”

“그래서… 아니 왜? 아니 그냥 나는 진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러지 좀 마라. 너 그거 자격지심이라고. 진짜 그런 의도 아니야.”

평소에는 혼자 딴소리나 하거나 능글맞게 다른 아이들을 말로 때리고 도망가던 서하. 그런 서하가 저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명전은 참으로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머리채를 잡는 건 너무 신선해서 오히려 아팠지만.

연습이 끝나고, 명전은 오늘 연습실에 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로 했다. 그가 출연한 영상을 모니터링하는 것. 집에서 영상을 보는 게 더 편했지만, 집에서 보다 보면 옆에 ‘엄마’가 와서 “아이고 우리 딸 너무 이쁘다~~” 같은 호들갑을 떨어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이게 전에 너 녹화한다던 그거야?”

“응.”

연습실의 스마트 티비로 영상을 틀어놓자, 서하가 슬쩍 다가와 의자를 바짝 붙였다. 티비 화면에서는, ‘블루스 꼰대질’을 하는 ‘하수연’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저거 뭐 작가들이 저렇게 하라고 했어?”

“아니, 그건 아닌데. 왠지 저날 좀 열받아가지고. 그냥 말을 하다 보니 저렇게 됐네.”

서하도 위화감을 느끼는 ‘블루스 꼰대질 버전 수연’. 명전은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지워버리고는. 앞으로 쭉쭉 방송을 넘겼다. 그가 우려했고 다른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만큼 악의적인 편집이라던가 하는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이번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조회수도 괜찮게 나왔네.”

“그렇긴 한데…”

댓글 또한 호의적인 여론이고, 조회수 또한 명전 개인의 채널에서는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명전이 보여주었던 음악 퍼포먼스라던가, 그런 것들을 편집해 놓은 쇼츠 조회수도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대단한 일이 일어났다거나, 한순간에 앉은 채로 스타가 되어버렸다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정태영 피디의 메인 채널이라면 모를까 어디까지나 서브 채널이고, 이제 1화인 프로그램이다.

그래도 뭔가 발돋움을 할 수 있는 수단은 충분히 될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명전은 영상을 가만히 보고 있는 서하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여기서도 피할 수 없는 ‘다에요’ 타령에 입꼬리가 떨리는 서하.

평소라면 “수연이다에요~” 같은 소리로 공격을 가해왔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입꼬리가 떨리고 괴로울지언정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 서하였다.

‘역시 약점을 잡는 게 최고인가?

거 뭐야. 문명인은 무례한 말을 해도 머리가 쪼개지지 않기 때문에 어쩌고저쩌고 그런 말이 인터넷에 있었는데, 명전은 그 말이 참으로 옳다고 생각했다. 저 놀리고 싶어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아무 말 못 하는 서하를 보라. 앞으로는 함정을 파서 더 많은 약점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명전이었다.


“오늘 놀러가자.”

“응?”

종례를 알리는 종. 뒷자리에서 잠을 자다 흘러내리던 침을 대충 쓱 닦고는, 집에 갈 준비를 하던 명전에게 날아든 한마디. 교내에서 그녀와 가장 친한 친구, 박다인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러 가자고.”

“나 집에 가서 연습해야 하는데.”

“뭔 연습이야! 빨리 같이 가. 어제도 연습 그제도 연습 그제도 연습 이거 뭐 우리랑은 언제 놀아줄 건데? 연습이 밥 먹여주냐?”

“밥 먹여주긴 하지.”

잔잔하게 선사한 팩트에 침묵하는 다인.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다.

“됐고 가자.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연습해야 한다니까…”

“아 뭔 소리야!! 수연아 너 이러기야? 이때까지 우리가 얼마나 너 도와줬는데? 응? 그런데 이제 막 도움은 다 빨아먹고 이제 같이 놀자는 거 노래방 가자는 거도 안 간다 이거지? 너 원래 이런 애였다는 거지? 개과천선했다는 거도 다 거짓말이라는 거지?”

갑자기 드러누울 기세로 막 떼를 쓰기 시작하는 다인. 명전은 어안이 벙벙해진 상태로 다인을 바라보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얘도 곧 고3이라고 무슨 스트레스라도 받나 싶은 느낌이었다.

어깨동무를 한 채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여고생 3인방. 처음에는 아이돌 노래를 부르면서 마구 안무를 보여주더니, 이제는 지쳤는지 그냥 편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마구 신을 내는 모양.

그렇게 신나게 부르던 다인과 아이들은, 노래가 끝나자 마치 자기들 할 거 다 했다는 듯 주저앉아 리모컨을 명전에게 넘겼다.

“빨리 다음 곡 불러.”

“너희는 안 부르냐?”

“우리는 많이 불렀잖아. 대신 너는 안 불렀고. 노래방에 왔으면 노래를 불러야지!”

“나는 프로라서 비싼데.”

그런 헛소리를 하면서, 명전은 고민했다. 글쎄. 부를 수 있는 노래는 많긴 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게다가 이 애들은 그가 좋아하는 올드 락이라거나 블루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그래도 취향에 맞는 노래를 불러줘야 할 텐데.

그렇게 고민하던 명전은 당장 떠오르는 노래 한 곡을 선곡했다. 요새 한창 인디신을 뜨겁게 달구는 밴드의 곡. 노래는 적당하면서도 깔끔하게 끝났고, 방 안에는 살짝 침묵이 감돌았다. 예약된 노래도 없는 이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침묵하는 아이들을 보고, 그는 뭔가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 아이들이 대체 왜 이러고 있는가.

“…너 진짜 가수해도 되겠다.”

“지금 가수인데?”

“아니, 그거 말고 가수.”

“가수 하잖아. 밴드.”

“아니 그거 말고!”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을 명전이 하는 동안, 다인은 방금 봤던 광경을 되새겨보았다. 친구가 밴드를 하는 건 알았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알았다. 애당초 ‘하수연’은 사고를 당하기 전에도 노래를 잘 부르던 아이였으니까. 고음 쫙쫙 올라가고, 남들 앞에서 “나 노래 잘 부름~” 하며 뽐낼 수 있는 실력.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수연’이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을, 사실 다인은 본 적이 없었다. 주현 콘서트에서는 기타만 쳤고, EP 기념 발매 콘서트에서도 다인과 아이들은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주로 했지 ‘하수연’의 노래를 감상할 틈은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수연의 노래를 들은 다인은, 충격에 빠졌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노래의 느낌. 그저 ‘잘 부른다’를 위해서 부르던 이전과는 달리, 감정을 실었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려주는 듯한 현재의 노래.

다인은 가만히 팔짱을 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스턴 상태에 걸려 있던 채린이 갑자기 큰소리를 쳤다.

“아!!!”

“왜, 왜?”

“수연아 너 축제 나와!! 우리 학교 축제!!”

“… 내가 왜?”


“내가 왜” 라는 답변을 한 뒤, 명전은 또다시 3인방에게 시위를 당했다. 아니 말로만 시위지, 거의 협박에 가까웠다.

“너 진짜 계속 이럴거라는 거지. 우리가 너 학폭 의혹 해소시킬려고 얼마나 뛰어줬는데.”

“이래서 이게 뭐라더라? 검은머리? 우리 엄마가 검은머리 짐승인지 뭔지는 키우는 거 아니라고 했거든.”

“완전 배신자. 다음부터는 아는 척도 안 해야된다니까. 야 하수연. 축제에 나와서 노래 부르는 게 어렵냐?”

“아니, 나는 프로라니까…”

“프로!! 프로 좋지! 근데 왜 작년에는 다른 학교에 가서 막 무상으로 노래 불러줬음?!”

수연이 논리적인 반박에 말이 막히는 동안, 다인은 친구들과 쑥덕거렸다. “학교 축제 오프닝으로 세워서 3곡 내지 4곡을 부르게 하고…”, “막 아이돌 노래도 부르게 시키는거야. 춤 연습 시켜서.” 같은 불온한 소리가 떠도는 가운데, 명전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니 잠시. 다른 거 다 떠나서 일단 그게 가능하긴 하냐? 축제 참가 신청은 이미 다 끝났다며. 그리고 한 사람이 몇곡씩 부르는 것도 안 되고. 남의 학교에서 밴드가 오는 것도 안되고. 다 안 되는 일이잖아.”

명전은 일단 거절하기로 결심을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원래 거절할 때 그냥 “아 나는 하기 싫은데.”라는 말을 해버리면, 상대와 사이가 나빠지는 길로 직행하게 된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거절하고, 상대방도 그 이야기를 듣고 ‘아 얘가 좀 하고 싶지 않아하는구나…’ 하고 딱 감을 잡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사회에 나가면 다 그렇게 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다인과 채린, 수현의 얼굴은 가히 사냥감을 잡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 명전은 불길함을 느꼈다.

“응? 그 정도는 뭐 다 되지.”

“아니… 규칙인데 다 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뭐 이런…”

“수연아. 학교 축제인데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그냥 허가해 주면 되는 거야.”

축제 업무를 맡은 선생의 이야기에, 교무실에서 환호성을 지르다 눈총을 받는 3인방. 그런 아이들을 배경으로 둔 채 명전은 좌절했다. 역시 여고생이라 그런지 사회생활이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않는구나…

‘이놈의 선생도 마찬가지다. 역시 선생이라는 놈들은 죄다 글러먹었어. 거 다 촌지나 처 받아먹고 애들 패던 그 시절의 직업윤리가 어디 가는 게 아니란 말이지. 학생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자기 실적이 될 것 같으니까 허가해주는…’

평범하게 선의로 승인해 줬을 뿐인 선생을 마음속으로 음해하면서, 명전은 교무실 천장을 쳐다보았다. 천장 타일이 석면이어서 그냥 여기 있는 놈들 다 암이나 걸려 죽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