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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앰프를 이리저리 세팅했다. 솔로의 톤에 대해서 작곡가에게 물어보긴 했으나, 딱히 원하는 톤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 그냥 뭐 편하게 가는 거지.
‘드라이브를 약간 걸어주자. 약간 흔한 톤이긴 하지만… 이런 쪽의 사운드가 오히려, ‘락발라드’라는 느낌을 주기에는 좋아.’
그가 주로 사용하던 톤과는 약간 거리가 먼 느낌. 하지만, 후반부의 감정을 터트리기 위해서는 소리가 시원하게 쭉 뻗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라인은 뭐…’
그냥 익히 사용할만한 릭으로 라인을 구성해본다. 고음을 기반으로 쭉 내뻗으면서, 중간에 벤딩과 벤딩 비브라토를 꼼꼼하게 넣어주는 식. 뭐 모날 것 없는 무난한 연주.
“마지막, 솔로 들어가겠습니다.”
명전은 그렇게 말하고는, 곡을 기다렸다. 3. 2. 1. 고음 벤딩. 시원하게 내질러지는 기타 소리와 함께, 명전은 여유롭게 손을 놀렸다.
“시원시원하네~”
옆에서 듣고 있는 작곡가가 탄성을 내질렀다. 보컬이 끝나는 시점, 그 감정을 그대로 이어 쭉 달려주는 솔로. 딱히 기교라고 할만한 것이 들어가지는 않은 담백한 연주.
하지만 재훈은, 그렇기에 더할나위 없이 만족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연주를 할 수가 있지? 저 나이에.’
기타 세션들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 중 하나. 기타 솔로를 넣어야 할 때가 오면, 이제까지 열심히 죽여왔던 ‘연주자로서의 자아’를 갑자기 폭발시키는 것.
마치 누가 “너 기타 못치지? 허접이지?”라고 물어본 것 마냥 폭발적으로 솔로를 연주하고, “그렇게 말고요.” 라고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아니 이게 더 좋은데?”라고 대답을 한다. 물론 그게 솔로로써는 더 좋겠지.
하지만 너는 세션이잖아.
자신이 메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제 기타솔로니까 내 차례 맞지?’ 라고 생각하며 그 부분에서 타협을 못 한다고 드러눕는 기타리스트들이 많다. 경력 있는 사람들 조차 그러한데, 초보는 어떻겠는가.
하지만 지금 수연이 보여주는 연주는, 그야말로 OST에 들어가는 기타 솔로의 모범이라고 할 만 했다. 딱히 화려한 기교를 넣지 않은 채, 보컬의 연장선 같은 느낌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역할만 해주는 일종의 보조장치 같은 느낌의 연주.
“자, 좋습니다. 메인 라인은 좋아요. 그런데 스타트만 약간 좀 달랐으면 좋겠는데…”
“어떻게요.”
“약간 찌잉-! 하고 올라가는 부분은 두고, 그 다음 이거 한번 긁으면서 따라락 들어가게… 한번 쫙 올려주고.”
“이렇게요?”
“아 네 맞아요. 그런 식으로.”
룸 안에 지시를 내리는 작곡가. 그리고 그 작곡가의 말을 듣고 한번에 이해해서, 원하는 라인을 뽑아내주는 수연. 그 모습을 보고, “아니 뭐 머리 사이에 USB 선이라도 꽂았나?” 라고 중얼거리는 음향기사.
“그럼 더빙 가겠습니다. 곡 주세요.”
그 말에, 석준이 곡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다시 흐르는 곡 위에 입혀지는 솔로.
‘명함을 받아놔야겠군… 아니, 나잇대를 보면 명함이 있을리가 없고. 자주 불러다 쓸테니까 시간대 좀 비워놓으라고 해야 할까.’
“기타 끝났습니다!”
그 말에, 자그맣게 박수를 치는 스태프들. “너무 빨리 끝났는데?” “야 밖에서 밥 좀 먹고 와야겠다. 어우 도시락은 질려…”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수연이 처음 나타났을 때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
기타를 가지고 나오는 수연의 뒤로, 어쿠스틱과 나일론 기타를 잡은 스태프가 따라 나왔다. 기타를 두 손에 잡고도 “들어드릴까요?” 라는 이야기까지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수연이 고마운 모양이었다.
“기타 좋았습니다!”
잠시라도 잘 수 있는 시간이 생겨 너무나도 기쁜 듯, 작곡가가 수연의 손을 두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아래위로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꼭!! 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뭐…”
그렇게 말을 흐리고는, 다른 스태프에게 향하는 수연.
“다 끝난거죠?”
“네. 이제 가셔도 되구요, 그 입금은, 1주 안에…”
급하지 않은 한, 방송가 내에서 금액 지불은 미루는 것이 전통 아닌 전통. 세션은 언제나 철저한 을의 입장에 서 있으니까. 하지만 스태프는, ‘이렇게 잘 해줬는데 좀 빨리 입금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최대한 빨리 해 드려. 그리고 저기 좀 정리좀 해주고.”
“아 네!”
어느새 다가온 재훈의 말. 그 말을 들은 스태프가 튀어나간 사이, 재훈은 수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아까 내가 한 말에 상처받은 건 아니죠?”
“네?”
“아니 뭐, 처음에는…” 재훈은 머리를 살짝 긁으며 말을 이었다. “뭐 검증된 사람도 아니니까. 잘 몰랐지. 어떻게 뭐 포트폴리오를 들은 것도 아니고 그냥 임준홍 그 양반 추천만 듣고 오라고 한 거니까… 하지만 그래도 뭐 이렇게 됐으니까 잘 된 거지!”
재훈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실 자기가 욕을 한 건 그냥 격려를 해주려고 한 거다. 원래 처음 세션 서는 사람들이 다 제 실력을 발휘 못하지 않느냐. 좀 파이팅을 불어넣어주겠다 뭐 그런 느낌으로 등등…
“아무튼 그래서. 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소리라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죠? 내가 미안해서 그래. 우리 같이 계속 작업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계속 같이 가야지. 그래야 발전도 하고.”
“아 네.”
수연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지만, 대답은 알아들었다는 투였다. 그리고 그 말에 재훈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른 스태프한테 물어보니까 가격도 탑티어 세션보다 훨씬 저렴하던데, 괜히 아까 욕 한 것 때문에 삐져가지고 “당신이랑 작업 안 할건데요.” 라고 나오면 곤란하지 않은가.
그래도 말을 잘 알아듣는 애라서 다행이다. 계속 불러다 쓰겠다는 자신의 암시를 알아듣고 알겠다고 하는 걸 보면.
“그럼 우리가 일정이 좀 꼬여있는데, 혹시 일정 좀 비워놓을 수 있을까? 언제 될지 몰라가지고 어떻게 뭐 확정적인 일정을 이야기를 할 수가 없네.
그래도 방송국 일이니까 커리어도 쌓고 좋을 거에요. 세션 하는데 도움도 되고 괜찮지.”
“아 그런가요? 그런데 어…”
그의 말에 밝은 투로 대답하는 수연. 재훈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타 실력은 좋지만, 사람 자체는 어수룩한 모양.
“제가 다음 주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다음 주? 왜! 다음 주가 엄청 바쁜 주간인데. 일도 많을 거야. 좀 비워주면 안 될까? 스케줄 잡히면 학생을 최우선으로 부를테니까.”
수연의 말에 재훈은 살짝 얼르는 듯, 윽박지르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젊은 아이들을 압박하는 데에는 특효약인 목소리.
“아, 그래도 힘들겠네요.”
“오케이. 다음주는 그럼 안 되고. 그럼 그 다음주는 되나?”
“아니 그 다음주도 안 될 것 같은데.”
그 말에, 재훈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사람 놀리나? 아까 자기가 일 하겠다고 해 놓고선. 바쁠 때는 못 하겠다 이건가?
“무슨 소리여? 일을 할 거면 좀 우리 일정에 맞춰줘야지.”
“그게, 병원을 좀 가봐야 될 것 같아서 말이죠.”
“응? 무슨 병원?”
“정신병원요.”
갑자기 이상한 쪽으로 튀어버리는 말에, 재훈은 일순간 입을 닫았다.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면서도 옆의 대화를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스태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가 이상한 여자애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감독님이.”
“응? 아, 아니 그 말은. 아까 그냥 홧김에.”
“이상하다고 하니까, 아무래도 정신병원 같은 곳에 가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아니, 아까는 그…”
그 말에 상당히 곤란한 표정을 짓는 재훈. 하지만 재훈 뒤의 스태프들은, 상당히 신난 표정이었다.
“제가 머리가 이상해서 그런데, 아까는 그 뭐 그렇게 말을 하지 마시고, 확실하게 말을 해주시죠. 아까 그 뭐야 임준홍 이 씨발새끼 좆같은새끼 이러면서 욕하시고. 저한테 ‘아 뭐 이상한 애가 왔어’ 이러면서 그러지 않았나요.”
“아니~ 그 말이 아니고! 그 뭐야! 일단 미안합니다. 미안하고…!”
“미안하면 답니까? 남은 세션 해주겠다고 기타까지 하나 더 들고 낑낑대면서 기어왔는데. 오니까 뭔 이상한 여자애니 뭐니 꺼지라니 소개해준 임준홍이는 씨발놈이니… 좆같은 일을 겪느니… 그건 다 없는 일이다? 다 내 망상이다? 나는 망상이나 하는 정신병자다? 이거 진짜 나 왠지 정신병원도 가서 진단서도 끊고, 경찰서 가서 어? 서류도 몇장 쓰고.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뭐 하나 당했다고 지랄염병을 떠는 건 명전의 스타일이 아니긴 했다. 같은 동종업계 사람들이고, 먹고 사는 게 걸렸다보니 다들 예민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대놓고 눈 앞에서 지랄염병을 떨지 않는 이상 웃어넘기는 게 예사였다.
그리고 이번의 경험은, 지랄염병조차 아니었다. 어디 술자리에 가서 “아니 그 김재훈이가 누구보고 씨발이니 이상한 놈이니 이랬다니까~” “아 그새끼 또 그래? 어휴 시발새끼.” 하고 끝날 일.
하지만 이번에도 그래야 할까? 굳이? 왜? 예전이야 뭐 밥줄 문제도 걸려있고 하니까 그냥 갑한테는 예예~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러므로, 명전은 생전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달성했다. 개지랄하는 방송가 사람한테 역으로 개지랄 떨어보기.
‘이래서 사람들이 갑질 갑질 이러는 건가?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 드네.’
그가 대충 주워섬겼던 ‘경찰서’니 ‘정신병원’이니 ‘고소’니 하는 이야기들. 명전은 그 말을 실행으로 옮길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상대는 그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황이니…
모르긴 몰라도 마음고생 꽤나 할 것이다. 그정도면 된 거 아니겠는가? 재훈의 탈모를 가속시키는 데 기여했으면 그걸로 족한 일이다.
명전은 그렇게 생각하며, 통장 내역을 확인해보았다. 오늘 오전에 입금을 한다고 했던가. 과연 입금된 금액은… 60만원이었다.
‘분명 1프로 뛴거라 30인데. 화해의 제스쳐인가? 자기랑 계속 작업해달라고 2프로 금액을 준 건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었다. 무슨 누구를 어린애로 아나… 어린애가 맞긴 하지만.
명전은 피식 웃고는 메일을 열어보았다.
썰렁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씩 쌓여가는 이메일. 콜라보레이션 제의나, 세션 문의… 많지는 않더라도, 전과는 사뭇 다른 메일함.
준홍이 이리저리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했던데 그 효과일까? 아니면 유튜브의 효과? 그도 아니면 세션으로 인한 입소문?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몇달 전이랑은 확실히 달라진 상황에… 명전은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