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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자리에 앉아, 입장하고 있는 관객들을 가늘게 쳐다보았다. 처음과는 달리 젊은 여성들이 조금 많아진 관객 구성.
‘보이밴드 애들 때문인가?’
옆에서 “아, 긴장되네요~” 하면서 헛소리를 하고 있는 보이밴드 출신 두 녀석을 보고, 명전은 그렇게 생각했다. 밴드에 비주얼이 중요하다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너무한 것 같았다. 아이돌 지망생들 중 일부를 밴드로 돌린다니, 도대체 무슨 발상인 것이냐.
“긴장 풀죠, 다들.”
내적 한숨을 쉬고는, 명전은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따라는 온 베이스(결국 명전이 원하던 재즈 기반의 리드미컬한 플레이는 이식시키지 못했다), 꽤 잘하던 드럼. 계속 아이돌 발성을 내서 “아니 그거 아니라고요!” 라고 성질을 내게 만든 보컬.
그리고 잘 따라는 오지만 뭔가 찜찜한 기타. 좀 더 파워풀하게 편곡도 할 겸, 동기부여도 할 겸. 원곡에는 없던 리듬기타를 만들어서 일부러 넣어줬고, 강렬한 연주를 위해 솔로 파트에서 역할을 좀 맡겨놨긴 한데.
‘왠지 뭔가 일 칠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 이 새끼가 일 치면 내가 뭘 할 수가 있나?’
사실, 작정하고 깽판을 치면 뭔가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작정하고 깽판을 치면 애초에 트롤짓으로 무효가 되지 않을까? 그러니 아마 깽판은 안 칠 것 같기도 했지만…
명전은 만사가 불여튼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일부러 Boss RC-2 루프 스테이션 이펙터와 루프 스위쳐 박스를 하나 챙겨넣었다.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이번 라운드의 룰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번 라운드는 사전에 진행된 절차를 바탕으로 ‘임시로 밴드를 해체한 후 적절하게 재구성하여’ 경연을 하는 방식입니다! 자세한 것은 차후 방송될 방송분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MC의 말에, “뭐야!” 하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듣도 보도 못한 방식에 분개하는 관객들. 보이밴드 팬들 위주로 터져나온 분개는, 이내 잦아들었다. 결국 밴드도 동의했을테니까.
“이게 말이 되냐? 이러면 도대체 왜 밴드 오디션을 보는 건데?”
“내 말이.”
궁시렁대던 두 사람은 결국 잦아들었다. 뭐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공연을 보는 수 밖에 없지.
“그리고 이번 경연의 주제는… ‘자유곡 선택’ 입니다! 자작곡도 가능하며, 커버도 OK입니다! 밴드 여러분들이 제한 없이 선택한 곡! 편곡을 했을 수도 있고, 원곡을 그대로 살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들은… 그냥 보시기에 무대가 ‘좋다!’ 라고 느끼신다면! 투표를 해주시면 됩니다.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마시고요! 가수분들이 얼마나 이쁜가 잘생겼나 그런 거에 가산점 주시면 안 돼요!”
MC의 말에 와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녀 둘은 웃으면서도, WEKIDS 멤버들이 있는 밴드에는 무조건 100점을 주리라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럼 경연 시작하겠습니다! 경연의 순서는 사전에 뽑힌 대로 진행되며, 이 또한 방송을 참조해주세요…!”
그렇게 외친 후, 휘적휘적 들어가버리는 MC. 무대의 스크린에는 영상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때까지 어떤 절차가 진행되어서 이렇게 되었고, 첫 밴드는 누구인지. 그리고 그 밴드가 연습을 해왔던 과정과, 다툼. 의견 교환. 그런 것들이 조금씩 흐른다.
“며칠만에 밴드 구성 하고 락을 어떻게 해. 미친 방송국 새끼들. 락이 좆으로 보이나?”
불만이 가득한 남성의 중얼거림. 그다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긴 했지만, 그녀도 동감이었다.
뭐, 하지만 아무래도 그녀와는 상관 없는 일이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WEKIDS 멤버들이나 일찍 나왔으면 싶었다.
경연이 시작된 후 초반. 크게 흥미가 없는 몇몇 밴드들이 지나간 이후.
“다음은 그룹 사운드의 멤버, 하수연양이 리더인 ‘임시 밴드’! 밴드 이름이 ‘임시 밴드’라, 상당히 독특한 작명 센스입니다.”
“임시 밴드가 뭐야.”
살짝 어처구니 없는 이름에, 마스크를 쓴 여성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이 밴드가 한번 하고 말 거라지만 그래도 밴드 이름은 좀 지어줘야 할 것 아닌가. 임시 밴드라니.
“멤버는… ‘그룹 사운드’의 하수연! ‘2MAJOR’의 윤지훈! ‘Mystica’의 황성민! ‘WEKIDS’의 태영! ‘Muzaku’의 정재훈입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태영이! 태영이 여기 보컬이네!”
MC의 말을 듣고 외치는 친구. 의외의 인선이었다. ‘우승후보’라던 여자아이가 리더인 밴드에 들어간 그들의 최애 멤버. ‘역시 여자애네. 잘생긴 건 알아가지고…’ 같은 생각을 하며, 그들은 핸드폰을 슬쩍 꺼내 무대 녹화를 준비했다.
“안녕하세요. ‘임시 밴드’의 보컬, 태영입니다. 합숙하는 동안 정말 준비 많이 했습니다. 보컬 스타일도 약간 달라서, 원작을 재현하는 데에 꽤나 고생을 많이 했구요.”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그렇게 인사를 하는 태영. 그러고는 약간의 잡담을 했다. “준비 정말 많이 했습니다.”, “리더 분이 정말 호랑이셔서… 데뷔 전에, 연습생 시절에 진짜 치열하게 연습하던 게 떠오르더라구요.”, “편곡 방향은 원작의 존중입니다. 원작을 재현하되, 최대한 파워풀한 사운드를 내기로 했습니다.” 같은 이야기들.
‘우리 태영이를 굴렸다고?’
중간에 튀어나온 이야기에 그녀는 기타 쪽을 째려보았다. 안 그래도 스케줄 많은 애한테 무슨 짓인가. 하지만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아니 태영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기타를 이리저리 점검하는 여자애.
그 뒤쪽을 보면 존재감 없이 서 있는 서브 기타가 보였다. 저 쪽도 뭔가 하는 것 같았는데… 하는 일이 좀 이상했다. 뭘 하는 거지.
“그럼 들려드리겠습니다! Cream의 White Room입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가수와 노래. 그게 뭐지 하는 순간 무대의 불이 꺼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스틱 소리.
탁, 탁, 탁, 탁.
한 템포 쉬고 기타의 스트로크가 울린다.
그리고 그 때마다 어둠속에 갇혀 있던 무대가 밝아졌다 다시 어두워진다.
드럼과 베이스는 둥둥거리며 긴장감을 조금씩 끌어올리고, 점멸하는 무대의 조명 속에서 빛나는 밴드의 모습에 머리가 조금씩 몽롱해질 때 쯤.
평소의 태영과는 완전히 다른 거친 목소리로 보컬이 흘러나왔다. 간단하지만 적절하게 들어간 베이스. 메탈 사운드를 떠올리게 할 만큼 사정없이 긁어대오는 굵직한 디스토션과, 위로 깔리는 맑고 깨끗한 클린 톤이 같이 울린다.
이전 무대의 밴드가 보여주었던 ‘깔끔한 락’ 같은 것은 없다.
그야말로 파워가 넘치는 연주는, 단 한번도 듣지 못했던 태영의 그로울링에 가까운 목소리와 태엽처럼 맞아들어갔다.
“어어어…”
낮게 깔리는 베이스와 심장을 흔드는 드럼.
안개처럼 다가오는 두 대의 기타 소리.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자신이 발을 구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드럼의 필인과 함께, 마이크에서 물러서는 태영. 그 다음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것은 투명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뭐야?”
친구가 팔꿈치로 그녀를 쿡 찔렀다. 그녀도 같은 심정이었다. 분명 체크해왔던 공연들을 보면, 저 애나 그 밴드의 다른 애도 둘 다 낮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었는데.
지금 들리는 목소리는 청아하다고 해야 할까… 자제를 모른 채로 사정없이 올라가는 고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를 연주하는 손은 멈추지 않은 상태 그대로. 격렬하게 움직이며 줄을 떨리게 하고, 레버 같은 것을 잡아채며 듣기좋은 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다음, 다시 한번 시작된 태영의 보컬.
'2절인가?'
지금 와서 들으니, 살짝은 불만이던 태영의 굵직한 목소리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대비되는 느낌 아닌가. 그러는 사이 베이스의 리듬은 살짝 바뀌었고, 태영의 창법 또한 덩달아 살짝 바뀌었다. 쭉 올라가는 목소리를 두 개의 기타와 드럼이 뒷받침해준다.
그리고 초반에 나왔던 스트로크식 진행이 다시 한번 거듭되는 동안, 그녀는 생각했다. 도대체 이 노래가 왜 이렇게 좋은가 하고.
‘태영이가 부르고 있기 때문인가?’
그녀가 좋아하는 밴드, WEKIDS의 최애. 태영이 보컬을 서고 있어서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녀도 알았다. 그녀가 태영을 좋아하는 것. 태영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것과… 그녀가 곡을 좋게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당장 WEKIDS의 음반만 봐도, 구린 노래들이 많았다. 만약 ‘태영이 부르기 때문에 좋다’ 라는 가설이 진실이라면, WEKIDS의 음반은 완벽 그 자체여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곳에는 구린 노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어쩌다가 얼굴을 보고 입덕을 하게 된 것이 보이밴드일 뿐, 그녀는 락 밴드의 음악 같은 것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끄러워서 꺼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들려오는 음악은, 시끄러움의 결정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귀에 잘 들어왔다.
특히 여자애가 치는 기타 소리가.
맑고 깨끗한, 그녀로써는 아무튼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에 드는 톤. 그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리드미컬한 베이스가 겹쳐져… 무의식적인 발구름에 이어, 그녀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수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관객석에서 점차 박수가 퍼져나가고 있으므로. 그녀에 박수에 다들 동조한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박수에 동조한 것에 가깝다.
아까부터 옆에서 불만을 터트리던 이상한 락덕후같이 생긴 남자도. “WHITE ROOM!” 이러면서 환호를 하던 나이든 중년도. 게다가 카메라를 들고 연신 베이스를 찍어대던 앞쪽의 2MAJOR 덕후도, 어느새 카메라를 내린 채 박수를 치고 있다.
태영이 싱글벙글 웃으며 관객들의 박수에 자신도 박수로 대답해주는 사이… 청아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온다. 숲속 어딘가를 고요히 흐르고 있는 맑고 고운 시냇물 같은 목소리. 그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어느 새 굽이치는 난폭한 강, 낭떠러지에서 우렁차게 내려꽂아가고 있는 폭포… 와 같은 기타.
그리고 다시 한번 더, 곡 초반의 스트로크식 진행이 나온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르다. 본격적으로 뭔가가 진행될 분위기.
앙증맞은 탬버린을 꺼내든 채로 뒤쪽으로 슬쩍 빠지는 태영과, 발 밑의 무언가를 슥슥 밀며 점점 무대 앞으로 나오는 여자아이.
스트로크 밑에는 점점 무엇인가가 깔린다. 그녀로써는 이해하기 어려운 테크닉. 하지만 낮게 깔리는 소리가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키고 있다는 것 쯤은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리고, 복잡하게 울리던 드럼과 베이스는 이내 조용해진다. 두 대의 기타도 조용해진다. 무대에는 몇초 동안 조용함만이 감도는 폭발 직전의 분위기.
공연이 처음 시작했을때처럼, 드럼 스틱이 교차한다. 이제는 어둠에 살짝 익숙해진 그녀의 눈에는 보인다.
첫 번째 교차, 탁.
두 번째 교차, 탁.
그 순간 그녀는 시야 안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쳐다본 쪽은, 두 번째의 기타 쪽이었다. 존재감 하나 없이 묵묵히 기타를 연주하고만 있던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손에서 반짝이는 무언가. 줄을 거칠게 튕기는 듯한 동작.
세 번째 교차, 탁.
그녀의 귀에는 들렸다. 휘리릭 하며 기타 줄이 요동치는 소리가. 앞쪽의 여자아이의 고개가 부러질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것 또한 보았다.
네 번째 교차, 탁.
확 밝아지는 조명. 그녀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2번째 기타의 줄이 끊어져있는 것이.
그 모습을 밴드 멤버 모두가 목격한 것이.
그들이 보여주는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이.
그리고 기타를 든 여자아이가, 입모양으로 “씨발!” 이라고 외치며… 거칠게 이제까지는 밟지 않고 있던 페달을 밟은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