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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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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덩치는 크다. 검정색 티셔츠에는 어느 밴드인지 모를 밴드의 로고. 목에는 금목걸이가 걸려 있고, 팔은 온통 문신 투성이. 머리는 빡빡 깎았고, 스크래치를 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외형에서부터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다. 딱 봐도 뭔가 성격이 느껴지는 사람 있지 않은가. 괜히 목소리 크고.

‘밴드 마스터를 한다고 해서 뭐 수당 같은 것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완장 차기 좋아하는 사람인가? 명전은 그렇게 생각했다.

밴드 마스터란, 세션 밴드를 총괄하는 자리다. 진행도 하고, 가수가 알 수 없는 부분을 캐치해서 알려주기도 하고. 곡에 따라 편곡을 하기도 하고, 가수의 피드백에 따라 세션들의 조정을 거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경력도 필요하고, 실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단지 그것 뿐이다. 뭐 득이 되는 건 없다. 귀찮은 일만 가득할 뿐인 자리다. 아, 물론 어느 콘서트의 밴드 마스터 했다 이러면 좀 세션 경력상 플러스가 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딱 그정도에 불과한 일.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 나는 밴드 마스터 안 할래~ 라고 손을 놔버릴 수도 없다. 잘하는 밴드 마스터가 들어오면 티가 안 나지만, 못하는 밴드 마스터가 들어오면 확 티가 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경력과 실력을 논했던 남자의 말 이후로, 딱히 대답이 없던 사람들. 태경은 불안한 심정으로 세션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동도 없는 사람들.

‘누가 해주면 안 되나? 저 사람 왠지 성격 안 좋을 것 같은데.

그냥 길가다 보이는 사람이라면 별 문제 없다. 하지만 태경은 세션 밴드와 소통을 담당하는 스태프로서, 그래도 성격이 좀 괜찮은 밴드 마스터와 일을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주현의 팀에는 ‘세션 밴드 담당’이라는 업무가 이제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저 사람이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해도 그게 맞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별 이의 없으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에 답하며 올라온 손. 태경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찾아보았다. 메인 세션 밴드의 리더, 하수연.

“밴드 마스터는 아무래도 총괄직이니까. 메인 세션 밴드인 저희 쪽에서 맡아야 할 것 같은데요.”

“메인 세션 밴드?”

남자는 그런 게 있었나… 하는 눈치로 태경을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찌됐든 저희가 밴드 여러분 요구대로 다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경력도 짧아보이신 것 같은데. 세션적인 부분을… 음, 혹시 좀, 아시는지?”

‘니가 세션을 알기나 하냐? 같은 느낌의 질문. 하지만 수연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경력적인 부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짧기는 하죠. 하지만 실력이라거나, 뭐 지식이라던가. 그런 쪽에서 딱히 모자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세션 일도 잘 알고 있고.”

“예?”

남자는 참으로 가당찮다는 느낌으로 반문했다. 보통 저 나이 정도 되면 저렇게 거칠게 반응하지는 않는데. 근데 태경이 듣기에도 말이 안 되는 부분이긴 했다. 주로 물리적으로.

어떻게 고등학교 2학년이 지식도 좋고 실력도 좋은데 세션 일도 잘 알겠는가? 주현 팀에 세션 밴드가 안 들어온 거지 태경이 세션들과 소통하는 일을 안 해본 게 아니었기에, 태경은 저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잘 알았다.

“그, 이런 걸로 무시하긴 좀 그런데. 어리시잖아요.”

태경은 ‘그게 말이 되나요? 라는 말이 뒤에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현장의 스태프와 나머지 세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싸움처럼 보이는 현장에 돌아가는 고개들. 하지만 수연은 씨익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이가 중요한가요? 실력이 중요하지.”

“… 실력 이야기를 하는데.”

왠지 모르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목소리 톤이 낮아지는 세션. 수연은 살짝 웃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지 하는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타 잘 칩니까? 나도 어디가서 기타 못 친다는 소리 듣는 사람은 아닌데. 좀 보죠?”

“아니 뭐, 밴드 마스터가 기타 잘 친다고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편곡도 하고, 뭐 소통도 하고. 그런 점에서 메인 밴드 리더인 제가 맡는 게 편하긴 한데.”

세션 기타의 더 낮아진 목소리에, 수연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함인지 말을 살짝 돌렸다.

“그래서 잘 치시냐구요. 밴드 리더시면 잘 치시겠네. 어느정도 치십니까? 이 정도는 되나요?”

하지만 태경이 보기에는, 세션 기타는 이미 살짝 흥분한 상태 같았다. 왜 저럴까?

‘어린 애한테 무시당한다고 느껴서인가?

그럴수도 있겠다고 태경은 생각했다. 딱 봐도 경력이고 뭐고 자기보다 못 해보이는데, 메인 밴드 리더니 실력도 지식도 너보다 좋으니… 그런 말을 들으니 열이 뻗치는 거겠지.

그러는 사이, 세션 기타는 뭔가 앰프에 줄을 연결하고 속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뭔가 빠르게 튕겨내는 줄. 상당히 빠른 속주에, 스태프들은 오~ 하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수연은 헛웃음을 지었다.

“속주로 기타 실력이 평가가 되나요? 세션 어느정도 하셨으면, 그런 걸로는 전혀 안 된다는 거 아실텐데.”

“그래서 이정도는 치냐구요.”

“아니 뭐, 음… 허허. 뭐 그 정도는 평범하게 칠 줄 아는데요.”

명전은 자포자기로 대답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속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캐논락 치던 시절 어린 애들도 아니고, 딱 봐도 40대는 되어 보이는데 왜 그런 허상에 집착하고 있는가.

물론 말이 길어지지 않고 그냥 ‘실력’으로 평가하자는 이야기는 좋다. 복잡하지 않고 편하니까. 설득의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앰프에 줄을 꽂고, 살짝 노브를 만진다. 이 앰프로 완벽하게는 만들어낼 수 없으나 어느정도는 재현이 가능하다. 싱글 코일로 낼 수 있는 헤비한, 하지만 스트랫의 색깔은 지우지 않는 정도로 톤을 정리한다.

그 다음, 발을 몇번 구르고는… 명전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명전이 손을 풀 때 가끔 연주하곤 하는 곡 중 하나인, 잉베이 말름스틴(Yngwie Malmsteen)의 Far Beyond The Sun을.

이서는 세션 기타의 표정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다가, 조금 있다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이 일그러지다, 나중에는 표정 자체가 아예 멍하게 변해버리는 것을.

그러거나 말거나 수연의 연주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세션 기타는 약 30초 정도의 연주를 보여주었지만, 수연은 다르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뭔가 약간 클래식한 느낌도 나는 메탈 속주곡을 거의 5분 정도 연주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연주를 말리기는 커녕 연주에 푹 빠져 있는 느낌.

“이 정도면 됐나요?”

마지막 음을 끝내고, 수연은 기타에게 되물었다. 이미 혼이 빠져버린 표정이던 기타는,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목을 긁적이더니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새로 기타 구해야 할 것 같은데?”

스태프 중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낮은 헛웃음이 퍼져간다. 이서는 ‘그러게 왜 쟤한테 갑자기 시비를 걸어서는…’ 같은 생각을 했다.


그 후로 시작한 세션 연습은 순조로웠다. 리듬 기타를 빼고 연습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뭐 그렇게 중요한 파트도 아니니, 다음 주에 새로 들어오면 그때 다시 맞춰보면 된다.

“쉽지 않네.”

쉬는 시간을 받아 다들 연습실에서 나간 사이. 캔커피를 까 마시는 명전에게 다가온 서하가 그렇게 말했다.

“뭐, 세상 어디에 쉬운 일이 있겠냐만은…”

“너 가끔 그런 말 할때 진짜 노인네같은 거 혹시 자각하고 있냐?”

명전은 뜨끔했다. ‘진짜 노인네 같은 거’ 가 아니라 진짜 노인네긴 했으니까. 하지만 서하는 그런 명전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채,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모르지. 내 생각에는… 아마 나이 때문에 화난 게 아닐까?”

외관으로 연령대를 추측해보면… 마흔 넘는 나이. 게다가 세션계에 이리저리 발을 걸치고 있던 명전이 이름 하나 들어보지 못했던 세션.

남의 사정을 섵불리 추측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 문제 같았다. 딱 봐도 어려보이는 여자애가 콘서트 메인 밴드 리더를 하고 있는데, 자기는 세션 리듬기타.

게다가 ‘나이보다 실력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 하고 있으면, 안 그래도 정서 불안정하다는 ‘예술 하는 놈들’이 화가 안 날리가 없다. 명전도 재능 있는 젊은 애들에게 화를 내본 적이 좀 있었으니,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그거랑 나한테 직접 그러는거랑은 다르지.

“아무튼 그 사람은 이제 우리랑 연관 없으니까. 그런데 진짜 콘서트 세션 밴드 정도 되니까, 엄청 신경써야 될 것도 많네.”

“그렇긴 하지.”

콘서트 세션단의 규모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냥 간략하게 예닐곱명만 꾸려서 하는 경우도 있고, 서른명 마흔명이 들어가는 콘서트도 있다. 예를 들어 스트링 파트(클래식에서 사용되는 현악기들), 타악기(드럼 및 봉고 등등), 저음부, 기타(리드, 리듬1, 리듬2, 리듬3…), 캐스터네츠나 탬버린, 하모니카 같은 기타 악기 등.

명전이 느끼기에 이 정도 규모 세션단이면 그렇게 막 규모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스트링 파트 있고, 리듬기타에 리드기타. 그리고 그 외 몇몇 특수 악기들과 밴드. 하지만 서하는 단독 드럼으로서 뭔가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내가 안 잡아주면 뭔가 다 흔들리는 느낌이야. 우리는 그래도 우리끼리 호흡도 다 맞췄고, 게다가 수연이 네가 완전 칼박이니까 혹시라도 내가 흔들리면 너를 보고 맞추는 부분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니까.”

“내가 너무 약하게 했나? 드럼이 박자를 못 맞춰? 이거 안되겠는데.”

그 말에 히이익- 하는 표정을 짓는 서하. 명전은 흐흫 웃으며 캔커피를 탈탈 털어냈다.

“그래도 이런 거 한번 겪어보면, 실력 엄청 늘지.”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자신의 뜻대로 부릴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연습을 하고 맞춰나가다보면… 어느새 실력이 부쩍 늘어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기대되네, 콘서트.”

“벌써 그런 이야기를 하긴 이르지 않나? 아직 몇번 연습이 더 남았는데.”

“감동 좀 깨지 말아줄래?”

서하의 말에 명전은 다시금 웃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것이, 점점 즐거워지고 있는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