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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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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요, 들어와.”

이전에 방문했던 장소와는 아예 다른 곳. 꽤나 멀끔했던 연습실과는 다르게, 생활감이 상당히 묻어 있는 공간. 안쪽에서 들리던 음악소리가 잠시 멈추더니,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보니 테일러드의 드럼을 맡은 사람이었다.

“웬일이야? 오늘 안 온다며.”

“아, 오늘 우리 수연 씨 앨범 작업 관련해서 좀 이야기좀 할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슥 들어가버리는 드럼. 철연은 웃으며 방 한쪽 테이블 자리를 권했다. 몇명의 사람이 앉았는지 모를 정도로 닳아버린 가죽 의자 위에 명전은 몸을 올렸다. 쿠션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여기는 이제 우리 밴드 멤버들 개인 연습실이에요. 옛날에는 여기에 한층 더 터서 녹음실에 단체 연습실까지 뒀었는데, 이제는 안 그러고 있지. 아무래도 돈도 많이 들고, 장비도 교체해주고 이러는 게 좀 힘들어서.”

명전이 자리에 앉자 철연은 책장에서 수북하게 뭔가를 꺼내왔다. 테일러드의 앨범과 노트, 그림, 그 외 기타 등등.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것 같은 자료도 있고, 수기로 작성된 게 분명한 자료도 있었다. 난잡하게 그려진 낙서라던가 앨범 아트에 대해서 정말 대략적으로 설명된 그림도 존재했다.

“이거는 이제 우리가 3집 만들 때 썼던 거에요. 그때 한참 컴퓨터 아트가 유행했잖아.”

철연의 말에 명전은 철연이 건넨 3집을 쳐다보았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90년대 세기말에 막 만들어지던 이상한 느낌의 컴퓨터 아트. 그때는 저런 게 유행하긴 했지.

“이런 건 보통 어떻게 제작하셨습니까?”

“음… 우리는 뭐 누가 전담해서 하지는 않았어요. 보통은 담배 뻑뻑 피우면서 “앨범아트 어떻게 하냐?” 막 이런 소리나 하다가, 이제 술 먹고 머리 싸매다가 누가 아이디어 내면 그게 옳다 그르다 그런 이야기들 막 했지.”

그 말에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테일러드는 한참 저평가를 받던 시절에도 디자인 컨셉 하나는 좋다는 이야기를 듣던 밴드였다. 후배들이 이야기하기로는 “디자인 전공 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던데요.” 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명전 또한 “내 앨범 아트가 저 정도였으면 좀 더 팔리지 않았을까?” 라면서 당시에 있던 친구에게 한탄한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냥 술 먹고 담배 피다가 막 생각해낸 그런 거였단 말인가. 뭔가 실망스러운 이야기였다.

“근데 디자인이라는 게 뭐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수연 학생은 뭔가 컨셉 아트를 하나로 관통하는, 그런 대단하고 거창한 그런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지.”

철연은 그렇게 말하며 커피를 홀짝였다. 그 말에 명전은 뭔가 찔린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그 고 부장이라는 분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 것 같고. 내 생각에는 어찌되었든 뭔가 이미지가 필요하니까 그렇게 말을 한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만드느냐가 문제입니다. 디자인이라는 걸 해보질 않았으니…”

“거 봐. 그게 거창하게 생각하는 거라니까.”

탁자 위에 올려진 서류 더미. 그 안에서 철연이 찾아낸 것은 복잡하게 낙서된 수십장의 종이였다. 무슨 말인지도 모를 악필과 고풍스러운 글씨체. 그 외 이것저것 등이 적혀있는 무지 종이.

“이게 우리가 앨범 컨셉 잡고 아트 만들고 기획하고… 이럴 때 막 썼던 거거든요. 이거 보면, 그냥 막 썼어. 브레인스토밍? 이라고 하지? 밴드 멤버들 모아다가 막 던지고. 되던 안되던 이야기를 막 하고.”

“멤버들이랑 이야기는 많이 합니다만.”

“아니 그거 말고. 그런 이야기 말고.”

철연은 손을 잠시 쥐었다 폈다 하다가, 앉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명전은 마치 그 폼이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을 앞에 둔 노가다 아재 같다고 생각했다.

“수연 학생은 미성년자니까 술을 먹으라는 이야기는 못 하겠지만…”

‘맞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뭔가 밴드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럴 일이 있다 그렇다면 그냥 멤버들끼리 진솔한 이야기를 한번 해보라는 거에요. 왜냐하면 결국 창작을 하는 사람은 처음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거든. 왜냐하면 본인이 제일 잘 아는 게 그거니까.”

그 말에 명전은 최근에 만들었던 곡을 떠올렸다. 처음은 아니었지만, 손 가는대로 만들어졌던… 이번 앨범의 컨셉을 잡은 [Entangle]. 그것은 ‘서명전’이 ‘하수연’의 삶을 살면서 느꼈던 것을 풀어놓은 곡이었다.

“여러분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고. 예를 들어서 “나는 이 곡을 어떤 의도로 작곡했는데, 너희들은 이 곡을 들을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 같은 그런 느낌인거지. 물론 좀 부끄럽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막 늘어놓다 보면, 결국엔 답이 나올 거에요.”

왜냐하면 여러분의 앨범은 곧 여러분의 이야기니까. 철연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커피를 한번 더 홀짝였다.


레이블 에코사운드의 사무실.

사람들이 꽤나 들락날락거리는 근무시간과는 다르게, 저녁 시간이 되면 이 곳에는 한명밖에 남지 않는다. 음반 판매 및 커피 관련 코너에 종사하는 아르바이트생.

“어서오세요… 어? 수연아! 이 시간에 갑자기 왜.”

“아, 애들이랑 회의 좀 하려고요.”

“안녕하세요~!”

명전의 뒤로 옹기종기 따라온 세 명. 알바생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세 명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명전은 커피 네 잔을 구매한(안타깝게도 회사 카페라고 해서 막 공짜로 커피를 주지는 않았다) 후, 회의실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오늘 우리는 밤을 샌다.”

“갑자기?”

그리고 이어진 명전의 결연한 중얼거림에, 아이들은 처음 듣는 소리인 것처럼 화들짝 반응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도 하지 않고 합의도 보지 않았으니까.

“오늘 안에 앨범 컨셉 및 이미지… 이거 안 정하면, 내일 학교 못 간다고 생각해.”

하지만 희번덕거리는 명전의 눈빛에, 세 아이들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봤다. 저렇게 약간 돌아버린 상태의 ‘하수연’은 정말 막기가 힘들었으므로.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이런 거지? 우리가 만든 곡을 다 들어보고. 그 다음 아무튼 브레인스토밍을 해서, 오늘 안에 뭐 어떻게든 이전에 고 부장님이 말한 그런 걸 만들자.”

이서의 말에 명전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그랬다. 철연의 말처럼 서로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떠오르는 것을 마구 던져본다. 그러다 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노트북도 가져왔지. 이때까지 너희들이 만든 곡을 한번 들어보자고. 이 참에 이제 정리 좀 해서 들어갈 곡 안 들어갈 곡 추리고, 들어갈만한 곡은 편곡으로 넣고. 이래야 될 것 같으니까.”

“어… 좀 부끄러운데. 1:1로 하면 안 돼?”

그 말을 하며 이서는 뒷목을 쓰다듬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을 보면, 공연히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부끄러운 듯 했다.

“안 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밴드 멤버인데, 무슨 오디션 심사 받는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해야 하냐.”

“에엑.”

이상한 소리를 내는 이서. 명전은 그런 모습을 무시한 채로, 다른 아이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부터 할래.”

그 말에 침묵이 감도는 회의실. 평소라면 뭐든지 내가 먼저 하겠다며 나설 이서도, 자신감이 넘치던 서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현아야 뭐 원래 이런 거에서는 절대 안 나서는 사람이긴 했지만, 다른 둘이 침묵하는 것은 상당히 의외라고 명전은 생각했다.

“그럼 가위바위보로 정해. 먼저 곡 발표할 사람.”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세 명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느릿느릿 손을 내밀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딱 봐도 영원히 비기기만 하자 같은 그런 눈빛.

“아싸!!”

하지만 영원히 비길 수 있는 가위바위보는 없다. 현아의 패배로 끝난 첫 대결. 반쯤 덤블링을 할 기세로 좋아하는 이서를 두고 현아는 고개를 떨구었다. 마치 곧 죽을 거라는 소식을 들은 것 같은 표정.

‘어차피 좀 있으면 자기들도 할 텐데 왜 저러는건지 모르겠네.

그 광경을 보며 명전은 생각했다. 결국 조삼모사 아닌가? 원래 매는 먼저 맞는게 이득이라고 하는데…

“… 제 곡은, 여, 여기까지에요…”

탁상형 모니터링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곡이 멈춘다.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고는 방금 들은 곡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았다. AOR, 혹은 퓨전 재즈… 한국 혹은 일본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시티 팝(City Pop). 3분 정도의 길이를 가진 곡.

“좋네.”

“저… 정말요?”

“레퍼런스가, Plastic Love랑 Out of Time인가?”

“네… 네! 맞아요. 그 곡.”

물론 완전 다 좋지는 않았지만, 명전은 일단 다른 아이들의 창작 의욕을 꺾지 않기 위해서 곡에 안 좋은 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아이들이 처음으로 만든 곡 아닌가. 곡이야 다듬으면 되는 거지. 확실히 수록한다고 말은 못하겠지만.

“어떤 의도로 만든 곡이야?”

“그… 으… 뭐라고 해, 해야 하나…”

명전의 말에 우물쭈물하던 현아는, 계속되던 명전의 시선에 결국 입을 열었다.

“우리 인, 인천공항… 그 가던 날 있잖아…요.”

“응.”

“그날 새벽에 가로등을 보는데, 가로등이 너무… 너무, 약간 감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 가로등, 은, 매일같이 거기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있건, 없건, 오던 말던… 간에, 항상 그 자리에서.”

현아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우리 미래도 그렇잖아요. 결국 어찌되었건 사람들은… 결국 자기의 자리에, 서… 살아가야 하는… 데. 오는 사람들을 지나보내면서… 약간 그런 느낌을 받아서.”

“뭐 그런 느낌이라는 거지?”

“네, 네.”

현아의 말에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긴 했지만… 일단은 메모로 끝내고, 다음 사람의 곡을 들어봐야 할 차례 같았다.

“곡명이 뭔데?”

“FUCK THE CHURCH. 가칭이야.”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냐?”

그 말에 서하는 프핳, 하며 웃었다. 정말 대놓고 의도가 그려지는 곡이었다. 딱 봐도 그런 곡 아닌가. 교회 좆까, 종교 좆까.

“그때 우리 교회에서 공연하고 난 다음, 너 가고 나서… 나는 결국 깨달아버렸지.”

“뭘 깨달았는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종교는 그냥 해롭기만 한 것이다.”

그 말을 하고 뿌듯해하는 서하의 얼굴. 명전은 참으로 할말이 많긴 했지만, 일단은 참았다. 이 대목에서 입을 열면 말이 상당히 길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서하가 들려준 곡은 マキシマム ザ ホルモン(맥시멈 더 호르몬) 풍의 하드코어 곡이었다. 어떤 장르라고 하기는 약간 애매한… 뭔가 강렬한 사운드와 상대에 대한 증오를 전달하고자 하는 그런 곡.

‘이거 앨범에 들어갈 수는 있나?

그는 천장을 쳐다보며 그렇게 생각했지만, 일단은 넘기기로 했다. 다음 곡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어때!”

“어… 일단 어떤 풍 음악 듣고 쓴건지는 바로 알겠네.”

이서의 대답을 요구하는 외침에, 명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딱 봐도 ZUTOMAYO, ヨルシカ(요루시카), YOASOBI… 요즘 틱톡이나 혹은 다른 유튜브, 혹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그런 소위 말해 ‘니코동’ 발 음악. 살짝 다운되어있으면서도 통통 튀고, 그러다가 갑자기 극적인 템포를 만들어내는 그런 곡들.

“그래서, 의도는?”

“의도라… 놀랍게도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의도가 있어.”

“뭔데?”

“내가 최근에 겪은 사건이 있단 말이지.”

이서는 그렇게 말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세계의 중대한 비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근데 요약하자면 별 이야기 아니었다. ‘학교에서 나랑 놀던 애가, 얼마전에 가보니까 이제 내 뒷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애는 사실 나한테 와서도 그 애 뒷담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걸까? 라고 짧게 줄일 수 있는 이야기.

“결국 사회에서의 친구 관계란 결국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는 거지. 위선과 위선이 뒤덮혀있는… 진정한 친구 관계. 진짜를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매우 심각하게 중얼거리며 먼 곳을 바라보는 이서. 그리고 살짝 동감하는 듯한 두 명의 사이에서 명전은…

“흐…흐흐흡… 흐헉… 푸학!”

“웃지마!!”

“미… 미안하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서의 얼굴이 토마토보다 붉어지긴 했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사람의 생리현상이라는 게 막기 힘든 것 아니겠는가 원래.

“음, 이제 슬 감이 올 것 같은데.”

“진짜?”

그 뒤로도 몇개의 곡이 더 이야기가 된 후, 명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피곤한 가운데 화색이 도는 아이들의 얼굴.

세 명의 시선을 받으며,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그가 듣기에, 아이들의 의견은 결국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었다.

‘이거 중2병, 아니 그건 너무 심했고. 사춘기 이야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