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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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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감정하게 울리던 드럼에 색이 입혀진다. 차이는 크지 않다. 남들이 듣기에는, 약간 달라졌네 하는 정도.

하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오듯이, 작은 변화는 더 큰 변화를 이끌어냈다. 결과는 극적이다.

마치 클래식 콘서트에 온 듯한, 적막했던 분위기는 이제 없다. 풍부해진 드럼의 사운드. 넘실거리는 박자. 연습때와는 완전 달라진 분위기.

드럼 비트 하나마다 담긴 슬픔과 외로움, 절망과 분노, 환호와 기쁨.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이 담겨 가끔 튀는 소리를 보면 아직은 미숙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충분하다. 밴드원들은 완전히 달라진 소리에 의아해하면서도 나름의 감정을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확실하다. 일반적인 ccm과는 좀 다른 분위기지만, 어찌되었든 사람들을 일어서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디 자발적으로 일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 위에서 적당히 연주를 해 드럼을 돋보이게 하며, 명전은 회랑 안의 사람들을 보았다.

‘이해를 한 것 같네.

명전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서하는 충분히 재능이 있는 아이이니 그럴 줄 알고 있었다. 개인의 슬픔으로 인해 깨달을 줄은 몰랐지만, 어찌되었든 감정을 실을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과거의 그는 그러지 못했다. '하수연'이 된 후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과거의 '서명전'은 감정에 기반한 연주를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다.

대신, 명전은 다른 식의 연주를 할 수 있었다. 치열한 계산에 따른 연주. 이 타이밍에 기타를 이런 식으로 몇번쯤 떨리게 하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듣는다는... 뭐 그런 식의 연주. 완벽한 테크닉으로 만들어낸 가짜 감정.

이 몸에 들어와서야 연주에 '진짜 감정'을 실어내는 법을 알아낸 명전이지만,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가르쳐주고 싶지도 않았고.

‘성장의 기회를 뺏는 것이니까.

벽이 없다면 성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너무 단단한 벽이라면 무너트리지 못한다. 명전이 생각하기에 이번 벽은, 서하에게 알맞는 강도였다. 너무나도 시기적절하게 찾아온. 동기부여까지 해 주는.

그 내용물이 ccm이라는 건 비종교인인 명전으로서는 좀 불편한 일이었지만, 어찌되었든 좋다.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연주를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일이니까.

앞으로 서하는 계속 발전할 것이다.


“여보.”

아내의 말에 윤 목사는 고개를 돌렸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지은 아내. 항상 단호하게 살아왔던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왜.”

“서하의 연주, 봤잖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년만에 본 딸의 연주는, 이전과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그의 말에 드럼 스틱을 조물락거리던, 스네어를 퉁기며 웃던 아이.

더이상 그 시절의 서하는 없다.

온갖 감정을 표출하며 드럼을 두들기던 딸. 사람들을 일어서게 만들고,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만들던. 난생 처음 보는 딸의 모습에 윤 목사와 아내는 할 말을 잊어버렸었다.

“그렇지.”

“…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걸까요?”

아내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는 가만히 천장을 보았다. 천장에는 특별히 뭔가가 있지는 않았다. 언제나처럼의 천장.

“글쎄.”

뭐라 말할 수 없어, 윤 목사는 그저 그렇게 답할 뿐이었다. 하루가 그렇게 또 스러지고 있었다.


현아의 입시가 끝난 후.

이서는 수연에게서 ‘중요하게 할 말이 있으니 오늘 저녁에 무조건 연습실으로 와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이기에, 불참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까.

게다가 악기를 들고 올 필요까지 없다는 걸 보면, 연습 이야기는 아닐 텐데. 뭘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는 건지…

“왔어?”

도착한 연습실에는 이미 서하가 자리잡고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화려한 플리스를 입고 드럼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매만지고 있던 서하는, 이서를 보고는 인사를 건넸다.

“네. 언니 뭐 좋은 일 있어요?”

밝아보이는 말투와 목소리. 이서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 말에 “아니, 별 일 없어.”라고 대답하는 서하. 하지만 그렇지 않아 보였다.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연습이나 할까. 혹시 베이스 가져왔어?”

“연수가 들고 올 필요 없다고 해서 안 들고 왔는데요.”

“그래? 아쉽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드럼을 두들기기 시작하는 서하. 이서도 아는 곡이었다. 몇번이고 합주를 했던, 그래서 너무나도 익숙한…

‘사운드가 좀 다른데?

이서는 생각했다. 서하는 칼같이 드럼을 치는 편이었고,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편이었다. 스스로 “수십번을 쳐도 똑같은 사운드가 나오게 해야지.”라고 말했을 정도로.

하지만 지금 들리는 사운드는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뭐랄까 조금 더 풍성하고 활기찬… 어떤 부분에서 다른지 확실하게 잡지는 못하겠지만, 느낌은 명백하게 달랐다.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은 건가?

이서는 얼마 전에 접하기 시작한 새로운 컨텐츠를 떠올렸다. 웹소설. 그 중 남성향 웹소설을 보면, 남자 주인공이 막 혼자서 칼 몇번 휘두르다가 ‘크아악 깨달았다’ 라고 외친 후 갑자기 엄청나게 세져서 적도 다 패 죽이고 그렇게 하는데, 서하도 일종의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이서는 고개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아무래도 웹소설을 너무 많이 본 것 같았다. 마치 기타만 치던 노인이 수연이 몸에 빙의해서 대신 기타를 치고 있다 같은 그런 황당한 수준의 생각 아닌가. 그런 인생에 단 하나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생각은 애초에 하면 안 된다.

“안녕… 하세요.”

“빈님! 올만올만~”

그러는 사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현아였다. 달려가 현아를 껴안자, 기어가는 목소리로 “숨막혀요…”를 말하는 현아. 장난기가 동한 이서는, “쮜쮜쓰로 질식사 시켜버리기~”를 외치며 현아를 더 껴안았다.

그리고 닫히지 않는 문을 보았다. 문 바깥에는 수연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2500%의 경멸과 한심함을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수연은 연습실 문을 닫았다.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연습실에 들려왔다.

수연을 쫒아가 연습실로 다시 데리고 온 이후(수연은 왠지 모르게 “다 큰 처녀가 그런 식으로 남을 놀리고 그러면 안 된다.”라는 말을 헀다.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그러는 건지), 수연은 커피를 4잔 타온 후, 종이 수십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두었다.

“이게 뭔데?”

“중요한 거.”

수연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가죽 다이어리를 펼쳤다. 내용을 슬쩍 본 이서는 경악할 정도로 놀랐다. 단 하나도 꾸며져 있지 않은 다이어리. 노트 안에는 고풍스러운 궁서체 샤프 글씨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저게… 여고생의 다이어리?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아보이는 다이어리를 수연은 잠시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

“일단 현아는 그동안 수고 많았어. 서하야 뭐 진로 고민은 그다지 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서 너도 그렇게 미래를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제부터는 장기 계획을 좀 잡고 실행해도 되겠지.”

“장기 계획?”

“응.”

수연은 그렇게 말한 후 책상 위에 깔린 종이 한장을 집어 모두에게 건넸다.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룹 사운드 정규 앨범 1집 계획].

“정규 앨범?”

이서는 그렇게 반문했다. 그 뒤로 “저희… 앨범 내는, 건가요?”, “벌써?” 같은 반응이 이어진다. 정규 앨범이라. 이서가 이전에 들었던 바로는, 앨범은 보통 8곡 이상을 일컫는다고 했었다.

“계획이지, 뭔가 당장 낸다는 건 아니야. 앨범 내용물도 없는데 어떻게 발매를 하겠어.”

“이전에 만들어놓은 거 있지 않나? EP라던가, 뭐 그 다음에.”

“그렇긴 하지만, 그런 걸 쓰고 싶지는 않아.”

수연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걸 쓰고 싶지 않다니.

“Pink floyd의 전성기는 언제일까. 많은 의견이 있겠지만, 나는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Pink floyd의 전성기라고 생각해. The Wall도 분명 명반이지만, 너무 한쪽 색깔이 짙은 앨범이지.”

수연은 계속해서 설명했다. 두 앨범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 하나만을 들라고 한다면, 멤버들의 참여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앨범 프로듀싱에 모든 멤버가 참여했던 The Dark Side of The Moon과, Roger Waters와 David Gilmour만이 참여한 The Wall.

“어떤 방식이 다른 방식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어. 음악을 하는 데에 정답이란 없으니까. 하지만 내 생각에, 밴드의 건강을 위해서는 모든 멤버가 프로듀싱에 참여해야 된다고 생각해.”

“그 말은…”

“응. 이번 앨범에는, 너희들이 만든 곡도 넣을 거야. 내 생각에는 최소 3곡씩. 최소 12곡에서 15곡.”

현아의 말에 수연은 그렇게 대답했다. 12곡에서 15곡. 최소 8곡이 앨범이라고 했으니, 최소 조건보다는 훨씬 많은 트랙 수. 그렇게 많이 곡을 만드는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이번 정규 앨범의 최종 목표는… 단독 콘서트.”

수연은 종이 한장을 더 집어 건네주었다. 콘서트 홀의 규모가 나와 있는 종이. 홍대 근처의, 약 2500석 가량의 규모를 가진 공연장.

“이번 정규 앨범으로, 그리고 그 활동으로… 이 공연장을 매진시킨다. 그게 내가 세운 이번 앨범의 장기 목표야.”


살짝 동요하는 듯한 다른 멤버들. 명전은 쓰게 웃었다. 그럴 만 하지. 현아가 주현과의 콜라보에서 재즈 곡을 만들었던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아이들은 작곡에 관여한 적이 전혀 없다. 그리고 작곡에 흥미도 보이지 않았고. 단지 이서가 작사를 하고 있을 뿐.

하지만 명전은 밴드 멤버들이 작곡에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밴드의 건전성도 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문제이기도 했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4명의 머리가 1명의 머리보다 쓸만하다.

명전 본인이 무슨 Roger Waters라던가 Robert Fripp, David Bowie, Paul Mccartney와 같은… 그런 역사에 남을 천재라면, 혼자서 다 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거면 밴드를 왜 하는가. 그냥 ‘하수연과 떨거지들’이라거나 ‘하수연과 세션들’같은 걸 하면 되는 일이다. 게다가 위에 언급한 기라성같은 천재들도 밴드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곡을 작곡했단 말이지.

“아니, 음.”

침묵을 깬 것은 서하의 목소리였다. 살짝 당황한 듯한 그녀의 안색. CCM 공연 이후 줄곧 싱글대던 서하의 표정은, 방금 전 그 이야기를 듣고 살짝 변해 있었다.

“작곡에 참여한다, 뭐 그런 건 괜찮아. 충분히 할 수 있고, 오히려 맡겨달라고 하고 싶기도 해. 그동안 심심하기도 했고. 그런데…”

서하는 공연장의 관객 수를 톡톡 두드렸다. 2500석. 그 동작에 명전은 서하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깨달았다.

“2500석을 매진시킨다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야. 국내에 2500석을 매진시킬 수 있는 락 밴드가 몇이나 있지? 열 손가락 안에 꼽지 않나? 특히 우리처럼 아직 인디 씬에 머무는 밴드라면 더더욱 그래.”

논리적인 반론. 이서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명전은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보통 한국의 인디 밴드는 매우 잘 풀렸을 때 천석 이상 규모의 단독 공연까지 3년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 전에는 라이브 하우스를 전전하고, 200명 이상을 들게 하기도 힘들어하는게 현실이다.

그룹 사운드는 이미 백명 이상의 공연을 경험해봤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그것은 일종의 천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시운이 모두 맞아떨어져 생긴 기적같은 인기.

하지만 명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타인의 이야기다. 명전은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2500석을 매진시킬 자신이. 왜냐하면…

“그래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갈 거야.”

“적극적으로 나가다니?”

“우리의 인기는 인디 밴드씬이 잘 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힘입은 것이나 다름 없어. 평소 공연에 100명 미만의 인원을 동원하는 밴드가, 앨범을 4천장이나 팔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냐.”

요새는 앨범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없다. 다 멜론, 스포티파이, 유튜브 뮤직… 그런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를 사용한다. 그룹 사운드도 그런 트렌드에 맞추어, 스트리밍 사이트에 음원을 올려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앨범을 사준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굳이 앨범을 사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앨범을 샀다는 것이다. 응원의 의미로.

“그러므로, 우리는 뛰어넘어야 해. 그 사람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인디씬을 뛰어넘어야 해.”

“그게 무슨…”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다른 아이들의 표정. 명전은 마지막 한방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우리는 이제 ‘상업적 영업 방식’을 채택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