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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서 있던 장소 제공자 올리비에가 착석하기도 전에 캐서린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자아, 어느 것부터 먹어볼까."
"시작은 가장 기본적으로 시작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나쁘지 않은 의견이라는 듯 캐서린은 메리를 향해 턱짓했다.
메리는 곧바로 접시에 쌓여있던 아무 토핑도 박혀있지 않은 피낭시에를 집어 캐서린의 입에 집어넣었다.
사각.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단단해 보이는 겉모습답게 저항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저항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
작은 크기와 걸맞게 쿠키. 혹은 바삭하지만 조금 퍽퍽한 파운드 케이크를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맛이었다.
그것도 좋은 의미로.
두껍게 구워진 쿠키의 가장 바깥 부분과도 같은 식감 밑에 숨어있던 부드러운 속은 따뜻한 온기와 함께 진하고 강렬한 버터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그동안 숱한 디저트를 먹었지만 이렇게까지 버터 향이 강렬한 버터케이크는 처음이었다. 분명 뭔가 술수를 부린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장담할 수 있었다.
그때, 부드러운 피낭시에 사이로 씹히는 유난히 단단한 크러스트.
거기서 올라온 미약한 냄새를 느끼고서야 캐서린은 확신했다.
태운 버터의 풍미.
고기와 지방이 숯불에 타들어 가며 만들어지는 바삭한 층과 향기를 거부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것처럼 버터를 태워 한층 더 강렬해진 향과 맛이 피낭시에 전체를 감싸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먹었던 다른 디저트들보다 색이 유난히 진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버터는 태울수록 향과 색이 진해지는 법.
다만 텁텁한 맛이 안 느껴지는 게 유달리 신경 쓰였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함께하는 법.
지금은 전설로나 전해지는 만병통치약이나 현자의 돌로만 만들 수 있는 엘릭서같은 비약조차도 부작용이 있었다.
태운 버터라고 부작용이 없을 리가.
그렇다면 이걸 느껴지지 않도록 숨겼다는 것인데. 대체 어떻게?
"호오, 끝에서 약하게나마 느껴지는 건. 계피로군."
"이야. 그걸 느끼시는 겁니까?"
"그건 카렘. 내가 계피를 좋아해서 그렇단다. 흘흘, 나이 들면 계피 같은 진득한 향신료가 몸에 좋거든."
올리비에가 뭔가 수상한 민간요법 같은 것을 말했다.
카렘은 가볍게 한 귀로 흘려 넘겼지만, 올리비에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몸이 늙으면 필연적으로 혈압이 낮아지기 마련.
그런 의미에서 계피는 혈압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그게 유의미한 효과를 벌이려면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모르는 법이고, 또 그게 마법사한테 얼마나 통할지는 자시고.
"계피라니. 향은 전혀 나지 않는다만."
"조금. 아주 조금 넣었어요. 탄 맛이 가려질 정도로만 조금. 한 꼬집?"
카렘은 오른쪽 눈을 감으며 엄지와 중지로 가루를 잡는 시늉을 했다.
"소금도 그것보다는 많이 넣겠는데. 고작 그걸로 탄 맛이 가려진다?"
"태운 버터의 향과 맛은 어지간한 향신료만큼이나 강렬하니 당연합니다. 계약자."
"그나저나 태운 버터를 넣은 디저트는 또 처음이로군."
이번에 캐서린은 메리가 내민 다진 아몬드가 토핑된 피낭시에를 씹었다.
"카렘. 태운 버터면 스테이크 굽고 난 뒤 소스 만들 때나 쓰는 거 아니었어?"
"원래 버터가 타지 않도록 나중에 넣지만, 시어링하다 보면 타니까 그렇긴 하네요."
"어쩌다가 태운 버터를 넣을 생각을?"
로빈의 의문은 당연했고, 카렘은 결국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착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건 전적으로 카렘 후배의 탓입니다."
"인정합니다."
"버터를 녹인다면서 한눈팔다가 그걸 그대로 태워버리다니."
"요, 요리에는 임기응변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불 앞에서 딴생각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항복하겠습니다."
카렘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곧바로 양손을 들었다.
재료가 부족하거나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의 임기응변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얼마든지 있었다.
식칼을 절대 사람에게 향하지 않는다.
불 앞에서는 오로지 불만 신경 쓴다.
소금과 설탕을 헷갈리지 마라.
즉, 이른바 요리의 기초.
물론 그보다는 네 종류의 피낭시에를 번갈아 입에 집어넣고 있는 로빈이 신경 쓰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한창 먹을 연령대의 아이라고는 하지만 피낭시에는 생각보다 밀도가 높고, 아몬드나 파운드 케이크만큼은 아니라지만 퍽퍽한 케이크이다.
즉, 아무 생각 없이 막 먹으면 목이 막혔다.
처음과는 달리 슬슬 목에서 느껴지는 뻑뻑함과 함께 피낭시에가 넘어가지 않자 로빈의 손은 본능적으로 휘핑크림이 듬뿍 올려진 잔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호로로록!
"으음!?"
로빈은 입안에 밀려 들어오는 달콤한 파도에 화들짝 놀랐다.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음료였다.
비록 마법과 검기, 몬스터 및 기타 등등이 있기는 하지만 중세 정도에 문명이 머무는 곳이기에 일반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료란 간단했다.
물, 쥬스, 와인.
설마 물 위에 휘핑크림을 퍼 올리진 않았겠고. 쥬스에 휘핑크림이라니, 이게 어울리나 싶은 생각을 했지만, 정작 입안에 들어온 것은 완전히 다른 감촉이었다.
일반적인 음료가 가질 맑고 청량한 액체와 완전히 정 반대.
묵직하고 진득한 달콤함이 느껴지는 밀도 높은 액체가 로빈의 입안으로 들어와 퍽퍽하게 목을 막고 있던 피낭시에 댐을 천천히 무너트렸다.
로빈은 지금 음료가 아니라 액체로 이루어진 빵을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혀 전체를 달걀 노른자와 생크림으로 만들어진 묵직하고 진득한 음료와 휘핑 크림이 휘몰아치는 사이로 언듯 느끼함이 내비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이어 밀려오는 강렬한 계피향과 달콤함 사이로 느껴지는 짭짤한 맛.
모든 음식에는 서로를 한층 더 끌어올리는 조화.
느끼함은 어느새 완전히 사라지고 달콤하고 고소한 맛과 이를 돋보이는 짭짤한 맛만이 남았다.
설탕의 달콤함과 소금의 짭짤함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진작에 목이 뚫렸는데도 로빈이 벌컥거리며 커다란 잔을 들이키게 했다.
어느새 로빈은 빈 잔의 공기만을 흡입하고 있었다.
"파하! 와, 우와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
"마음에 드셨나 보군요. 공자님."
"카렘. 와아. 이거, 이거 뭐야?"
"이건 에그노그입니다."
로빈처럼 벌컥거린 건 아니지만, 잔을 반 정도 비운 올리비에는 작게 감탄하며 수염에 묻은 액체를 손수건으로 닦았다.
"음, 이 커스터드를 액체로 녹여 마시는 것 같은 묵직함. 에그노그는 옛날 척박한 아이스랜드의 특별한 날에 귀족들이 먹는 음료였습니다. 저도 이건 오랜만에 먹어보는군요."
"응? 난 이거 먹어본 적이 없는데?"
"그건 주군, 알프레드 공작님의 탓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엥?"
갑자기 난데없이 아이스랜드의 주인인 알프레드가 나온다고?
알프레드의 자식인 로빈은 물론이거니와 카렘과 메리조차 처음 들어본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지금은 옛날만큼 생크림이나 달걀이나 귀중하지 않으니까 말이죠."
"엥? 고작 그런 이유로 이런 걸 안 먹는다고요?"
"어찌어찌 달걀과 생크림이 평민들도 먹을 수 있을 만큼 값이 내려갔고, 귀족들은 외국의 실력 있는 요리사들을 고용해 더 귀한 요리를 해먹을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장되었으니. 지금 에그노그는 아이스랜드의 늙은이들이나 시골에서 혹독한 겨울에 가끔 먹는 음료로 위상이 추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절엔 달걀과 생크림을 마음껏 먹는 게 아이스랜드 귀족의 상징이었다는 말을 끝으로 올리비에는 에그노그로 목을 축였다.
"그런 것 치고 지금 콜던에서 위아래 상관없이 불마손이 대유행을 하는 것 같습니다만."
"아 카렘. 그 이유는 간단하단다."
"간단하다고요?"
"그야 붉은 마녀의 손가락의 그 매콤함과 뒤에서 같이 올라오는 은은한 감칠맛과 단맛이 매혹적이라서 그렇겠지."
"그거 조금 전에 하셨던 말이란 뭔가 모순되지 않습니까?"
"원래 사람이란 모순적이기 짝이 없는 존재이니 당연하지. 귀족도 딱히 다를 건 없단다."
순간 카렘은 떠올렸다.
매콤한 맛에 중독되어 저녁 연회 때마다 아랫사람들 곁에서 그들과 같이 앞다투어 요리에 굶주린 맹수같이 달려드는 기사와 귀족들을 떠올렸다.
과식은 군림하는 자(귀족), 싸우는 자(기사)들에게 힘의 상징이나 다름없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좀 깨는 광경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메리. 평소와는 다른데."
"무엇을 말입니까. 계약자."
"이것들 전부 버터와 크림, 달걀이 듬뿍 들어간 빵과 음료잖냐."
"하, 계약자."
메리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의 행동엔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제가 언제까지고 음식에 흥분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할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사실 만들고 잠깐 식히는 동안 피낭시에고 에그노그고 잔뜩 먹어서 그렇습니다."
"카렘 후배!"
눈치채지 못하게 일부러 많이 구워서 빠르게 먹었건만!
숨겼던 진실을 어떻게 밝힐 수 있냐는 눈빛으로 메리는 카렘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카렘은 조금 전의 메리만큼이나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당당했다.
"잠깐 식히면 더 맛있다고 그렇게나 말했는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하시고."
"거짓말하지 마십쇼. 버터 태워 먹었다고 꼽을 준 게 그렇게 마음에 담아둘 일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카렘은 이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카렘 후배는 좀생이입니다. 그쪽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메리는 이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전 현생 합쳐 나이 40세 겉만 소년과 집요정 추정 수십 세 이상의 옹졸한 말다툼은 유치하기 짝이 없어 가슴이 절로 웅장해졌다.
두 당사자 외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메리. 꼬마한테 시비 걸지 말고 저기 베리를 토핑한 피낭시에나 내와라."
"계약자. 엄밀히 따져서 제가 먼저 시비를 걸지는 않았습니다."
"내 알 바 아니고. 가져오라니까?"
음, 좋다. 이번에는 저기 에그노그를. 그리고 다툼은 두 사람 위에 군림하는 주인에 의해서 강제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잠시나마 테이블에 평화가 내려앉은 가운데 미약한 사각거리는 소리와 홀짝이는 소리만이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때, 갑자기 메리가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계약자? 손님. 아니, 파발이 온 것 같습니다."
"음? 갑자기?"
"갔다 오겠습니다."
"오냐. 꼬마."
네엡. 메리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카렘이 곧바로 그녀가 하던 역할을 이어받았다.
빈자리를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럽게 대체하는 움직임.
윈터홈의 다른 시종 시녀들이 보았다면 감탄할만한 자연스러움이었다.
그렇게 캐서린은 간식을 받아먹고, 그동안 올리비에가 로빈의 질문을 받아 주기를 얼마, 멀리 약간 다급한 발걸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뿅 하는 소리와 함께 메리가 방문 앞에서 출현해 급하게 다가왔다.
"계약자. 파발의 연락입니다."
"뭐? 조금 이따가. 아직 간식을 먹고 있다."
그러고는 카렘이 내민 에그노그를 홀짝.
카렘은 뭔가 며칠 전에 벌어졌던 일의 데자뷰를 느꼈다.
그러는 사이 캐서린은 못마땅한 낯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메리가 내미는 양피지를 펼쳤고.
"푸후우우우우웃!"
재빨리 고개를 돌려 사람이 없는 곳으로 에그노그였던 무지개를 흩뿌렸다.
"콜록! 콜록콜록!"
"에이 쯧. 칠칠치 못하기는. 무슨 일이길래 그러느냐? 키티."
"아이오나 장로 호위대 콜록! 전멸 위기 및 도주중이라콜록콜록!"
"푸후우우우웃!?"
메리와 캐서린을 뺀 나머지 카렘과 로빈, 올리비에는 다급하게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자료첨부
-피낭시에-
-에그노그-
챗GPT가 그려준 그림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