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rupy1014 f66fe445bf Initial commit: Novel Agent setup
-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4 KiB

코르부스는 한동안 얌전히 알리시아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알리시아는 땀이 나도록 매우 열정적이게 주먹을 휘둘렀다.

당하는 몬스터는 그저 부리만 딸깍거리며 귀여운 토끼를 보는 것처럼 응시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순 없는 법.

손톱을 갈무리한 코르부스는 가볍게 알리시아를 안아 들었다.

"이제 여기까지 하시죠."

"알리시아는! 아직! 카렘의! 다 풀어-"

"카렘 경이 선물을 겸해 신메뉴를 만들어준다고 하십니다."

"-준 것 같다! 응! 얼른 앞으로!"

알리시아의 얼굴이 뚱했던 것도 잠시.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빠른 태세 전환.

호기심과 기쁨을 내뿜는 알리시아는 코르부스의 팔을 두드리며 재촉했다.

코르부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구니를 빌린 카렘은 변종 불마손만 한가득 챙겨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몬스터의 뒤를 따랐다.

"비록 윈터홈의 다른 주방보다는 조촐하겠지만, 제가 사용하는 주방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주방이면, 요리를 제법 하시나 보군요?"

코르부스는 알리시아의 장난을 받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시다시피 이런 몸인지라 누군가에게 대접을 받기는 요원하고, 일은 또 한정되어 있으니."

코르부스는 부리를 돌려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삐져나온 깃털을 가볍게 골라 알리시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자연스럽게 요리에 손이 가게 되더군요. 온실에 여러 채소와 과일도 있고, 식료품도 꾸준하게 들어오니 말입니다."

"온실의 식물을 나름 자유롭게 사용하시는 겁니까?"

"온실 관리인으로서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죠. 덕분에 한겨울에도 싱싱하고 달콤한 과일이나, 희귀한 작물을 맛볼 수 있습니다."

몇 안 되는 기쁨이라며 코르부스는 자랑했다.

주방에 공급되는 싱싱한 과일들의 출처는 역시 온실이 맞았다.

온실의 숲을 가로질러 온실 관리인의 주방, 아니 거처에 가까운 공간에 안내되었다.

카렘은 확신할 수 없었다.

커다란 나무 그늘에 가려진 공터의 나무 밑에는 각종 나뭇가지, 지푸라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둥지가 놓인 가운데 주변에 띄엄띄엄 가구들이 놓여있었다.

"주방? 거처? 혼란스럽네요."

"두 단어는 조금 사람주의적이니 둥지라고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네, 뭐. 식료품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 메뉴를 정하신 겁니까?"

"예에. 몇 개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사실 거짓말이다.

카렘은 메뉴에 관해 1도 생각하지 않았다.

"준비된 재료를 보고 확실하게 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쪽으로 오시죠."

그리고 알리시아를 아직도 안아 든 코르부스는 카렘은 둥지 외곽에 있던, 번듯한 오두막으로 안내했다.

아니, 멀쩡한 집을 두고 바깥에 둥지를 틀었다고? 왜?

그런 카렘의 생각을 짐작한 듯 알리시아를 바닥에 내려준 코르부스가 부리를 열었다.

"제가 동족 중에는 내향적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실내보다는 실외가 좀 더 편하더군요."

"그래서 남겨진 오두막은 창고로 사용하시는 거고?"

"예."

창고로 쓴다는 말은 진심이었는지 오두막 안은 인구수가 늘어나기 전 탑의 주방보다도 각종 식료품으로 바닥부터 선반까지 가득했다.

우선 둘러보고 요리를 정하려 했던 카렘에게는 낭패였다.

재료가 많으니 오히려 카렘의 머릿속 레시피는 더욱 많이 떠올랐다.

"이거 안쪽을 좀 자세하게 한번 둘러봐야겠는데요."

"자유롭게 둘러보시죠. 전 조리기구를 미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기대되는군요. 혹시 모르니 오븐도 불을 피워놓아야겠군요."

"코르부스도 카렘의 요리는 분명 좋아 할 것이다!"

"그거 기대되는 말이로군요. 알리시아님"

알리시아가 코르부스의 깃털을 끌고 돌아가 버리자 카렘은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본격적으로 오두막 안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오두막의 내부로 들어간 카렘은 차가운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법사의 탑의 창고와 비슷한 냉기. 마법이 분명했다.

그리고 카렘의 눈에 처음 보는 채소와 과일들이 들어왔다.

순간 카렘은 불쑥 피어오르는 호기심을 억눌렀다.

"지금은 아니지. 일단 재료들부터."

분명 카렘은 요리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가벼운 맛보기만으로 레시피를 찍어낼 정도로 자신 있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아니. 손님들이 있으니 당장 실험을 할 수는 없었던 카렘은 익숙한 재료들을 위주로 오두막 내부를 탐색했다.

"소고기? 피망전이랑 청초육사? 굴소스가 없으니 후자는 당연히 안 되겠지."

피망이 특유의 향과 풋내, 유전적인 문제로 호불호가 갈리는 대표적인 채소라고는 하지만 그런데도 피망은 다양한 요리에 주, 혹은 부재료로 사용되었다.

고추잡채로 더 유명한 청초육사, 속에 고기를 채워 넣고 굽는 피망전, 밥과 양념을 채워 넣고 찐 피망 돌마(Dolma), 드라마로 유명해진 피망 츠쿠네 등등.

오두막의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종류의 치즈만 잔뜩 보관되어있는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치즈 틈에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통도.

치즈만 잔뜩인 보관실에 난데없는 통이라니.

카렘은 이번만큼은 호기심을 참기 힘들었다.

카렘이 통을 집어 뚜껑을 열자 쿰쿰하지만, 치즈라고 하기엔 미약한 냄새와 함께 약한 신 향이 올라왔다.

그 속엔 휘핑크림 같은, 아니 더욱더 꾸덕꾸덕하고 짙은 질감의 하얀 페이스트가 가득 들어있었다.

전생의 카렘에게도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다.

"이거 설마 크림치즈인가?"

에이 설마 진짜로? 그래도 혹시나.

카렘은 근처 선반에 놓여있던 치즈 나이프를 재빨리 집었다.

칼이 움직이는 대로 생기는 흔적과 질감은 확실히 매우 익숙한 증거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맛은 봐야겠단 심정으로 카렘은 치즈 나이프에 묻은 크림치즈(추정)를 먹었다.

"진짜 크림치즈네?"

혀에서 느껴지는 꾸덕하고 부드러운 질감.

크림보다 몇 배는 더 짙은 맛과 은은한 산미.

그리고 냄새까지.

모든 것이 크림치즈와 같았다.

그와 함께 카렘의 머릿속에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던 수많은 레시피가 사라지고 승리를 거둔 단 하나의 레시피가 남았다.

파퍼스(Poppers)

최초엔 할라피뇨로 만들었던 것과는 달리 이후엔 다양한 재료가 쓰이는 미국의 몇 안 되는 전통 요리.

"파퍼가 지금 만들기는 괜찮기는 한데..."

반으로 자른 고추, 피망, 미니 파프리카의 속에 여러 재료를 넣고 버무린 크림치즈를 넣고 구운 파퍼는 간식으로도 좋고 술안주로도 좋았다.

취향에 따라 베이컨으로 감싼다면 더더욱.

랄까 어지간해선 싫어할 수 없는 조합이었다.

게다가 카렘이 바구니에 잔뜩 담았던 피망과 맛이 조금 비슷한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아직 크기가 피망보다는 작았기에 파퍼를 만들기엔 딱 맞았다.

그리고 오두막엔 크림치즈에 버무릴 각종 향신료도 넘쳤다.

베이컨도 있었다. 물론 등심 베이컨이긴 했지만, 비계가 붙은 부위만 잘라다가 쓰면 만사형통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파퍼를 만드는 데는 그렇게 많은 재료가 필요하지는 않았기에 카렘은 금방 재료를 바구니에 담아 오두막을 나섰다.

둥지엔 기구 손질을 끝마친 코르부스가 오븐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곁엔 알리시아는 오븐 속에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멍을 때리기 시작.

소년이 인기척을 내자 코르부스가 고개를 돌렸다.

"아, 카렘 경. 오셨습니까."

"전 경이 아닌데요."

"그럼 씨를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응?"

변종 붉은 마녀의 손가락과 함께 담긴 재료들을 본 코르부스는 부리를 딸깍거렸다.

"그 통은 오늘 아침 제가 실수로 식초를 몇 방울 떨어트린 크림 통이로군요. 상태가 이상해서 나중에 버리려고 잠시 보관하고 있던 것인데-"

"어휴, 이 맛있는 걸 버리다니요."

오븐을 멍하니 바라보던 알리시아가 반응했다.

"맛있는 거!"

"알리시아님. 맛을 보시겠습니까?"

대답은 들을 필요가 없었다.

카렘은 바구니에서 빵을 집고는 얇게 잘라 크림치즈를 꼼꼼하게 발라 건넸다.

"오오, 뭔가 버터같구나. 색은 좀 더 하얗지만."

"하지만 맛은 전혀 다를 겁니다. 좋은 쪽으로요."

알리시아는 곧바로 빵을 크게 베어 물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고는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살짝 말라 바삭바삭하게 씹히는 빵에 발라진 새하얀 크림치즈

버터보다 산뜻하고 휘핑크림보다는 묵직한, 우유를 잼으로 농축해놓은 듯한 풍부한 맛이 알리시아의 입안을 점령했다.

그동안 빵에 발라 먹었던 잼, 버터, 크림과는 전혀 다른 맛에 알리시아가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카렘은 칼과 도마를 빌렸다.

코르부스가 젖은 수건에 손톱을 광이 나도록 닦으며 다가왔다.

"카렘 씨. 손질할게. 많아 보이니 조금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그렇다면 바구니에 담긴 불마손을 부탁하겠습니다."

"어떻게 손질하면 될까요?"

"꼭지를 따고 반으로 잘라 속의 씨앗과 줄기만 제거해주시죠."

카렘은 곧바로 크림치즈가 담긴 용기에 오두막에서 가져온 소금과 각종 향신료, 서머셋(체다), 파르마(파마산) 치즈를 갈아 넣고 뒤섞었다.

그렇게 만든 필링을 아낌없이 속이 빈 변종 붉은 마녀의 손가락의 속에 채워 넣었다.

코르부스는 카렘의 요리가 어떤 방식인지 짐작 가는지 잠시 부리를 열었다가 닫았다.

속을 채워 넣는 요리는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흔했으니 당연했다.

당장 카렘의 전생처럼 밀가루 피를 이용한 군만두, 물만두 비슷한 요리는 에우로파 대륙에도 흔했다.

밀가루 피가 아니더라도 고기, 채소의 빈속에 내용물을 채워 넣어 굽거나 끓이는 요리도 흔했다.

애초에 소, 돼지, 닭이든 뭐든 통구이를 구울 때 속에 과일이든 뭐든 가득 채워서 넣고 굽는 것이 세오폰 왕국의 평균이었다.

"카렘. 그 상태로 베이컨을 말아서 구울 것인가?"

"살짝 틀리셨군요. 이렇게."

카렘은 반으로 잘려 속이 찬 불마손을 하나로 합쳤다.

나름대로 점성이 있는 크림치즈 덕분에 붙기는 했지만 이대로 조리할 수는 없었으니 곧바로 베이컨으로 둘둘 감았다.

"이렇게 해서 오븐에 구우면 끝입니다."

"맛있겠구나!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으응."

"뭐, 일일이 속을 채운 불마손을 합쳐 베이컨을 감는 작업이니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요리는 손이 많이 갈수록 그 결실은 달콤한 법.

물론 분홍 찐빵 외계인처럼 카렘의 노력을 가차 없이 흡수해버릴 알리시아가 눈을 빛내고 있었지만, 그것 또한 기쁨이었다.

손님이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바로 요리사의 기쁨이었으니까.

"음, 카렘. 나도 해보고 싶다."

"얼마든지 해보셔도 됩니다. 그런데 도구가..."

"여기 버터나이프를 쓰시죠. 저도 발톱을 보태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알리시아는 파퍼를 만들기보다는 그 재료로 장난을 쳤다.

당연히 그녀의 파퍼는 울퉁불퉁하고 내용물이 삐져나오는 등 모양새가 조잡했다.

파퍼가 준비되자마자 코르부스는 곧바로 팬에 줄지어 놓고 속이 채워지길 기다리는 뜨거운 오븐에 집어넣었다.

"흠, 조리 방법은 제법 간단하군요."

"그저 비운 속에 내용물을 채워 넣고 베이컨으로 감싸 구운 것 뿐인 요리니까요. 파퍼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베이컨이 바삭하게 구워질 때까지만 구우면 됩니다."

아쉬운 기색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던 알리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카렘. 그 빵에 크림치즈를 바른 것을 좀 더 먹고 싶다."

"어디, 그래도 저희가 나눠 먹을 만큼은 남았군요."

"흐음, 고작 크림에 식초가 들어갔을 뿐인데 이런 진하고 농후한 맛이..."

오븐의 열기에 금방 노릇노릇해진 토스트 조각.

그 위에 향신료를 버무린 크림치즈를 바르자 진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저 그것 뿐인 매우 간단한 오픈 샌드위치였지만, 그렇기에 재료의 맛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각종 향신료와 다른 치즈가 들어가 순수한 크림치즈의 맛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채로운 재료가 내뿜는 조화 덕분인지 오히려 맛은 더욱 풍부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남은 크림치즈도 빵도 다 사라질 무렵.

알리시아와 코르부스가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독특하고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오븐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자료첨부

-파퍼스(Poppers)-

-청초육사(고추잡채)-

-피망 돌마(dolma)-

-츠쿠네 피망-

챗GPT가 그려준 그림입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