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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비스와 윈터홈의 병사, 기사, 전사들에 의해 호위되는 아이스랜드의 수평선의 식당은 화기애애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우선 고드윈.
첫 만남부터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를 살살 긁는 네파네크에 좋은 감정이 생길 리가 없었으며 아버지는 왜 가만히 있는지 고드윈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물며 자신의 고향을 얕잡아보고 깔보기까지!
물론 말로만 들었던 아도비스의 성세가 그러하다면 아이스랜드는 척박하고 궁핍한 곳이 맞았다.
그때 고드윈의 뇌리에 그동안의 가르침이 지나갔다.
말은 말만 듣는 것이 아닌 분위기, 표정, 음색 모든 것을 따져야 한다고.
그러자 네파네크의 말은 말만 도발하고 깔보는 어조이지 어디까지나 알프레드와 아이스랜드를 걱정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나빠진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윌리엄도 마찬가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할 나이답게 윌리엄은 네파네크의 호의를 진작에 감지했지만, 막상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호의와는 괴리된 언어에 혼란스러워했다.
귀족적 수사 표현을 해석하기엔 윌리엄은 아직 어렸다.
솔직함을 숨기지 않고 네파네크와 눈이 마주치거나 대화를 할 때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네파네크의 입에서 아이스랜드 바깥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뒤집혔다.
공작 가문의 자제라고는 하나.
둘 중 누구도 좁게는 콜던, 넓게는 아이스랜드를 벗어났던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한쪽은 가문의 후계자이고, 다른 쪽은 아직 나이가 어렸으니까.
그런 두 사람에게 옆 지방도 아니고 바다 건너 먼 사막의 나라에서 온 다크엘프 소녀가 하는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네파네크의 나이는 다크엘프 기준으로도 소녀가 아니었지만.
화자가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이야기가 중단되자 알프레드가 말했다.
"아직 어린 애들인데 그렇게 비꼬듯이 말해야겠나?"
"분위기가 풀어졌으니 아무렴 상관없지 않을까요? 게다가 나이가 많은 쪽은 늦었지만 알아들은 것 같은데요?"
"그걸 아는 나조차도 발끈할 때가 있으니까 하는 말일세."
"어머. 주의하지 않도록 할게요."
네파네크가 빙글거리는 어조와 함께 빙긋 웃자 알프레드는 씹지 않고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앞에 놓인 대추야자를 뜯었다.
식사가 나오기 전에 나왔던 간식들을 치우고 허전해진 테이블의 장식을 겸하는 심심풀이 입가심이었다.
아, 그래. 식사가 있었지.
잔을 든 네파네크는 따가운 목을 축였다.
동서양의 문화가 모이는 아도비스.
그 중에도 엄선된 산해진미가 모이는 아도비스의 왕실 요리를 매일같이 접하는 그녀에게 세오폰 왕국이 아무리 정성 들여 준비해도 부족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세오폰 왕국의 음식이 맛이 없다는 소문은 아도비스까지도 전해질 정도로 유명할 멸시에 가까운 농담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민의 영역.
돈 많은 이들이 그렇게 먹을 이유는 없었다.
세오폰 왕국에서 어느 정도 급이 되는 요리사라면 둘 중 하나밖에 없었다.
외국 출신 요리사거나, 외국에서 요리를 배웠거나.
그렇기에 실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리적 특성과 재료의 문제.
세오폰 왕국의 가장 비옥한 땅이 에우로파 대륙 전체에서 중간도 되지 못할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
요리는 요리사의 실력에 좌지우지된다지만 재료의 품질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대륙에서 식료품을 구해 온다고 해도 거리의 문제가 있었다.
마법으로도 시간으로 인한 품질 저하는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온 간식 몇 개는 상당히 눈여겨볼 만했는데. 내가 모르는 에우로파 대륙 어딘가의 새로운 유행인 걸까?
"그래서 알프레드 공. 그것들은 대체 뭔가요?"
"음? 뭘 말하는 거지?"
"다 아시면서 모른 척 시치미 떼시지 마시고요."
익숙하다면 익숙한 과일 그릇과 각종 비스킷, 쿠키 사이에 보라는 듯이 존재감을 과시했던 간식이 둘 있었다.
입안에서 얼린 구름처럼 부서져 사라지는 머랭 쿠키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감촉으로 부드럽게 목 뒤로 넘어가는 과일 우유 푸딩, 그리고 파이.
"파이를 받친 그릇들. 분명 페이스트리겠죠?"
"역시 금방 눈치를 채는군?"
"애초에 페이스트리는 고대 아도비스에서 에우로파로 전해졌다는 것이 기록으로도 남아 있으니까요."
그런 페이스트리의 본고장 아도비스에서 온 그녀에게도 이번 간식에 나온 파이는 그녀에게 충격적이었다.
페이스트리란 바삭함의 대명사.
거기에 이견을 대는 사람은 없었고 페이스트리는 개발된 이후로도 수많은 요리사에 의해 변형되어 아도비스 왕실과 귀족 안에서 발전되었다.
네파네크 또한 아이스랜드로 오기 전에 왕실 요리사가 새로 개발해 신왕께 진상한 페이스트리 파이를 맛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때의 황홀하기까지 한 감상을 잊을 수 없었다.
가장 바깥부터 안으로 들어갈수록 끊임없이 변하는 촉감.
바삭하지만, 부드럽고 쫄깃하며 촉촉한 속.
이빨이 서로 부닥치자 찢어지기 시작하자 낱낱이 부서지는 것에서 나아가 서로 분해되다시피 으스러지는 파이의 겉.
두 가지 상반된 영역을 다루기 위해선지 페이스트리의 한 장 한 장은 깃털만큼이나 얇았고 가장 안쪽의 소는 소의 재료가 가진 수분을 고스란히 가둔 덕분에 부드러웠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촉과 맛과 감상 모두가 지금 같았다.
아니, 오히려 기대하지 않던 아이스랜드에서 접해선지 왕실에서 먹었던 때보다 더욱 각별했다. 자존심 상하게.
다른 나라에 전파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당장 그녀가 떠날 때만 해도 이를 아는 사람은 스물이 안 됐다.
먹어본 사람은 위대한 신왕을 포함해 열 명이 채 되지 않았고.
항상 놀리는 처지이었던 그녀에게 이런 깜짝 파티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알프레드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체 어떤 술수들을 부린 것이죠?"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직접 누군가를 후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네."
"그러면 이런 기술을 가진 이가 알아서 굴러들어왔다는 말인가요? 아이스랜드가 대풍으로 아도비스에서 수입하는 밀의 양이 줄었다는 말보다 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나는 그저 저번 겨울에 최고 마법 고문을 고용했을 뿐."
"음. 흠?"
가만히 앉아 네파네크가 제공한 아도비스산 드라이 와인을 음미하던 올리비에는 자신의 옆자리로 쏠리는 관심에 시선을 움직였다.
두 대귀족과 대마법사의 시선을 받거나 말거나.
메리가 넘기는 씨앗을 발라 잘게 찢은 대추야자를 아기새처럼 받아먹던 캐서린은 올리비에의 눈짓에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주군. 이렇게 저한테 떠넘기시는 겁니까?"
"하지만 카렘을 전속으로 고용한 것은 그대가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로군요."
"그리고 내 주방에 각종 조리법과 레시피를 뿌린 것도 그대의 요리사고."
"꼬마가 교류회를 가지는 것을 허락하지 말 걸 그랬나?"
두 주군과 봉신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네파네크는 생각지 못한 사실에 굳은 머리를 빠르게 돌리고 있었다.
문맥상으로 꼬마는 따로 별명이나 명칭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의미. 그렇다는 건 그 세 가지 요리를 개발한 요리사가, 성인식도 아직 치르지 않은 소년이라는 말이 되는데...?
"꼬마라니, 설마 제가 모르는 사이에 세오폰 왕국에서 언어적 변화가 있었던 겁니까?"
"네파네크. 그쪽이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네."
"꼬마가 이제 10살, 아니 겨울이 지났으니 이제 11살이로군요."
설마 이런 자리에서 하는 말이 거짓말일 리는 없었다.
"...태양신 맙소사. 설마 대대로 요리사를 역임한 가문이라도 되는 겁니까?"
"킹스랜드의 구석진 장원의 농노 마을에 흔하디흔한 어린 농노였다고 합니다. 마을과 부모의 핍박에 참지 못하고 도망쳤다고 하더군요."
"아타니타스. 그거 카렘이 숨기려던 사실 아니었나?"
"이젠 딱히 상관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의심하다가도 이젠 그러려니 하는 캐서린이었지만 네파네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처음 듣는 말이었으니 믿기 힘들었다.
혈통에는 힘이 있다.
절대적인 명제는 아니었지만, 현대와 달리 마법이 실존하고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이 세상엔 어느 정도 통용되는 법칙이었다.
이를 맹신하는 이들도 많다지만, 네파네크는 아니었다.
현 아도비스 신왕의 최측근으로 왕실에서 신왕의 금고지기로 세계 각지를 돌아다닌 그녀는 계급의 최고봉에서 무저갱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보았고, 밑바닥에서 두 손, 두 발의 힘만으로 왕이 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혈통보다는,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진작에 깨달은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 들은 사실만으로는 그만한 요리를, 그 어린 나이에 만들었다니?
재능 이전에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았는데?
네파네크는 너덜너덜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요리사는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걸까요."
알프레드와 캐서린은 그녀의 말에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네파네크의 말은 반 정도는 맞았으니까.
신의 시선을 받기는 했었으니까. 아니지, 제물이 받아들여졌으니까 선택도 받았지?
하지만 이런 민감한 말을-
"신의 축복. 틀린 말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그냥 해버린다고?
대추야자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던 고드윈이 굳은 얼굴로 대추야자를 내려놓았다.
"그 흔한 식초와 달걀, 기름만으로 어느 누가 그런 놀라운 소스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고드윈 공자?"
"그렇습니다. 네파네크 공. 공도 은근히 마음에 들어서 하셨지 않습니까?"
"제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채소를 찍어 먹으셨던 그 하얀 소스 말입니다."
네파네크는 흠칫했다.
조금 전까지 테이블을 가득 채웠던 간식들 가운데는 디저트만이 아닌 점심이 나오기 전 가벼운 전채 요리들도 있었다.
그저 기다랗게 자른 채소가 하얀 소스와 함께 담겨있길래 뭔가 싶어서 찍어 먹기는 했는데, 설마 그런 맛일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약간의 산미와 기름기가 느껴져 식초와 기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달걀이 들어 있었다니. 그녀는 대체 어떻게 견과류를 가공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감히 말하건대 마요네즈는 스카디께서 카렘 그 꼬마에게 축복을 선사하지 않았으면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기적의 산물이나 마찬가지!"
"형, 마요네즈가 맛은 있지만 난 좀 비리던데."
"윌리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역시 아직 편식쟁이 어린 꼬맹이에 불과했던 거구나!"
"그냥 형이 뚱보가 되도록 마요네즈를 퍼먹다가 눈이 돌아간 거잖아."
"이건 지식 주머니다!"
형제 남매가 사소한 일로 싸우기 시작한 것처럼 고드윈과 윌리엄은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닌 일로 서로의 약점을 지적하며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자리가 자리인지라 몸싸움으로 번지지 않는 게 다행인가?
두 아들이 순식간에 벌이기 시작한 추태에 알프레드는 반사적으로 이마를 쳤다.
"네파네크. 아직 아들들이 어려서 그런 모양이라 사과하도록 하지."
"아뇨. 아직 어린 소년들인데, 아니지. 장남분은 이제 곧 성인식을 치를 나이라고 하셨죠? 활기차서 보기 좋네요."
당연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문장은 문장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었다.
약간 화풀이 느낌으로 네파네크가 살짝 비꼬아 긍정적인 의미로만 들리도록 지적하자 알프레드의 이마엔 다른 의미로 핏줄이 올랐다.
손님 앞에서 추태를 부리다니 이것들이...?
우애를 과시하는 두 형제에겐 다행히 사랑의 불벼락이 내리는 일은 없었다.
"주군. 식사가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바로 접대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서두르도록."
"어머. 알프레드 공. 저는 하나도 급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