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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의 말대로, 어느 정도는 카렘의 업보가 맞았다.
조금 더 정확히 따지자면 부주의했다고 할 수 있었다.
아직 머리가 말랑말랑하고 호기심이 넘치는 어린아이 대다수에게 비밀이란 비밀이 아닌 것은 사실상 같은 의미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비밀이 아니라 친절하게 설명했다면?
옳다구나 하며 오늘 새로운 지식을 남들에게 널리 퍼트리겠지.
랄까 애초에 비밀로 해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윈터홈에서 가장 은밀한 펠윈터 가문의 막내 알리시아 공녀는 만족할 만큼 간식을 먹고 요정도 슬라임도 모르게 교실로 복귀.
그리고 타이밍 좋게 가정교사가 돌아와 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한창 활발할 나이인 알리시아는 지루함에 몸부림쳤지만, 가정교사는 그녀를 수업에 강제로 참여시키기보다는 호기심을 자극해 스스로 수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화단을 가꿀 때는 주의해야 한답니다. 화려한 꽃 사이에 어떤 식물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응? 우리 성 온실도 그렇단 말인가?"
온천지대 위에 자리 잡은 콜던은 아이스랜드의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온후했다.
그리고 이 온천을 이용해 성안에 온천수가 흐르는 온실이 있었다.
"윈터홈의 온실이야 공작부인께서 직접 시녀와 정원사들과 함께 가꾸시니까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식물이 숨어있다니?"
"위험한 독초가 자라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가정교사는 알리시아에게 식물들의 기상천외한 번식을 설명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어린아이는 새로 얻게 된 지식을 뽐내며 자랑하고 싶기 마련.
그리고 때마침 주제도 겹쳤겠다.
알리시아는 힘차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독초가 아니라고 하더구나!"
"예? 공녀님. 그 말을 누구에게서 들으셨을까요?"
"지그메서랑 같이 있던 카렘이 말했다. 새빨간 피클 같은 걸 먹고 있더구나."
카렘이 누구인지는 가정교사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간식이 맛있다고 줄기차게 자랑하고 다녔으니까.
고작 공녀님보다 몇 살 더 많은 어린아이인데도 요리사라고 했던가.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먹으면 큰일 나는 독초 아닌가?
지금 식물에 대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녀도 딱히 식물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다.
물론 그 전에 지적할 일이 있었다.
"공녀님. 간식 시간이 아닌데도 간식을 드셨습니까?"
"어, 아차! 말하면 안 됐는데!"
"흐음. 어떻게 할까요."
"오, 오늘 수업은 딴짓하지 않을 테니까 파파랑 마마에게만은!"
"흐음. 그러면 수업을 계속할까요?"
하지만 알리시아가 했던 말은 그녀의 뇌리에 단단하게 박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 같이 퇴근하는 길.
경로가 겹친 이들과 수다를 떨며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붉은 마녀의 손가락 아시나요?"
"물론입니다. 만지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독초 아닙니까?"
"사실 그게 독초가 아니라더군요?"
"예? 누가 그런 소리를..."
"알리시아 공녀님이 총주방장님과 함께 있던 카렘이라는 요리사가 그랬다네요. 피클까지 만들어 먹었다던 걸요?"
"카렘이라면..."
"왜. 그 있잖아요. 아타니타스님의..."
"아, 마법사님의 요리사."
그리고 퇴근하던 길에 신기하고 재미있는 말을 들은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면이 있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거 아는가?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사실은 독초가 아니라더군!"
"아니, 그거 먹으면 죽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는 거 아니었나?"
"글쎄. 카렘이라는 요리사가 피클까지 만들어 먹었다던데?"
"그거참 정신 나간 소린데!"
그리고 그 말이 어중간한 지식을 가진 사람에 의해 뒤틀리는 일도 당연했다.
하물며 잘못된 지식을 사실로 받아들여 동조하는 이가 있다면 더더욱.
"먹으면 고통스러워하다 죽는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독초가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그런데 윈터홈의 카렘이라는 요리사가 그랬다는데?"
"뭐? 저 성에서 일하는 요리사가 한둘이야?"
"대마법사의 전속 요리사라던데?"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엔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로군!"
교통이 전달 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정보의 확산은 현대의 것에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시의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정보를 갈구했기에 바람보다도 빨리 퍼졌다.
하물며 아이스랜드 최대라고는 해도 도시 내에서라면?
카렘, 독초(로 알려진) 붉은 마녀의 손가락.
이 사실이 콜던의 쥐새끼까지 알게 되는 것은 당연했다.
"카렘이라는 요리사가 신의 선택을 받아서 괜찮다던데?"
"나는 너무 맛있게 먹어서 진작에 죽었다고 들었어."
"나 원 참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거야?"
물론 수많은 사람을 거쳐 원본은 흔적만 남은 수준으로 왜곡되어 퍼져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소문이란 그런 법.
무엇보다 소문을 퍼트리는 당사자들이 알 바 아니었다.
하지만 지배자란 소문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법.
하루하고 반나절 만에 콜던 전체에 퍼졌던 소문은 번식기의 연어처럼 역행해 윈터홈으로, 정확히는 펠윈터령의 지배자인 알프레드에게 바로 그다음 날 전달되었다.
"그래서, 이게 그 붉은 마녀의 손가락으로 만든 피클이라고 했나?"
공작의 집무실.
알프레드는 세 사람의 앞에 자리한 테이블에 놓인 깍두기/붉은 마녀 피클을 보았다.
그리고 소파에 앉은 캐서린에게 물었다.
"그런데 아타니타스공. 진짜 먹어도 안 죽나?"
"예. 주군.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죽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을 만큼의 고통인데?"
"제 전속 요리사의 말에 따르면 적응할 수 있는 '맛'이라고 하더군요."
"맛이라...."
알프레드도 죽는다는 쪽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실제로 먹은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다만 태연하게 고민하던 알프레드와는 달리 고용주의 왼편에 앉아 있던 카렘은 죽을 맛이었다.
이, 이렇게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는 건 예상 못 했는데.
그건 카렘이 붉은 마녀의 손가락에 대해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아무튼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생물이라면 누구나 기겁하게 했으며 이는 몬스터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불마손 가루로 몬스터를 내쫓을 수 있겠다며 활용하려던 시도도 있었지만, 몬스터를 고통으로 광폭하게 만드는 위험도 있었기에 빠르게 사장되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몬스터를 쫓을 확률은 반반.
방충효과가 있긴 하지만 그럴 바엔 다른 약초가 더 효과적이었다.
애매하기 짝이 없는 용도의 독초는 사람 특유의 왜곡된 정보, 인상적인 외형과 이름이 합쳐져 온갖 중구난방 한 정보에 휩싸여 그저 기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서 있는 메리의 왼쪽에 앉은 캐서린과 마주 앉은 알프레드의 대화에서 나온 파편화된 정보를 정리한 카렘은 생각했다.
'음, 내가 스스로 함정을 파고 안으로 들어갔네.'
평소였다면 잠깐 반짝했다가 그냥 묻혔을 정보.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은 축제, 윈터센드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소문의 사실 여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카렘은 조용히 살기엔 글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생각해보면 캐서린의 전속 고용 계약서에 사인한 그 순간부터 끝났다.
조용히 살 거였으면 권력의 중추에 다가가지를 말았어야 했다.
그렇게 카렘이 자신의 원래 목표를 내팽개쳐버리는 사이.
알프레드의 관심이 카렘에게로 옮겨왔다.
"그래서 카렘. 한 번 보여줄 수 있겠나?"
"네? 아. 물론입니다."
뉘앙스로 뭔 말인지 파악한 카렘은 재빨리 그릇 옆에 놓여있던 포크를 집어 (마법사의 탑의 주방에서 덜어온) 깍두기를 찍어 먹었다.
냠. 오독, 오도독!
그 짧은 시간 사이에 감각이 적응했는지 전만큼의 맵지는 않았다.
좀 얼얼하고 화끈한 정도?
다만 몸은 아직인 듯 피부에 붉은 기운과 함께 열이 올라와 땀이 맺혔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릇을 비우는 모습을 본 알프레드의 동공이 커졌다.
"... 확실히 신기하군. 먹었을때 뭔가 변화라도 있나?"
"일단 적응되지 않으면 매콤하다 못해 아픕니다."
"매콤하다? 그건..."
"조심스럽지만 양파나 마늘, 후추와 비슷하지만, 종류는 다른 매운맛이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확실히..."
발상의 전환.
카렘의 말대로 당연시하던 것을 이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알프레드는 이어진 카렘의 말에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먹으면 화끈해지면서 체온이 오르는데-"
"응? 그건 처음 듣는다만?"
"아타니타스님. 그럼 제가 왜 땀을 흘린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아니. 난 아파서 그런 건 줄 알았지."
"잠깐 한번 만져보도록 하지."
알프레드는 흥미롭다는 눈길로 카렘의 손을 잠시 만졌다.
캐서린도 마찬가지로 카렘의 반대쪽 손을 만지고서야 이상을 감지했다.
윈터홈의 내벽엔 뜨거운 온천수가 흘러 난방이 되기는 했지만, 카렘의 손은 단순히 난방 때문이라고 하기엔 심하게 따뜻하다 못해 뜨끈뜨끈했다.
손을 놓고 조금 거리를 떨어트려도 은은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먹는 것만으로 이런 열이라니. 써먹을 수 있겠다.
잠깐 고민하던 알프레드는 정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런 헛소문은 최대한 빨리 잡는 게 좋겠지. 하물며 벌써 신의 축복이니 하는 소리까지 나오는데. 게다가 아타니타스. 자네도 이런 소문은 별로 좋아하진 않겠지?"
"그건....끄응...."
캐서린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그야 현자에 다다른 대마법사의 전속 요리사가 소문의 대상이면, 당연히 그 현자는 누구냐며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
그리고 캐서린은 흑역사를 딱히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진저리를 치는 사이, 알프레드는 이번엔 카렘에게 물었다.
"마침 이 헛소문을 최대한 빨리 잡을 방법이 떠오르는군."
"감사합니다. 주군."
카렘이 알프레드의 제안을 거부하는 일은 없었다.
찔리는 일이 한 둘도 아니었으니까.
나이라던가, 신의 시선이라던가.
계급과 상관없이 소문이 와전되는 것을 내버려 뒀다가 왜곡된 소문이 어떻게 서로 만나 기괴융합해버릴 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게 이런 일이 될 줄은 몰랐는뎅."
"이번만큼은 나도 꼬마 너를 불쌍하게 여기마."
잊을 만 하면 튀어나오는 흑역사에 고통받는 캐서린은 말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아무튼, 알프레드의 해답은 간단했다.
헛된 소문은 더 큰 사건으로 뒤덮으면 되는 법.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사건이 소문과 직접 연관되었다면 더더욱 좋았다.
그래서 카렘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최소 수백 명은 될 듯한 인파를 앞에 두고서.
그리고 카렘 그가 서 있는 무대가 있는 광장에 마련된 상석엔 알프레드와 엘리자베스 공작 부부를 비롯한 펠윈터 일가와 귀빈들이 앉아 있었다.
"저 꼬마가 소문의 당사자라고? 진짜 꼬마였다고?"
"맥주가 단돈 10펜스! 지금 사면 안주가 공짜!"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분명 독초가 분명합니다! 저 꼬마는 곧 죽을 겁니다!"
"꼬마가 죽는다에 1실링 건다!"
겨울엔 사람이 별로 없는 넓은 광장은 다른 거리와 광장의 사람들까지 모여들었고 지금도 모여드는 와중이라 소란은 점점 커져만 갔다.
카렘은 정신이 절로 아득해졌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후, 그래. 될 대로 되라지. 아 모르겠다."
카렘은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들고 계단 받침대를 올라 단상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