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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지나 냄새에 적응했는지 캐서린은 냉정함을 되찾았다.
인, 아니 요생 처음으로 맡은 충격적인 냄새에 진짜로 정신줄을 놓았던 메리도 바닥에서 일어났다. 비틀거리고는 있지만.
이게 집요정에게도 대입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충격이 가시지는 않는지 캐서린은 띵한 머리를 부여잡았다.
카렘은 혹시나 해 캐서린에게 물었다.
"맙소사. 전에도 맡아봤지만 정말 충격적인 냄새로군."
"가룸...이라고 하셨죠?"
"그래. 이 세르비아누스에서 맡았던 충격적인 비린내는 도무지 잊을 리가 없지. 이렇게까지 단단히 밀봉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가룸.
카렘도 전생에 보았던 요리의 역사를 다뤘던 영상 채널 덕분에 알고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 만들어 먹었다던 액젓의 이름이 분명했다.
전생과 비슷하다고는 하는데 가룸도 있다니, 과연 수렴 진화인가?
카렘은 수긍했다. 인류 미식의 역사는 감칠맛의 역사이니 그럴 법도 했다.
캐서린은 무언가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 듯 주절거리다, 카렘의 행동에 말을 멈췄다.
"응? 그릇? 갑자기 왜?"
"일단 맛은 봐야죠."
"미친 거냐!?"
"아, 안 됩니다!!!"
멀찍이 떨어져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는 메리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지만, 카렘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카렘은 주변에 쏟아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배럴을 기울였다.
코는 진작에 적응이 된 두 사람이 막아 세울 수도 있었지만, 개봉됐을 때의 충격적이다 못해 경악스러운 냄새는 캐서린과 메리의 다리를 굳게 만들었다.
그리고 카렘의 전생 환생 통틀어 처음 보는 가룸의 상태는.
의외로 평범했다.
아니, 신기했다.
"뭔가, 냄새와는 다른 인상인데."
얼핏 올리브유가 떠오를 정도로 진한 황금빛 액체는 그릇 바닥의 흠집이 투과되어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했다.
누구보다도 경악하던 캐서린은 그릇의 내용물을 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응? 불순물이 하나도 없군?"
"불순물 말입니까?"
"그래. 게다가 색도 아주 다르군."
"이거 말고 다른 색이었나보군요."
"내가 본 것들은 짙은 갈색이었지. 이렇게 투명하지도 않았고. 제조법이 다를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는 말이지? 라고 카렘이 생각하는 순간, 메리가 경기를 일으켰다.
"안 됩니다! 카렘 후배! 절대로! 안돼!"
"네? 뭐가요?"
"겉과 속이 다른 미믹이나 다를 바 없는 액체로 뭘 만들려는 겁니까!"
"아니, 어떻게 알았지!?"
"표정으로 다 말하고 있습니다!"
카렘은 반사적으로 입가를 만졌다.
그 말대로 삼신기를 손에 쥐기 직전인 소년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가룸, 아니 액젓은 그렇다고 쳐도 최대의 장애물이 남아 있었다.
캐서린. 분명 카렘이 고추로 뭔가 하려면 이전의 일이 반복될 것이 분명했다.
또다시 주둥이에 얼음이 처박히는 사태를 피하려면 그녀를 어떻게든 설득해야 했다.
위험이고 자시고 붉은 마녀의 손가락은 캐서린 그녀가 관리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캐서린은 카렘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마를 '탁' 쳤다.
하필 이것들에 저 꿍꿍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거냐.
그렇지만 그동안 카렘은 그녀의 기대를 저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지. 한 번은 있던가.
시험 삼아 윈터센드의 제물을 만들겠답시고 한 번 간식을 빠트렸던 적이 있긴 했는데.
약간의 실망과 호기심.
머리를 기울이며 고민하던 캐서린.
이내 한숨을 깊이 내쉬며 카렘 쪽으로 손을 휘저었다.
"하아, 그래. 일단 그냥 해보아라."
"네?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요?"
"계약자!?"
메리가 배신당했다는 비명을 질렀지만, 캐서린은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다.
"메리 말대로 이미 얼굴로 다 보인다."
"그렇다면..."
카렘은 빌렸던 장갑을 캐서린 쪽으로 밀고 그대로 양손을 내밀었다.
"응? 뭐냐?"
"말린 붉은 마녀의 손가락을 좀 더 내려주십시오!"
"그거 하나만 쓰려는 게 아니었나!?"
"턱도 없는데요."
이번만큼은 영 믿음이 안 가는데.
"저,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재료가 부엌에 준비되기 무섭게 메리는 오이를 본 고양이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도망쳤다.
그녀가 테이블에 놓고 간 것은 별거 없었다.
보라색의 주먹만 한 순무 한 바구니, 양파.
캐서린의 재료 보관고에서 가져온, 붉은 마녀의 손가락으로 빵빵한 어른 머리만 한 가죽 자루 하나.
"붉은 마녀-아. 거 이름 엄청 기네요."
"그래서 업계에선 불마손이라 줄여서 부르지."
"넵. 불마손 자루는 이게 전부입니까?"
"그래. 윈터센드에 5크라운짜리 불쏘시개로 전부 불태우고 남은 게 이만큼이지."
카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루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손에 닿자마자 화끈거리는 매운 고통과 함께 바짝 마른 불마손 몇 개를 쥐었다.
카렘은 작게 감탄했다.
수분이 단 한 점도 없이 바짝 마른 상태.
이만한 양이라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하거나 조금 못 미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깍두기.
김치용 배추는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양배추 김치 같은 어쭙잖은 것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선택지는 깍두기로 좁혀졌다.
물론 무도 현대의 그것처럼 크고 굵지는 않았다.
순무같이 주먹만 하거나 조금 더 큰 수준?
카렘은 곧바로 순무를 깍두기 크기로 썰었다.
어차피 네모로 토막 내면 상관없는 일이고, 다행히 맛도 날 것의 맛이 강하고 매운맛이 없다는 것을 빼면 전생과 별 차이는 없었다.
"뭐, 샐러드라도 만들려는 게냐?"
"샐러드보다는 피클에 가깝지 않을까요?"
"아, 그렇다면야. 그런데 식초는?"
"식초도 이따 넣을 겁니다."
큰 그릇에 담은 순무를 소금에 절이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카렘은 할 일이 있었다.
곧바로 불마손 자루를 냅다 절구에 들이부었다.
캐서린은 뜨악했다.
하나도 아니고, 한 자루 전부? 머리가 어떻게 됬나?
"설마 진짜로 그걸 다 쓰려는 거였냐!"
"솔직히 이걸로도 조금 아슬아슬하겠는데요."
"대체 무얼 만들려고."
"음. 일단 이걸 갈아서. 각종 양념을 넣고 버무릴 겁니다."
"...그 양념에는 저 가룸도 들어가겠고?"
넵. 카렘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젠 정말로 모르겠다며 캐서린이 뒤로 물러나자 카렘은 곧바로 절구를 빻았다.
수분 하나도 없이 바싹 마른 덕분일까.
손으로 빻는 데도 불마손은 건조한 가을의 모래같이 바스러지는 낙엽처럼 절구를 내려찍는 족족 껍질부터 씨앗까지 가루처럼 흩어졌다.
입자는 밀가루보다 조금 굵은 상태.
그 후로는 별다른 작업이 없었다.
소금에 충분히 절인 순무에 생강과 마늘, 양파를 갈아 넣은 다음 소금과 사과를 대신해서 사과잼과 꿀을 밀가루를 조금 푼 물과 함께 투입.
그리고 카렘은 대망의 액젓, 가룸을 집어 들었다.
"허, 가룸이 들어가는 피클이라니."
"그렇게 치면 불마손을 쓴다고 허락을 맡으려고 할 때-"
"그래. 그래. 지금 안 그래도 후회할 것 같으니까 취소하기 전에 얼른 끝내버리도록."
그 말에 카렘은 작은 그릇에 담긴 소량의 가룸을 전부 털어 넣었다.
솔직히 그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불마손이나 가룸의 비린내 따위가 아니었다.
고대 로마인들이 그렇게 환장하던 가룸은 생선 내장까지 통째로 써서 만드는 바람에 기생충으로 유명했다던가?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기생충이 문제였으면 카렘의 지난 10년간의 농노 생활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더라도 진작에 생겼을 터였다.
설령 진짜로 문제가 생기더라도 캐서린이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이라는 충성스러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딱히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아무렴 위장을 붙잡혔는데 당연했다.
아직은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재료를 손질하는 것에 비해 깍두기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나 다름없었다.
깍두기에 양념이 골고루 묻도록 꼼꼼하게 버무렸다.
그 사이, 주방에서 냄새가 빠지자 도망쳤던 메리도 어느새 돌아왔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질린 눈으로 카렘을 보고 있었다.
아니, 메리만이 아니라 캐서린도 같은 눈빛이었다.
"카렘 후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어, 도망치셨던 거 아닙니까?"
"도망이 아니라 탑 주변에 쌓인 눈을 치우러 잠깐 갔다 온 겁니다."
"물론 그러시겠죠."
실제로 메리는 바깥에 나갔다 온 듯 미처 녹지 않은 눈송이가 머리카락에 매달려 있었다.
카렘의 오해 아닌 오해를 정정한 메리가 다시 물었다.
"그걸 맨손으로 하는데. 괜찮은 겁니까?"
"네? 버무리기 전에 꼼꼼히 씻었습니다만."
"그게 아니라. 안 아픕니까?"
캐서린이 같은 심정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카렘은 지금 양념이 잔뜩 묻은 맨손으로 깍두기를 버무리고 있었다.
솔직히 겉보기엔 빨개도 너무 빨갛고 점성까지 있어 위협이 절로 느껴졌지만, 냄새는 나쁜 듯 나쁘지 않은 듯 애매했다.
비린 향이 나는 것 같으면서도 마늘, 양파의 알싸한 향기에 덮여 미묘했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저걸 맨손으로 만진다고?
카렘은 캐서린과 메리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물론 처음에는 아팠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냥 가죽장갑을 끼고 했을 거라며 후회가 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전생의 기억 덕분인지.
아니면 매운맛은 충분히 적응할 수 있던 문제였던 건진 몰라도 지금 와서는 고통은 없고 화끈거리는 느낌만 있었다.
"그냥 체온이 좀 올라간 것처럼 화끈 거리기만 합니다."
"....어린 나이에 이상한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니냐?"
"예?"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걸 누가 만지기만 해도 아픈 독초를 맨손으로 만지고 먹으려고 공을 들이냔 말이지."
"아니, 대마법사께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쪽은 누구보다도 비상식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 아니냐는 뜻을 담아 어이없는 눈으로 응시하자 캐서린은 발끈하려는 찰나.
"어쨌든. 이걸로 완성입니다."
손에 묻은 양념을 깨끗하게 씻어낸 카렘은 그릇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피클이라고 말은 했지만, 지금 당장은 발효가 되기 전이니 약간 샐러드에 가까울 것이다.
카렘은 질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캐서린과 메리의 눈길을 무시하며 포크로 한 조각 찍어 먹었다.
매콤하고 화끈하며 알싸한 감각과 아삭거리는 식감.
그 뒤를 치고 올라오는 양념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단맛과 새콤한 식초의 산미에 묻혀 막상 비린내는 나지 않고 오히려 액젓이 품은 감칠맛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역시 전생의 그것과는 거리가 좀 있는 물건이었다.
아마 매실청을 대신해 넣은 사과잼과 꿀 때문일지도.
그렇게나 눈이 뒤집혀서 만들었는데, 뭔가 조금 아쉬운 느낌.
구체적으로는 김치가 되다 만 매콤하게 절인 무 같았다.
"그럭저럭 먹을 만하네요."
"먹을 만 한 거냐."
"네. 한 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카렘은 그렇게 새 포크 하나와 함께 깍두기가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하, 궁금하긴 한데. 이걸 먹어? 아니지. 좀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멀쩡히 먹었잖아?
비린내는 더 나지 않는데. 그래도 아까 그 가룸이 들어간 거잖아?
주인과 종자는 서로 다른 과정을 거쳤지만 같은 결론을 내렸다.
"꼬마야. 조금 더 마음을 다지고 나서 먹어보마."
"기회는 나중으로 미뤄두겠습니다."
부정은 아니지만, 부정에 가까운 회피.
그래도 거부한 것은 아니니 카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발효를 시킨다면 맛이 달라질지도 모르는 일.
"어쨌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음? 갑자기?"
"오늘 교류회가 있는 날이니까요. 이거 배럴에만 담고 가면 시간이 딱 맞겠군요."
"그러고 보니 교류회가 있었지. 적응은 좀 됐냐?"
"어휴. 그 아부는 아직도 적응이-"
주에 몇 번 있는 총주방장 지그메서와의 교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던 찰나.
카렘은 그대로 고개를 내려 배럴에 담기 시작한 깍두기를 내려다봤다.
이거 지그메서한테도 먹여볼까?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