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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틀러 숲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토벌대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아이스웜은 족히 마차 수 대를 이어놓은 것 같은 덩치였다.
당장 지상에 빠져나온 부분만 따져도 그 정도인데, 땅속에 파묻혀있는 부분도 결코 그에 못지않을 것은 분명했다.
토벌한 몬스터의 후처리를 끝마쳐야 진정한 의미로 토벌이 끝났다고 할 수 있는 법.
그래서.
"토벌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다행히 피해가 크진 않습니다. 조릭 경."
"그러면 이제 현장을 정리해야지."
"조릭 경?"
"이틀 주도록 하지."
"예?"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쉴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작업을 시작하라니?
충성심이 강한 펠윈터 가문의 병사들도 투덜거릴 것은 분명했고 그저 고용됐을 뿐인 이들도 반발할 것은 뻔했다.
하지만 토벌대를 소집한 당사자는 진작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준비하고 있던 조릭은 항의를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한마디만 했다.
"의뢰금, 보상금, 수고비 각각 1.5배."
"!!!"
이번 일은 말단의 보상금도 제법 상당했다.
겨울 직전에 꾸려진 토벌대였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런데 거기서 더 쳐주겠다니?
가장 불만이 많았던 이들조차 개껌을 눈앞에 둔 개처럼 변해 조릭에게 당장이라도 개처럼 부려달라고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춥고 건조한 기후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거대한 아이스웜이 낱낱이 도축되는 순식간이었다.
"뭔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게 생겼네요."
"음? 뭐를 말하는 거냐."
"아니 뭐랄까. 좀 더 벌레 같은 모습을 기대했거든요."
기다란 몸을 층층이 뒤덮은 짙푸른 갑각
자라난 갈고리 같은 털.
네 갈래로 벌려진 주둥이에 빼곡한 톱날 이빨과 마차를 몇 대나 이어놓은 것 같은 기다란 덩치
거대 벌레보다는 게임에서 보스로 나올 것 같은 방사능과 바이러스 병기에 절인 돌연변이 장어같이 느껴졌다. 퍼시X림에서도 비슷한 놈이 있었던 거 같은데.
"꼬마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징그럽다고?"
"딱히 징그러운 건 아닌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시하고 넘어가시죠."
카렘은 고개를 휘휘 젓자 캐서린은 영 모르겠다는 듯 한쪽 눈을 치켜 떴다.
아니, 그야 이쪽을 드물기는 해도 오리지널로 접한 사람한테는 뭘 말해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 당연했다.
이게 새우를 바다 바퀴벌레로 취급하는 몽골 사람같은 느낌인가?
카렘은 영양가 없는 생각은 그만하기로 하고 멍하니 실시간으로 도축 당하는 아이스웜을 보았다.
하나처럼 보였던 갑각은 비늘처럼 자라있었는지 한 장씩 무더기로 벗겨져 드러난 가죽을 사람들이 달려들어 칼집을 내고, 미리 칼집을 내자 몇 사람이 틈새에 갈고리를 박아넣고 몸무게로 가죽을 벗겨냈다.
영화에서 나오는 고래를 도축하는 장면과 유사했다.
진작에 분리가 끝난 부분은 사람들이 피가 묻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핏기가 남아있는 아이스웜의 새하얀 살코기를 덩어리 채로 잘라내고 있었다.
"아타니타스님. 저 아이스웜은 이제 어떻게 처리하나요?"
"내장은 마법의 촉매로 쓸 수 있고 뼈, 가죽, 비늘은 건축 자재와 장비와 도구의 재료가 된다."
"건축 자재요? 하긴."
몬스터의 부산물을 장비 재료로 쓰는 것은 익숙했지만, 건축 자재라니?
어리둥절했던 카렘은 금방 수긍했다.
하긴 지금 이 아이스웜의 머리만 해도 수레 하나는 통째로 차지할만한 크기였고 몸길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길었으니 건축 자재로 쓸 법도 했다.
"머리는, 박제할지도 모르겠군."
"머리를요? 상하지는 않을까요?"
"꼬마. 지금 날씨를 생각해봐라."
"아, 하긴."
방한복에 털망토를 둘렀는데도 시린 냉기가 느껴질 정도면 체감상 족히 영하 십수 도는 될 것 같은데 뭔가가 상할 리는 없었다.
"그리고 살코기는 식용으로 쓸 수 있습니다."
캐서린의 말을 이어받은 메리가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토벌대가 일부를 가져간다고 해도 드라이우드 마을의 개와 고양이도 봄이 올 때까지는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겠군요."
"딱히 독은 없나 보죠?"
"예. 데스웜도 특정 종류를 제한다면. 독은 딱히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하긴 이만한 덩치에 야영지에서도 보였던 그 브레스에 독까지 있다고 하면 너무 생물학적으로 불공평하겠지.
"데스웜 중 독을 지닌 놈은 늪지대에 서식하는 놈들이 전부지."
"그네들도 이놈처럼 브레스를 쏘나요?"
"브레스? 음."
캐서린이 고뇌하며 턱을 긁적였다.
"주둥이에서 바위만 한 독액을 내뱉는 것도 브레스라고 하면 브레스라고 할 수 있겠지. 나도 오래 살았지만 브레스를 쏘는 데스웜을 만난 건 손에 꼽을 정도라서 말이다."
"아, 데스웜이라고 다 브레스를 쏘는 건 아닌가 봅니다?"
"그야 당연하지. 안 그래도 수가 적은 놈들인데, 거기서 브레스를 쏠 만큼 강하고 오래 묵은 놈은 숫자가 더 적을 거다."
"그리고 그 브레스를 정면에서 막다 못해서 반격까지 하셨다고요?"
카렘은 흰눈으로 캐서린을 응시했다.
"마법사가 아니라 사실 정체를 숨긴 드래곤이나 다른 무언가가 아닙니까?"
"무얼, 마법사가 열, 아니 다섯만 있었어도 방어는 가능했을 텐데."
"반격은 못 하고요?"
"그야 당연하지."
그때, 카렘의 코끝을 어떤 냄새가 스치고 지나갔다.
피 냄새는 아니었지만 뭔가 다른.
심각한 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스쳐 지나갔는데?
"방금 비린내가 났는데, 저만 맡았습니까?"
"....아이고 맙소사."
"메리?"
메리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강도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다 못해 찌그러트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카렘은 순간 흠칫했다.
날 처음 봤을 때도 저러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뭔가 아는 눈치인데요?"
"카렘 후배. 직접 보면 싫어도 제 심정을 알 겁니다."
"네?"
"마침 건너편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군요."
카렘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메리의 말에 긍정했다.
지금 급한 건 조릭의 지휘하에 아이스웜을 해체하는 토벌대와 마을 사람들이었지, 기사들처럼 한 발자국 떨어져서 구경하는 그들이 아니었으니까.
인력으로 끌어낸 아이스웜의 꼬리를 한 바퀴 빙 돌아 반대편을 구경하면서 머리 쪽을 향해 올라가던 그 순간.
카렘은 메리처럼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반대편이라고 이전과 막 다른 풍경은 결코 아니었다.
고래를 도축하는 고래잡이처럼 고생하는 사람들을 비위도 좋은지 멀찍이서 그걸 구경하는 기사들과 아이스웜의 부산물을 옮기는 사람들까지.
다만 한 가지가 달랐다.
아니, 추가되었다.
부글부글부글-
"자아 자! 양은 충분한데 시간은 없으니 후딱 한 그릇 마시고 일하러 가시오!"
"뭐, 스튜에 고기가 엄청 많군?"
"그야 당연하지. 옆에 저 만한 고깃덩어리가 떡 하니 있는데!"
"어흐. 추워라. 거 술이라도 하나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
“돌아가면 마셔. 돌아가면.”
보급병들이 모닥불 위에서 팔팔 끓고 있는 몇 개나 되는 커다란 솥단지의 국자를 휘저어가며 줄을 선 각양각색의 일꾼들이 내미는 그릇에 건더기와 국물을 듬뿍 퍼 담았다.
그리고 국자를 퍼 올릴 때, 스튜가 끓어오를 때마다 피어오르는 새하얀 김에서 한여름의 바닷가의 어물시장의 비린내 같은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메리?"
"뭡니까. 카렘 후배."
"대체 저 끔찍한 건 뭡니까?"
"데스웜은 식용이 가능한 몬스터죠. 마침 신선한 고기가 들어왔고 공짜로 먹으라고 막 퍼주는 것 같은데. 이때다 싶어 다들 먹는 겁니다."
그 말대로 카렘은 가까이 지나가려다 캐서린을 보고 흠칫하더니 공손히 인사를 하고 가버린 용병의 그릇에 한가득 담긴 새하얀 고기를 보았다.
"아니, 그러니까 이걸 먹는다고요? 이 냄새를?"
"카렘 후배? 농노 마을 출신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메리의 말은 마치 그딴 동네면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텐데?라는 편견 가득한 뉘앙스가 절실히 느껴지는 의문이 담겨있었다.
"아니, 그 동네는 저렇게 요리까지 해서 먹을 형편은 아니었는데요. 저도 곡물죽을 곧잘 얻어먹었습니다."
"그럽니까?"
"게다가 1년에 몇 번 없는 축제 때는 고기 통구이 같은 거나 올라왔고."
"그렇군요."
“먹어본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생선 비린내가 가득한 어시장과는 다른 묘한 냄새.
그렇지만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스튜를 먹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던 카렘은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래, 음식은 결코 편견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됐다.
한국인이 잘 먹는 김치조차 다른 나라 사람들은 먹지 못하고, 과일의 왕이라고 불리는 두리안조차 쿠리쿠리한 냄새가 온 사방에 퍼지며 악명높은 수르스트뢰밍조차 원산지에서는 맛있다고 먹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카렘은 편견을 부수기 위해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굶주린 사람들처럼 줄을 섰고 기어코 비린내의 근원인 아이스웜의 하얀 고기가 가득 담긴 스튜 그릇을 들고 왔다.
메리와 캐서린은 어디 잘 먹나 보자는 투로 지켜보고 있었다.
브라우니와 고용주의 시선을 여지없이 느끼며 카렘은 스튜의 내용물을 보았다.
조리된 아이스웜의 고기는 뭔가 익숙했다.
삶은 흰살생선 같은 느낌으로 살코기에 뚜렷한 결이 보였다.
다만, 보급병들이 요리와는 영 거리가 먼 사람들인 듯 고기도 그렇고 같이 들어간 채소들도 그렇고 하나같이 모양과 크기가 따로 놀고 있다는 게 무척이나 거슬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아무튼, 맛만 있으면 그만이잖아?
카렘은 숨을 참고, 고기를 집어 입안에 투척했다.
과연 생각했던 데로 고기는 결대로 찢어졌다.
고기의 맛도 그런대로 있었고, 채소는 역시 덜 있었다.
그리고 냄새가...
냄새.
"애미씨발!!!!!!!!"
"당신이 직접 먹어보겠다고 한 겁니다. 전 경고했습니다."
"허허, 기어코 그걸 먹는군."
도구도 재료도 부족한 야외에서 미식을 원했던 자의 최후.
메리와 캐서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허롭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