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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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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글로우 요새는 그간 조용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시끄러웠다.

그야 당연했다.

아니, 오히려 시끄럽지 않으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다.

아무렴 출정했던 원정대가 복귀했으니까.

그것도 본대라고 할 수 있는 변경백의 원정대가.

그리고 원정대가 복귀하면 벌어질 일은 하나밖에 없다.

연회.

고생한 이들이 피로를 풀고 죽은 동료들을 위하는 자리.

산더미같이 쌓인 고기와 끝없이 쏟아지는 요리.

도시 전체가 빠져 죽을 만큼 쌓아 올린 술통.

공을 세운 이들을 치하하며 무사 생환을 축하...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지금 그럴 틈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휴식을 취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발리스타! 여기 있던 발리스타 어디 갔어!"

"당장 요새는 괜찮으니 경비대는 프레젠트로 복귀해라!"

"기름! 요새에 비축한 게 몇 배럴이나 되나? 모른다니? 빨리 알아와!"

아이스랜드 최북단에 자리 잡은 도시.

프레젠트로 언데드 떼거리가 천천히 몰려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요새가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제기랄, 떼거리? 아니야. 이쪽은 언데드 군단이 몰려오고 있다! 전시 태세! 경계 단계를 최고로!"

"알겠습니다. 주군!"

산맥 너머에서도 언데드가 몰려오고 있었다.

적자생존의 법칙 아래에 죽어간 수많은 생명체.

생명체였던 것들.

이것뿐이면 상황이 긴박해도 별것 아니다.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일상은 원정 혹은 전투와 재정비의 연속.

빠르면 1년에 한 번 이상. 늦어도 몇 년에 한 번은 벌어진다.

이보다 위험한 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군단을 일으키고, 이끄는 자를 확인했다.

지휘 체계가 존재했다.

프레젠트 방면의 언데드 떼거리는 비교 자체가 실례다.

그야말로 군대라는 단어에 걸맞았다.

일반적인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전투는 협동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몰려오는 몬스터의 대군세를 토벌하는 방어전 위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는 끝없이 몰려오는 대군세의 기세를 꺾어버리거나, 대군세가 앞선 돌격으로 생긴 시체에 만족하고 물러나거나, 마지막 하나까지 모조리 토벌하는 것으로 종료된다.

세 번째가 바로 언데드의 경우.

그리고 가장 쉬운 방어전이다.

자연산 언데드는 떼로 몰려와도 요새를 위협할 수 없다.

허나 반대로 누군가에 의해 일으켜지고 부려지는 언데드라면 말이 달랐다.

언데드는 지칠 줄 모른다.

부서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담되는 것은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되살아나 동료였던 이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사기와 휴식, 보급을 신경 쓰지 않고 두려움과 고통과 연민도 느끼지 못하는 그 어떤 의심 하나 없이 일사불란하게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군대.

"후우, 당장 급한 명령은 다 내렸나?"

"예. 주군. 지휘실은 소인이 통제하겠습니다. 이만 휴식을 취하심이 어떠신지요. 언데드가 다다르면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실 테니 말입니다."

"그래. 그러면 나머진 맡기지. 급한 일 있으면 부르고."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중간층에 자리한 변경백의 집무실의 벽과 선반은 대부분 온갖 무기와 몬스터와 맹수 트로피, 가죽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의 주인인 리처드는 체구만큼이나 거대한 전용석에 늘어져 프라이드 치킨이 수북하게 담긴 양동이에 손을 뻗었다.

"아들내미의 부하들 앞에서 조금 쪽팔리지만 양해를 구하지. 월레스 말대로 조금이라도 더 휴식을 취하는 것이 급하니까."

"눈치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너무 큰 손님용 소파에 캐서린은 반쯤 파묻힌 채로 답했다.

아니, 고든은 제외하면 메리도 상태는 비슷했다.

심지어 카렘은 사실상 손, 발, 얼굴말고는 보이지도 않았다.

리처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닭 다리를 집어 한입에 뼈만 남겼다.

아그작, 바자작. 우물우물- 꿀꺽.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지."

"제 일행을 부르신 걸 보면 원하시는 것은-"

"그래. 만일을 대비한 협력을 부탁하지."

우물거리며 말하던 리처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튀김가루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손님을 부려먹는 건 영 내키지 않지만, 지금은 전례가 없는 상황이네. 하물며 요새는 지금 전력을 온전하게 갖추지도 못하고 있지."

"그러고 보니 하이랜드 쪽의 원정대는 어떻게 된 겁니까? 설마 전멸한 건 아닐 테고요."

고든은 프라이드 치킨과 티라미수가 잔뜩 놓인 손님용 테이블에 손을 뻗으며 물었다.

"나도 그리 믿네만. 조금 전에 막 까마귀들을 날려 보낸 참이라 그쪽 상황은 아직 몰라."

오돌뼈까지 깔끔하게 먹은 리처드가 다리뼈로 캐서린과 리처드를 가리켰다.

"대마법사와 소드마스터. 그것도 상당한 실력자들이라지. 내 보상은 톡톡하게 할 테니 부디 필요한 순간에 그 전력을 우리에게 빌려주게."

"저희도 고립된 상황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근데..."

"흠? 뭐 이상한 거라도 있나?"

캐서린은 한쪽 눈썹을 지켜 떴다.

"요청이 굉장히, 느슨하군요?"

"느슨하다?"

"분위기를 보면 전폭적인 협력을 요청하실 줄 알았습니다만. 아니었습니까?"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군."

리처드는 고개를 들어 캐서린을 보더니, 뼈를 벽난로를 향해 던지고는 손을 내저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잠깐 하기는 했네만. 아무리 그래도 아들내미가 보낸 손님을 막 부려먹을 수는 없지. 그리고 모름지기 적의 배때기에 처박을 비장의 쇠스랑은 끝까지 숨겨두고 있다가 확!"

그리고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처럼 넓적다리를 낚아챘다.

"기습적으로 찔러야지."

"와, 대마법을 준비하고 언제든지 쏠 준비를 마친 대마법사라니."

변경백의 답변에 카렘은 무심코 중얼거렸다.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캐서린의 저력은 충분히 알았다.

가벼운 행동. 무영창, 손짓 따위로 매머드를 구속하고, 물리적 효과를 동반한 국소적인 기상이변을 일으키며, 브레스를 정면에서 막다 못해 되돌리기까지 하는데?

그런 인간형 전략병기한테, 뭐?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주고 기회가 오면 날리라고?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옆에서 듣던 고든과 메리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라고는 해도 언제 나설지는 그대들에게 맡기겠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런데..."

수염에 묻은 튀김가루를 털어내던 리처드는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너무 작고 어린인 데다 스타크 경의 몸에 가려져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저쪽은 아타니타스 그대의 시종인가?"

"저의 전속 요리사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시종을 겸합니다."

"흐음? 그래. 잠깐. 전속 요리사?"

감흥 없이 닭갈비 사이의 살점을 입술로 발라먹던 리처드가 멈칫했다.

그리고 뼈를 통에 뱉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어린 전속 요리사라면. 그쪽이 카렘 공이란 말인가?"

"...네. 아타니타스 님의 전속 요리사 카렘. 변경백 각하께-"

"아아,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게. 손님인 데다 귀빈이신데. 편히 있게 편히."

리처드는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인사하려던 카렘을 도로 앉혔다.

...캐서린은 그냥 성으로 부르는데, 나한테는 존칭을 붙인다고?

카렘은 불안함에 몸이 절로 떨려왔다.

"아, 참. 이게 아니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자 뒤에 놓인 책장을 뒤적이더니 제법 두께가 있는 양장본을 들고 손님용 테이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구체적으로는 카렘을 향해서.

"여기 안쪽에 사인 좀 해주게나."

"히끅. 예?"

전혀 생각지 못한 요구와 덧붙여진 존칭. 거기에 확연히 느껴지는 압박에 카렘은 무심코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사인. 어, 그러니까. 사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사인. 없으면 자네 이름으로 서명이라도 해주게. 아, 깃펜이 없나?"

"어, 깃펜. 깃펜. 아."

스윽- 슬쩍 메리가 내민 깃펜을 받은 카렘은 마찬가지로 메리가 내민 잉크병에 깃펜을 찍었다. 그리고 리처드가 펼쳐 내민 양장본의 안쪽에 사인을 휘갈기는 동안 안쪽에 적힌 제목을 볼 수 있었다.

"꼬마 천재 요리사 카렘의 놀라운 레시피 모음집...?"

"그래. 자네가 개발한 레시피를 모아서 엮어 만든 책일세."

"전 만든 기억에 없는데요."

"그야 당연하지."

후- 후 불어 잉크를 단번에 말린 리처드는 책을 덮으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가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물건이니까."

"하? 특주품?"

이번 건 카렘이 아니다.

메리가 내미는 티라미수를 받아먹던 캐서린은 뜨악했다.

그뿐 아니라 메리와 고든도 무슨 소릴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손님들의 경악스러운 눈빛을 모르는지, 무시하는지, 알 바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리처드는 냄비 끓는 소리로 웃으며 사악하게 웃었다.

"흐흐흐, 봉신들이 오면 자랑할 거리가 하나 늘어났군. 적어도 카렘 공의 사인을 가진 놈들은 나 말고 없겠지."

좋아, 이쯤 되니까 진짜로 부담스러운데.

카렘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시종장 월레스와 총주방장 보르고. 그 외 요새의 시종과 하녀들 다수 덕에 하이랜드에서 전생의 스타 요리사같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단 것은 알아차렸다.

나름대로 이유도 이해가 됐고.

그렇지만 거기에 변경백과 그 봉신들? 봉신이라면 뭐 부족장이나 남작 같은 유력자들도 끼어있다는 소리인 건데? 하?

"아, 맞다. 깜빡 잊고 있었군."

"...계약자. 가계약 건을 말씀하십니까?"

"그건 나중에 상황이 다 끝나고. 이건 더욱 사적인 일이다."

메리의 의문은 곧바로 풀어졌다. 외투 자락으로 손을 집어넣은 캐서린은 작은 매듭으로 묶인 편지 뭉치를 꺼내 들었다.

"변경백 각하. 가족분들의 편지입니다."

"뭣. 알리시아가 편지를 보냈다고!!!"

소중하게 쓰다듬던 양장본을 책장을 향해 던져 꽂아 넣은 리처드는 바닥을 부술 듯이 달려와 급정거. 편지에 손상이라도 갈까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그리고 손님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매듭을 단번에 뜯어내고 편지에 적힌 저자를 읽으며 휙휙 넘겼다.

"알프레드. 넘기고. 고드윈. 다음에. 윌리엄? 로빈? 며느리? 뭐 이렇게 편지를 많이 쓴 거야!"

영문을 알 수 없는 역정을 낸 리처드의 표정은 뭉치의 마지막에 있던 편지를 들고 나서야 화색이 돌았다. 마치 꿀을 발견한 곰처럼.

"그래, 마지막에 놓여 있었구나. 우리 사랑스러운 알리시아!"

처음의 이미지랑 완전히 다른데. 카렘은 프라이드 치킨에 손을 뻗으며 리처드를 향해 뜨뜻미지근한 시선을 보냈다.

체크무늬 무릎스커트를 입고 치명적임을 뽐내는 야만 전사 무리보다 머리 하나는 거대한 리처드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

그나마 자이언트 처칠 경은 인간 같기라도 했지.

전설 속의 신장(神將), 에인헤랴르가 실존한다면 이러할까?

심지어 주무기인 드래곤 머리 모양 해머는 과연 사람이 들 수 있을지 의심이 되는 수준. 해머 끄트머리만 해도 카렘이 웅크린 것보다 더 컸다.

그런 존재가 지금 눈앞에서 편지에 뽀뽀를 날리고 있었다.

아니, 모든 할아버지는 막내 손주의 이쁨을 받고 싶어 하는 건 알지.

근데.

뭐랄까.

"좀 푼수 같네요."

"쉿. 간도 크다."

"합."

고든이 검지로 입을 막으며 주의하자 카렘은 곧바로 입을 막았다.

다행히 편지에 정신이 팔렸는지 리처드는 듣지 못한 듯했다.

"...더는 못 봐주겠군."

하지만 캐서린도 동의하는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정신이 팔리신 것 같으시니. 가계약 건은 나중에 기회를 봐서 말을 해야겠군. 이만 가자."

"어, 그냥 이대로 가도 되나요?"

"넌 저분이 지금 다른데 신경을 쓰는 것 같냐?"

캐서린은 그리 말하며 아직도 뽀뽀를 날리는 리처드를 가리켰다.

카렘, 메리, 고든은 단번에 이해하고 테이블에 놓여 있던 치킨 바구니와 티라미수를 챙겨 들었다.

쾅!

집무실 문이 부서질 듯이 열렸다.

"리처드! 주군 새끼야! 카렘 공이 여기 있다고!? 오, 이거 다른 손님들도 계셨는구먼. 실례하겠네."

리처드보다는 작지만, 뚱뚱하다기보다 단단한 체구가 어울리는 대머리 노인이 수염처럼 체크무늬 무릎치마를 치명적이게 흩날리며 들어왔다.

그래 이쪽도 팬인가. 하지만 치마. 제발, 투타티스 맙소사.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모습과 아슬아슬하면서 보이지 않는 절대영역.

그 밑으로 펼쳐진 코앞에서 보이는 수북한 다리-

카렘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