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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15 KiB

튼튼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마차와 수레.

털에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말과 스노우러너.

그리고 호위병들의 갑옷에 새겨진 휘장까지.

포효하는 하얀 드래곤의 머리 그림을 본다면 누가 봐도 상대가 어디에서 누구의 명령으로 왔는지 추측할 수 있다.

도저히 모를 수 없는 확실한 증거에 앞서 성문에서 줄을 서던 사람들은 공손하게 자발적으로 호위병들이 둘러싼 수레와 마차에 길을 비켰다.

하지만 문지기는 동료의 핀잔에도 원리원칙대로 다가오는 행렬을 멈춰 세우고는 증거를 요구.

명령서를 받아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뭔가 치킨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카렘은 메리가 연 창문으로 눈만 빼꼼 내밀어 보다가 캐서린에게 작게 속삭였다.

"보더스터나 콜던에선 겉에 인장만 봐도 통과시켰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뭐, 원칙대로라면 성과 도시에 출입하는 모두가 검문 대상이지."

캐서린은 살짝 고개를 들어 카렘을 봤다.

"아무튼, 관습법이란 그런 거니까. 하지만 법이라는 건 보통 돈과 권력, 인맥으로 무마되기도 하니까."

"그러면 이런 경우가 원래의 일 처리다?"

"그래. 다만, 융통성 없이 귀족의 행렬을 붙잡은 경우는 보통 경우가 둘인데-"

말을 하다 캐서린은 마차 밖에서 돌연 들려오는 분노를 담은 발걸음 소리에 말을 끊었다. 카렘은 그 걸음의 주인공을 볼 수 있었다.

성문의 안쪽에서 나온 문지기들과 비슷하지만, 좀 더 화려하고 망토를 두른 중년이 문지기의 머리를 후려치며 명령서를 낚아채고 소곤거렸다.

쾅! 퍽! 퍼버버벅!

"대가리가 있는 거냐! 네가 뭔 문서를 읽겠다고! 눈은 장식이냐!?"

"아! 검문은 설령 귀족이 들어와도 철저하게 하라고 대장이 말했잖아요."

"머저리야.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펠윈터 가문은 귀족이 아니랍니까?"

"미친놈! 미친놈!"

저리 꺼져! 쓰러트린 문지기를 두들겨 패면서 (워낙 우렁차서 의미가 없었지만) 소곤거리던 경비대장은 문지기를 걷어차며 내쫓았다.

행렬의 인장은 성문 위에서도 똑똑하게 보였다.

명령서의 내용은 낚아채면서 확인 완료.

조금 전까지 성질부리던 경비대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굽신거리며 엄숙한 목소리로 마차의 열린 창문을 향해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차 어떤 연유로 방문하셨는지 여쭤보는 것을 허락받아도 되겠습니까?"

"아타니타스 최고 마법 고문께서는 아이스랜드 공작 각하의 명을 받고 하드리아누스 변경백 각하를 알현하시기 위해 왔습니다."

"아, 그렇다면 제가 요새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캐서린을 대신해 대답한 메리가 명령서를 회수.

멈춰있던 행렬은 곧 성문을 지나 프레젠트에 진입할 수 있었다.

카렘은 곧바로 창문을 닫으려고 했다.

"으, 추워라 춥..지 않네? 아니, 덜 춥다고 해야 하나."

"성벽이 그나마 외부를 차단해 냉기가 덜 들어오고, 또 도시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

확실히, 이전과는 달리 창문을 열었다고 마차 온도가 내려가는 정도는 아니었다. 덕분에 카렘은 창문으로 도시를 둘러볼 수 있었다.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성채도시.

프레젠트는 도시의 규모를 제외하면 콜던과 비슷하면서도 차이점이 몇몇 있었다.

우선 지붕.

주택의 지붕이 콜던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뾰족했다.

심하면 지붕이 바닥과 붙어있는 집도 자주 보였다.

다음으로 사람들의 복장.

대다수가 두툼한 털망토 밑에 무장을 갖춰 일반인인지 모험가인지 용병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콜던이었다면 윈터홈이 보였을 위치에 자리 잡은, 산맥의 두 능선 사이를 통째로 가로막는 거대한 성벽. 아니 요새.

로션 대용의 기름을 바르지 않아 피부가 순식간에 건조해지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카렘은 창밖으로 보이는 애프터글로우 요새의 위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것이 생전 처음으로 고대 이집트인의 피라미드를 목격한 원시인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마법이나 몬스터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전생의 기술로도 무리일 것 같은 규모는 대체...

게다가, 도시에 만연한 뜨거운 기름 냄새.

아니. 이건 분명히 치킨 냄새였다.

치킨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다니며 뜯는 사람들도 자주 보였다.

'이쪽은 치킨이 유행하는 건가?'

윈터홈의 불마손 대유행처럼?

그때, 뒤통수가 따가웠다.

시선의 주인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그야 동승자는 두 명밖에 없었으니까.

"요새에 도착하려면 좀 더 걸릴 거 같은데, 계속 보시지 그랬습니까?"

"음, 아뇨.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메리는 고요함이 느껴질 만큼 무감정한 얼굴로 말했다.

목소리에 억울하다는 기색이 담겨있지만 개뿔.

눈빛에 담긴 감정부터 숨길 것이지.

카렘은 창문을 닫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나도 읽던 책이나 마저 읽으려고 했다만."

"시선이요. 시선. 눈이 웃고 있는데 신경 쓰여서 어디 더 볼 수나 있겠습니까?"

"흠, 꼬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라는 말을 그대로 믿기엔 무표정한 캐서린과 메리의 눈빛에 담긴 즐겁다는 감정은 피부로 느껴질 만큼 진했다.

결국, 캐서린은 들켰다며 어깨를 으쓱이고는 펼쳤던 책을 탁 소리가 나게 닫았다.

"뭐, 윈터홈이나 애프터글로우 요새 같은 절경은 드무니 이해 못할 건 없다. 나도 베르생제토의 세계수를 처음 봤을 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세계수라..."

세계수. 위그드라실. 아홉 세계에 뿌리를 걸친 물푸레나무. 하늘을 뚫고 솟아올라 우주를 지탱하는 거목. 등등.

전생의 세계수라는 단어에 얽힌 다양한 이름과 별명이 떠올랐지만, 일단 세계가 다르니 다른 종류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그거 불타올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라?"

"아니, 고대 팔라티노 제국이 정복하면서 불태웠다고 보물고에서 들은 거 같은데요?"

아아. 캐서린은 틀린 말은 아니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때 한 번 불타기는 했지만, 그 동네가 팔라티노 제국에 복속되면서 다시 심어졌다고 한다. 오히려 그때 이전의 세계수와 주변 숲의 잿더미 덕분에 더 크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

"뭐어, 상징적인 나무인 거 같으니 그렇겠지요. 응?"

그런데 뭔가 어휘가 이상한 것 같은데. 기록이 있다니?

"마치 뭔가 한 번 더 불타올랐다는 말 같은데요."

"정답이다. 세계수가 채 다 자라기도 전에 사건이 있었지."

"...뭐 고대 제국에서 한 번 더 불태우기라도?"

"그래. 불태워졌지."

캐서린은 책을 휙 치우고 팔짱을 꼈다.

"다만 마왕군에 의해서."

"오."

그러고 보니 에우로파 전역이 정복당했다고 하던가.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불태워졌다고 하면...

"안 그래도 기존의 잿더미에 양분이 넘쳐 흐르고 있는데, 또 덜 자란 세계수의 잿더미가 더해져 세 번째 세계수는 그 양분을 결국 모두 먹어치워 그야말로 세계수라는 말이 농담 같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게 자랐지."

"뭐, 어지간히도 거대한가 봅니다?"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캐서린은 적당한 비교군이 떠오르지 않아 생각에 잠긴 사이, 메리가 아무렇게나 놓인 책을 집어 들었다.

"일단 세계수의 지름은 넓다고 합니다."

"세계수라고 부를 정도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대충 윈터홈 만큼이나 말입니다."

"그렇군요. 윈터홈만큼이나...응?"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하지만 메리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세계수의 가장 높은 가지가 구름에 닿을 정도가 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뭐, 소문은 소문이니 그만큼 높다는 소리겠지요."

"...일단 말을 허투루 하는 요정은 아니시니."

농담이 아니라고? 카렘의 진짜냐는 의문이 물씬 담긴 시선에 캐서린이 정확하다는 듯이 단호하게 긍정했다.

"그래, 그 마음 나도 알지. 나도 처음 영감탱이가 말해줬을 때는 믿지 못했다. 직접 보고 나서야 이해했지. 그게 일반적인 사람의 감상이니까."

어쩌면 성에서 경험으로만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두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 도저히 믿지 않으려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카렘의 눈이 캐서린이 옆에 기대어 놓은 지팡이.

팔라티노의 세 번째 영광의 끝에 박힌 호박으로 향했다.

이렇게 보니 빛을 받지 않았는데도 주변에 제 혼자 은은한 주황빛을 뿌리는 호박이 뭔가 심오하고 대단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행렬이 멈춰섰다.

마차에서 내리자 카렘은 온도 차에 화들짝.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장엄한 위용에 화들짝.

다시 한번 감탄했다.

멀리서 봤을 때도 놀라웠던 광경은 여전했다.

거리가 줄어들고, 내성이라는 장애물이 있는데도 감출 수 없는 그 어마어마한 모습에 도저히 눈을 떼기 힘들었다.

문명을 지키는 최전선의 고대 요새.

이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 문장이란-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거냐."

"아, 실례합니다."

"왜 그렇게 넋이 나가 있어?"

"아니, 멀리서도 봤을 때도 그랬지만,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대단해 보여서 그만."

카렘이 얼른 옆으로 비켜서자 메리와 조금 전 그를 타박한 캐서린이 뒤이어 내렸다.

"조금 전에도 그렇게 보더니. 질리지도 않는 거냐?"

"솔직히 몇 번이나 봐도 질릴 것 같진 않은데요."

그 말에 이리저리 둘러보던 캐서린이 고개를 높이 들어 요새를 올려다보았다.

"뭐, 저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확실히 장관일 것 같구나."

"확실히 요새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대단한 광경입니다."

행렬을 안내한 경비대장이 웃는 얼굴로 손바닥을 비비적거리며 다가왔다.

"그쪽은 한 번 내려다본 적이 있나 보군?"

"아무렴요.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콩알보다 작게 보일뿐더러 고그마고그 산맥을 중심으로 프레젠트의 문명과 산맥 너머 야만의 세계가 명백히 갈리니, 의외로 요새 꼭대기에서 경비 업무는 야간까지 경쟁이 치열합니다."

경비대장의 그 말 만큼은 카렘은 믿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야간 경비 업무를 경쟁하다니? 미친 건가? 전생에 몇 번 했던 불침번은 그저 아무 일 없이 멍하니 서 있기만 해도 뭐 같았는데, 아무리 풍경이 좋아도 그렇지 그걸 자처해? 왜?

"몰래 챙겨놓은 술과 씹을 거리. 그리고 대비되는 장엄한 두 풍경이면 몇 시간이고 경비 업무가 뚝딱!"

"확실히. 요새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 술안주로 충분하지."

"그렇지요. 짭조름한 찢은 육포에 껍질 벗긴 호두알을 먹다 기름기와 짠기를 맥주 한...모..."

금? 정신없이 예찬하던 경비대장은 우뚝 굳었다.

마차의 뒤에서 키가 크고 말쑥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고급스러운 가죽 갑옷 위로 맵시 좋은 털코트를 걸친 노인은 단안경을 쓰고 한 손에는 치킨이 담긴 작은 나무 양동이를 들고 다른 손으로 뜯어먹으며 걸어오고 있, 응? 치킨?

카렘은 눈을 비볐다.

치킨이었다.

외형 이전에 냄새부터 확실히 치킨이었다.

경비대장을 노려보던 노인은 치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자네의 술안주 취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경비 도중에 술이라니. 내 한번 지난 세 달간 경비를 섰던 놈들을 죄다 뒤엎어볼 필요가 있겠어."

"아, 시종장님! 아무리 그래도 맥주가 술입니까!?"

"들통으로 마셔도 취하지는 않지만 그런데도 보리로 만든 술이니 각오하도록."

경비대장은 단번에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렸다.

그렇게 경비대장을 내쫓은 늙은 시종장은 일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리고, 이쪽이 분명 그 유명한 카렘 공이겠군요."

"....뭐라?"

"음???"

"뎃."

척척 다가와 무릎을 꿇고 치킨 양동이를 옆에 놓은 후.

두 손으로 카렘의 손을 재빠르게 잡아 흔들었다.

마치 고대하던 귀빈을 맞이해 기쁜 것처럼.

그런데 일행에 귀빈은 따로 있을 텐데?

시종장이 본래 맞이해야 하는 귀빈보다 귀빈의 종자를 더 반가워한다는 초현실적인 순간에 캐서린을 비롯한 행렬은 혼란에 빠졌다.

다만 시종장도 행동하고 나서 안 것인지 시종장도 고개를 팍하고 들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정중함과 엄숙함을 담아 말했다.

"소식은 미리 전달받았습니다. 요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타니타스 공. 하드리아누스 변경백 각하의 시종장인 기사 월레스 하트먼입니다."

길쭉한 인상의 시종장 월레스는 조금 전의 황당한 순간은 없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절도있는 자세로 인사하고는 바닥에 놓여있던 치킨 양동이를 집어 다시 치킨을 뜯었다.

놀라울 정도로 철면피를 깐 행동에 일행은 뭐라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래서 조금 전의 그건 뭐였는데?

하지만 월레스는 그 시선을 무시하고 캐서린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사죄의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응? 조금 전의 그걸 말하는-"

"지금 변경백 각하를 만나실 수 없으십니다."

"거어라?"

그렇게 확정 지은 월레스는 어느새 뼈다귀만 남은 닭다리를 등 뒤로 휙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