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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변경백령으로 향하는 행렬은 식사와 휴식, 몬스터의 습격과 폭설로 수레와 마차의 바퀴를 썰매 날로 바꾸는 때를 제외하면 멈추지 않았다.
솔직히 이렇게 급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
아무튼, 당장 급한 계약도 아닌 데다 어디까지나 가계약.
그것도 정식으로 진행될 내년을 대비한 의견 조율이 목적이니까.
중간중간 마을과 도시에 들러 여정의 피로도 풀고, 빈 수레에 신선한 고기와 채소도 싣고, 시간을 때우며 목적지로 향하면 그만.
하지만 캐서린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도 집무실에 쌓이고, 쌓일 예정인 일감 더미.
생각만 해도 캐서린은 소름이 다 돋았다.
이미 작년 가을, 겨울.
그녀는 야근은 기본에 철야를 밥 먹듯이 해야 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아무렴 마법사 인력이 '증발'해 물리적으로 사람이 부족한 것과 그저 폭설이 내리는 아이스랜드 북부를 주파하는 건 매우 큰 격차가 있다.
당장 급한 일들은 떠나기 전에 후다닥 처리했다.
그러니 지금 속도대로 오가기만 하면 겨울이 되기 전엔 콜던에 도착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조급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을과 도시를 지나치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험한 강행군.
허나 행렬의 사람들은 투덜거릴지언정 이를 받아들였다.
아니, 일부는 강행군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스랜드 토박이라도 다 같은 토박이가 아니다.
대다수가 콜던 출신인 이들에게도 북쪽의 추위는 혹독하기 마련이다.
뭐가 됐든 따뜻한(?) 콜던으로 빨리 복귀하고 싶은 마음.
공작이 친히 선발한 정예 호위병들도 따뜻한 집이 그리웠다.
이런 마음은 카렘과 메리 그리고 고든도 마찬가지.
상상 이상의 추위에 질린 지 오래인 카렘.
자기가 아닌 다른 이에게 영역을 침범당해 불편한 메리.
그리고 물귀신같이 끌려와 남작인데 호위를 위해 마차를 몰며 신세를 한탄하는 고든.
서로 생각은 다 달랐다.
하지만 모두 강행군에는 불만이 없었다.
덕분에 행렬은 아이스랜드 기준에서도 이례적인 속도로 목적지에 가까워졌고, 순식간에 하드리아누스 변경백령에 진입했다.
그리고 애프터글로우 요새에 다다르기 전.
말과 스노우러너가 완전히 퍼져버렸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지 무엇 하나 탈진하지 않은 게 기특했다.
행렬은 그동안 수고한 말과 스노우러너를 위해서라도 보다 긴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결정.
그리고 카렘은 숨이라도 돌릴 겸 마차에서 나오자마자 감탄했다.
"허어어어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아이스랜드 이북의 풍경은 놀라웠다.
양 끝의 지평선의 끝부터 끝까지 대지를 뒤덮은 새하얀 설원. 멀리서도 왕성한 생명력을 알아볼 수 있는 울창한 침엽수림의 대비되는 모습은 솔직히 현실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득 전생에서 화면으로만 봤던 비경들이 떠올랐다.
시베리아, 혹은 알레스카의 경치를 진짜로 보면 이럴까?
문명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든 멀고 새하얀 벌판에 도저히 사슴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거대한 사슴 무리가 눈보라를 일으키며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광경은 그 뒤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다 입 얼어붙겠다. 꼬마."
"아니, 저기 저 산이요. 아니 산맥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 고그마고그 산맥이라지. 장관이군."
"저기가 목적지라고요?"
언제 조숙했냐는 듯 지금의 카렘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동심만이 가득했다.
"그래."
평소였다면 찔러봤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녀도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자에 다다른 대마법사인 만큼 캐서린은 올리비에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것을 보았고, 그 범위엔 당연히 수많은 던전과 비경, 마경도 포함됐다.
그런 그녀도 눈앞의 장엄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평선의 양 끝으로 이어진 절벽같이 깎아지른 산등성이가 그 밑에 펼쳐진 설원의 풍경과 생명체를 집어삼킬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위로 불규칙한 침엽수처럼 솟아오른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가 모여 눈이 쌓인 광경은 산으로 이루어진 겨울의 숲을 보는 것 같았다.
"저게 문명의 최전선. 그중의 하나인 애프터글로우 요새인가. 확실히 장관은 장관인데."
"예? 저 산맥이 전부 하나의 요새라고요?"
"응? 뭐?"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캐서린의 눈이 절로 동그래졌다.
그리고 짧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꼬마 넋이 완전히 나갔구나."
"아니, 저걸 보면 누구라도 넋이 나가죠."
"뭐, 이해는 간다만. 설마 저 산맥이 요새일 리가 있겠냐?"
카렘은 저쪽이라며 캐서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산맥이 푹 꺼지는 중간. 산맥의 유일한 통로.
멀리서도 이를 통째로 틀어막는 산맥을 통째로 깎아 만든 것 같은 거대한 방벽 밑으로 울타리처럼 보이는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와 그 밖에 자리 잡은 여러 마을이 보였다.
"저기가 요새다."
"어, 그러니까 저 도시가 애프터글로우 요새라고요?"
"아니, 저긴 시가지. 네가 보는 게 맞다. 저기 저 능선 중간을 통째로 틀어막은 거대한 방벽. 저게 요새, 라고 나도 들었는데 참나 무식하기 짝이 없는 요새로군."
카렘은 그 말에 동의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에프터글로우 요새의 목적은 알음알음 들었다.
세오폰 왕국은 사방이 바다인 섬이다.
하지만, 북쪽 대륙 사이의 바다는 수심이 아주 얕았다.
이를 통해 고대와 야만의 신비가 숨 쉬는 환경에서 생존한 강력한 몬스터와 맹수가 남하한다고.
요새의 목적은 그런 문명의 위협을 틀어막는 것이 목적...인데...
"그렇다고 능선을 저런 거대한 장벽으로 통째로 막을 생각을 하나요?"
"일단 저것도 신화시대의 물건이라고 하더구나."
"저건 대체 어떻게 만든 것인지 원..."
"계시를 받은 승천자가 야생 거인과 아이스 트롤을 끌고 와서 완성했다던가."
...예? 승천자면 투타티스를 말함이렷다.
근데, 뭐? 트롤? 거인? 전생에 듣던 거인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몰라도, 몬스터를 일꾼으로 부렸다고?
"투타티스 님이 몬스터 테이밍을 할 줄 알았다고는 신전에서도 못 들었던 거 같은데요."
"무식하기 짝이 없는 전사신인데 어떻게 했을진 뻔하지."
"...말 들을 때까지 두들겨 팼다고요?"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그때, 심심한 나머지 스노우러너에게 먹일 곡물 자루를 직접 옮기던 고든이 끼어들었다.
"아, 그거 나도 여기 출신 전투사제한테 들었어. 경전에도 적혀있어 일단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고 하던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랍니까?"
"글쎄?"
고든은 곡물 자루를 든 채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현지인들은 호쾌하고 명쾌하며 역시 우리 전사신 이라면서 실화라고 좋아하더라고."
"...하?"
카렘은 어이없는 나머지 말을 못 이었지만 고든은 그러려니 하며 하던 일을 끝내기 위해 뒤돌아 스노우러너를 향해 걸어갔다.
절로 얼굴이 찌그러진 카렘은 무심코 미간을 짚었다.
전생의 기억이 너무 강해 아직 에우로파 감성이 부족한 건가.
"뭐, 베르생제토의 엘프들도 종종 정령을 부려 건축하거나, 야생 요정에게 대가를 주고 간단한 일거리를 맡기니 그런 일환이라 생각해라."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인 겁니까?"
"뭐, 몬스터 테이밍의 일환이라면야."
어깨를 으쓱인 캐서린이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아리송했다.
"다만 마법이고 뭣도 없이 맨주먹이라니. 뭐, 신화시대의 일이니 몇몇 내용이 실전된 걸 수도 있지 않겠냐?"
"있는 그대로의 실화일 수도 있을 테고요?"
"뭐, 언젠가 대면할 기회가 생기면 물어보든가."
"예?"
"뭐, 작년에도 본인이 일단 직접 강림했지 않느..또인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캐서린이 짜증 냈다.
"오른쪽 대각선 방향! 야생 동물의 언데드 몬스터 출현!"
그 소리에 소란스러웠던 행렬이 조용해진 것도 잠시.
행렬은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워지며 도착하기 전 마지막 휴식을 즐기던 호위병들은 투덜거리며 각자 전투를 준비했다.
"뭐, 구경하기라도 할 거냐?"
"물론이죠. 야생 동물의 언데드는 또 처음인데."
"뭐, 흔하지는 않지만, 또 드문 것도 아니긴 하지. 다만"
캐서린은 가늘게 뜬 눈으로 옆구리가 파헤쳐진 채 어기적거리며 다가오는 좀비 멧돼지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부패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는 있는 것 확실한데. 처음이랑 달리 숫자나 빈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니, 착각인가?
캐서린은 무참히 박살 나는 좀비 멧돼지를 보며 갸웃거렸다.
"좋아, 시간이 비는 김에 대련이나 한 판 하자."
"이런 미친."
"대련은 여행길에만 할 테니까. 흐읍!"
"무기도 안 들었. 우워오오옷!?"
착각이 아니었다.
하이랜드 지방에 진입하고 때아닌 언데드와의 조우 횟수는 점점 더 빈번해졌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이는 다시 줄어들었다.
애프터글로우 요새가 가까워지자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가을에 언데드라. 이게 웬 돈이란 말인가! 헛차!"
"메모리얼 데이라서 좀 쉬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용돈이나 좀 벌어야 쓰겠다!"
"도둑! 도둑이야! 내 손 뼈다귀 내놔!!!"
"그거 온 동네 언데드 다 모이겠는데...저 행렬은...?"
마차 벽을 뚫고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
메모리얼 데이를 기념해 용돈 벌려다 목돈을 벌게 생긴 모험가와 용병들의 대화를 지금까지 들은 카렘은 미묘한 심정이었다.
"제철 아닌 언데드. 심각한 줄 알았는데 말이죠."
"심각한 일이지. 그동안에 가을엔 언데드가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근데 여태까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인데요?"
"모험가와 용병에겐 돈이 더 급하니까."
캐서린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읽던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페이지를 넘겼다.
"게다가 곧 비수기인 겨울이기도 하고, 축제도 있지."
"아, 메모리얼 데이라고 했죠. 지금."
"슬슬 끝물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마지막 한탕 땡기려는 사람들이 있다?"
캐서린은 책에 집중하고 있는지 메리가 머리카락을 정리하는데도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게으름 부리다가 헐레벌떡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으려니."
게임, 축제, 이벤트가 가장 분주한 시간은 시작과 끝. 가장 먼저 입장하려는 사람과, 마지막을 앞에 두고 조급해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곳에나 있다.
게다가 곧 몇 달 있으면 곧바로 겨울이다.
어떤 이유로든 바짝 일해서 겨울을 좀 더 편하게 나려는 생각은 누구나 하기 마련이다.
워- 워-!
히히힝! 삐이이이익-
말과 스노우러너의 울음소리.
마부의 진정시키려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돌연 정지했다.
"드디어 도착?"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구나."
쿵쿵쿵-
누군가 마차의 벽을 두드렸다.
바깥에서 호위하고 있을 고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 여기까지 오니 제법 쌀쌀한데. 마법사님. 좀 나와보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이지?"
"신원 확인을 위해 명령서를 직접 봐야겠다고 막아 세우는데. 어떻게 할까요?"
"기다려봐라."
비로소 캐서린이 책을 덮자 메리가 흐트러진 그녀의 복식을 고치기 시작했다.
"호위병이 이만큼인데도 확인은 하네요?"
"뭐, 최소한의 신원 확인은 하겠다는 거겠지."
"작년에 문지기나 기사한테 임명서를 보여주셨던 것처럼요?"
"그래."
그리고 캐서린이 턱짓하자 메리는 곧바로 창문을 열었다.
내부로 침투하는 싸늘한 냉기!
"히에에엑!"
"카렘 후배. 좀 참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