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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카렘은 무심코 감탄을 내뱉었다.
긍정적인 의미로 한 것은 아니다.
따지면, 눈앞의 풍경을 보고 질린 쪽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집무실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고 묵직한 서류 더미를 들고나온 시종이 일행을 보고 꾸벅 인사하고는 빠르게 복도 너머로 달려갔다.
문이 열린 틈으로 보인 광경.
과장을 조금 보태서 작년 겨울에 캐서린의 집무실에서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각종 서적과 서류의 산이 집무실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문자 의미 그대로.
"딥 락 모트와 관련-아, 왔군. 어서 안으로 들어오게."
문 안에서 들린 익숙한 목소리가 누구에게 말하는지는 뻔했다.
카렘은 시종을 뒤로하고 캐서린을 따라 집무실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사방에 빈틈없이 쌓인 다양한 재질의 서류와 서적들로 인해 공작의 소박한 집무실은 지금 서고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도록 하지. 이참에 늦은 점심도 먹고. 저녁은 아니지만 내 이름을 대고 주방에서 간식도 이것저것 챙겨 먹도록 하게."
업무용 책상에 앉아 각종 두루마리와 서류 더미에 둘러싸인 알프레드가 피곤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뼉을 치며 시종들을 사무실에서 내보냈다.
"자,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주군. 한창 바쁜 시기지 않습니까?"
"자아, 일단 자리에 앉도록 하게."
캐서린은 질린 눈빛으로 집무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작년 가을, 겨울에 해치울 수밖에 없던 일거리가 떠올랐다.
"라고 해도 뭔가 좀 심하게 바빠 보이는군요. 어디에 대규모 영지전이라도 벌어졌습니까?"
"차라리 영지전이라면 좋았을 텐데. 연말 결산과 축제 준비가 겹치는 바람에 일거리가 쏟아져서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네."
"물론 걱정한 적은 없습니다만."
"아직도 작년 일로 꽁해있는가?"
캐서린의 얼굴에 그녀의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니겠습니까?"
"말을 아끼도록 하지."
캐서린은 약간의 앙심을 담아 알프레드를 째려보았다. 알프레드는 다년간 단련된 상사의 마음으로 부하의 원한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카렘. 뭔가 걸리는 점이라도 있나?"
"축제라면, 윈터센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 윈터센드?"
카렘은 처음으로 알프레드가 무언가를 혐오한다는 듯이 오만상을 찌푸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알프레드는 말도 마라는 것처럼 손을 휘저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윈터센드를 매년 개최해야 한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일거리가 쏟아질지 감도 잡히지 않아."
"어, 매년 개최하는 게 아니었나 보네요."
"그야 당연하지. 신을 기리는 축제를 허투루 준비할 수는 없지만, 그걸 매년 준비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지금 준비하는 건 매해 가을의 위령제다."
"위령제?"
카렘의 말을 듣지 못한 알프레드는 짧은 수염이 떨리는 것이 보일 정도로 몸서리쳤다.
캐서린이 머리카락을 파르르 떨었다.
알프레드가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그게 어디까지 굴러올지 생각하면 답은 나왔다.
"그나저나. 한 가지 내가 고마워해야 하겠군."
"주군이 저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로 끝나겠습니까?"
"아무렴. 거기에 스타크 경의 일까지 떠맡지 않았나?"
볼턴 영지가 그리즐리 비버 스웜에 휩쓸려 초토화됐단 소식을 들은 알프레드는 한순간이지만 정신을 놓았다.
하물며 그 소식을 전한 건 영지에 부임할 예정이었던 당사자.
볼턴 영지의 남작으로 임명된 고든 스타크 본인.
"만일 그대가 수습하지 않았더라면 축제가 시작하기 전까지 난 야근에 시달려야 했겠지. 물론 지금도 철야를 하고 있지만."
"고마워하실 필요까지는 없으십니다. 게다가 처리하실 일이 안 생기는 것도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알프레드는 짧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끝낼 수 있게 된 것은 온전히 그대 덕분이야."
"...."
카렘은 묘한 데자뷰를 느꼈다.
지금 이 장소에서 지난겨울에.
그때와 분위기는 달랐지만, 알프레드의 뉘앙스가 그러했다.
이는 캐서린도 비슷하게 느꼈는지 카렘은 그녀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한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설마 또 다른 일을 맡기실 예정입니까?"
"한창 바쁠 시기에 정말 미안하네."
섬뜩한 느낌을 받은 카렘은 반사적으로 캐서린의 팔을 붙잡았다.
갑자기 뭐냐는 눈치로 캐서린이 빠르게 눈빛을 흘겼다.
하지만 카렘은 결코 손을 놓을 수 없었다.
같은 시기의 비슷한 상황.
캐서린에게는 전적이 있었다.
붙잡은 팔에서 힘이 느껴지자 카렘은 더욱 강하게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캐서린도 힘을 풀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라면 시종장을 보냈으면 될 일이지만, 얼마 전 그에게는 제법 큰 사고가 벌어졌지 않나?"
아, 이건 어쩔 수 없네.
캐서린은 강제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아이오나는 나이가 많았다.
아니, 솔직하게 언제 어떤 일로 죽을지 몰랐다.
막말로 잠깐 낮잠 자려다가 그대로 영원히 자버릴 수 있는 나이였으니까.
새하얗게 빛바랜 수염.
아이스랜드 공작의 직무를 3대에 걸쳐 수행한 시간이 이를 증명했다.
다만 그런데도 누구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리가 좀 있었다지만 카렘은 똑똑히 봤다.
맨손으로 아름드리나무를 뿌리째 뽑는 모습.
그걸 가볍게 휘둘러 던져버리는 모습.
그리고, 곰만 한 그리즐리 비버를 맨손으로 두들겨 패는 모습.
과장 좀 보태서 몸무게만큼 먹는 데다가 신성력까지 다룬다고 하는데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그렇게 쉽게? 그 뚱뚱-아니. 풍채를 생각하면 확실히 성인병 때문에 가버리실 거 같긴 한데...
그런 기색이 노골적으로 풍겼는지 캐서린이 손가락으로 카렘의 이마를 튕겼다.
"꼬마. 너 그거 실례다."
"으음, 실례했습니다."
"시정하지는 않고?"
"아니, 솔직하게. 아이오나님이요?"
끄음. 캐서린은 침음을 삼켰다.
솔직하게 그녀의 마음 한쪽에도 카렘과 비슷한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말해서는 안 되지."
"...아타니타스. 자네도 이미 말했지 않은가."
"아뿔싸."
일부 깐깐한 귀족이었다면 문제로 삼았을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알프레드는 그런 귀족이 아니었다.
게다가 솔직히 그도 카렘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다고 해도 아이오나를 벌써 외방으로 보내기에는 여전히 불안하지. 솔직하게 말해서 적어도 내년 봄이 되기 전까지 아이오나는 윈터홈에 있어 줬으면 하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로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대를 이렇게 급하게 부를 리가 없었겠지."
캐서린은 머리를 벅벅 긁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안 그래도 일감이 쌓인 상황인데 일을 미루고 외방이라니.
하지만, 앞서 말했던 대로 정말 어쩔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나이였으니까.
여전히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아무튼 현실이 그랬다.
"그런데, 대체 어떤 일을 맡기시려고 제가 가야 하는 겁니까?"
"일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네."
전문적이고 사업적인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생에도 사업만큼은 문외한이던 카렘조차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알프레드의 설명은 매우 간결했다.
정리하자면.
개발이 끝난 방한 포션 소개.
방한 포션의 시장 개척, 현지 인력 고용 및 생산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
그런데.
"이건 아타니타스 님까지 나설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확실히."
아이오나급 되는 인물이 나설 일도 아니었다.
보다는, 간판 귀족을 하나 내걸어 실무진들을 보낼 일.
"딱히 틀린 말은 아니군."
"그렇다면-"
"만나야 할 분이 하드리아누스 변경백이 아니었다면."
"아, 그러면 지금은 저나 시종장 말고는 사람이 없군요."
캐서린은 상황을 단번에 이해했다.
카렘은 그 변경백이란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몰랐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자네에겐 미안하니 어떻게든 사람을 붙여주도록 하지."
"음? 그게 대체 무슨-"
"주변을 둘러보게."
"예?"
무슨 뜻이실까요?
그러게. 갑자기 뭔 소린지.
그리고 카렘은 주변을 둘러보고 아뿔싸.
전혀 생각지도 못해 어리둥절하던 캐서린 또한 카렘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고 한 박자 뒤늦게 알아차렸다.
집무실에 자리한 수많은 양피지와 책의 산.
그 정체는 모두 연말 결산과 축제에 관한 서류이자 참고서.
답은 애초에 처음부터 주어졌다.
한창 바쁠 시기에 축제가 겹쳤다고.
"그대나 아이오나씩이나 되는 이가 파견됐으면 사실상 관련 업무는 확정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까놓고 말해서 지금 사람이 없네."
"그러게 일을 좀 차근차근 벌이시지 그러셨습니까."
본래라면 공작성에 사람이 부족할 리는 없었다.
아무렴 깡촌 아이스랜드는 이래 보여도 사람이 모이는 곳.
하물며 공작 휘하에 문관이 부족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한창 바쁠 시기에 향신료 사업과 포션 양산 사업이라는 굵직굵직한 사업을 연달아 벌리시니."
그리고 상사의 일은 부하도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전부 알프레드가 자초한 일이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지만, 최종적으로 캐서린은 가능한 한 빠르게, 되도록 며칠 안으로 여행길에 오르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마법사의 탑으로 돌아가는 길.
캐서린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흉흉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지는 카렘도 당연히 이해했다.
안 그래도 일거리가 넘쳐서 바쁜데 굵직한 일거리를 또 던져주고 있으니까.
그나마 전처럼 막 달려들지 않는 건 이번 일은 알프레드도 정말 어쩔 수가 없어서 그런 일이라는 것이겠지. 아니, 잠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
"그래서, 하드리아누스 변경백이라는 분이 누굽니까?"
"응? 누가 누구냐니."
"대체 어떤 분이신데 그쪽 일을 하려면 아이오나 님이나 아타니타스 님 정도나 되는 분들이 가셔야 하는 건데요?"
알프레드는 공작이다.
세오폰 왕국에서 이보다 높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며, 에우로파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이만한 귀족은 상식적으로 채 백 명이 되지 않으리란 것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직속인 시종장 아이오나와 최고 마법 고문 캐서린 메리골드 아타니타스의 직위 또한 낮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대체 하드리아누스 변경백이 누군데 포션 사업을 위해 그녀 정도나 되는 사람이 만나야 한다는 걸까?
캐서린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혹시, 그. 모르는 거냐?"
"예? 제가 알아야 하나요?"
"...요리에만 관심을 쏟지 말고 주변에 좀 관심을 가져라."
캐서린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젓자 금색 비단실 같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오로라처럼 물결쳤다.
"하드리아누스 변경백은 주군 다음으로 아이스랜드에서 가장 넓은 영지를 지배하는 대귀족이지."
"오, 하긴 변경백이라고 하셨었죠."
"더불어 주군을 대리해서 아이스랜드의 모든 기사의 우두머리인 대기사장이기도 하고."
"그거 아타니타스 님이랑 직위가 동격이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카렘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에 중얼거리자 캐서린이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주군의 부친 되시는 분이시다."
"흠, 그렇군뇨네? 누구가 뭐라고요?"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주군의 부친? 그러면...
"선대 아이스랜드 공작 각하?"
"그런 칭호도 가지고 계시지."
그렇다면 그 많은 일이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해되기는 했다.
아무렴 자기 아버지씩이나 되는 분이신데 막 부리는 건 알프레드도 부담이 된다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카렘은 이어지는 말에 뜨악했다.
"리처드 펠윈터. 통칭 겨울의 여주인의 대악마. 속된 말로 주군이 성인이 되자마자 작위를 떠넘겨버리고는 변경백 자리와 대기사장 자격을 들고는 북쪽으로 도망치셨다고 하시던가."
"...작위는 그렇다 치고 자리라면 대기사장 자리를 뭐라고요?"
대기사장이면 아이스랜드의 모든 기사를 소집할 수 있는 자리라며? 대체 그걸 어떻게? 아니, 그 전에 다른 기사들이란 작자들이 이해할 리가 없을 거 같은데?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당대. 그리고 현재 아이스랜드 최강이 강짜를 부리는데 뭐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하물며 선대 공작이었던 분이신데."
"아무리 능력을 우선시한다지만 그게 말이나-"
"말로 안 돼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때려눕혔다는구나."
"그걸로 반대자들도 이해했다고요?"
"그러게나 말이다."
여기가 문명과 야만의 경계라니. 이래서였나.
카렘은 뜨뜻미지근한 시선으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캐서린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들에겐 아직 아이스랜드식 감수성이 부족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된 거. 너도 수련을 좀 해야겠구나."
"...설마 요리 수련을 말씀하시는 건 아니죠?"
"그야 당연하지."
"에에...."
그런데 잠깐.
"수련은 누구한테 받는데요?"
"누구긴 누구야. 용병 놈이지."
"고든이요? 좀 전에 임시 취업한 사람을요?"
"그만한 전력은 격과 호위 둘 다 만족하니까."
"공자님이 별로 안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무려 주군이 직접 내린 공적인 임무에 끌고 가는 건데 공자가 나한테 뭘 할 수 있지?"
"...아타니타스 님은 그냥 두 사람이 좋아하는 꼴을 보기 싫은 거죠. 본인은 싫은데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시니까."
캐서린은 무언으로 긍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