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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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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의 주식은 대체적으로 무미건조한 것이 일반적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래야 질리지 않고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주식이란 소위 몸에 열량을 공급하기 위한 주인공.

탄수화물 이외의 것으로 열량을 공급한다면 종류와 비용, 영양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뭐가 되었든 상상 그 이상으로 많은 양의 음식물을 먹어치워야 했다.

그렇기에 주식은 그 모든 사항을 고려했을 때 탄수화물.

일반적으로 그것이 풍부한 곡물, 열매, 구근류가 대상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극히 일부의 예외도 있다.

빵보다 고기가 흔하고 싸기까지 한 극히 드문 경우.

예를 들어 너른 초원을 지녀 목축이 발달한 내륙이라던가.

그런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선택은 간단했다.

그냥 주식으로 고기를 먹었다. 끝.

아무렴 그런 지방은 곡물보다 고기가 더 값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지금은 그 흔한 밀가루가 사치의 증거일 때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그 말인즉슨.

뽀드득, 오독, 파바박! 오드드득!

"음, 뭔가 기대했던 맛이 아니구나."

"뭐, 그렇겠지요."

입안에 퍼지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맛에 알리시아는 처음으로 조금, 아니 크게 실망했다.

아니, 사실 알리시아가 기대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동안 카렘이 성에서 벌인 일이 보통 일들인가?

하물며 알리시아보다 고작 몇 살 많은 조막만 한 손에서 펼쳐지는 것은 수백 년 산 엘프나 드워프 요리사조차 눈을 트이고 머리를 열게 만드는 맛과 창의력과 수천 년을 넘게 이어진 미식의 정수.

태어나서 빛을 본지 이제 6년이 된, 한창 호기심이 흘러넘치다 못해 폭발할 나이인데 그 여자아이가 맹수에 비견할만한 식욕을 지녔다?

그렇다면 기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랬기에 알리시아는 처음으로 카렘의 요리에 실망했다.

"그래보여도 주식이니까요. 귀리로 만들었기도 했고."

"귀리? 카렘. 귀리가 무엇이지?"

아, 거기서부터인가.

카렘과 메리는 같은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아무렴 알리시아는 모를 만도 했다.

공작가의 (로빈을 제외한) 모든 이들한테서 이쁨받는 귀한 막내딸인데 당연히 귀하고, 건강하며, 맛있는 물건만 접하고 먹어왔겠지.

메리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카렘은 눈을 뜨고는 대충 얼버무렸다.

"어, 곡물의 일종이요. 영양분이 무척이나 풍부하죠."

"음, 맛은 그냥 그렇구나."

"그냥 그런데 계속 드시는 겁니까?"

그 말에 알리시아는 무심코 고개를 내렸다.

귀리밥이 소복하게 쌓여있던 접시는 어느새 바닥을 보였다.

"음, 맛은 그냥 그렇구나. 아무 맛도 없는데."

"그야 주식이니까요. 맨 빵처럼 말이죠."

"그래. 그런데 이 톡톡 터지는 느낌이 좋아서 손이 가긴 하구나."

"이거에 반찬, 그러니까 사이드 디쉬를 곁들여서 먹는다면 어떠신지요?"

"사이드라면?"

"버터에 볶은 시금치와 버섯, 그레이비 소스에 졸인 미트볼, 양배추 김치나 깍두기라던가"

"오오, 그거 나쁘지 않겠구나. 특히 매콤한 피클들이-"

"피클이 아니라 김치입니다."

"음. 난 아직 카렘이 말하는 김치와 피클이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구나. 그냥 조금 독특하고 매콤한 자우어크라우트 아닌가."

카렘은 알리시아가 말한 뒤 내용을 흘려들었다.

아무튼, 어쨌거나 누구나 인정하는 미식가 (라기보단 그냥 음식을 가리지 않는) 알리시아의 평가는 만점은 아니어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메리는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고? 귀리가?"

메리의 속마음이 작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그 속에는 아연함이 의심과 함께 섞여 있었다.

그녀의 반응은 당연했다.

귀리가 무엇인가.

먹기 위해 빻는 것도 힘들고, 그렇다고 힘들게 준비해도 정작 공들인 보람은 전혀라고 할 만큼 거친 데다 맛도 없기까지 한 작물.

불과 수십 년 전 아이스랜드에선 주식으로 애용되기는 했지만, 아도비스에서 대량의 식량이 유입되면서 개같이 가축 먹이로 전락했다.

괜히 귀리의 취급이 박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뭐지?

태어나서 이쁘고 귀한 것만 먹어왔을 아이스랜드 아니, 왕국 전체에서 순위권에 들 고귀하신 분이 '무려' 귀리를 먹었는데 그 평가가 그럭저럭 먹을만하다니?

메리가 정신을 파는 사이 카렘은 바쁘게 움직여 앞서 언급했던 사이드 디쉬를 준비해 늘어놓았다.

"자, 여기 밥과 같이 먹을 사이드 디쉬를 대령했습니다."

"어디어디. 으음, 역시 잘 어울리는구나."

메리가 정신을 파는 사이 카렘은 사이드 디쉬의 준비를 끝냈고 알리시아는 어느새 그걸 귀리밥에 곁들여 먹고 있었다.

금새 사라지는 알리시아의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다시 리필한 카렘은 메리 앞의 접시에도 덜었다.

"자, 메리. 왜 그런지는 알겠는데 일단 먹어보시죠?"

"흐으으으으으으음."

"맛이 없었으면 알리시아님이 저렇게 잘 들고 계셨겠습니까? 아니, 뭐 문자 의미 그대로 맛이 없다고는 해도 그럭저럭 먹을만하다는 반응이신데."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 만."

메리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에 손을 올리고 쓸어올리듯이 포크를 집었다.

그리고 아직도 버리지 못한 한 줄기의 의심을 담아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접시에 담긴 사이드 디쉬들은 보기만 해도 혀를 자극했다.

갈색으로 잘 볶아진 버섯과 형태를 잃지 않고 부드럽게 볶아진 시금치에서는 햇빛을 받은 버터가 윤기를 뽐냈다.

그 옆에 자리한 한입 크기의 작은 미트볼은 그레이비 소스에 졸여졌는데도 알 수 있을 만큼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어떤 맛일지 상상이 될 정도.

그 옆에 놓인 신 냄새가 조금씩 올라오는 양배추 김치.

전보다는 색감이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첫 만남이 그래서인지 여전히 먹기 꺼려지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접시의 반을 차지한 귀리밥.

냄새를 맡은 메리의 미간이 아주 조금 찌푸려졌다.

냄새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의심을 버리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자리에 앉고 식기까지 들었는데.

언제까지고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메리는 눈을 꾹 감고 입안에 귀리밥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맛은.

오독, 오도독!

"...응?"

생각외로 매우 평범했다.

아니, 진짜로. 왜 이게 먹을만한 거지?

물론 주식으로 먹는 갓 구운 밀 빵보다 질감은 훨씬 단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 먹을 만큼 단단하냐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식감.

포드득! 팍! 오도독!

이빨을 움직일 때마다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식감이 메리가 이빨을 움직이는 내내 턱을 타고 귀와 머리를 자극했다.

특별한 맛은 없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빵보다는 식감이 풍부했다.

아무리 씹어도 씹는 것은 그만둘 때까지 귀리밥의 톡톡 터지는 식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꼴에 곡물이라고.

씹으면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특유의 감칠맛.

그리고 은은한 단맛까지.

"고작, 보리를 찌듯이 쪘을 뿐인데 귀리가 이렇게까지 변하는 겁니까?"

"게다가 무려 귀리라서 한참 배가 부른 것은 덤이죠."

"하긴 오트밀과 귀리빵의 유일한 장점이 한참 배가 부른 것이죠."

"배부른 게 한 반나절은 가지 않을까요?"

의심을 완전히 걷어낸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포크를 가볍게 움직여 미트볼을 쿡 찔러 먹었다.

역시나 맛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고작 이걸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겁니까?"

"그 문제...? 아."

카렘은 메리의 눈짓에 슬쩍 갑작스러운 손님.

알리시아를 흘겼다.

생각해보니 무려 귀리를 무려 공작가의 장남에게 먹이려는데 그것까지 알리시아에게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어도 장본인이 먹고 승낙할 때까진 아는 사람은 최대한 적은 게 뒤탈도 적겠지.

물론 알리시아는 그런 거에 관심 없이 눈앞의 백반(?)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경우가 있으니 카렘과 메리는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카렘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췄다.

"네. 배고픈 건 참아도 맛없는 건 못 참는다고 하셨으니까요."

"흐음. 이 정도면 빵의 대체제는 될 수 있겠습니다.

"여기다 그놈의 마요네즈만 어떻게 자제하시면 살은 금방 빠지실걸요."

그것만큼은 카렘도 장담할 수 있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이른바 귀족의 의무.

고드윈은 드넓은 아이스랜드를 통치할 미래의 공작.

고드윈의 하루는 카렘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빡세게 돌아갔다.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게 자고 공작이 되기 위해 공부와 실습을 병행하는 일상은 가히 수능을 앞둔 수험생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자님. 각하의 뒤를 이으시기 전에 먼저 쓰러지시는 거 아닙니까?'

'뭐 매일 이런 건 아니야. 휴식 시간도 틈틈이 있고, 기력을 보충하는 영약도 꾸준히 먹는 데다 쌓인 피로는 제때제때 풀고 있으니까.'

'마요네즈...그래서 더 살이 찌신 게?'

'아뿔싸.'

하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는 법.

고된 노동을 견디기 위한 영양이 풍부한 식단에 마요네즈가 끼어들자 고드윈이 지닌 경험과 지식의 무게는 물리적으로 증가.

그렇다면 해결법은 간단했다.

일단 마요네즈는 정상 체중이 될 때까지 금지.

그동안 마음껏 먹던 버터와 설탕이 잔뜩 들어간 디저트와 요리를 통제하고 (비교적) 건강식을 먹으며 일상과 운동을 병행하기만 하면 끝.

고드윈이 먹게 될 예비 식단을 맛본 메리는 긍정했다.

고기, 채소, 곡물과 지방을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영양가 있는 식단이었으니까.

메리는 기왕 이렇게 된 김에 그동안 한참 꺼렸던 피클.

양배추 김치도 먹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렴 귀리까지 먹은 마당에 저걸 못 먹을 이유는 없지.

메리의 결심을 담은 포크가 양배추 김치를 찍었다.

"음, 냄새는 전보다 훨씬..."

"응? 메리도 먹으려고 하는가? 살짝 매콤한 게 입가심으로 딱이구나."

"그렇습니까?"

"그래. 먹어보면 그대도 알 거다."

마침 안 그래도 메리의 입은 기름진 상태.

거기에 조금 텁텁하기까지 했다.

메리는 알리시아의 권유대로 양배추 김치를 먹었다.

"음!? 으음?"

"시큼털털하기만 한 자우어크라우트보다는 맛있죠?"

"화, 확실히. 단순 소금에 절여 발효시켰을 뿐인 양배추보다는 맛이 풍부하군요."

톡 쏘는 향과 시큼털털한 맛.

그리고 조금 느껴지는 바다의 풍미.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명한 상큼함이 입안의 기름기와 텁텁함을 강줄기를 가로막은 부유물을 걷어내는 폭우의 홍수처럼 완전히 씻어냈다.

미리 말하지 않았다면 결코 같은 종류의 음식이라고 믿지 못할 정도였다.

아니, 처음 내보였던 그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것 같은 시뻘건 순무 피클과 비교하면 눈앞의 양배추 김치는 흰 부분이 매우 많았다.

나름대로 조합이 마음에 들어 귀리밥과 김치를 번갈아 먹기 시작한 메리를 본 카렘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건 카렘 기준으로 김치라기보다는 김치 양념을 넣은 절인 양배추 무침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카렘이 먹는 물건을 내놓았다가는 메리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무척이나 뻔했다.

아무렴 알리시아조차 그건 꺼렸으니까.

아직은 말이지.

일단 물꼬를 텄으니 그 이상으로 나아가는 건 오롯이 카렘의 손에 달린 일이었다.

그리고 카렘은 매우 자신 있었으며 그건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매콤한 요리를 자기도 모르게 잘 먹는 캐서린이 이를 증명할 수 있었다.

"으음, 그만 먹어야겠구나."

"알리시아님? 왜 더 드시지 않으시고."

"으응. 카렘 말대로 이 귀리라는 거 상당히 배부르구나."

"어, 사이드 디쉬를 전부 먹어치우셔서 그런 건 아니시고요? 고작 세 번이었는데."

냄비에 아직 남은 귀리밥과 항아리의 김치.

그에 반해 다른 반찬을 담은 그릇들은 완전히 동이 난 상태였다.

괴도 펠윈터. 과연 그녀의 정체는 누구인가.

"간식이라기엔 너무 많이 드신 거 아닙니까?"

"간식을 덜 먹으면 포핀스 부인이 의심하겠지?"

"당연히 그러시겠죠."

"음, 아무래도 성이랑 정원을 조금 달려야겠-응?"

그 많은 음식이 들어갔는데도 여전히 홀쭉한 배를 통통 두드리던 알리시아가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헉! 하고는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카렘! 전할 말이 있었는데."

"네? 저한테 말입니까?"

"그래. 코르부스가 시간이 될 때 방문을 요청했다. 으음, 품종 개량이 다 끝났다고 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