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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렘과 함께 탑의 주방으로 돌아온 메리는 미심쩍은 심정으로 카렘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곡물을 찐다니.
그것도 하필 귀리를?
수십 년 동안 계약을 맺은 고용주를 수행하며 다양한 레시피를 섭렵한 메리에게도 고기도 아니고 곡물을 쪄서 요리한다는 것 자체는 무척 낯설었다.
그나마 곡물을 찐다면 맥주를 담글 때 찐 맥아보리를 사용하긴 하는데.
찜 요리를 자주 먹는 에우로파의 따뜻한 나라들, 특히 남쪽 나라라면 먹을 지도.
특히 먹는 것에 그 누구보다 진심이라는 베르생제토나 세르비아누스라면 특히나 더.
하지만, 적어도 메리가 아는 바로는 세오폰 왕국에선 본 적 없었다.
통으로 넣고 수프나 스튜, 죽으로 끓여 먹는다면 모를까.
그런 그녀의 심정과는 다르게 카렘은 씻은 귀리를 그릇에 담고 따뜻한 물을 찰랑거리도록 부었다.
"귀리를 찐다고 했잖습니까."
메리는 카렘이 끙끙거리며 옮기던 풍요의 떡갈나무 통을 단숨에 들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갑자기 떡갈나무 통? 술이라도 담글 생각입니까?"
"급하시기는. 잠깐 저 귀리 그릇을 통째로 넣었다가 빼려고요."
"하? 그건 또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입니까. 귀리를 넣었으면 넣었지 그릇째로 넣는다니?"
"다른 건 필요 없고, 아주 잠깐. 잠깐 물에 불리려고요. 잠깐이면 되요."
본래 밥을 하기 위해 쌀이든 뭐든 물에 불리는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특히나 여타 곡물 중 단단한 편인 밀알보다도 더 단단하고 밀도가 높은 귀리라면 더더욱.
하지만 카렘 그에게는 마도구가 있었다.
풍요의 떡갈나무통.
내부의 음식물의 시간을 100배 빠르게 하는, 현대의 주조사는 당연하거니와 요리사나 치즈장인등 각종 다양한 업계인들도 탐낼만한 마도구가.
물론 고작 귀리를 물에 불리는 행동일 뿐이니 통에 넣는 것은 그야말로 찰나. 아주 잠깐이면 충분했다.
"고작 물에 불릴 뿐인데, 그렇게 큰 맛에 차이가 있다는 겁니까?"
"왜, 고기도 굽고 튀기고 삶은 게 맛이 다 다른데요."
"고작 물에 불려서 그, 찌는 것으로 그 가축 먹이가 먹을만해 진다는 게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아서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게 맞는 겁니까?"
"아, 거 참 말 많으시네."
"그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메리는 통에서 잠깐 들어갔다 나온 사이 물이 줄어든 그릇에 약간 통통해진 귀리를 내려다보았다.
"카렘 후배. 당신은 지금 가축 먹이를 고드윈 공자님에게 먹이려는 겁니다.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나 바다 잡초-"
"잡초가 아니라 다시마! 다시마!"
"-다시마. 그리고 그렇게 자랑하던 그리즐리 비버의 바닐라랑은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그리고 대체 그렇게 자랑하던 그리즐리 비버의 바닐라는 대체 어떤 물건인겁니까?"
"그거야 어..."
지금 분위기면 정체를 말해주는 건 안 됐겠지? 아무렴 블랙우드 마을에서 가져왔던 분량은 모조리 캐서린에게 빼앗긴 지 오래였다.
그냥 그대로 사용하는 건 너무 야만적이니 적어도 정제하고 불순물은 걸러야 하겠다고 하던가.
덕분에 실물을 본 적 없는 메리가 바닐라에 대해 아는 것은 그것이 그리즐리 비버의 부산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게 천상의 디저트 향신료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시종일관 메리가 퉁명스러워하는 이유였다.
그야 혼자 빼놓고 자기들만 맛있는 걸 먹었다는데.
심지어 내 몫은 준비하지도 않았다고?
빵과 유제품에 환장하는 메리는 삐졌다.
카렘은 화덕에 물과 귀리를 담은 구리 냄비를 얹으면서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아타니타스님이 정제하시는 중이시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렇게까지 당당하게 말한다면 그 바닐라를 기대해도 되겠지요?"
"아, 그건 얼마든지 기대하셔도 좋죠."
처음엔 꺼림칙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먹으면 푸딩 때처럼 누구의 눈이 뒤집힐 거라 카렘은 속으로 장담했다.
그러는 사이 열전도율이 높은 구리 냄비는 금세 팍팍 끓어올랐다.
카렘은 소리와 냄새, 그리고 남은 물의 양을 지켜보며 화덕의 세기를 조절했다.
바글바글바글바글바글
똑, 파박. 팍. 팍팍-
물이 줄어들고, 그리고 불도 잦아들면서 귀리가 익어가기 시작하자 냄비에서 작게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질긴 껍질이 내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팝콘처럼 터지는 일부 귀리알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고소한 곡물의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그냥 막 부숴서 끓이는 오트밀.
혹은 귀리 가루로 구워낸 귀리 빵의 냄새 등 메리가 아는 귀리를 활용한 주식들과는 냄새가 전혀 다르거나 방향이 달랐다.
보다는, 각종 곡물을 잔뜩 넣고 끓이는 곡물 죽.
의 10배 정도 증폭된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
한 줄기의 의심을 끝까지 붙들고 있던 메리는 마지못해서 인정했다.
"좋습니다. 냄새는 확실히 고소하군요. 이제 끝입니까?"
"아뇨. 뜸을 조금만 더 들이고-"
"뭔가를 한다기에는 그냥 뚜껑을 덮고 식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스테이크를 굽고 레스팅을 하죠?"
"아, 레스팅."
구워지면서 활성화된 육즙을 다시 고기 안으로 가두는 과정.
메리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곡물을 찐다길래 또 무슨 이상한 짓거리들을 하려나 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고 공이 많이 들어가는군요."
"어떻게 보면 제빵만큼이나 손이 많이 가죠?"
"하, 감히 제빵에 비교하다니. 반죽을 만들고 발효하는 과정은 어쩐 겁니까?"
"아니, 그것까지 생각하면 당연히 제과랑 제빵이 더 복잡하고 공이 들죠. 불공평하시네."
정확한 비율의 재료 배합.
반죽하는 시간과 정도.
두 가지를 완벽하게 했더라도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오로지 하늘의 뜻에 달린 발효 과정과 굽기까지.
"그래도 물에 불리고 불을 조절해야 하는 귀찮음이 있지만, 빵을 만드는 것보다는 확실히 간편하군요. 이런 건 또 어떻게 안 겁니까?"
"그야-"
"아아, 말하지 마십시오. 어떤 말이 나올지 다 알 것 같으니까."
보나 마나 또 자긴 천재라서 그렇다고 말하겠지.
메리는 노골적으로 듣기 싫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주방의 테이블에 접시와 식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응? 그런데 접시가 세 개? 식기 세 쌍? 언제 아타니타스님한테 연락하셨데요."
"계약자는 펠윈터 공작님의 명령에 응해 본성으로 출타했습니다."
"공작님이요? 오."
카렘은 어떤 일로 캐서린이 불려갔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러면 딱히 불러올 사람이 없지 않나? 올리비에? 나르케? 아니면 최근에 탑에서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는 셋째 공자 로빈?
메리는 돌연 고개를 퍼뜩 들어 올리고 주방과 그 바깥을 빠르게 샅샅이 둘러보았다. 마치 먹이를 감지한 매. 혹은 부엉이같은 모습.
그리고는 말도 없이 주방에서 뿅 사라졌다.
잠시 후.
메리는 당당하게 자랑스럽다는 듯 주방으로 들어왔다.
"공녀님. 이번에는 잡았습니다."
"아니, 어떠케 아랐지!?"
그녀의 양손에는 진심으로 당황한 듯 말하다가 혀를 씹어 입술을 부여잡는 알리시아가 어미에게 붙잡힌 수달처럼 안겨 있었다.
알리시아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그 어떤 기사와 마법도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오로지 포핀스 부인만이 그녀를 감지하고 찾아낼 수 있었는데. 설마 그녀를 잡아내는 포식자(?)가 또 하나 생겨났을 줄이야!
이는 심각한 일이었다.
재미없는 수업시간에서 도망치고, 몰래 들어와 간식을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포핀스 부인을 뺀 그 어떤 기사나 시종시녀들도 그녀를 잡지 못했건만! 이렇게 된 이상 다음엔 훨씬 더 철저하게 숨어야-
메리가 끌고 온 전용 의자에 앉혀지는 동안 알리시아는 혼자 꿍얼거리며 의지를 불태웠다.
'하. 더는 놓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메리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 누구도 모르게 마법사의 탑에 잠입하는 알리시아는 탑의 집요정인 메리에게 있어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다.
알리시아가 아니라, 잠입이라는 행위가 말이다.
집요정이란 계약자의 집과 한 몸.
계약자와 그 일원들에게 봉사하고, 보금자리를 관리하며 침입자를 배격한다.
물론 애초에 캐서린은 탑을 소유하고 지배할 권리를 받은 것뿐이고 실질적 주인은 알프레드이며 알리시아는 알프레드의 딸인데 침입자인 알리시아는 언제든 들어와도 된다고 (포기하듯이 캐서린에게) 허가받은 대차게 꼬인 상황이었지만!
그렇기에 메리에게 알리시아는 침입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법사의 탑에 '잠입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만큼은 결코!
그리고 드디어 각고의 노력 끝에 메리는 그 결실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한쪽은 더 은밀하고 빠르게 숨어들어오겠다고.
다른 쪽은 더욱 철저하게 잡아내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쿵. 모락모락-
"자. 다 됐습니다."
카렘이 테이블의 중앙에 냄비를 놓고 뚜껑을 열었다.
고소한 냄새가 모락모락 뭉게구름처럼 피어 올라왔다.
찌지지지지직-
환생하고 나서 약 10년 만에 만드는 밥.
비록 쌀 없이 순수 귀리로 이루어진 다이어트식이었지만, 숟가락을 통해서 느껴지는 고슬고슬함과 전분 소리는 카렘에게 성공했다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쌀을 포함한 여타 곡물 없이 순수 귀리로만 이루어진 이루어져 소리와 간접적인 촉감만으로 뻣뻣함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전생과 같은 밥 짓는 곡물은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메밀에 호밀, 통밀을 넣고 할 수는 없으니까.
카렘도 전생에 쌀이 아닌 것으로 밥을 했던 경험은 오직 귀리가 전부였다.
"오오오. 고소한 냄새가 나는구나."
"밥이라는 겁니다. 냄새가 제법 괜찮죠."
"밥."
"물에 불린 곡물을 불조절을 하며 찐 빵 같은 주식입니다."
"그런데 뭔가 데굴데굴 굴러다닐 것 같아. 카렘. 무엇으로 만든 건가?"
"어...."
오랜만에 (비록 쌀은 아니라고 해도) 밥을 먹을 생각에 조금은 희희낙락하던 카렘은 그제야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 이거 첫째 공자님한테 보이기 전에 맛보기이긴 한데 막내 공녀님한테도 맛을 보여드려도 되나?
창고에서 메리가 왜 그의 입을 막았던가.
최대한 아는 사람을 적게 하려고 그랬던 거 아니었나?
하지만 아뿔싸. 이미 알리시아.
윈터홈 최고의 마당발은 잠입한 지 오래였다.
아마 그래서 메리도 그냥 순순히 알리시아를 데려온 것이겠지.
하긴 지난번에 붉은 마녀의 손가락으로 깍두기를 담갔을 때 어떠했던가. 개같이 소문이 퍼져서 팔자에도 없는 시식/시연회를 해야 했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말로 공녀님한테도 그 찐 귀리를 먹일 작정입니까?'
'식기까지 전부 세팅하셨으면서 무얼. 이대로 그냥 보내면 온 성내랑 시내에 소문을 다 퍼트리고 다닐걸요?'
카렘의 무언을 차마 부정하지 못했던 메리.
마지막 반대자를 소리 없이 설득시킨 카렘은 가장 먼저 기대감에 발을 동동 구르는 알리시아의 접시에 귀리밥을 한 숟갈 펐다.
"우선 맛부터 보시고. 더 드실지 말지 경정하시죠."
"응! 그런데 진짜로 굴러다니는구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태의 요리.
자유를 찾아 자기 멋대로 굴러다니는 귀리들을 작게 뜬 알리시아는 숟가락에 담긴 귀리들을 호기심을 담아 이리저리 관찰했다.
그리고.
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