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5 KiB
윈터홈.
윈터홈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조용했다.
구출대가 편성되어 외부로 파견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줄었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은 일부.
윈터홈의 요리사들은 그 일부에 해당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바빴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료가 자리를 비웠지만, 일감은 그대로였으니까.
물론 성의 사람이 줄어든 만큼 필요한 요리의 가짓 수도 줄어드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으나, 고위 귀족의 성은 그렇게 간단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귀족과 권력자들이 남기는 음식은 밑의 하인들에게 돌아갔고, 거기서 남은 음식은 하인들 식사에 더해서 더 낮은 하인들에게, 또 거기서 더 직급이 낮은 일꾼들의 식사에서 밑으로 계속 내려갔다.
그러고도 음식이 남는다면 최종적으로 다음 날 아침.
빈민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에 도착하여 아침 식사가 된다.
물론 요리를 먹는 윗사람이 줄어든 만큼 비교적 난이도가 줄어들었지만, 원래 어려운 일보다 단순하게 반복하는 일이 더욱 어려운 법.
하물며 기근이 일상이던 수십 년 전도 아니고.
아이스랜드 공작의 명예와 다른 이들의 시선 때문에라도 준비하는 음식의 양을 줄일 수는 없었다.
때문에 지그메서와 휘하의 남은 요리사들은 체감상 느끼는 것보다 힘들고 재미가 없어졌을 뿐이지 여러모로 이전과 같았다.
"흠, 그러니까, 이게 그리즐리 비버의 그...공들(ball's)에서 추출한 물질이라는 겁니까?"
"그래, 바닐라라고 하지."
"바닐라. 흠. 어감은 좋군요."
"향은 어떠한가?"
어떠냐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지그메서는 처음으로 아이오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미간에는 미심쩍음이 깊은 계곡을 만들었지만, 코에서 느껴지는 향이 의심을 날려버리고 있었다.
향의 진원지는 고급스러운 도자기 보관함에 수북하게 쌓인 검고 작은 알갱이들에서 은은하게, 하지만 진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킁!"
지그메서는 무심코 코를 들썩였다.
그에 따라 냄새가 빨려 들어가듯이 지그메서의 후두부를 강타.
그대로 기도를 통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사람을 매혹하는 몬스터의 유혹보다 향기롭고, 봄 요정의 꿀보다 달콤하고 진득한 향기.
냄새만 맡아보면 당장 꽃밭에 있는 거 아닌가 지그메서가 순간 착각할 정도였다.
옹고집과 자존심으로 무장한 지그메서가 이러할 진대 주방의 다른 요리사들의 반응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진작에 영혼이 빠져나간 눈빛으로 홀린 것처럼 도자기 그릇에 수북이 쌓인, 가히 신을 모독하는 것 같은 알갱이 더미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지그메서 또한 솔직히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보관함에 머리를 처박고 냄새를 맡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런데 뒤에는 부하들이, 앞에는 상관이 있는데 체통이 있지 그럴 수야 없지.
드워프로서 자존심이 있는데.
그게 수염과 머리칼을 밀어버린 놈이 할 말이냐?
남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테지만, 지그메서는 정말로 진지했다.
카렘에게 손바닥이 불타도록 비비는 정도로.
"흠, 그러면 제가 이걸로 무얼 하면 되겠습니까?"
"주군께 부끄럼 없이 선보일 견본을 만들어줬으면 하네."
"흠, 사용법을 파악하느라 시간이 좀 걸릴 텐데요?"
"그럴 줄 알고 노구가 콜던으로 복귀하던 중 카렘에게 사용법을 받아놓았지."
"어, 카렘 말입니까?"
“그래. 급하니까 에그 타르트만 부탁하겠네."
아 그렇다면 말이 다르지.
발판에 선 총주방장이 냉큼 쪽지를 받아들자 부하들이 압박하듯이 몰려들었다.
"음? 재료 배합 과정에 소량 첨가하면 끝?"
"반죽이나 용액 만들 때 넣으면 된다는 거 같은데."
"뭐야. 정말로 이게 끝이야?"
"요리에 필요한 용량은 레시피에 맞게 전부 다 다른, 이거야 뭐 당연하고."
"덥고 찝찝하게 이게 무슨 짓들이야! 썩 꺼지지 못할까!"
버럭!
누구보다 빠르게 쪽지의 내용을 외운 지그메서.
어쨌든 무려 시종장이 직접 주문한 견본이었다.
그것도 주군인 알프레드님에게 올라갈 물건.
다른 놈팽이에게 맡길 수는 없었다.
아이오나가 주방을 나서자마자 지그메서는 곧바로 마도구를 통해 냉각한 반죽에 버터를 더해 페이스트리 시트를 타르트 트레이에 잘라 넣고 바닐라를 첨가한 커스터드 용액을 부은 후 오븐에 투입.
그러고보니 아이스크림도 있었지.
아이스크림은 주문하시지 않으셨지만, 맛보기를 위해서라도 지그메서는 아이스크림 제작에 착수했다.
타르트가 구워지는 동안 바닐라를 첨가하고 마도구를 활용해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다 구워진 에그 타르트는 시종에게 떠맡겨 보냈다.
"기다리고 계실 테니 얼른 가버려!"
지그메서가 주방의 문을 닫고 몸을 돌렸다.
진작에 요리사들의 관심은 주방의 테이블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니, 관심 자체는 타르트가 오븐에 구워지면서 향기가 폭발할 때부터 모여있었다.
윈터홈의 요리사들에겐 익숙한 시간이다.
교류회를 열 때마다 카렘이 흩뿌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레시피를 시식할 때마다 비슷한 반응이었으니까.
아니, 카렘이 오기 전에도 지그메서는 부하 요리사들에게 신메뉴를 개발하고, 모두 함께 맛을 보며 개선점을 찾는 시간을 가졌으니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지그메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치워버리고 일개 드워프의 자리로 스스로 내려왔다.
진득하지만 가벼운 달콤한 냄새가 가득한 뜨거운 커스터드의 열기와 치즈가 아닌 오로지 크림과 노른자를 기반으로 바닐라를 더했을 뿐인 아이스크림.
"자, 그러면."
지그메서가 얼른 다가오자 요리사들이 눈치껏 발판을 가져왔다.
성큼성큼 올라서는 지그메서의 눈에는 핏발이 올라있었다.
"일단 먹어보도록 하지."
꿀꺽.
누가 냈는지 모를 침 삼키는 소리를 시작으로 기대감으로 가득한 요리사들은 타르트를, 아이스크림을 시식하기 시작했다.
지그메서는 아이스크림을 먼저 맛보았다.
그리고 침묵.
잠시 후, 폭발.
"음? 으음? 으으음!?"
"이, 이게 대체 무슨-?"
"...우유향은 온데간데없이 달콤한 향만 나잖아."
"...카라멜? 아니 카라멜은 냄새가 끈적하게 남잖아. 이렇게 깔끔할 리가 없는데? 누구 이런 향 맡아본 적 있어?"
"그리즐리 비버의 냄새가 이렇게 커스터드와 잘 어울린다고?"
경악, 감탄, 혼란, 호기심, 의문.
요리사들은 제각기 아이스크림과 에그 타르트를 씹으며 저녁 연회를 준비하는 주방만큼이나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각자의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나온 감상은 전혀 맞물리지 않았다.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지만, 감상을 교환하기에는 바닐라라는 새로운 향이 주는 충격이 너무나도 컸다.
이는 지그메서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총주방장은 침묵에 잠겨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깔끔한데? 왜?
지그메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렴 향이 강하면 강할수록 향신료의 맛은 강한 것이 당연했다.
반대로 향이 약하면 약할수록 맛 또한 비교적 약한 것이 당연.
그런데 이 바닐라라는 비버의 X알은 뭔가.
입안에 퍼지는 진득하고 무거우면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은 잔여물이 목구멍 뒤로 사라지는 그 순간 깔끔하게 모습을 감추었다.
그 빈 자리에 남는 것은 진한 아쉬움.
그리고 더 먹고 싶다는 매우 원초적인 식욕.
하지만 덕분에 지그메서는 이거 하나 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 몬스터 향신료는 그야말로 디저트를 갈아엎는 괴물(몬스터)이라고.
바닐라가 자리를 차지할 수많은 디저트 레시피가 지그메서의 뇌리를 스쳐지나갔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야!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이! 상사이자 연장자가 고뇌에 잠겨있는데 그 틈을 타서 자기들이 다 처먹으려고 해! 이 위아래도 없는 하루살이들이! 아니, 아이스크림은 또 언제 이만큼 처먹은 겨!?"
잔뜩 쌓여있던 타르트는 벌써 절반.
그릇에 가득했던 아이스크림도 벌써 그만큼 사라졌으니까.
총주방장의 진노에 요리사들이 움찔했지만, 오히려 더욱더 가열차게 먹기 시작하는 그 모습에 지그메서도 뭘 더 말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지그메서가 위에 선 자의 시선을 내려놓은 것처럼.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하 요리사들은 부하가 아니었다.
하나의 먹잇감을 놓고 싸우는 경쟁자!
일단 지금은 먹어야 한다!
"이, 이 빌어먹을 놈들!"
"죄송합니다. 총주방장님. 하지만 '최초'의 신상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보다 아이스크림에 곁들여서 드셔보시죠. 둘이 같은 향이지만 조화가-"
"아, 그래?"
지그메서는 재빨리 끼어들어 부하의 솔깃한 제안대로 시도했다.
과연 같은 향이었지만, 똑같은 향에 질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조화롭게 맞물려 바삭하고 부드럽고 촉촉한 풍부한 식감이 입안을 진동시켰다.
지그메서, 뚝심 있지만 요리 앞에서는 부드러운 드워프였다.
그렇기에 다른 부하들을 밀치고 타르트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처벌하려던 마음을 그냥 접어버렸다.
그렇게 한바탕 시끄러운 소란이 잦아들고 찾아온 고요함.
빈 그릇과 가루 하나 남지 않은 접시와 함께 지그메서와 요리사들은 여운에 잠겨있었다.
요리의 마침표는 뒷정리.
평상시였다면 불호령이 떨어졌겠지만 알게 뭐람. 지그메서는 기꺼이 너른 마음으로 부하들과 함께 여운을 즐겼다.
"하, 그러고 보니 카렘도 당연히 돌아왔겠지."
지그메서는 누구도 듣지 못할 작은 소리로 혼자 우물거렸다.
꼬마 천재 요리사를 만나고 나서 1년에 몇 번 가지기 힘든 희열과 만족감을 몇 번씩이나 느끼고 있는 지금.
그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이를 먹지 못하는 고드윈을 떠올렸다.
"고드윈 공자님이 슬퍼하실 텐데. 몰래라도 챙겨드려야 하나?"
공작부인도 참 취향 특이하셨다.
그리고 그 기대감의 주인은 딱히 난처하지 않은 부탁을 수행하기 위해 상쾌한 아이스랜드의 여름 공기를 만끽하며 창고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카렘."
그리고 카렘의 요청에 응한 메리는 아연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
"귀리를, 얻으러 가는 거라고요."
"옙. 뭐 다른 것도 찾는 게 있긴 한데, 일단 주목적은 귀리입니다. 탑의 창고랑 냉장실에는 없더라고요."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메리는 카렘을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카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딴 말먹이. 누가 좋아서 먹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어, 아이스랜드에서 옛날엔 자주 먹었다고 들었는데요. 귀리. 말고도 몇몇 나라들은 주식이라던데요."
"굶어 죽기 싫으면 풀뿌리라도 캐다가 먹어야 할 지경이었다고 들었으니 당연한거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듣긴 했죠."
카렘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카렘 후배는 그런 가축 먹이를 공작가의 후계자에게 먹이겠다는 말입니까?"
"예. 다행히 고드윈 공자님은 제가 하는 말을 모두 따라주시겠다고 하셨거든요."
그거야 귀리를 먹는다는 말은 못 들었을 테니까.
아니, 그 전에 귀리가 뭔지 아시기는 할까?
뭐 가축 먹이로는 최고니까 아시기는 할 텐데.
메리의 시선은 이제 카렘이 처음 마법사의 탑으로 들어와 솜씨를 보였을 때의 그것으로 바뀌었다. 부정적인 쪽으로.
하지만 카렘은 자신 있었다.
'그거야 먹는 방법이 형편없이 글러 먹었으니까 당연하겠지.'
카렘도 메리가, 올리비에와 캐서린이 왜 그런 반응이었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글러먹은 현생의 고향에서 먹은 곡물죽에도 귀리는 안들어갔다.
귀리는 수년 동안 박대당한 역사가 길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비타민과 무기질을 포함한 각종 영양성분이 풍부하다는 것이 밝혀져 다이어트식으로 주목받는 작물.
하지만, 오트밀이나 죽으로 먹는다면 맛이 형편없이 글러 먹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마저도 보통은 우유에 불려서 잼이나 꿀, 설탕을 넣어 먹으니까.
구정물에 찌든 걸레 씹는 맛 같은 게.
하물며 농노도 안 먹는 물건이 해봐야 얼마나 맛이 있다고.
물론 전생에서는 오트밀 맛있다며 반박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카렘은 그런 이들에게 해줄 말은 단둘뿐이었다.
그거 과일, 견과류, 설탕 없이 먹어봤냐. 뭐? 맛있다고? 와! 너는 세상의 절반 이상을 지배한 영국인 같은 입맛이구나!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음?"
"귀리 말입니다. 그걸 그냥 냅다 고드윈 공자 앞에 대령할 것은 아니잖습니까?"
"우선 따뜻한 물에 한참 불리고 쪄야죠."
"찐다(Steamed)?"
카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바 귀리로 만든 밥이었다. 맛도 고소하니 괜찮아 전생에 군살을 뺄 때 잡곡밥과 함께 자주 먹었다. 특히 씹을 때마다 오도독 뽀드득 터져나가는 식감이 재밌었다.
하지만 귀리를 찐다니.
메리는 맛도 식감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카렘의 요청을 받은 스노우엘프.
창고지기 아우게르도 당황했다.
"꼬마 카렘! 오랜만이네. 외출은 잘 하고 왔고? 아니, 출장이라고 해야-응? 뭐? 귀리? 말먹이를 왜? 동물 키우냐?"
"아 그브읍?"
"깊이 알아서 좋을 것 없으니 그냥 주시죠."
메리는 모두를 위해 카렘의 입을 봉쇄하며 아우게르를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