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콰과과광! ​ 진세아는 길드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조차 없었다. ​ 바로 공중에서 도약해, 창문에 도달했다. ​ “…….” ​ 밖에서는 열릴 리 없는 창문을 강제로 열어버리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 하지만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남아있는 것은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 두 잔뿐. 선우가, 없어졌다. ​ 그녀는 복도로 뛰쳐나가 비서를 붙잡았다. ​ “마지막 내담자가 누구였어요.” ​ “네, 네? 백시은 헌터님이셨는데….” ​ “납치당했어요.” ​ “네?! 납치라니요… 누가….” ​ 진세아는 설명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그녀를 뒤로하고 복도 끝으로 향했다. ​ - 쾅! ​ 위재완 팀장의 사무실이었다. ​ 그러나 위재완은, 머리를 책상에 박은 채 기절해 있었다. 진세아는 단번에 상황을 눈치챘다. ​ 확실해졌다. ​ 백시은이다. 그녀는 능력을 사용해 팀장을 조종했다. ​ 그리고 선우를 납치해서 사라졌다. 백시은에게는 이렇게 쉽게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 그렇다면. ​ 조력자가 있다는 뜻이다. ​ 진세아는 다시 상담실로 향했다. 많은 사람이 아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방인의 마법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는다. ​ 이 세계와 다른 세계는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나의 성질이 다르다. 그것을 사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약간의 흔적이 남는다. ​ 그리고 그 미세한 차이를 진세아는 알아챌 수 있다. ​ 그녀는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까지 모든 공간을 훑기 시작했다. ​ - 툭. ​ 그리고 발견했다. 상담실의 문. 그 문틀의 가장 구석진 곳에 먼지처럼 남아있는 희미한 공간의 뒤틀림. ​ 그리고. ​ - 쩌저저저적…. ​ 진세아는 그 흔적의 틈새로 자신의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닫혀버린 차원의 문을 강제로 다시 찢어 열기 시작했다. ​ - 쩌저저저적! ​ 공간이 비명을 지르며 찢어졌다. ​ “…….” ​ 하지만 그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뒤처리까지 깔끔했다. 제법 실력이 있는 쥐새끼였다. ​ 그러나. ​ 상관없다. ​ 모든 마법은 지문과도 같다. 아무리 흔적을 지워도 술자 고유의 파장은 남는다. ​ 누군지, 알 것 같다. ​ - 콰광! ​ 다시금 상담실의 안이 번쩍였다. ​ 그리고, 진세아가 사라졌다. ​ ​ ​ ​ ​ ​ ​ *** ​ ​ ​ ​ ​ ​ ​ ​ ​ 한편, 같은 시각. ​ 천마 신교의 심장부 천마전(天魔殿). 자화연은 텅 빈 옥좌에 홀로 앉아 턱을 괸 채 권태로운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 바로 그때 옥좌의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인영 하나가 소리 없이 솟아올랐다. ​ 우호법이자 그녀의 충직한 신하인 금강이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 “금강.” ​ 자화연의 목소리에는 나른함이 묻어 있었다. 금강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지존. 의원에게 하사하셨던 호신향의 기운이… 방금 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 그 순간 자화연의 표정의 권태로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호신향(護身香). ​ 지난번 그녀가 보냈던 명패와 탁자에 묻혀놓았던 향이다. 의원의 안위를 위해 해놓았던 장치. ​ 그런 호신향이 사라졌다는 것의 의미는, 하나를 의미한다. 의원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 자화연은 옥좌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 “찾아라.” ​ 그 말에 금강은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 “예.” ​ “의원의 머리카락을 한 올이라도 건드린 자가 있다면.” ​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핏빛으로 타올랐다. ​ “그놈의 몸통을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천마전 앞에 효수할 것이다.” ​ - 팟!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금강의 모습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자화연 또한. ​ - 또각또각. ​ 천천히, 천마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 ​ ​ ​ *** ​ ​ ​ ​ ​ 한편, 도심의 커피숍. 주차장. ​ 리아는 평범한 도심의 쇼핑몰 주차장을 산뜻한 발걸음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 백시은의 부탁은 완벽하게 들어주었다. 포탈을 열어 그녀와 베타를 새장으로 안전하게 배달하는 것. 아주 간단한 임무였다. ​ 그녀는 씁쓸한 커피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입맛을 다셨다. ​ “… 쩝.” ​ 그냥, 같이 할 걸 그랬나. 얼굴이 생각보다 더 반반했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더 좋았다. ​ 의식을 잃고 무방비하게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은 뭐랄까. 알파의 보호 본능을 아주 강하게 자극했다. 즉, 흔한 베타는 아니라는 뜻이다. ​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기절한 상담사를 보고 모두가 숨을 멈췄으니까. ​ 그러나 백시은의 으르렁거림에 셋 모두 포탈을 타고 나와 헤어졌다. ​ 리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 - 띠리리링. ​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부길드장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녀는 얼마 전 직접 세운 신생 길드의 대표였다. ​ 리아는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그녀는 주차 되어있는 자신의 차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 “아 그거… 조금만 기다릴래? 금방 갈게. 응, 알았어.” ​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차를 향해 걸어갔다. ​ “…….” ​ 주차장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차 앞좌석으로 향했다. ​ 그리고 앞좌석의 문고리를 잡았다. ​ - 지이잉…. ​ - 벌컥! ​ 그리고 즉시, 차 문을 급하게 열었다. ​ 열린 차의 문은, 차의 내부가 아닌 누군가의 집으로 통해있었다. ​리아는 자신의 집으로 통하는 포탈을 열었다. ​ 그리고 그 안으로 재빠르게 몸을 밀어 넣으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 - 꽈아악. ​ “꺄아아악!” ​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채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리아의 몸이 그대로 붙잡혔다. ​ “어디 가려고?” ​ 진세아였다. ​ - 콰과과과광!! ​ 리아는 자신이 붙잡혔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전, 굉음과 함께, 눈앞이 새하얗게 점멸하는 것을 느꼈다. ​ 온몸의 감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 그녀는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봤다. ​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리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주차장의 풍경이 아니었다. 새하얀 구름과 발밑에 펼쳐진 아득한 도시. 그녀는 지금. ​ 수천 미터 상공에 떠 있었다. ​ 땅 아래의 건물들이 개미만하게 보인다. ​ “꺄아아아아아악!!” ​ 리아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는 그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아 매달렸다. 그게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 차가운 바람이 눈을 못 뜨게 한다. ​ 그녀의 귓가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 “3초 줄게.” ​ 진세아는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 “널 네 보잘것없는 길드 건물에 던져서 꽂아버리기 전에.” ​ 그녀는 자신의 팔에 매달려 발버둥 치는 리아를 내려다보았다. ​ “어디야?” 리아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즉시 답했다. ​ “백… 백시은 별장….” ​ “그게 어딘데?” ​ “무월동… 3번지… 펜트하우스… 201호….” ​ “확인하고 오는 데 얼마 안 걸려. 거짓말이면….” ​ “진… 진짜예요…! 제발……!” ​ 진세아는 대답 대신 머리채를 붙잡고 있던 손을 가볍게 놓아버렸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럼 알아서 잘 살아봐.” ​ 휙. ​ - 꺄아아아아아악!! ​ 리아의 몸이 그대로 허공으로 자유낙하했다. ​ ​ ​ ​ ​ *** ​ ​ ​ ​ ​ - 퍽! ​ 둔탁한 소리와 함께, 복부에 주먹이 꽂혔다. ​ - 우두둑! ​ 그리고, 여성의 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도심 외곽의 버려진 폐공장. ​ “잘… 잘모해서요….” ​ “제…제발….” ​ 두 명의 여자가 흙먼지가 가득한 시멘트 바닥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손을 싹싹 빌고 있다. ​ 몰골이 엉망진창이다. 피와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옷은 갈기갈기 찢겨,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 코에서는 피가 뺨은 퉁퉁 부어있다. ​ “왜 그러셨소.” ​ 눈앞의 있는 거구의 남성은 금강이었다. 자화연의 명을 받고 호신향의 마지막 잔재가 남아있는 이들을 추적했을 때, 그는 가장 먼저 정중하게 물었다. ​ ‘혹시, 의원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소?’ ​ 하지만 돌아온 것은 경멸이 가득 담긴 비웃음이었다. ​ ‘안 꺼져?’ ‘하… 냄새나게 생겨가지고.’ ​ 그녀 둘은 금강을 업신여기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 ​ 그래서, 이 상황이 되었다. ​ “알려만 줬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오.” ​ 금강은 쭈그리고 앉아 여성들의 눈을 마주쳤다. ​ “만약 이곳이 중원이었다면 당신들은 단전이 폐해지고 옷이 전부 벗겨진 채 마교 한복판에 던져졌을 것이오.” “우리 세계에는 여성은 일각에 한 번씩 두들기라는 말이 있소.” ​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 “그러나 이곳은 중원이 아니오. 게다가 그대들의 세계는 더더욱 아니고.” “세상이 달라졌으니…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소.” ​ “알았… 알았어… 말할게…!” ​ - 퍽! ​ “억…!” ​ 금강의 발이 카라의 복부에 깊숙이 꽂혔다. 그녀의 입에서 위액과 함께 신음이 터져 나왔다. ​ 금강은 그런 그녀를 아무런 감정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 “계집이… 어디서 감히 반말을.” ​ 그때. ​ “멀었느냐?” ​ 폐공장으로 누군가가 걸어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구두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여인이 걸어 나왔다. ​ 자화연이었다. ​ “지존.” ​ 금강은 그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 “쯧, 비켜라. 내가 직접 하지.” ​ 그 말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두 여성의 표정이 희미하게 나아졌다. 저 포악한 짐승보다는 이 가녀린 여인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 ​ 금강은 그런 그들을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자리에서 물러섰다. ​ ‘내게 순순히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 지존이 직접 나서는 순간 후유증은 육체의 고통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니. ​ - 슥. ​ 자화연이 손을 위로 휙, 하고 들었다. 그러자 두 여성의 몸이 보이지 않는 실에 이끌리듯 강제로 일으켜 세워졌다. ​ “말, 말할게요…!” ​ 김가은이 다급하게 말했지만, 자화연은 검지를 들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 그리고. ​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서서히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 “보아라.” ​ 그녀들은 자화연과 눈을 마주쳤다. ​ 그리고. 두 여성의 뇌가 강제로 헤집어지기 시작했다, 자화연이 그 안에 담긴 기억들과 정보들을 난폭하게 파헤쳤다. ​ “으으…윽….” “끄으으으으…….” ​ 카라와 김가은은 처음 느껴보는 영혼의 고통에 신음을 내뱉었다. ​ 자화연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 “가지.” ​ 얻을 정보는 전부 얻었다. 금강은 고개를 숙이고는 자화연을 따라 나섰다. ​ - 털썩. ​ 두 여성의 몸이 실이 끊긴 인형처럼 바닥에 꼬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