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무진. ​ 세계관 최강자 중 한 명.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 그런 사람에게 인정받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 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점이기도 하니까. ​ 나는 가온의 데이터베이스에 올라온 교류전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 분석은 언제나 최우선되어야한다. 기억은 당시의 감정에 흔들리기 쉽지만, 영상은 사실만을 담는다. ​ 우선, 우리 팀부터. ​ 윤채하. ​ 전체적으로 훌륭하다. 그녀의 천부적인 전투 센스는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완벽한 포지션을 유지했다. ​ 특히 마지막 역장은 인상 깊었다. 우수하다. 얇게 펴면서도 밀도를 유지했고, 단 한 번의 누수도 없이 유령을 전부 태워냈다. 완성도 높은 방어 역장이었다. ​ “잘해, 잘하는데….” ​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한 개 정도. 나를 너무 의식하는 게 느껴진다. ​ 최근 들어 케어를 많이 해줬다. 수업에서도 훈련장에서도 그냥 학교 외적으로도. 그녀가 최근들어 나를 진짜 스승으로, 멘토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 ‘나 잘하지?’란 얼굴이 고스란히 보인다. 감추지도 않는다. ​ 어차피 그녀와 크게 멀어질 일은 없기에, 나쁠 것은 없는데. 나중이 걱정되긴 한다. ​ 의존으로 발전되지만 않으면 좋아 보인다. ​ 그리고, 다음. ​ 유하나. ​ -스슥! ​ “와….” ​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온다. ​ 카메라 앵글조차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일섬.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유령이 재생되기 전. 정확히 그 순간을 노려, 단 한 번에 유니콘의 목을 베었다. ​ 뒤늦게 피어오르는 꽃잎까지. ​ 누군가의 시선 따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자신만의 베기. ​ 여러모로 채하와 대비되긴 한다. ​ 하지만, 그건 누가 잘했고 못했는지를 따질 일은 아니다. 성향의 차이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둘 다 강했고, 둘 다 같은 팀이었다. ​ 우리 팀 분석은 끝났다. ​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나 돌려본 것일 뿐. 역시 놓친 건 없었다. ​ 이제는 다른 팀을 볼 차례였다. ​ [2위 팀 요한] ​ 말이 2위지, 기록 차이는 불과 몇 초였다. 즉 조금만 늦었더라면, 우리가 2위였을 것이다. 그 말은 곧, 상대 팀에 그만한 핵심 인물이 있었다는 뜻이다. ​ 나는 영상 재생 버튼을 눌렀다. ​ “….” ​ 누가 이렇게 잘한 건지,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 확인도 넓게 보면 윤채하 케어의 연장선이다. ​ 아마, 그 주인공은 주서준일테니까. ​ 영상의 내용은 예상대로다. 실질적인 판단과 교전 타이밍, 포지션의 조율까지 거의 모든 결정권은 주서준이 쥐고 있었다. ​ 그리고 마지막. ​ [환수. 무각 유니콘.] ​ 그걸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자마자, 나는 탄식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야… 이거 씨….” ​ 알았다. 그가 무각 유니콘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이유. ​ “… 지겠는데?” ​ 진심이었다. 윤채하가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 ​ ​ ​ ​ 오늘은 교류전 개인 부문의 두 번째 날이다. 첫 번째 전투는 예상대로 싱겁게 끝났다. ​ 가온 출신의 중위권 검사는 윤채하를 이기지 못했다. ​ 그녀는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깔끔하게 승리를 챙겼다. ​ 그리고 오늘은 그 다음 날. ​ 나는 윤채하를 아침 일찍부터 불러냈다. ​ [belief_]: 하나야, 오늘 아침 운동은 취소 좀…. [OnE]: 왜?? [belief_]: 나 멘토 멘티…. ​ 유하나에게는 미안하다. 오늘 운동은 취소. 삐졌는지 답도 안 온다. ​ 나는 먼저 훈련장에 도착해, 바닥에 깔린 매트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한동안 적막이 흐르고 멀리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 “무슨 멘토 멘티? 요즘은 부르지도 않더니… 아침부터?” ​ 윤채하였다. 몸에 맞춘 듯 자연스러운 트레이닝복 차림, 머리카락은 반쯤 묶인 상태. ​ 싸울 거니까 편하게 입고 오라 했다. ​ 말투는 퉁명했지만, 걷는 걸음은 가볍고 목소리 끝에는 묘하게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 ‘마음이 아프네.’ ​ 오늘, 아마 그녀의 그 기대감을… 부응해주진 못할 것 같다. ​ “바로 시작할까?” ​ “뭐… 좋아.” ​ 윤채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 말은 시큰둥하지만, 눈빛은 기대에 살짝 젖어 있다. ​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윤채하와 무각 유니콘. 크게 보면 둘의 마법은 닮았다. ​ 지역 장악형. ​ 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 유니콘은 유령이라는 무형의 존재들을 넓게 퍼뜨려 시야를 틀어막고, 전장을 장악한다. 윤채하는 광역 화염 마법을 펼쳐 불길로 전장을 채운다. ​ 자신이 만든 무대에서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자신은 그 틀 안에서 확실한 공격을 한다. 그래서 둘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 윤채하 스스로 구축한 그녀만의 방식. ​ 그러나 내가 어제 본 영상에 의하면. 주서준이 펼치는 전략은 그 마법들의 완벽한 안티테제이자 카운터였다. ​ ‘일점돌파.’ ​ 기본적으로 마법에는 '역산'이라는 개념이 있다. 해체하고 거슬러 올라가며, 마나의 흐름을 되짚는 것. ​ 그리고 그는, 그 역산을 마법 자체에 덮어씌운 채, 정면으로 찔러 넣었다. ​ 어떻게 유니콘을 그렇게 쉽게 잡았나 했더니. 주서준은 윤채하를 이기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훈련하고, 반복한 듯했다. ​ 솔직히 대단하다는 감정이 든다. ​ 따라서 나는 윤채하에게 예방접종을 맞히려 한다. 새벽 동안 아주 열심히 분석했다. ​ 역산이라고 해도, 거창한 기술은 아니다. ​ 결국 마나란, 인간이라면 비슷한 성질을 띤다. ​ 주서준이 두른 것은 그런 기본적인 마나에 대한 단순한 역산이었다. ​ 역산이라는 못. 그리고 뒤를 때리는 그의 출력이라는 망치. ​ 그 조합으로, 어떤 방어든 진영이든 일점으로 깨부순다. ​ 그게 그의 전략이었다. ​ “채하야.” ​ “응?” ​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공격을 해봐.” ​ “너한테?” ​ 윤채하가 눈을 찌푸렸다. ​ “좀 위험할 것 같은데….” ​ “괜찮으니까 해봐.” ​ 나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 “힘 조절하면 안 돼. 최대한, 강하게.” ​ 그 말에, 윤채하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 “… 알았어.” ​ 눈동자에 붉은 불꽃이 일렁인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주변의 공기가 타오르듯 비틀린다. ​ “ㅡㅡㅡㅡㅡ.” ​ 짧은 캐스팅. 곧이어 하늘을 찢고 내려오는 거대한 화염의 창 수십 개가 훈련장을 뒤덮었다. ​ ‘이 정도면 진심 맞네.’ ​ 가볍게 한쪽 무릎을 굽히고, 창을 거꾸로 잡았다. 그리고 창끝에 역산 마법의 흐름을 덧입혔다. ​ “ㅡㅡ!” ​ 그와 동시에 윤채하의 화염 창이 폭우처럼 떨어진다. 나는 그중 가장 얕은 지점, 가장 약한 틈새를 노렸다. ​ 순식간에 발을 굴렀다. 진입 각도는 정면. ​ -콰광!! ​ 한 줄기 폭발음과 함께, 나는 그 수십 개의 창 중 하나를 박살 내며 그 틈을 돌파했다. ​ 윤채하의 눈동자가 커진다. 입이 살짝 벌어진다. ​ 나는 곧장 그녀 앞으로 돌진했다. ​ -척. ​ 창을 거꾸로 잡아 그녀의 이마 앞에서 세운다. ​ 그대로. ​ 툭. ​ 창끝으로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톡 친다. ​ “다시.” ​ 한마디 남기고 돌아선다. 윤채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 ​ ​ *** ​ ​ ​ 나는 몇 번이고, 같은 방식으로 그녀의 마법을 뚫었다. ​ 수십 번. ​ 그녀가 어떤 마법을 펼쳐도. 공간을 메워도, 하늘을 채워도, 나는 빈틈을 찢고 나아갔다. ​ “다시.” ​ 다시, 다시. ​ 솔직히 말하면 살짝 걱정됐다. 윤채하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다. ​ 마법에 대한 자부심은 물론, 언제나 자신만만하다. ​ 따라서 나는 주서준에게 그것이 왕창 깨질 것을 우려해. 미리 예방접종을 맞힌다는 개념으로 접근한 것인데…. ​ 어째 내가 더 세게 때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혹여나 마음이 꺾이거나 절망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이 들었다. ​ “여기까지 하자.” ​ 내 종료 선언과 함께, 윤채하가 털썩 주저앉았다. ​ ‘이런.’ ​ 역시, 너무 몰아붙인 듯했다. 나는 급히 달려가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 “괜찮아? 미안해 내가 좀 심했….” ​ 하지만. ​ “…….” ​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하아, 하아….” ​ 윤채하의 어깨가 들썩인다. 숨을 몰아쉬는 입술은 벌어져 있고, 뺨은 뜨겁게 달아올라 있다. ​ 이마에 맺힌 땀이 한 방울, 턱 밑으로 떨어졌다. ​ 그 눈동자.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분노도, 좌절도 없었다. ​ 오히려 지금껏 본 적 없을 만큼 맑고, 또렷했다. ​ “한 번 더.” ​ 그녀가 숨을 길게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 “아니. 오늘 경기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간다. 숨결엔 미세한 떨림이 실려 있었지만, 그 속에선 분명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 “아니다. 우리 그냥 평생. 이거… 너무 좋아.” ​ 그 목소리. 살짝 떨리는 호흡 속에 녹아든 건 쾌감과 갈망이었다. “정해인.”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젖은 눈가. 그 모든 게 그녀의 호승심과 어우러져, 묘하게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 “네가, 내 멘토라서 정말 다행이야.” ​ 내가 틀렸다. ​ 윤채하는 꺾이지 않는다. 오히려 담금질처럼, 담글수록 더 뜨겁고 단단해진다. ​ 그 눈동자엔, 다시 피어오른 전의가 담겨 있었다. ​ “더 세게 해줘. 깨트려줘.” ​ 그녀는 이 싸움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 “그게… 더 기분 좋을 것 같아.” ​ 그녀의 입꼬리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올라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