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딸랑 딸랑. 딸랑딸랑딸랑. 현란한 종소리를 들으며, 이아금이 물었다. “언니 혹시 연애해?” “아닌데?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해?” “연애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연락을 그리 많이 주고받아?” 서란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게 있어. 이 또한 내 과오겠지...” “뭐, 언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런데 순회 재판 일정은 완전히 끝난 거야? 아니면 또 나가야 하고 그러나?” “한동안 출근할 일 없어. 오늘부터 휴가거든.” 이아금은 근래 들어서 가장 놀랐다. “휴가?! 얼마나?!” “음, 순회 재판 포상 휴가랑 연차 휴가 남은 거 한꺼번에 사용해서 시보 기간 끝날 때까지 반 년 정도는 쉴 것 같아.” “웬일이야? 언니가 휴가를 다 쓰고.” 서란은 열심히 답장을 보내며 대답했다. “나도 별로 쓰고 싶지 않았는데, 최고재판소 내부 지침에 걸렸나 봐. 의무적 휴가 사용 횟수 미달로 강제 집행됐어. 그래서 한동안 출근 못해.” “그거 혹시 무급 휴가야?” “유급 휴간데?” 이아금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생각해 보니 담청은 매년 15일 정도 출근을 안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서란이 쉬는 모습은 보지 못했었다. 이아금은 설마 싶은 마음에 물었다. “언니, 혹시 여태까지 휴가 몇 번 썼어?” “이번이 처음이야.” “왜 휴가를 안 쓰는 거야?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 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는 감찰관이 되고 싶거든.” “감찰관? 그거 연수원 대체 강의만 잘 들으면 되는 거 아니었어?” “선발 기준을 찾아봤는데, 대체 강의 성적이 동일하면 시보 기간 중 근무 태도로 당락이 갈린다더라고.” 이아금이 물었다. “순회 재판도 감찰관 때문에 한 거야?” “그것도 그렇지만 공헌도 때문이기도 해. 공헌도 많이 쌓으면 단약이나 영과로 바꿔 주잖아. 부지런히 모아야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서란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좋아서 하는 거거든.” “그래? 알겠어.” “아, 맞다. 나 이만 가 볼게. 등 수사 인형몸 정비해 주기로 했거든.” 서란은 응접실을 나섰다. 이아금은 멀어지는 서란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리고 심마 진료 예약을 잡았다. ***** 등백월은 중정 한편에 앉아 있었다. 빨강, 검정, 파랑 세 종류의 정순법력이 체내에 감돌았다. 이영근을 조화시킨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비경 의식을 치른 모양이었다. 등백월이 서란을 발견하고는 인사했다. “오랜만에 뵈니 정말 반갑군요.” “연락 자체는 종종 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직접 얼굴 보는 거랑 같나요.” 서란은 킥킥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그래요.” “그나저나 오늘은 혼자 계시는군요. 별일이네요.” “아, 손 호법이요? 당분간 법관 업무 쉬게 돼서 수행원들한테도 휴가를 줬어요.” 등백월이 말했다. “휴가라, 심심하시겠군요.” “수행도 하고, 민선 의원 노릇도 해야죠. 아, 팔 좀 잠깐 들어 주실래요? 어깨 관절부터 분리할게요.” “알겠습니다.” 등백월이 삐걱거리는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서란은 능숙한 솜씨로 인형팔을 동체에서 분리해 냈다. 외장을 걷어 내자 복잡한 내부 구조가 드러났다. 고장의 원인은 수명이 다한 부품들이었다. 서란은 인형팔을 정비하며 상투적인 말을 건넸다. “잃어버린 기억은 좀 어떤가요?”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고 있기는 한데, 이렇다 할 진척이 없네요.”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네요.” 등백월이 말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류 수사님은 좀 어떠세요?” “저요?” “예, 수행 말이에요. 진척은 좀 있나요?” 서란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최근에 등 수사한테 배운 위무골경을 대성했어요.” “정말인가요? 굉장히 빠르시군요.” “그런데 수명경벽회공의 수행은 진척이 너무 더디더라고요.” 등백월이 물었다. “수명경벽회공이라면 그거죠? 법관 고시에 합격하고 전수받은, 선백파흑진군께서 직접 창안하신 공법.” “예, 맞아요. 혹시 공법을 두 개 익혀서 그런 걸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사람마다 잘 맞는 공법이 있고 잘 안 맞는 공법이 있거든요. 저번에 말씀 드렸었죠? 혈족 전용 공법 같은 건 공법 창안자와 공법 사용자의 육신 및 혼백이 유사하기 때문에 성취가 빠른 거라고. 비슷한 이치예요.” 서란이 말했다. “제가 선백파흑진군과 달리 반인반룡이라서 그런 걸까요?” “그런 걸 수도 있고, 위무골경이 류 수사님과 유달리 잘 맞는 탓일 수도 있죠. 게다가 용족 공법 익히기 시작한 지 아직 10년도 안 지났잖아요. 고위계 공법이라는 건 원래 수백 년, 수천 년씩 진득하게 파고들어야 해요.” “하긴, 그 말이 맞겠네요. 어깨 관절 다시 연결할게요.” 서란은 아까 뽑은 오른팔을 도로 끼웠다. 찰칵 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인형팔과 동체의 회로가 동기화됐다. 등백월은 시험 삼아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문제 없이 잘 작동했다. 등백월이 말했다. “잘 움직이네요. 지연 시간도 없고요.” “그 밖에 고장 난 곳 또 있어요?” “왼쪽 허벅지가 좀 이상하더군요.” 서란은 등백월이 앉은 의자 앞에 쪼그려앉았다. “잠깐 볼게요.” “분리는 안 하시나요?” “허리 쪽 회로만 잠깐 끊으면 돼요. 고관절은 분리했다가 재결합하기 번거롭거든요.”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멈췄다. 조용한 중정에 부품 잘그락거리는 소리만이 간간이 울려 퍼졌다. 정비를 마친 서란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등백월은 손가락에 내려앉은 무당벌레 한 마리를 관찰하고 있었다. 서란이 물었다. “법력을 지니고 있네요. 요수의 일종인가요?” “성문천도충이라 불리는 요충입니다.” “특이한 이름이네요.” 등백월이 무당벌레의 무늬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세요, 무늬가 십자 별 모양이죠? 그래서 성문천도충이라는 이름이 붙은 겁니다.” “강한 요수인가요? 벌 떼 같이 달려들어서 상대를 갉아먹는다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똑똑해서 애완용으로는 괜찮죠. 요충 치고는 귀엽게 생기기도 했고.” 등백월은 정육각형의 결계를 생성해서 성문천도충을 잡았다. 성문천도충은 잽싸게 몸을 뒤집어 죽은 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등백월은 성문천도충이 든 결계 상자를 품속에 집어 넣었다. 왼다리를 움직여 본 등백월이 말했다. “아무튼, 위무골경을 대성하셨다는 거죠? 슬슬 선골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 “아, 그거 관련해서 조사를 좀 해 봤어요.” “역시 부지런하시네요.” 서란은 소매에서 단말기(음소거)를 꺼내 관립 경매장에 접속했다. “선골에도 등급이 있더라고요. 5급이 제일 아래고 그 위로 4급, 3급, 2급, 1급, 그리고 제일 위가 특급. 그런데 정확히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수행 효율을 몇 배로 늘려주는지에 따라서 등급을 나눈 겁니다. 오채지심을 예로 들까요? 일반적으로 범골 일영근자는 이영근 조화를 위해 180년 정도를 수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5급 선골이 있으면 120년 밖에 안 걸리죠.” “남들 3년 할 거 2년 만 해도 되는 셈이네요.” 등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4급 선골은 90년, 3급 선골은 60년, 2급 선골은 45년, 그리고 1급 선골은 36년이 걸리죠.” “특급 선골은요?” “경지 상승 배율이 5배를 초과하면 모두 특급 선골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큰 의미는 없어요. 수선계 역사를 통틀어도 특급 선골은 몇 개 안 되거든요.” 서란이 물었다. “등 수사 선골은 몇 급인지 물어봐도 되나요?” “안 될 거 없죠. 제 태혼지체는 3급 선골입니다.” “2급 선골이 아니었나요? 이영근 조화시키는데 40년 밖에 안 걸렸잖아요.” 등백월이 대답했다. “저는 이미 한 번 준선경까지 도달해 봤으니까요. 오채지심 수행이 처음이었으면 60년 정도 걸렸을 겁니다.” “아, 생각해 보니 그렇겠네요. 그러면 혜문과 담청 님의 선골은 몇 급인가요?” “호 수사의 천무지체는 4급 선골, 담청 님의 공백지체는 1급 선골입니다.” 서란은 깜짝 놀랐다. “공백지체가 그렇게 좋은 선골이었어요?” “괜히 용이 된 게 아닙니다.” “오오... 그러면 저도 1급 선골을 얻는 걸 목표로 해야 할까요? 아니면 아예 특급 선골?” 등백월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몇백 년 안 쓸 텐데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대충 4급 선골 정도면 충분하죠. 어차피 선골 같은 건 진선경에 도달하고 나면 무의미해지기도 하고요.” “아 참, 환골탈태가 있었죠.” “게다가 좋은 선골을 찾아다니는 것도 여간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위무골경 덕분에 어떤 선골이든 얻을 수 있다고 해도, 그런 기연 자체가 원체 드무니까요. 류 수사님 같은 경우에는 차라리 선골을 포기하고 수행에만 전념하시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수도 있습니다.” 선골을 아예 포기하기. 확실히 일리가 있는 작전이었다. 기회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랬다. 서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가 보죠. 어디 고장나면 또 연락 주세요.” “수행하러 가시나요?” “아뇨, 의사당입니다.” 민선 의회 초대 의장, 담청이 서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