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 『♪─♪─♪』 『딩—동—댕─♪동—딩—♪』 『딩—동—댕… 댕… 댕….』 『모든 수업이 끝났습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모두 집으로 귀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모든 수업이 끝났습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모두 집으로…….』 . . . . . 방과 후. 막스의 파티는 4층 조사를 마치고 5층에 도착했다. 학교가 끝났다. 창문 밖은 어두컴컴한 공허였다. 이 장소에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오로지 벽에 붙어 있는 시계 뿐이다. 1층부터 4층까지 모두 조사했지만. 유감스럽게도 큰 소득은 없었다. "루카, 팔은 괜찮아요…?" "……." 일행들이 지금까지 얻은 것은. 갈증과 허기 그리고 공포와 고통 뿐이리라. 팔이 완전히 박살났던 루카는 잠시 조사에서 빠졌다. 얼굴 없는 선생은 오후 쯤에야 겨우 모습을 드러냈다. 주기를 보아 아마 당분간은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일행들은 루카를 교실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게 두고. 남은 인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로 합의를 봤다. 막스도 부상을 입은 건 마찬가지만. 루카와 비교하자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애초에 그는 축복자의 동료여서 튼튼한 육체를 가졌다. 이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영역이리라. "얼굴 없는 소녀가 방과후에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했지. 지금이 방과 후인가?" "그쵸." "보통 아카데미에서 방과 후라는 건 어떤 느낌이야?" 덴리드는 복도 게시판에 붙은 끝이 말라비틀어진 포스터를 만지작거린다. 눈빛이 우수에 잠긴 것이 꼭 과거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숙사로 돌아가는 학생도 있고, 보충 수업을 하는 학생도 있고, 부활동을 하는 학생도 있고, 운동장에서 친구와 노는 학생도 있고, 다양하죠. 그냥 정규 수업 이외의 활동이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그럼 복도가 어두워질 가능성은……." "적죠." 덴리드는 방과 후가 이 학교를 자유롭게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2인 1조로 나누었을 때 한 층을 전부 돌아보는데 필요한 시간은 약 삼십 분. 방과후가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다만. 10분씩 찔끔찔끔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이쪽이 확실히 편하고 효율적이겠지. "다른 하수인이 등장할 가능성은?" "높다." 잭은 루카를 응시한다. 아무래도 부상자가 신경쓰이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하수인은 얼굴 없는 소녀, 얼굴 없는 선생 이렇게 두 명이지. 대처법은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고." "그쵸." 제 2 구역은 상당히 넓다. 넓은만큼 하수인을 마주칠 확률이 기본적으로 적다. 소녀도, 선생도, 한 번 마주친 이후에는 본 적이 없으니까. 그렇기에 다른 하수인이 없다기보단.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마주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 "일단 계속해서 조사하자.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니까." "그래." "좋습니다." . . . . . 막스는 복도 벽에 붙은 먼지를 검지로 쓸었다. 새까맣게 변색된 손가락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슬슬 후회가 들었다. 드림랜드라는 장소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 탈출 스크롤을 사용할 걸 그랬나.' 너는 너무 성급한 게 문제야. 싱클레어가 자신에게 늘 하던 말이었다. "씨발."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팔은 쓰라리고 머리도 아프고 눈도 침침한 게 정신적인 피로도 쌓인 게 분명하다. 다시 선생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싸우는 건 불가능하고 정답을 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덴리드의 말대로 오답이라도 이야기해야겠지. 다른 하수인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무실은 발견할 수 있는 걸까? 소지품을 다시 얻고난 후에는 어떻게 해야하지. 계속해서 나아가야하나? 전이하는 기계장치는? 다음 구역은? 식량과 식수는 충분한가? 어떻게든 할 수 있나? 막막함이 꿈을 짓밟는다. 마석을 가져가 싱클레어에게 증명하고 복수하는 미래를 그리지 않게 둔다. "씨발." 자꾸 좆같은 생각이 드는 걸 보아 충격이 크긴 큰 모양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어. "막스…."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섬뜩해서 고개를 돌리니까 루카임을 확인했다. "걸리적거릴거면 다른 놈들한테 가라." "혼자 있기 무서워서… 걸리적거리지는 않을게."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쯧. "걸을 수 있다면 마음대로 해." "고마워." 두 사람은 5층 복도를 걸었다. 루카는 막스를 방해하지 않았다. 그저 등 뒤에서 조용히 걸을 뿐이었다. 거리가 벌어지면. 그녀는 표정을 찡그리며 다급하게 속도를 냈다. 그만큼 혼자 있기 싫은 모양이다. 루카가 입을 열었다. "막스. 팔은 괜찮아?" "그걸 네가 묻는다고?" "너도 부러졌잖아." "네가 신경쓸 일이 아니야." "…미안." . . . . . 18:00. 조사는 순조로웠다. 5층에도, 6층에도, 7층에도 교무실은 발견되지 않았다. "8층으로 올라가자." -그럽시다. 막스는 계단을 오른다. 여전히 루카는 조용히 따라오고 있다. "응?" 시선은 자연스레 천장으로 향했다. 전등이 고장난 것처럼 불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일순 불길함이 오감을 스치고 지나간다. 딸깍. 버튼이 작동되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학교의 모든 조명이 꺼진다. 창문 밖에는 태양도 달도 심지어 별조차 없었다. 모든 광원이 사라진 이 학교는 완전한 어둠이었다. 수업 시간에 복도가 어둠으로 물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 막스?" "루카. 바로 네 옆에 있다. 이봐. 덴리드. 들리나? 눈 앞이 캄캄한데,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예. 들립니다. 이거 야단났네요. 저희 쪽은 제가 마법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습니다만, 막스 쪽은……. "나도 루카도 마법 쓸 줄 몰라. 무리다." -일단 저희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맨 좌측 7층에서 8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빨리와." . . . . . 막스는 덴리드를 기다렸다. 그 외에는 방도가 없었으니까. 녀석은 일행들 중에서 유일하게 마법을 쓸 줄 아는 녀석이다. 함께라면 이 어둠 속에서도 탐사가 가능하겠지. '다른 던전들도 그렇지만 이 던전에는 마법사가 꼭 필요해.' 만약 덴리드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조사도 느리고 분위기도 안 좋았겠지. 남을 잘 인정하지 않는 막스조차도 덴리드의 존재는 크게 다가왔다. -잭. 왜 그러세요? 근데. 문제가 생긴 걸까? 통신에서 잡음이 들려온다. -저기 앞에, 어, 그러게요? 저게 도대체? 어!? 이쪽으로 다가오는데!? 덴리드의 목소리는 다급해 보인다. 보이지 않지만 상황이 상당히 안 좋게 돌아가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으리라. "이봐. 덴리드. 무슨 일이야?" "갑자기 왜 그래…?" "덴리드와 잭에게 이상이 생겼다. 통신이 끊겼어…." 덴리드의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선생과 소녀와 같은 하수인을 만난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재밍 함정이 발동된 걸수도 있고. 여러가지 가능성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 부디 최악의 결과만 아니면 좋겠는데. 초조했다. 그야 당연하다. 파티의 유일한 마법사가 죽는다고? 통신이고 탐지고 나발이고 앞으로는 아예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게 던전 탐사를 진행해야 한다라, 지옥과 다를 게 없으리라. 그리고 덴리드는 언제나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녀석이다. 임기응변도 빠른 편이고, 칙칙한 녀석들 중 가장 밝은 분위기를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둠 속에서 막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조명이 돌아올 때까지 이 자리에 가만히 서있을 수 밖에. . . . . . 20:00. 조명이 켜졌다. 학교의 풍경이 다시 정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까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이걸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불행으로 여겨야할지. "일단 움직인다. 잭과 덴리드도 7층에서 8층으로 향하던 도중이니까 근처에 있을 거야." "응." 일행들과 합류하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잭과 덴리드는 근처에 있었다. 루카와 막스는 서둘러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덴리드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그는 누워 있었다. 평소 말이 많은 성격이고 남을 챙기는 걸 좋아하는 그였다. 그런 덴리드가 일행들이 도착했음에도 미동도 없는 걸 보면.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게 분명했다. "……." 막스는 덴리드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지 않은 채로 잠에 들었다. 하지만. 눈을 뜬 상태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는데. 덴리드에게는 눈이 없었다. 눈이 위치해야 할 장소에는 불그스름하고 어두컴컴한 심연만이 보일 뿐이다. 바닥에 무언가가 굴러다닌다. 시선을 옮기면 덴리드의 푸른 눈알이 복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 . . . . 20:10. "덴리드가 죽었다." "그래. 죽었어. 근데 왜 덴리드만 죽었고 넌 살았지?" "그런 말투로 쏘아붙이는 건 그만둬라. 막스." "묻는 말에 대답해. 왜 너는 살았고 덴리드는 죽었냐고." "덴리드가 죽은 게 나 때문이라는 거냐?" "씨발, 당연히 네가 버리고 도망쳤겠지. 너는 발이 빠르고 덴리드는 마법사라 발이 느리니까! 지금 상황에서 마법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어떻게든 지켰어야지!" 막스는 흥분했다. 그도 그럴게 성급한 그의 눈에는. 마치 슬럼가의 칼잡이가 위험해지자 바로 마법사를 버리고 도망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그냥 제 살 길 찾기 바빴던 건 아니고?" "그렇게 따지면 루카가 그렇게 아파할 동안 네가 할 수 있던 건 없잖아? 그런 느낌이다." "하, 이 비열하고 치졸한 새끼.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봐, 막스. 나는 너와 싸움을 하려는 게 아니야. 상황이 그만큼 강제적이었다는 걸 설명하고 싶었던 거다." 복도는 소란스러웠다. 막스의 흥분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정신을 마비시키는 흉악한 소음이었다. 루카는 어지러웠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덴리드의 죽음이라던가. 팔을 더 이상 멀쩡히 쓸 수 없는 일이라던가. 식수라던가 식량이라던가. 앞으로의 삶이라던가.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 그냥 이 소음을 피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루카는 비틀거리면서 일행들과 멀어졌다. 루카가 사라지든 말든. 막스와 잭의 말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소음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지친 두 다리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문득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하다. 눈 앞에 들이닥친 현실처럼. 마석에 현혹되어 이 던전에 발걸음을 옮긴 것 자체가 실수였다.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뭘까. 살고 싶지만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 뿐이라. 그녀는 창문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 . . . . 루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그제서야 등 뒤에 있는 장소를 확인한다. "뭐야, 여기는…." 그녀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걸음을 옮겼다. *** 마법히어로 : 그그그그그나마 한줄기 희망이었던 마법사가 죽었네요 ㅋㅋ... ㄴ밤까마귀 : 이제부터 지옥 ON... 이라고 하기에는 교무실이 가깝게 있어서 아쉽... ㄴ콩콩 : 막스가 탈출스크롤 가지고 있다고 했었죠?? 정보 유출은 아쉬운데 뭐 이번에 경험치랑 포인트는 달달하겠네 ㅇㅇ 개미여왕 : 그나저나 막스가 왜 싱클레어한테 손절당한건지 알겠네여 ㅇㅇ 진짜 저런 새끼가 제 새끼였으면 제가 목 졸라서 죽여버렸을 듯... ㄴ개미여왕 : 진짜 일이 잘 풀리면 자기 덕분이고 일이 잘 안 풀리면 바로 남탓 시전하는 게 안봐도 비디오네여 ㅋㅋ ㄴ나만부하없어 : 역하다 역해... . . . . . 학교의 유일한 단점은 교무실의 위치가 랜덤이라는 점이다. 율리우스 때는 2층이었고, 지금도 10층 언더에 생성되었다. 그냥 시원하게 80층에 생성되면 안되나? 그러면 탈출이고 뭐고 몰살 가능인데, 아쉽다. "쟤들은 운이 좋네." 학교는 2일차부터 빡새진다. 하수인이 등장하는 빈도가 확 늘어나기 때문이다. "탈출 스크롤이 문제야…." 사실 웨이브 방어는 확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덴리드라는 마법사가 죽은 이상 클리어는 불가능하다. 저들도 분명 알고 있겠지. 다만 저 막스라는 새끼가 정보를 들고 나르는 게 문제다. 침입자와 교무실까지의 거리, 탐사 방식을 보았을 때, 교무실까지 무조건 100% 도달한다. 막스는 탈출 스크롤을 가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것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괴현상에게 사랑받는 던전마스터여도.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미 율리우스 웨이브 때 확인했다. 교무실에서 침입자의 소지품을 갈취하는데 실패했다. "뭐 어느정도 손실은 감안해야겠지." 수중에 30만 포인트가 있었으니. 수틀리면 다른 구역을 만들면 그만이다. 아 참고로. 루카라는 여자가 지금 향하는 장소는 화장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