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전생하고 18년이 지났다. 처음 전생했을 때는 내가 현생을 갑자기 떠나게 된 게 너무 억울해서 분통이 터졌고, 현대라면 당연히 누리는 냉장고나 스마트폰 같은 도구들이 없어서 완전 불편했다. 아니, 나는 그저 갤러리에서 주딱이 세종대왕님이 경제 전문가라는 헛소리를 하길래 5,700자 정도 되는 장문의 논리정연한 글로 반박했을 뿐인데. 갑자기 컴퓨터 전원이 꺼지면서 의식이 흐려졌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놀랍게도 조선의 양반 가문에 태어났더라. 전생시킨 놈이 그래도 사람으로서의 양심이 남아있는 놈이었는지 내가 태어난 김해 김씨 가문은 벼슬만 없을 뿐이지 그야말로 금수저 집안이었다. 만약 내가 태어난 데가 평범한 백성 집안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도련님께서는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계신 겁니까? 도련님 같으신 분도 임금님 앞에서 전시를 보게 되니 긴장이 되는 겁니까?" "뭐 딱히 긴장이 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대과 초시, 복시를 다 붙고 이제 남은 것은 석차에 따라 받는 품계가 달라질 뿐인 시험이 아니냐. 전하께서 물어보시는 것에 최선을 다해 답을 적어내기만 하면 된다 뭐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저희 고을 다른 양반님 댁에서 과거에 붙은 나리를 모시는 녀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시 치르기 전날에는 다들 손톱을 물어뜯으며 긴장을 감추지 못하셨다 하던데... 역시 도련님께서는 참 대담하십니다." "대담하기는 무슨.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이다." 내가 과거를 보러 온 지금 시기는 세종대왕님 치세 초기이다. 조선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로 꼽히는 태평성대의 시대라 할 수 있지. 고려 말처럼 큰 전쟁을 치르는 일도 없고, 영토는 확장되었으며, 세금은 줄어들고, 그 중요한 훈민정음까지 만들어지는 조선의 황금기. 동시에 신하들에게는 끝없는 야근과 초과근무, 높은 업무 능력이 요구되었던 지옥 같은 시기인데. 황희, 맹사성, 장영실 같은 유능한 이들이 눈물 없이 볼 수 없을 정도로 갈려 나간... 역사를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이 당한 험한 꼴을 나까지 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미쳤다고 황희처럼 사직을 청해도 늘 반려 당하면서 살아? 어림없지, 암. "저는 그래도 도련님께서 장원 급제하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양구에서 도련님은 늘 신동이라 불리시지 않았습니까?" "과거에 붙는 사람치고 고을에서 신동 소리 한번 안 들은 사람은 없을 거다." "다른 고을 신동은 어떨지 몰라도, 도련님이라면 틀림없이 장원 급제하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원은 개뿔!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소리만 대충 적은 뒤 속히 제출하고 나올 생각이다. 세종대왕님에게 찍히면 정년퇴직도 못하고 그저 갈려 나가게 된다니까? 그런데 우리 집이 보유한 재산을 생각하면... 굳이 벼슬해서 재산 늘리고 권력 잡겠다고 난리 칠 필요가 있겠냐고. 있는 거에 만족하면서 그저 누리며 살면 되는데. 과거에 높은 등수로 급제하지 못해도, 어쨌든 급제는 했으니 그 누구도 나를 '백수'라 부르지는 못할 거다. 그러면서 내가 벼슬 안 하는 이유로 '썩어빠진 정치판에 안 낀다.'고 말하면 고을의 선비들은 엄지를 척 세우면서 좋아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는 선비의 나라 조선이니까. 임금에게 충언(5,700자의 정성스러운 반박글)을 자주 올리고, 안 받아들여지면 나는 충신인데 임금이 등용 안 해주니 참으로 세상이 혼란하다는 말만 해도 인정해 주는 나라. "나라에 인재가 얼마나 많은 데, 나 같은 놈이 장원 될 리가 있어?" "저 같은 노비한테도 잘 대해주시는 도련님 같은 분이 재상이 되면 이 나라에 큰 기둥이 될 것 같으신데 말입니다." 나도 조선에서 18년을 살다 보니 양반댁 도련님이 다 되기는 했다. 그러나 노비라고 막 대하거나, 때리고 얕보는 짓거리는 도저히 못하겠더라. 한데 조선은 유교의 나라다 보니, 노비에게 잘 대해주는 게 딱히 흠도 아니어서... 나는 집안에서도 노비들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해 주고 있다. 하여 돌쇠도 나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편히 걸 수 있는 거고 말이다. 대화를 이어 나가던 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련님, 저녁을 차려 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죄송하게도 청이 하나 있습니다. 다른 선비님과 방을 같이 써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우리 집안이 제법 부자라고는 해도 한양에 집이 없다. 딱히 아는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민가에 돈을 주고 숙식 중인데... 과거 시기가 되어 한양으로 사람이 몰리다 보니, 우리처럼 민가에 신세 지는 사람이 많아졌나 보다. 우리가 먼저 숙식비를 낸 상황이니 거절한다 해도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전시 대비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할 요량으로 내게 조용한 방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딱히 할 일도 없는 마당인데 방 같이 쓰는 사람을 하나 더 받는 것이 나쁠 게 있겠는가. 말이 잘 맞아서 말동무라도 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 어쩔 수 없지." "정말 감사합니다, 나리." 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방 안으로 선비 두 명이 들어왔다. 한 명의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이면서 좀 많이 통통했고, 다른 한 명은 누가 봐도 대장군 감이었다. "방을 같이 쓰는 걸 허락해 줘서 고맙소. 나는 전주에서 올라온 이원정이라 하오. 옆에 있는 선비는 나와 같이 전주에서 올라와 무과를 치러온 이만리라 합니다." 그런데 이원정이라는 선비 얼굴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통통하고 성격이 좋아 보여서 그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만원 지폐 속 세종대왕님 얼굴이 겹쳐 보인다. 그래도 뭐, 닮은 얼굴일 거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세종대왕님이 딱 저 나이대이기는 한데... 전주에서 온 이씨면 전주 이씨, 아니지 조선 중기 이후라면 모를까. 조선 초기에 전주 이씨에 속한 사람이면 다 왕족이다. 왕족이 뭐 하러 전주에서 여기까지 올라오지? 분명 닮은 꼴의 전주 이씨와는 본관이 다른 사람일 거다. 세상에 닮은 꼴 얼굴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거의 없는 일이다. "호가 어떻게 됩니까?" 조선에서는 양반끼리 절대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심하게는 본인 소개를 할 때도 '호'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인데.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건 왕, 아버지, 스승뿐이다. 다른 사람이 실명을 운운하는 건 싸대기를 후려갈기는 것만큼이나 무례한 일로 통하고 말이다. 그래서 일종의 닉네임인 호로 서로를 부른다. "내 호는 장헌이고, 여기 있는 이는 원정입니다." "도령의 호는..." "죽헌입니다." "죽헌께서는 어찌 한양에 오시게 되었습니까?" "선비로 태어났으면 과거에 급제하고 재상이 되어 일인지하 만인지상, 영의정의 자리까지 올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꿈이 크시군요." "호랑이를 그리려고 해야 고양이라도 그린다고, 재상이 되어 나라를 위해 충군애국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학문에 힘쓰다 보니. 어찌저찌 전시까지 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시라는 말을 들은 이원정, 그러니까 통통한 선비가 눈을 빛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보아하니 나와 동년배인 것 같은데, 벌써 전시까지 치르게 되다니. 입신양명에 성공하셨군요." "과찬이 십니다." "전시는 사실상 순위에 따라 품계가 갈릴 뿐이니, 저보다 먼저 출사하시게 된 죽헌께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뭐든 물어보십시오." 이렇게 잡담이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같이 방 쓰는 것을 허락한 거다. TV나 컴퓨터, 스마트폰도 없는 세상에서는 사람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게 제일 재미있으니까. "지금 조선은 썩어빠진 고려를 넘어뜨리고 태평성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전하의 성은으로 백성들은 배불리 먹으며, 나라의 곳간은 풍요로워지고 있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임금께서 잘하고 계신 것 아니겠습니까?" 조선은 선비와 충언이 넘쳐나는 나라다. 임금에게 충성하는 건 당연하지만, 정책이 잘못되었을 경우 이를 비난하는 건 '충언'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명종 시대 이야기기는 하지만 남명 조식이라는 인간은 임금에게 '임금님께서는 지금 고아시고, 왕대비께서는 과부'라는 미친 소리까지 했다. 그런데 이도 '충언'의 범주 안에 들어가 선비들에게 칭송을 들었던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임금 갈아치워야 한다는 식의 말만 아니면 웬만한 충언은 거의 용납이 된다. 즉, 내 소신대로 이야기해도 문제가 없다는 거다. "조정의 곳간은 차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백성들은 잘못된 세금 제도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 십니까?" "지금 조세 제도는 양반들과 땅을 많이 가진 지주들에게나 유리하지,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은 좀먹히는 제도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조정 대신들은 제도가 잘못된 것을 전혀 모르고, 간언 또한 하지 않아 임금님의 성총을 가리고 있으니... 이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이란 말입니까?" 이 시대 조선의 세금 제도는 고려보다는 당연히 낫다. 권문세족이 지배했을 당시 고려의 농민들이 부담했던 세율은 최대 90%까지 올라갔었는데... 나라가 바뀌어 유교의 나라 조선이 세워지고는 세금 제도가 많이 좋아졌다. 그래, 고려보다는 훨씬 나아진 게 맞다. 그럼에도 세금 제도 굴러가는 꼴이 참 개판인 것이. 조선은 중앙 정부에서 쓸 돈만 세금으로 걷고 지방세를 걷지 않아서... 고을에서 걷은 세금 일부를 지방 관아로 위치 이동시켜 쓰는 형태를 취했다. 지금은 조선 초기라서 병폐가 비교적 심하지 않지만, 조선 중기만 되어 봐라 아주 개판이 될 것이니. "지금의 조선은 부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고, 가난한 백성들은 세금을 아주 많이 내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제도의 허점을 정녕 모르시겠습니까?" "아니, 제도는 완벽하지 않습니까? 나라의 재상들과 주상 전하께서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만든 세금 정책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세금을 최대한 적게 내게 하려고, 각 호(가정)를 잔호와 잔잔호로 나누어서..." "잔호는 몰라도, 잔잔호가 문제입니다." 현재 조선의 세금 부과 방식은 이렇다. 각 가정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 토지에 따라서 등급을 나누고, 그에 맞는 세금을 내게 하는 것. 이 말만 들으면 매달 천만 원 버는 사람, 1억 원 버는 사람을 묶어서 세금으로 매년 2천만 원씩 내게 하는 식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텐데. 그게 맞다. 맞는 데 문제는 잔잔호!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다면 '서민'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정신 나갔다는 거다. "제가 알기로 잔잔호 3개를 묶어서 소호로 간주하고 세금을 걷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들에게 세금 부담이..." "소호는 땅을 무려 5결이나 소유하고 있어, 매년 쌀을 수십 섬씩 수확하는 부자를 말합니다. 반면 잔잔호는 땅 한 마지기가 없어서 소작만 짓는 이들이 대다수고 말입니다. 소작이나 짓는 이들이 3호 모인다 하여 감히 소호의 소득과 견줄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하자면 소호라는 사람들은 연 소득이 최소 2~3억 넘어가는 부자를 말한다. 그리고 잔잔호는 연봉 2천, 3천 정도 되는 가난한 이들이고 말이다. 그런 잔잔호 셋의 소득을 끌어모아봤자 소호의 소득과 비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부과되는 세금은 같으니 이건 뭐 잔잔호들에게 목매달고 죽으라는 제도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사또가 이 잘못된 법에 따라 세금을 FM으로 걷으면 고을 주민들이 다 죽어 나가지만, 적당히 부자들에게서 더 걷는 사또가 있으면 고을이 살만해진다는 기록까지 있다. "......" "세금을 걷지 말고, 군역을 지우지 말자.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정에 맞게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공납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것 또한 이런 개판이 없습니다." 조선 역사를 배우다 보면 늘 나오는 이야기가 '대동법'이다. 대동법이 시작되고 공납으로 고통받던 백성이 갑자기 살만해졌다는 식의 이야기. 대동법이 무슨 마법의 주문처럼 그려지는데... 그 묘사는 진짜 틀린 게 아니다. 왜냐하면 공납을 위한 특산물을 만드는 게 백성들을 정말 죽도록 괴롭혔던 제도였으니까. "쌀농사만 짓는 이에게 고을 특산물로 사과를 정하고 사과를 바치라 명령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인삼이나 표고 같은 귀한 것을 구해오라 하니. 백성들은 그걸 구할 길이 없어 결국에는 절간을 통해 방납 하느라 모두의 허리가 휘고 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나를 희생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 아니다. 하여 이런 모순을 알고 있지만,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어서 문제를 해결할 생각까지는 전혀 없다. 이 문제를 다 해결하려면 조선의 기득권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해야만 한다. 세종이 도와줘서 성공한다 해도 황희처럼 죽을 때까지 갈려 나가면서 일만 해야 할 게 뻔하고 말이다. '말이 안 되지.' "제가 백성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이 과연 태평성대인가 아니면 또 다른 난세이자 지옥인가 말입니다." "...그러면 고칠 방법은 있겠습니까?" 생각나는 건 여러 가지 있다. 갤러리 하면서 주워들은 것도 있고, 대체 역사 소설을 수도 없이 읽으면서 알게 된 것도 많으니까. 막말로 대동법만 대충 시행해도 세금 부담을 왕창 줄일 수 있고, 예산도 확보되며 시장 역시 잘 돌아갈 거다. "방법이야 있지만 그 방법을 아뢴다 하여 전하께서 받아들여 주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듣기 거리껴지는 법이라서. 한낱 서생 나부랭이에 불과한 제가 과거에 합격해 미관말직이라도 올라 상소를 올린다 한들 승정원에서 전하께 전해 주기나 하겠습니까?" 그 말을 하였을 때 원정, 통통한 선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난다면서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를 따라 같이 온 선비도 함께 가버렸고. "...... 밥 안 먹고 다들 어디 가는 건가?" 결국 나는 혼자 밥을 먹게 되었다. ** 김대붕과 대화를 나눈 통통한 선비 원정, 아니 조선의 임금 세종 이도는 마음이 착잡했다. 너무 마음이 무거운 나머지 상왕인 이방원을 졸라서 겨우 나온 잠행에서 마주하게 된 밥상을 보면서도 식욕이 싹 사라져 버렸다. 하여 그는 곧장 경복궁으로 발걸음을 옮겨서 이방원을 찾아갔다. "아바마마, 다녀왔사옵니다." "...... 왜 이리 빨리 온 것이냐." 세종은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잠시 망설였다. 그러고서 과거를 보러 온 선비를 만나 들은 사정을 다 이야기했다. 이방원은 본인의 머리를 쥐어짜 설계한 세금 정책이 틀렸다는 지적을 듣고는 처음에 몹시 불쾌해했지만... 김대붕이라는 선비가 한 말에 틀린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탄식하며 안타까워했다. "...... 내가 백성들의 사정을 깊이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구나." "예, 소자도 아바마마와 동일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밥상을 마주 대하고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속히 아바마마를 뵈러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지금은 소고기를 갖다주어도 먹고 싶지 않습니다." 세종은 고기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사람이다. 오죽 고기를 좋아하면 태종 이방원이 죽기 전 내린 유언에 상중이라도 세종에게는 고기를 반드시 먹게 하라 하였을 정도다. 고기 없이 못 사는 아들이 고기 생각이 없다니 그 말만으로도 세종이 얼마나 착잡한 심정인지가 가늠되었다. "...... 그래도 참으로 다행이다." "무엇이 다행이라는 겁니까?" "김대붕이라는 자가 이번 전시에 응시하지 않느냐. 녀석을 발탁하고 그의 충언을 들으면, 백성들의 삶을 어루만질 수 있겠지." 세종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렇다. 잘못된 정책을 지적해 줄 신하가 있다면 백성들의 삶을 개선 시킬 수 있을 게 아닌가. "역시 아바마마이십니다." 세종의 얼굴에 드리웠던 근심이 쫙 펴졌다. 태종 이방원은 그런 아들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봤다. "충신에게는 견마지로를 다하게 해야 하느니라." 이 말을 김대붕이 직접 들었으면 그는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견마지로란 신하가 임금을 위해 황희처럼 일하겠다는 충성 맹세이며, 임금이 이 말을 직접 쓴다는 건... 죽을 때까지 굴려주겠다는 선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김대붕은 즐거운 마음으로 과거 시험장에 들어섰다.